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76)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76)화(76/326)
‘아니지. 시영원 애들 데려다 일 시키는 건 어떨까.’
시영원에서 민 상궁과 나인들 아래서 본의 아니게 스파르타 교육을 받고 강제적으로 글을 깨우친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니 단순한 일을 시키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지금도 글씨 잘 쓰는 아이들은 세책방에서 필사 일을 받아서 하고 있을 정도였다.
처음 시영원을 만들고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시영원은 처음 생각보다 잘 돌아가고 있었다.
공부는 기본적으로 시켰지만 적성에 맞춰 자수, 농사, 요리, 접객 등 다양한 분야로 취직도 시켰고. 취직하고 돈이 모이면 독립하도록 했다.
물론 시영원이 제집 같다고 나이가 차도 독립하기 싫어하는 애들도 있었다.
사람 많고 북적거리는 게 좋다니 어쩔 수 없지.
그럼 집세를 받는 수밖에.
취직도 시켜 주고 유예기간을 줬는데도 안 나가겠다는 사람들에게는 시세보다 약간 저렴하게 집세를 받기로 했다.
혹은 시영원에서 일하겠다는 사람들은 저들끼리 돈을 모아 시영원 근처의 집을 사거나 빌리기도 하며 그럭저럭 정착했다.
하지만 모처럼 글을 배운 아이들인데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게 조금 아쉬웠다. 물론 똑똑해서 상단에 취직하는 아이들도 있고, 내가 하는 사업에 함께하는 애들도 있었지만.
게다가 양민인 아이들은 그래도 사정이 나았는데, 천민이면 글을 배운다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더 적었다. 특히 여자들은.
‘이 기회에 여성 의료 인력의 양성을 건의해 볼까…….’
이런 건 말이 나왔을 때 밀어붙여야 했다.
특히 여의(女醫)가 적어 불편한 건 사실이니까.
사실 몇 년 전부터 내 몸에 성장을 안 한다는 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조차 하지 못한 내의원 어의들의 입지는 지금 좀 위험한 편이었다.
‘지금 뭔가 개혁하겠다고 하면 막을 명분이 없지.’
나는 일단 밑밥부터 깔기로 했다.
그리고 우선 왕과 어의 영감 앞에서 말했던 건에 대해서는 일단 조선에 깔린 행정력에 기대 초기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각 지방 관아에 통보해 해당 지역 의원에 대한 통계에 들어간 거다.
아마 산속 깊은 곳에 숨어 사는 의원들이 있다면 거기까지 조사하기는 어렵겠지만 어느 정도 소문이 나 있는 의원이라면 확인이 불가능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의원들이 가지고 있는 환자들의 기록이나 의서들 중에 희귀하다고 할 만한 병이나 치료법에 대해 선별하도록 했다.
물론 거부감이 있는 의원들도 있겠지만 지금은 왕정 시대이니 왕명을 거부하기 어렵고, 시대를 막론하고 의원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거부하지 않았다.
‘기왕 확인하는 거 보기도 드물 내 케이스만 확인하는 건 아까운 일이지.’
그래서 아예 각 지방에 의서와 치료 방법에 대한 통계를 내고 새로운 의서를 편찬하는 작업에 들어가기로 한 거다.
그 과정에서는 분명 희귀질환에 대한 자료도 들어가기 마련이다.
혹시 희귀한 의서가 발견되면 필사해서 올린 후 어의들이 검증해 보고 보급할 수 있었고.
거기에 더해서 나는 이번 작업의 첫걸음, 세자를 포섭 중이었다.
“사실 의서 정리하고 만드는 거 완료하려면 못해도 10여 년은 걸릴 거야.”
“그런데 하자고 한 것이냐.”
“내 병은 내 병이고. 이걸 계기로 다른 사람 병들도 고치면 좋지. 의술은 독점하려는 의원이 많으면 발전을 못 하는 법이거든.”
특히 도제(徒弟)식으로 전수되는 의술의 경우는 남한테 전수하는 걸 꺼려서 실전되기도 한다.
사실 능력이 특출난 의원들은 워낙에 먹고사는 데 문제도 없고, 본인 기술을 쉽게 남들에게 가르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굉장히 비협조적인 경우도 많았다.
‘유명 드라마에도 같은 이름으로 나온 적 있는 제주도 출신 의녀 장덕이 무려 치과와 피부과 치료에 능했다지. 궁으로 불려와 왕을 치료하기도 했지만 다른 어의들의 방해를 받아 제대로 인정받지는 못했다고. 후에 기술을 여종에게 전승해 주었지만 장덕에게 미치지 못했다던가.’
의술을 가진 이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단순히 개인의 영달만을 위한 수단만으로 끝난다. 그래서야 발전이 없다.
개인이 가진 의술은 문서화하여 기록으로 남기고 기술은 후학에게 전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걸 강제로 가르친다면 사실 가장 만만한 건 공노비였다.
“의원으로 교육시키고 일정 기간 의원으로 일하고 나면 본인과 그 자손을 아예 면천시켜 주면 어떨까. 나쁘지 않은 조건이지.”
“면천이라.”
“공노비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고, 적당한 명분이 있다면 대신들이 뭐라고 할 이유는 없잖아. 그리고 사노비라고 해도 주인이 원한다면 의원으로 만드는 비용은 나라에서 대주고 대신 똑같이 일정 기간 국가기관에서 일한 후에는 면천하는 조건을 붙이는 거지.”
“명목만이라도 면천이 가능한 제도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것이냐?”
역시 똑똑한데.
“만약 실제로 의원이 된다 해도 결국 주인집 전속 의원이 될지도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는 노비의 수와 천민의 수는 줄어들게 할 수 있지.”
“그래. 노비의 수가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니까.”
물론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모든 노비들이 면천을 바라는 건 아니었다. 특히 공노비는 아무래도 사노비보다 형편이 좋은 편이라 선호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관비(官婢)들은 아니다.
관기(官妓) 생활은 말할 것도 없고 관비 같은 여종들의 취급을 생각하면 의녀가 되어 보호받을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가 적지 않을 터였다.
사실 의원들의 체계는 이미 확고하니 뭔가 하려고 하면 반발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
반면에 의녀에 대해서는 사회적 시선이 애매했다.
의녀는 대체로 신분이 낮은 경우가 많았고, 남자 의원들을 보조하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
그런 만큼 원래 여주가 의녀가 되겠다는 건 이 시대에 상당히 특이한 일이었다.
‘음…… 현대에서 간호사들 생각하면 이상하지 않지. 취직은 잘 되지만 일은 힘들고, 더럽기도 하고, 취급 묘하게 안 좋은 것까지 이렇게 똑같을 수가.’
그러니 내가 양성하겠다고 하는 건 사실 의녀(醫女)라기보다는 여의(女醫)였다.
“궁녀들도 신경 써서 뽑는 지밀 외에는 관비 출신이 많다고. 관비 중에서도 또 출신에 따라 차별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교육이 중요하다는 방증이지. 애초에 교화(敎化)를 부정한다면 유학(儒學)의 이념을 부정하는 거 아냐?”
유교의 기본 통치 이념은 임금이 백성을 교화시켜 성인(聖人)의 길로 인도하는 데에 있었다.
이를 위해서 왕이 먼저 성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세자 시절부터 왕위에 오른 후까지 내내 스파르타 교육을 받아야 했다.
‘가르치는 사람이 성인인지는 또 다른 문제 같지만.’
인간의 도리에 대해 말만 번지르르하고 행실이 사람같지 않은 놈이 어디 한둘이어야지.
실제 조선 세종 때 삼강행실도의 서문을 쓴 사람(*집현전 응교 권채)도 자기 첩이 바람났다고 의심해서 부인이랑 같이 몇 달간 감금 학대 끝에 몰래 버리다 걸린 적도 있었다.
그때도 왕은 벌주려 했지만 신하들이 싸고돌아서 부인만 처벌받고 그놈은 그냥 파면에 그쳤다지.
‘하…… 법 그따위로 적용하지.’
왕권 강화하고 싶다…….
아,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래서 생각했는데. 시험을 봐서 합격한 의녀를 남자 의관이나 궁녀들처럼 품계를 줘서 외명부(外命婦:내명부를 제외하고 종친을 포함한 문무 관료들의 부인들의 총칭. 남편의 관직에 따라 품계를 받는다.)에 포함시키면 어떨까 하고.”
“외명부에 말이냐.”
“왕실에서만 일할 것도 아니고, 내명부(內命婦:궁에서 생활하는 궁녀들과 후궁들.)는 혼인을 못 하잖아.”
“그야 그렇지?”
“면천시켜 줬는데 혼인을 못 하게 하면 좋을 게 뭐가 있어?”
“그런가?”
“양민을 늘려야 세금을 더 걷을 거 아냐.”
“……아니, 너는 대체 어린아이가 무슨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느냐.”
아아니, 세금이 얼마나 중요한데!
노비가 늘고 양민이 줄어들어 세수(稅收)가 부족해지면 나라가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아니, 하지만 굳이 품계까지 줘야 하는 일이냐? 그냥 면천만으로 충분하지 않겠느냐.”
“의녀들은 관직도 없고 대부분 그냥 의원들 보좌만 하잖아. 신분도 낮고. 그럼 무슨 부당한 짓을 당해도 항의하기도 어렵지. 관비들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대충은 알 거 아냐. 그럼 관비 신분인 의녀들의 취급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그렇……겠구나.”
세자는 내 말에 뭔가 깨달은 바가 있는지 안색을 흐렸다.
“그러니까 보호해 줄 울타리가 필요한 거야. 책임자가.”
“네가 하면 아니 되겠느냐?”
“음…… 옹주나 공주가 실질적인 관리는 할 수 있지만 역시 꼭대기에는 높으신 분이 있어야지.”
게다가 이건 중전에게도 나쁜 얘기가 아니었다.
관리해야 할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권한도 생긴다는 뜻이니까.
그것도 의원이다.
만약 중전이 정치적으로 쓰려면 얼마든지 쓸 수 있었다.
게다가 외명부에 넣는다면 품계가 있는 의녀들의 총책임자를 따로 임명하게 되고, 그 책임자를 통해 관리하는 것이니 원하지 않는다면 관리에 품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왕이 내의원 의관들을 관리하는 데에 따로 신경을 쓰지는 않으니까.
‘게다가 지금 중전마마는 원체 건강에 신경을 쓰셔야 하는 분이시니 능력 있는 여의(女醫)가 중전마마를 보살핀다면 훨씬 좋아지실지도 모르고.’
그 때문일까. 남녀유별이라고 남자 의원들이 제대로 진맥도 못 하는 것에 대해 세자도 생각하는 바는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내가 아는 조선 시대에도 태종 때부터 이미 관비들을 데려다 의녀로 양성했었다.
조선 시대에는 남녀를 유별하게 보는 것이 심해서 남자 의원이 여인을 보기 어려웠으니까.
그렇게 국가에서 의녀를 양성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재를 뿌린 게 그 유명한 폭군 연산군(燕山君)이다.
관비 출신이 많은 의녀들은 연산군에 의해 강제로 연회에 동원되었고, 이후 중종반정으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어차피 이런 면에서는 그놈이 그놈들이라 여전히 의녀를 술자리에 불러 기녀 취급하곤 했다.
관리들 입장에서는 궁 안에 자기들이 쉽게 부를 수 있는 기녀가 있는 셈이니 뭐가 불만이라 그걸 고치겠는가?
관직에 있는 의관들도 의녀를 술자리에 부르지 말라고 싸울 배짱은 없으니 그런 의녀들을 무시하기나 하지 고쳐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의녀는 전문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약방기생(藥房妓生)이라고 불리며 이후로도 연회에 불려 다니는 등, 기생 취급을 받게 되었다.
그러니 발전이 가능할 리가.
‘그래도 이쪽에서는 그런 일은 없어서 의녀의 취급이 그때만큼 나쁘진 않아.’
하지만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의녀를 의원 취급하면 여인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남자 의원들이 기를 쓰고 반대를 하니 쉽지가 않은 것은 마찬가지.
원작에서도 여주가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여주의 능력을 인정 못 하고 음모 꾸미고 해코지하려던 놈들이 여주나 세자한테 걸려 실패하고 인과응보 받는 부분이 사이다라고 꽤 인기 있었다.
‘특히 여주 인정 못 한다고 난리 치던 어의의 어머니가 병 걸린 거 아무도 못 고쳤는데 여주가 고쳐 준 이후로 태세 전환하고 여주 편으로 돌아서는 것도 재밌었지…….’
하지만 고난과 극복이 많다고 꼭 좋은 건 아니지 않은가.
어릴 적 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려 집안 망해. 조실부모해. 동생도 잃어버려. 관비로 끌려갈까 봐 도망 다녀. 거기에 기연이라지만 머슴 수준으로 부려지며 스파르타로 힘들게 의술 익혀.
이 정도면 이미 인생의 고난 충분하지 않나?
‘여주가 의원 돼서 돌아올 텐데 내가 미리 길을 닦아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여주의 고난과 극복 파트. 제가 단축시켜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