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72)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72)화(72/326)
“온실 재배? 동절양채(冬節養菜)를 말하는 것이냐? 어찌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더냐.”
“아바마마. 소녀, 할마마마께서 기력이 쇠해지시는 것을 보며 할마마마께 어떤 음식을 만들어 드려야 좋을지에 대해 고민하며 문득 깨달았사옵니다.”
아픈 사람이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리고 그것이 어찌 왕실의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일이겠는가.
노화와 병은 신분에 관계없이 공평하게 찾아온다. 그리고 좋은 음식과 좋은 약을 쓰는 것은 사람을 건강하게 한다.
특히 영양이 부족해지기 쉬운 겨울철에 온실 재배로 식량 보급을 높일 수 있다면 노약자와 환자에게 좋은 일일 터.
대비전에서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얼마 뒤, 적당히 그런 논리로 왕을 찾아가 설득해 보았다.
효(孝)를 중시하는 조선 시대에서 가장 써 볼 만한 패였다.
“네가 직접 할 생각이더냐?”
“당연히 채소를 키워 본 적이 있는 농부를 고용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땅이야 벌어 놓은 돈이 있으니 멀지 않은 경기도 안에서 원래 밭으로 쓰이는 땅을 구해 보든가, 아니면 적당한 자리를 찾아 그 안에서 해결 가능할 거 같고. 농부도 마찬가지고.
“흠.”
“그리고 시영원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을 가르치도록 할 생각이옵니다. 소녀가 지원하고 있다고는 하나 그들도 일자리를 구해 자립할 필요가 있지 않겠사옵니까.”
“나쁘지 않은 생각이로구나.”
내가 무조건 돈을 쏟아붓는 것은 무리니까.
“그리고 소녀는 시영원에 있는 이들 모두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사옵니다.”
“……모두에게 말이냐?”
“그렇사옵니다.”
천민들에게까지 글을 가르치고 있다는 게 괜히 나중에 밝혀지는 것보다야 내 입으로 미리 말하는 게 낫겠지.
궁녀가 아니더라도, 드물지만 글을 아는 천민들도 있다.
주인의 변덕이기도 하고, 타고난 총명함이기도 하지만 한계를 벗어나는 경우는 드물다.
그것을 알고 있을 텐데도 부왕은 내게 물었다.
“천민들에게까지 글을 가르치려는 까닭은 무엇이더냐.”
“그들도 조선의 백성이니 유학을 익히고 성인이 되기 위해 교육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겠사옵니까.”
“노비에, 여인들도 말이냐.”
“아바마마께서 소녀에게 손수 글을 가르치시고 책을 읽도록 하심도 그를 위해서가 아니셨사옵니까?”
“……그러했지.”
응, 아니라고 얼굴에 써 계시네요.
‘내가 아기일 때는 나를 품에 앉히고 기분전환으로 가르쳤을 거고, 나중에는 왕족이니 교양을 익히라고 한 거겠지. 뭐 대단한 뜻을 품고 가르쳤겠어.’
하지만 이렇게 포장해서 말하면 ‘아니 그거 아닌데.’라고 말할 수 있을 리가.
“그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배우고 익히는 것이 어찌 나쁜 일이겠사옵니까? 글을 알면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니 소녀가 일을 시키기에도 편해지지 않겠사옵니까. 소녀가 하가할 때 지금 소녀의 시중을 드는 궁녀들을 모두 데려갈 것도 아니니, 미리 가르쳐 두어야지요.”
“……그야, 그렇겠다마는.”
부왕은 조금 떨떠름한 얼굴이다. 세자도 아직 혼인을 못 했으니 하가는 먼 훗날의 일이지.
“게다가 농사 역시 자연의 이치를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옵니까? 무엇보다 글을 아는 이들이니 농서를 읽을 수도, 쓸 수도 있겠지요.”
“……그건 네 말이 맞구나.”
아무 말이나 늘어놓은 거 같지만 어쨌든 왕이 납득했다면 됐다.
온실 재배를 한다고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고루 이득이 돌아갈지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좀 더 영양 섭취가 가능해진다면 좋은 일이고.
우린 돈을 벌 수 있고.
게다가 농사를 짓는 방법이 온실 재배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평소에는 찬거리용 채소 역시 재배하게 될 거다.
그리고 가져다 시장에 팔거나, 시영원에 자체 공급도 하면 여러모로 도움이 되겠지.
‘온실 재배한 것들은 양반들에게 좀 비싸게 팔아야지.’
아마 겨울에 싱싱한 채소가 있다고 하면 내다 팔지 않아도 알아서 사러 올걸.
유학자들이라 자연의 순리를 벗어난 것은 먹지 않겠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병든 어머니께서 드시고 싶어 하시는데 저것은 안 된다고 하는 것도 효도일까 아닐까.’
부모님을 참된 길로 이끄는 거니까 효도라고 주장할지도 모르지만 병든 부모님께 좋은 음식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과연 안 생길까?
“아직 어린 옹주의 뜻이 가상하구나. 네가 그리 생각한다니 뜻대로 해 보려무나.”
“감사합니다, 아바마마!”
그건 나중에 확인할 일이고 일단은 왕의 허가가 떨어졌으므로 실행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역시 그냥 지르는 것보단 왕에게 허락을 받으니 편했다.
온실 만드는 것에 대한 전문가와 서적이 왕실에 있기 때문이다.
궁에만 있는 온실을 멋대로 만들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나중에 또 온실에 대해 뭐라고 하는 사람이 나오면 일단 왕이 구두(口頭)로라도 허가를 해 줬다는 1차 방어가 가능하니까.
‘시영원에 의탁하고 있는 이들 중에는 아이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성인이 없는 것이 아니니까 일단 그중에서 사람을 몇 명 뽑아야지. 아, 노비들도 있었지.’
일단 일이 조금 자리 잡히면 아이들도 일할 수 있게 해야지.
시영원에서 글을 가르치고 있긴 하지만 적성에 안 맞는 사람은 반드시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억지로 가르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 읽고 쓰기나 기본적인 상식 정도만 주입한 후엔 육체노동의 비중이 큰 일을 주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농사도 머리가 나쁘면 제대로 못 하지만 말이지.’
괜찮다. 아마 똑같이 가르쳐도 분명 두각을 나타내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이 잘 배워서 나머지를 이끌면 어떻게든 될 거다.
물론 그런 경우 그 사람에게 그만큼 더 많은 급여를 주게 될 거다. 둘에게 같은 대우를 하는 건 좀 미안한 일이었다.
그리고 육체노동의 비중이 큰 일에는 당연히 농사만 있지 않았다.
***
온실 재배에 대한 준비가 끝날 무렵 나는 다른 큰 일에 대해 가이에게 말을 꺼냈다.
“닭을…… 말씀이십니까?”
“응. 처음에는 조금 작게 시작해도 괜찮으니까 닭을 대량으로 키웠으면 해.”
“그렇게 많이 어찌하시려고요?”
“계란이랑 닭고기로 장사나 해 보려고.”
이 시대 사람들 영양상태 부실한 거 보고 있자니 현대인 입장에서는 좀 괴롭다.
물론 잘 먹는 집은 잘 먹고 있겠지만, 사람이 어떻게 단백질을 안 먹고 살 수 있어? 특히 자라나는 성장기 어린아이들에게 고기는 필수다.
그리고 단백질 섭취에 만만한 건 역시 계란과 닭고기지.
이 시대에 가장 흔한 고기는 소와 닭이다.
소는 농사일을 할 때 쓰기 때문에 농가에서 키우고, 닭은 아침에 기상 알림용으로도 쓸모가 있고, 고기가 아니더라도 계란을 얻기 위해서라도 많이들 키운다.
반면에 돼지고기는 오직 고기만을 얻기 위해 키우는 동물이라 흔하게 키우지는 않았다.
왕실에서야 잔치 등에 쓰기 위해 전용 목장을 운영 중이지만 그렇게 대규모로 키우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소는 풀을 먹지만, 돼지는 잡식이라 인간과 식량이 겹치기 때문에 사치스러운 고기였다.
‘돼지고기보다 소고기가 더 흔하다니 적응 안 돼.’
그나마 이미 이양법으로 농업생산량이 올라 있어 불가능하지는 않겠다만 너무 식량 낭비 같아 보일 거 같아서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그 외에는 토끼를 키우는 것도 고려해 봤는데 이건 양계장 시작과 동시에 시영원에서 시도해 봤는데 일단 실패했다.
“토끼를 안 키우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구나.”
“울타리를 만들어도 다 뛰어넘어서 도망치는걸요.”
아쉬워하는 내 옆에서 토끼를 생포해 온 당사자인 성 겸사복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해맑았다.
“어, 그럼 토끼 먹어도 돼?”
“음. 키울 수 없으면 할 수 없지.”
물론 키웠으면 그건 그것대로 나중에 잡아먹었겠지만.
이 시대의 토끼는 내가 아는 집토끼가 아니라 흔히 산토끼라고 부르는 야생 토끼를 포획해야 하는데 워낙에 날래서 산 채로 잡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울타리에 가둬놔도 탈출하더라.
점프력이…… 거의 2m는 되는 거 같다.
“으음. 번식력도 좋고, 가죽도 쓸모 있고, 고기도 먹을 수 있어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기씨. 아이들에게 고기를 먹이려고 이렇게까지 고민을 하시다니…….”
“아니, 나만 먹으면 뭔가 좀, 그렇지 않나?”
나는 시영원 사람들의 반짝이는 시선을 외면하며 토끼 농장에 대한 계획을 접었다.
조상들이 안 키웠던 건 역시 다 이유가 있나 보다.
조금 점프력이 부족하고 온순한 개체를 찾아 번식시키는 방법도 있겠지만 너무 수고스럽고.
일단은 닭만 대량 사육해 보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물론 닭도 시영원에서 기본적으로 키워 보고 시작했다.
도성 안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 없어서 온실은 무조건 경기도에서 해야 했지만 닭이야 소소하게 키울 수 있으니까.
부화부터 시작해 병아리에서 닭까지 키우는 것도 시영원 내에서 직접 해 본 아이들 중에서 일꾼을 뽑았다.
아무래도 관심 없는 애한테 시키는 것보다 관심 있는 애들이 하는 게 효율이 좋으니까.
어떤 일도 한두 달 만에 끝나는 일이 아니니 조급하게 진행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 동시에 진행하는 거지.
‘잘 되어야 할 텐데.’
아무래도 곧 시영원 인원이 늘어나지 않을까 싶거든.
***
예상대로 겨울이 지나고 시영원에 사람 수는 급격하게 늘어났다.
처음 예상했던 대로 추위 때문에 들어온 사람도 많았는데, 다른 이유도 있었다.
“또 아기가 늘어났다고?”
“그렇다고 하옵니다.”
언제나처럼 주기적으로 시영원에 방문한 나를 맞은 민 상궁의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겨울이 아니어도 시영원에 아기를 버리고 가는 사람은 적지 않았다. 아무래도 먹고 살기 힘드니까 여기다 애를 버리고 입을 줄이는 것 같았다.
“아니, 아기를 못 키우면 보통 좀 잘 사는 부잣집이나 대감 댁 앞이나 아무튼 애 키워 줄 거 같은 집 앞에다 놓고 가는 거 아니었어?!”
“그럼 그대로 그 집 종이 될지도 모르지 않사옵니까. 여기서는 일단 다 양인으로 키워 주는 것을요.”
“그러니까 잘 알아보고 아이 없는 집에 데려다 놔야지. 그래야 업둥이라고 입양해서 키울 거 아냐.”
현대에선 이젠 사장되었다고 봐도 무방해 보이는 문화다만, 옛날에는 키울 수 없는 아기는 강보에 싸서 남의 집 앞에 몰래 버리고 가는 경우가 있었다.
그럼 그 아기, 업둥이는 굴러들어온 복덩어리라고, 복을 가져다주는 아이라며 그 집에서 키우곤 했다.
굳이 해석해 보자면 버려진 아이를 키워 주는 것이니 덕을 쌓아 복이 온다는 식으로, 그 집에서 아이를 키우도록 하는 반강제 입양법이었다. 제집 앞에 버려져 있던 아이를 다시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정말 그 집 아이로 키워지는 경우가 있는 반면, 역시 그냥 종으로 키워서 부려 먹는 경우도 있으니 복불복이었다.
“그런데 그걸 나한테 왜 일일이 보고해.”
“옹주 자가께, 아니 아기씨께 이름을 받아야 한다고 아이들이 성화라 말씀을 올렸을 따름이옵니다.”
이런저런 진행 현황에 대해서는 언제나 보고를 받고 있지만 그래도 시영원에는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있었다.
그리고 올 때마다 이름 짓기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고.
아이가 들어오는 게 한두 번이 아닌데 그때마다 다들 나에게 아이의 이름을 지어 줄 것을 요청했다.
“왜 그렇게 다들 나한테 이름을 받고 싶어 하지.”
“옹주 자가를 의지하고 있으니 그렇지 않겠사옵니까. 게다가 지아는 옹주 자가의 진짜 신분을 눈치채지 않았사옵니까.”
“눈치가 빠른 애들 중에는 더 있을 수도 있지.”
이건 숨기고 다녔다기보다는 그 귀하신 옹주 자가가 이런 곳에 직접 오실 리가 없잖아? 라는 고정관념에 기댄 위장에 더 가까웠다. 사실 이걸 숨겼다고 할 수 있을까?
아무튼 노비들도 아이를 데리고 있는 사람이 많아서 그렇게 들어온 갓난아기는 공동육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의외로 어린아이들도 갓난아기를 잘 돌봐서 나름 도움이 된다고 하고.
하지만 나는 그런 모습이 약간 탐탁지 않았다.
‘나이 차 많이 나는 동생 놈을 돌보느라 놀지도 못했던 나의 암울한 어린 시절이 떠오르는데.’
전생의 언니도 비슷했다고 하니 억울해도 뭐라고 할 수도 없었지…….
나는 나의 경험을 토대로, 아기를 돌보는 것 때문에 아이들이 공부를 소홀히 하게 되는 일은 없도록 민 상궁에게 당부했다.
내가 뭐 과거 준비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기초, 초등 교육 정도니까.
“참, 전에 얘기한 것은 어찌 되었는가?”
“분부하신 대로 작성해 두었사옵니다.”
그렇게 민 상궁과 한창 대화하고 있는데 문밖에서 어린아이들이 부르는 익숙한 노래가 내 귀에 흘러들어왔다.
“아~기 뚜루! 뚜루루뚜뚜.”
아아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