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86)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86)화(86/326)
너희 같은 놈들 때문에 내가 갈수록 꼰대가 되어 간다. 어?
아무래도 저 도령과 선비들이 섞여 있는 집단이 놀러 가면서 기녀들을 부른 듯했다.
그놈의 풍류를 즐긴다는 놈들은 왜 여자가 없으면 놀지도 못하는지 모를 일이었으나 신분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을일 수밖에 없는지라 기녀는 기가 죽어 제대로 저항하지도 못했다.
“어허, 내가 네 서방 노릇을 해 주겠다는데 뭐가 불만이더냐.”
“소인은, 소인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몰라서 품에 안고 있는 가야금을 구명줄처럼 꼭 끌어안은 기녀는 사내에게서 멀어지려 애를 썼다.
그리고 기녀가 떠는 것이 재밌는 듯 도령과 그 벗으로 보이는 또래 남자들 몇몇까지 가세하자 아직 어린 태가 남은 여인이 울음을 참으며 입술을 깨무는 것이 보였다.
백주 대낮에 참 잘하는 짓이었다.
“앗, 아기씨?”
보다 못한 내가, 아니 적아가 앞으로 나섰다.
네가 내 마음을 읽은 거면 좋겠는데, 넌 그냥 저 꼴이 마음에 안 드는 거지?
근데 나도 그래.
나는 주인과 뜻이 잘 맞는 기특한 말의 갈기를 쓰다듬어 주었다.
“지금 길 한복판에서 기생을 희롱하고 계신 건 어느 집안 자제십니까?”
“!”
내 말에 움찔한 사내들이 이쪽을 돌아보고는 어린아이란 걸 확인하고 확연히 안도한 얼굴을 했다. 그러곤 방금 전 찔끔했던 게 민망했는지 더 당당한 목소리로 나를 훈계했다.
“어디 어린 것이 어른들 일에 끼어드는 것이냐.”
너야말로 초면에 어디서 반말이야.
내가 별로 겁먹은 기색을 보이지 않자 일부는 눈치를 보며 제 벗들을 말렸다.
“보아하니 행세깨나 하는 집안 영애 같으니 내버려 두시게.”
“그러니 어느 댁 자제분들이신지만 알려 주시면 되옵니다. 거기 자네들.”
나는 제 주인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종복들에게 말을 걸었다. 놀러 가려면 잡일을 해 줄 사람이 필요하니 다들 혼자 다니지는 않는 법이었다.
자신들을 부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하인들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예?”
“자네들도 주인의 호 정도는 알겠지? 아, 물론 관직명도.”
“아니, 그…….”
주인마님 위세가 높으면 더 기세등등해지는 것이 하인들이니 모를 리가 없었다.
“주상전하께서 근자에 양반 자제들의 처신에 대해 한탄하고 계시다는데 대체 어느 집안 자제들이 이리 대로에서 여인을 희롱하는 것에만 열중하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아니 이 조막만 한 아이가 제법 말을 매섭게 하는구나. 감히 네가 주상전하를 들먹이며 우릴 겁박하는 것이냐.”
내가 내 친부를 좀 들먹이겠다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
“게다가 기껏해야 천한 기생을 데리고 노는 것을 가지고 말이 지나치구나. 내가 양민을 희롱한 것도 아닌데.”
“흐응. 길거리에서 여인을 희롱하는 파렴치한 행위가 언제부터 그리 당당한 일이 되었는지 모르겠소?”
“뭐?”
내가 말이 짧아진 걸 눈치챈 놈들이 불쾌한 듯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대체 언제부터 조선이 이리 길거리에서 여인을 희롱해도 되는 땅이 되었나 모르겠소.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학을 배우는 선비들이 말이오. 아니, 기생이면 길에서 희롱해도 되나? 왜? 기생이면 여인이 아니기라도 한가?”
“뭐…… 뭐가 어째? 너야말로 어디서 되먹지 못한 말 버르장머리더냐!”
그래그래.
“게다가 보아하니 서원(書院) 출신이신 듯한데 스승들께서 그리 가르치시기라도 하신 것이오?”
“네, 네년이 감히 스승님을 모욕하는 것이냐!”
이 시대에 스승을 모욕하는 건 패드립이긴 한데, 일단 네가 지금 스승님 모욕했다고 난리 치기엔 좀 꼴이 한심하구나.
“모욕은 내가 아니라 제자인 당신들이 하고 있지 않소? 유생들이 당당하게 기녀를 데리고 놀러 가는 것도 부끄럽지 않은 것 같은데, 그것도 모자라 백주 대낮에 여인 손목이나 잡고 희롱하는 것이 정말 부끄럽지도 않소? 지나가는 사람들도 다 쳐다보고 있는데?”
“!”
“정말로 그리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면 어서 부친과 스승이 어떤 분들이신지 당당히 밝히면 될 일이 아닌가?”
내 말에 발끈한 듯 도령 놈은 제 입으로 신상을 술술 불었다.
“내, 내 조부께서는 중추부동지사(中樞府同知事:중추부 종2품)이시고, 부친께선 이조의 정랑(正郞:정5품, 인사권이 있는 청요직.)이시며, 내 스승님께선…….”
얼씨구, 믿는 게 많은 놈이었네?
“그래. 길거리에서 여인을 희롱하려면 그렇게 당당하게 본인 정체를 밝혀야지. 그래야 상대도 좀 받아 줄 만한 상대인가, 아닌가를 알 거 아닌가?”
“뭐, 뭐가 어째? 이 밤톨만 한 년이 아까부터 방자하기 짝이 없구나.”
도령 놈이 당장이라도 내가 달려들 기세로 씩씩거리는 것과 반대로 그 주변에 있던 놈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는지 그놈을 붙잡아 감쌌다.
아마 저놈이 읊어 대는 관직명을 듣고도 나나 나를 모시고 있는 가이와 성윤의 표정이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을 보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아니, 아니 자네 좀 진정하시게.”
“어느 댁 아기씨이신지는 모르겠으나 이 친구가 술이 좀 과해서 이러는 것이니 너무 괘념치 마시지오.”
“뭐? 나 안 취했네!!”
씁. 너 그나마 눈치 있는 친구 덕분에 산 거다, 이 쌍노무 자식아.
나는 적의를 느꼈는지 투레질을 하려는 적아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진정시켰다.
얘는 왜 이렇게 폭력 현장을 싫어하는지.
“오늘 연회 취소다! 젠장! 가! 가! 이상한 년 때문에 기분만 잡쳤구나!”
“진정하게. 이미 기녀들까지 다 불러 모아 놨는데 이제 와 그러면 어찌하나, 응?”
선비들과 그 하인들이 우르르 몰려가니 덩그러니 남은 기녀들만 당황한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저 때문에 판에 깨진 것 같았는지 겁을 먹고 울 것 같은 기녀를 보니 안쓰러웠다.
기껏해야 소이랑 비슷한 또래 정도 같은데.
나는 말에서 내려 기녀를 달래 주었다. 남들 보기에는 어린아이가 저보다 큰 언니를 달래는 걸로밖에 안 보이겠지만.
“괜찮은가? 이리 마음이 약해서 어째.”
“아니, 아니옵니다. 소인은 괜찮습니다.”
결국은 울음을 터트린 문제의 기녀를 복잡한 눈으로 보던 다른 동료들이 내게 고개를 숙이며 울고 있는 여인을 달랬다.
“아기씨께 흉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저놈들이 나쁜 거지 네 탓이 아니야.”
“맞아, 맞아.”
달래 주니 더 서러워졌는지 히끅히끅 울고 있는 여인을 달래는 와중에 우두머리로 보이는 기녀가 내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나 때문에 손님들이 가 버렸으니 미안하구나.”
“소인들은 괜찮사옵니다. 하지만 소인들 때문에 아기씨께서 화를 당하시진 않으실지 그것이 걱정이옵니다.”
그리 말하는 행수 기녀의 얼굴에는 정말 여러 가지 의미의 근심이 서려 있어 나는 한쪽 눈을 찡끗 감아 보이며 웃었다.
“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괜찮아. 내가 더 대단한 집 딸이거든.”
“정말이옵니까?”
“그래. 그나저나, 원래 오늘 어딜 가기로 했던 건가?”
“뱃놀이를 하는데 음률이 필요하다며 소인들을 부르셨습니다.”
“흐음.”
나는 기녀와 기녀들을 수행하는 이들을 한번 훑어보고 가이를 불러 필요한 걸 확인하고 기녀들에게 권했다.
“기왕 나온 김에 그럼 다른 곳으로 가서 놀아 보는 건 어떠한가? 비용은 내가 내지.”
“예에?”
당황해서 멍청하게 입을 벌린 기녀들은 곧 표정 관리를 하더니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기씨께서 불러 주신다면 소인들이 거부할 까닭이 있겠사옵니까.”
기녀들의 얼굴에는 아까 그놈들도 놓쳤겠다 기왕 나온 거 한 푼이라도 벌고 가자는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게다가 이리 어린 아이가 데려가는 곳이 어디일지 호기심도 생긴 듯했고.
“그럼 따라오게.”
나는 다시 적아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적아의 고삐를 잡은 가이가 가슴을 누르며 투덜거렸다.
“아기씨. 소인 심장이 떨어질 것 같사옵니다.”
“그럼 안 되지. 심장이 떨어지면 내가 얼른 잡아서 다시 달아 줄게. 걱정하지 마.”
“어휴, 아기씨.”
“그런 놈들이 유생이니 유학자니 하고 거들먹거리고 다니니 조선의 앞날이 걱정이지. 나 참 내가 왜 이런 걱정을 해야 해.”
“아기씨.”
한숨만 내쉬는 가이와는 달리, 성윤은 내내 싱글벙글이었다.
“아저씨는 안 놀랐나 보네?”
“소인이 놀랄 일이 무엇이 있겠사옵니까? 소인이 하고 싶은 말을 아기씨께서 다 해 주시는데 속이 시원할 따름입니다.”
그리 말하며 손이 심심하다는 듯 쥐었다 펴는 걸 보니, 역시 꼴 보기 싫었나 보다.
무력 행사 없이 끝나서 참 다행이지.
“읏차.”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말에서 내려 뒤를 보자 기녀들이 하나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현판을 보고 있었다.
“시영원……?”
“어디 들어오게.”
기녀들이라면 소문에 빠른 이들이니 여기가 어디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내가 먼저 안으로 들어서자 나를 알아본 이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웃으며 나를 반겼다.
“앗, 아기씨 언니?”
“아기씨 오셨습니까?”
“아, 맛있는 거 가져왔…… 뒤에는 누구세요?”
그리고 내 뒤에 따라오는 화려한 일행을 보고는 다들 놀라서 눈만 말똥말똥 뜬 채로 굳어 버렸다.
내가 왔다는 걸 알고 달려 나온 민 상궁도 내가 뒤에 달고 온 뜻밖의 인원을 보고 당황한 얼굴이었다.
“아기씨, 어찌 된 일이옵니까?”
“음. 갑작스러워서 미안한데, 오늘 뭐 중요한 일정 같은 거 없지?”
“예, 소인들이 무슨 중요한 일이 있겠사옵니까,”
“그럼 오늘은 다들 불러서 놀자.”
“예?”
나는 여전히 문밖에서 멈춰 서 있는 기녀들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다시 한번 말했다.
“모처럼이니까 다들 불러서 놀자고. 아이들은 연회가 뭔지도 모를 거 아냐?”
“그, 그렇……지요?”
민 상궁의 허가까지 떨어지자 아이들의 눈이 기대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노래 부르고 춤추고 노는 날이야, 알았지?”
“네에!”
“꺄아아!”
“와아, 아기씨 최고!!”
펄쩍펄쩍 뛰며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들의 소음에 귀를 막고 뒤를 돌아본 나는 얼른 들어오라고 기녀들에게 눈짓을 했다.
상황 파악이 끝났는지 다들 뭐라 말할 수 없는 얼굴로 마당으로 들어섰다.
기녀들은 짐을 들고 따라온 하인들에게 마당에 무대를 만들도록 치우라고 지시했고, 아이들과 하인들이 와르르 움직이며 일하던 소쿠리나 바가지들을 치우며 까르르 웃었다.
‘좋아하니 다행이네.’
기녀들이 마당에 들어서서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아이들 사이에서 빙글빙글 춤을 추며 돌았다.
나는 마루에 앉아 그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힐링을 했다.
“하온데 정말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옵니까?”
“그게…… 그렇게 됐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민 상궁을 비롯해서 관리직인 궁녀들이 서둘러 자리를 정하고 바쁜 사이 나에게 상황설명을 요구하러 왔던 지아와 몇몇 아이들은 많은 것이 생략된 내 대답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기씨께서 또 아기씨하셨겠죠.”
무슨 표현이야, 그건.
“어머, 이게 대체 무슨 일이옵니까?”
익숙한 목소리에 돌아보니 건물 뒤쪽에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오던 매향이, 마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난리 법석을 보고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님은 왜 여기서 나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