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74)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74)화(74/326)
사실 이 시대에도 비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궁이나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세안할 때 주로 곡물가루를 썼다.
곡식을 갈아 만든 것이라 조두(澡豆)라 불리기도 하고, 더러움을 날린다고 뜻으로 비루(飛陋)라고도 불렀다.
그 외에도 쌀뜨물이나 콩물, 창포물 등도 많이 쓰였다.
단오에 창포물로 머리 감는다는 건 세시풍습으로도 남아 있어 유명하지 않던가.
녹두나 팥을 갈아서 만든 것이라 미용에도 좋고 친환경적이긴 한데 천연 미용비누가 그러하듯 거품이 많이 안 나서 기분상 개운하지가 않더라.
물론 어디까지나 내 관점이지만.
사실 공해가 심한 현대와 달리 여기는 공기가 좋아서 세수할 때 그렇게까지 강한 세정력은 필요 없기도 했다.
당연히 이런 것들은 미용 목적에 가깝지만, 얇고 귀한 천을 세척할 때도 녹두 같은 곡물가루를 쓰더라.
그리고 빨래할 때는 당연히 잿물을 쓰는데, 이것도 희석해서 사람이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 외에는…… 말의 땀도 빨래할 때 쓸 수 있다.
말이 달리고 나면 땀에서 거품 나서 신기해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걸로 빨래를 하기도 하더라.
‘근데 기분상 그걸로 씻는 건 좀 그렇지.’
하지만 그렇다고 비누를 만들려고 해도 말이지. 일단은 기름이 귀해서 어려웠다.
워낙에 고기도 먹는 사람만 먹고, 고기에서 나오는 비계는 전 부칠 때 쓴다.
그렇게 해서 남는 폐기름? 잔치라도 하면 좀 많이 나오는데 그 외에는 무슨 식당도 아니고 많이 나올 리가.
그래도 수라간에서 나온 기름으로 비누를 만드는 게 가능하긴 했다.
그래서 나도 처음에는 일단 잿물에 쌀겨 가루나 곡물가루를 섞어 비누를 만들어 쓰곤 했었다.
중국에서는 밀가루를 넣는다던데 조선에는 밀가루가 귀해서.
그런데 닭고기 요리를 보급하면 기름이 어느 정도 나오니까, 이걸로도 어느 정도 비누 수급이 가능해 보였다.
내가 처음 비누를 만들 때부터 함께해 온 가이는 닭기름으로 비누를 만들자는 내 말을 듣고 이상한 얼굴을 했다.
“옹주 자가께서는 늘…… 신기한 일을 하십니다.”
“음…… 나도 신기해.”
빨래용 잿물은 짚이나 나무를 태워 만든 재를 빗물에 우려서 만드는데 여기까지는 사실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이 더 많으니 어렵지 않다.
비누를 만들려면 그 잿물을 걸러 액체만 내린 후 여러 날에 걸쳐 약불로 수분을 날려서 졸이고 숙성시켜 기름 혹은 곡물가루와 섞어 꾸덕하게 만들고 다시 숙성시켜야 한다.
왕실에서는 좀 그렇고, 예전에 사들인 시영원 인근의 민가에서 만들게 했는데 당연히 만들 때 나오는 연기가 몸에 안 좋기 때문에 통풍이 잘되는 곳에서 입과 코를 천으로 막고 교대근무하며 만들게 했다.
‘여름에 하다가는 죽을 거 같으니 겨울에 하는 게 딱이지만.’
일단 여름만 피하면 괜찮을 거 같지.
그렇게 해서 만든 비누는 왕실에서도 쓰고, 시영원이나 주막에서도 썼지만 혜민서나 의원들에게도 조금씩 보내기로 했다.
얼마 후 비누를 쌓아 놓고 흐뭇해하는 나를 보며 가이와 송비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닭기름만으로는 역시 부족하겠지.”
“옹주 자가께서는 비누 생산에 공을 많이 들이시는 듯하옵니다.”
“깨끗한 게 좋아!”
“예. 어릴 적부터 그러하셨지요.”
위생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보다 약간 결벽증 있다는 쪽이 더 잘 받아들여지는 현실이라니.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다소 신경질적일 수준인 나의 결벽증과 함께 왕실 전체 위생 수준이 강제로 올라가면서 잔병치레하는 사람이 줄었다는 걸 깨달은 이들도 있었다.
바로 내의원 어의들.
당연히 내가 비누를 보낸 1순위……까지는 아니고 왕실 식구들 다음인 2순위인 사람들이었다.
요즘 들어 비누를 구할 수 없냐는 청을 하고 있던데.
‘주고 싶어도 재료가 부족해서…….’
식물성 기름으로도 가능하긴 한데 그건 그것대로 낭비 같고, 냄새가 너무 심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고.
물론 실패해 봤자 세탁비누 행이었지만.
“그래서 말인데, 주막의 규모가 커지면 돼지 쪽도 조금 수를 넓혀 볼까 하고.”
“예?”
내 말을 들은 가이의 안색은 창백해졌다.
‘가이에게 보약 한 첩 해 줘야겠다.’
일을 너무 많이 시키는 것 같아서 솔직히 나도 미안했다.
그나마 이양법 이후 시대라 다행이야. 아니었으면 엄두도 못 냈을 텐데.
‘농업 생산력도 더 올리면 좋겠지만 내가 농사법에는 그렇게 관심이 없었어서.’
오리 농법 같은 거밖에 몰라서 농부들에게 얘기해 봤는데 시기를 잘 맞춰서 해 보면 가능할 거 같다고 해서 시도해 보기로 했고.
내가 가진 땅을 일구는 농민들에게 개선된 농사법을 생각해 내면 상을 내릴 거라고도 해 뒀다.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그리고 시간이 흘러 주막이 생각보다 장사가 잘되면서 식당을 따로 차려 보기로 했다.
여기서는 아예 고급화 전략을 내세워 요리 레시피의 원보유자들이 주방을 맡기로 했는데, 주막에서는 내놓지 못했던 고급 요리들이 나와서인지 생각보다도 더 장사가 잘됐다.
그렇게 규모가 커지면서 이제 돼지고기도 노려 볼 때가 되었다.
나는 벌어들인 돈으로 돼지 농장을 조성하기로 하고 왕실에서 일하던 업자에게 돈을 주고 노하우를 전수받도록 했다.
물론 이것도 왕에게 허락을 받았다.
비누 때문이니 뭐니 했지만 역시 돼지고기가 맛있는 건 사실이었으므로, 나의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삼겹살! 삼겹살! 삼겹살!’
솥뚜껑에 구워 먹으리!
그동안도 못 먹은 건 아니지만 역시 나에게 맛있는 음식을 돈 주고 팔아야지.
원래 한번 맛을 본 인간들은 그 맛을 못 잊는다.
소고기에는 소고기의 맛이, 닭고기에는 닭고기의 맛이, 돼지고기에는 돼지고기의 맛이 있는 법.
당연히 팔기 시작하니 잘 팔렸다.
나는 거기에 더해 비누 사업을 확장하기로 했다.
적당한 부지에 작업장을 만들어 위험 관리에 신경을 쓰며 비누 생산량을 늘렸다.
그리고 궁 안에서도 쓰고 혜민서와 활인서에도 보내기로 했다.
사실 의원들이야 약초 물로 자주 씻게 되니 비교적 청결하지만 역시 비누를 쓰는 게 확실하니까. 환자들의 위생도 중요하고.
내의원을 통해 비누를 주겠다고 하자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비누를 공급해 주는 대신에 비누를 쓰는 그룹과 쓰지 않는 그룹을 지정해 병의 차도와 전염도 등을 기록하도록 했다.
그리고 혜민서와 활인서에서 백성들을 제대로 치료해 주고 있는지 내부감사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은근히 전했다.
‘옛날에 문전박대당한 적이 있었지.’
지금은 시영원에서 왔다고 하면 그때처럼 밀어내지는 않는다지만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며 가장 바쁜 사람은 내 사업 전반을 맡고 있는 지밀 궁녀 가이와, 시영원의 책임자가 되어 버린 민 상궁이었다.
두 사람은 언젠가부터 늘어난 서류 작업에 골머리를 앓았으며, 내가 주는 많은 급여를 받았다.
참고로 민 상궁의 오라비는 몇 번인가 시영원에 들어오려 시도했으나 미리 언질을 준 전직 체탐인들에게 쫓겨났다고 한다.
민 상궁은 시영원 밖으로 나갈 일도 별로 없지만 이제 책임자라 혼자서 안 다닌다.
그리고 몇 년 동안 내가 사업을 확장하며 시영원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취직하는 것을 본 아이들은 간단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일단 어느 정도 기본적인 교육 수준이 충족되어야 관리직으로 올라가 급여를 더 받을 수 있다는 것과, 급여와 관계없이 아무래도 관리직이 더 간지 나 보인다는 걸.
나는 당연히 성별을 가리지 않고 성적과 적성에 따라 일을 시켰으므로 아이들 사이에서 성별은 논외였다.
물론 여전히 몸으로 때우는 걸 좋아하는 애들은 그에 맞는 일을 줬다. 싫다는 걸 어쩌겠는가.
노동직은 언제나 필요한 법이니 나쁜 일은 아니었다.
급여의 차이가 있다지만 차이를 크게 두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공부는 해야 사기라도 덜 당하지!’
이 험한 세상. 아는 게 하나라도 많아야 무시도 덜 당하고, 피해도 덜 본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른들의 이런 깊은 뜻을 알 리가 있나.
공부를 죽어라고 싫어하는 애들에게 그래도 기본 학력은 채워 주고 싶은 마음.
그리하여 아이들의 향학열을 더하기 위해 하는 수 없이 다른 수단을 꺼내 들었다.
패관(稗官) 소설이었다.
현대말로 하면 무협, 판타지, 로맨스 소설.
세자에게 이 얘기를 해 주자 꽤 흥미로워했다.
“그게 효과가 있단 말이냐?”
“앞부분은 읽어 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읽으라고 책을 주는 거지. 글을 아는 애들에게는 절대 읽어 주지 말라고 당부해 두고.”
글을 읽지 못하는 자. 뒤 내용을 알 수 없으리.
이 방법의 단점은 책이 많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그래서 운종가(雲從街:지금의 종로 사거리, 번화가)에 있는 세책방(貰冊房:책대여점)을 하나 인수했거든.”
“너 지금 뭐라고 했느냐?”
“책방 생겼으니까 보고 싶은 책 있으면 말하라고.”
가족 찬스로 미리 빼 드림.
“내가 패관소설을 읽을 만큼 한가해 보이느냐?”
“사람이 취미도 좀 갖고 그래야지. 그렇게 경전만 읽으면 감수성이 떨어져서 못 써.”
딱히 말은 하지 않지만 내가 벌인 일들이 잘되고 있다는 걸 뻔히 알고 있을 세자였으나, 내가 가끔 이런 소릴 하면 이상한 사람 보듯 나를 보곤 했다.
“네 사업은 어쩌다 이렇게 커진 것이냐?”
“시영원 운영에 돈이 필요해서 이것저것 하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됐네.”
“돈이 필요하면 나나 아바마마께 달라고 하면 될 것을.”
“계속 받아서 쓰는 것은 좋지 않지. 걱정 마. 뒷돈 같은 거 안 받아. 소박하고 적법한 장사를 하고 있어.”
일단 아직까지는 소박하지. 왕족 기준으로.
장사하면 꼭 뒷돈 달라는 놈들이 있기 마련인데, 뒷배가 옹주다 보니 뒷돈 달라는 놈들보다 뒷돈 주겠다는 사람이 많아서 큰일이었다.
덕분에 가이와 민 상궁이 곤란해하고 있을 정도로 온갖 사업은 호황을 맞고 있었다.
나도 이렇게 잘될 줄은 몰랐지.
문제가 있다면 시영원에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너무 늘어서 난감하다는 건데.
원래 집 없는 고아들 위주로 받는 곳이라 다 받아 줄 수는 없어서 그냥 학당 비슷한 걸 새로 만들까 하고 있었다.
‘이게 금수저의 사업이구나.’
망해 봤자 허리띠 좀 졸라 보지 뭐,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도해 볼 수 있는 특권.
일개 서민일 때는 상상도 못 했을 텐데.
이렇게 쉽게 생각할 수 없었는데.
‘좀 허무하기도 하고.’
그리고 그런 나에게 주변에서는 염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네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만 혹 무리하는 것은 아니냐.”
“무리는 내가 아니라 가이가 하고 있는데.”
“네가 몰래 궁 밖으로 나다니는 것을 내가 모를 것 같으냐.”
역시 꼬리가 길면 잡히는군. 요새 많이 바쁘긴 했어.
“아바마마도 아셔?”
“글쎄. 다망하신 분이 아니시더냐.”
모른다는 뜻이군.
“무엇을 하든 네 건강을 가장 우선해야 한다. 알았느냐?”
“조심할게.”
송비가 구워 온 빵 사이에 다진 고기로 만든 패티와 채소를 넣은 간식을 먹으며, 나는 문 상궁이 이번에는 세자를 먹이기 위해서가 아니고 세자의 명을 받아 나를 불러왔다는 걸 깨달았다.
환담을 마치고 처소로 돌아오자, 나 때문에 요즘 계속 밖으로 나돌다 돌아온 가이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옹주 자가, 근래에 너무 무리하고 계시는 게 아니온지요.”
“역시 가이한테도 그렇게 보여? 내 생각에도 나 요새 너무 바쁘게 산 거 같아.”
“…….”
큰일이다. 가이가 얘를 어쩌면 좋지, 하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하지만 말이지 일은 시류를 타야 해. 어째선지 하는 일마다 착착 잘 진행되니까 멈추면 안 될 거 같아 그동안 계속 그만둘 수 없었다.
“이제 좀 쉬시지요. 소인이 알아서 하겠사옵니다.”
“어, 왜.”
“더 많이 드시고, 마음 편히 쉬시고, 푹 주무셔야 하옵니다.”
“어어, 응.”
나는 대충 왜 저러는지 감이 잡혔지만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세자가 걱정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가이의 잘못도 아니었다.
어느새 세월이 많이 지나 있었으니까.
이제 경언군의 죽음도 내게는 희미해졌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중, 대비마마가 승하하셨다.
경언군이 사약을 받고 죽은 이후, 대비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셨다.
도중에 조금 나아지시는 듯 보여 다들 조금 희망을 가졌으나, 연세 드신 분들이 그러하듯 한번 쓰러지신 분들이 회복되는 일은 드물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니 주변 사람들 역시 말로는 곧 쾌차하실 거라고 하면서도 뭔가 내려놓은 분위기라. 다들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대비의 병환 중 세자가 혼사를 치를 수는 없었기에 그동안 세자는 세자빈 간택을 치르지 못했다.
보통은 대비가 본인이 죽기 전에 세자의 혼인을 보겠다고 나설 것 같았으나 아무래도 대비는 경언군의 일이 마음에 남았는지 세자의 혼인에 대한 말이 나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세자의 혼사는 또 미뤄졌다.
내가 11세, 세자가 17세 때 일이었다.
상중이므로 앞으로 3년간은 아마 세자빈 간택이 없을 것이다.
그 덕분이라고 하면 이상하지만 그렇게 이름 모를 원작 세자의 다음 세자빈 후보는 무사했다.
‘나와 같은 처지일지도 모르는 사람이 안 생긴 건 다행이지.’
어른에게는 짧지만 어린아이에게는 긴 시간이 흘렀다.
내 손은 여전히 작다.
독을 먹은 그날부터, 나는 조금도 자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