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88)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88)화(88/326)
노래가 끝나고 웃으며 무대를 떠난 매향은 어느새 내 옆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니, 매향이 옆에 있으면 너무 시선이 집중되어서 불편한데.
“아이들하고 그새 많이 친해진 모양이네. 아이들 좋아해?”
“싫어하지는 않사옵니다. 덕분에 곡조도 어느 정도 완성을 보았고요.”
나는 그 노래를 모른다, 나는 그 노래를 모른다, 자기 암시를 걸며 나는 말을 돌렸다.
“저렇게 많은 아이들이 몰려들면 진이 빠질 거 같은데.”
“돈 있는 어르신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애들은 귀엽기라도 하지 않사옵니까.”
진상도의 문제인가.
난 기운 떨어져서 오래 못 놀아 주겠던데. 하지만 지금 우리 주변에는 어린아이들도 많이 모여 있어서 차마 그렇게 물어볼 수는 없었다.
기왕 시영원에 들락거리는 거 애들하고 놀아 주면 나쁘지 않지. 아이들 수가 워낙에 많아져서 돌보는 데 필요한 인력도 만만치 않았다. 내가 너무 과보호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덕분에 아기씨가 어떤 분인지에 대해서도 아이들에게 충분히 들었사옵니다.”
“나?”
“예. 좋은 분이시라고요.”
“원래 밥 주는 사람은 다 좋은 사람이야.”
내 말에 매향과 그 주변에 모여든 아이들이 동시에 킥킥 웃었다.
“그런데 언제까지 시영원에 놀러 올 거야. 아, 이제 노래도 끝까지 완성한 것 같으니 안 오겠군.”
“제가 그리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어찌 그리 섭섭하게 구십니까?”
“아이들이 괜히 정만 들어서 좋을 게 없지.”
가끔 찾아와서 놀아 주고 가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괜히 정만 잔뜩 든 후에 연락이 끊기면 그때 더 낙심할 것이 뻔했다.
필요할 때야 자주 찾아오겠지만 볼일 끝나면 자기 살기 바쁘니 까맣게 잊어버릴 것이 아닌가.
딱히 매향이 사람 나쁜 사람이라서 그렇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사람이 살다 보면 자연히 그렇게 된다. 특별히 누군가에게 정을 주고 있다면 모를까.
그리고 그런 내 말에 이미 매향에게 정이 든 아이들이 더 놀라 치마폭에 매달렸다.
아이고, 얘들아. 너희들이 매달리고 있는 그 치마가 몹시 비싼 천이란다……. 거기 자수가 보이지 않니……?
“어, 그럼 매향 언니 이제 안 와?”
“이제 볼일이 끝났으니 모를 일이지.”
“자주 찾아올 것이니 그런 말씀 마시어요. 아기씨!”
아예 확실히 약속을 잡아 주는 게 나을까.
“그렇게 한가하면 와서 애들 글이나 가르쳐 주든가.”
“이미 글 가르칠 사람은 많으니 필요 없다고 하던걸요.”
이미 타진해 본 거냐고.
‘으음. 글을 가르칠 사람이야 많긴 하지만 문학적 소양이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텐데.’
기녀들은 양반 남성들의 연애 놀이 상대로도 키워지니 시서화에도 어느 정도 교양이 있는 법이었다. 특히 매향이 정도로 명성이 자자하다면 두말할 것도 없고.
‘아마 기녀에게 아이들을 가르치게 하는 걸 민 상궁이 꺼려 했겠지.’
하지만 매향 본인도 그걸 잘 알고 있지 않을까?
물론 나는 민 상궁이 정한 것을 괜히 뒤집을 생각까지는 없었다.
“그럼 애들 노래나 춤이라도 가르쳐 볼래?”
“예?”
“정말요?”
“정말 소인이 그리하여도 되옵니까?”
“안 된다면 왜 말을 꺼내겠나?”
당황한 매향의 얼굴과 화색이 만연한 아이들의 얼굴이 대비를 이루는 게 조금 재밌었다.
물론 내가 그거 좀 보자고 이런 소릴 한 건 아니고, 떠오른 게 있어서였다.
“생각해 보니 노래를 잘 부르면 그냥 내……가 나중에 잘 말해서 옹주 자가의 전속 가수로 들여도 되지 않나 싶어서.”
“!”
내 말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아이들에게 가무를 가르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은 기껏 양인으로 살고 있는 아이들이 광대나 기녀로 잘못 빠질 것을 염려한 탓이었다.
물론 노래 좀 잘한다고 무조건 그런 취급을 받는 건 아니지만 이 시대에서 예능인에 대한 취급은 워낙에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사농공상의 아래에 있다고나 할까.
하지만 나 개인의 전속 가수라면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테고.
아이들은 내 말에 신이 나서 방방 뛰었다.
“저요! 저요! 저 할래요!”
“나, 저도요!”
“내가 더 노래 잘 부르거든?”
“춤은 내가 더 잘 춰!”
그리고 나는 대충 오십보백보 수준인 아이들 앞에 냉정한 현실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노래 아주아주 잘하는 사람 아니면 안 받을걸?”
“왜? 노래 부르는 게 어려워?”
“어렵지 그럼.”
내 말에 남 일처럼 멀리서 보고 있던 기녀들이 킥킥 웃었다.
“뭐든 한 분야에서 최고 소리를 듣는 건 어려운 법이란다.”
“그런 거야?”
“그래. 그리고 기본적으로 글은 알아야 해. 자, 아영이는 가서 공부부터 하자.”
“히잉.”
가장 먼저 손을 들고 자원했던 아영이는 ‘공부’라는 말에 몸서리쳤다.
나 참. 언니처럼 굴다가 이럴 때는 여전히 어린아이였다.
“그리고 옹주 자가 집에 들어갈 거면 예의범절도 익혀야지? 노래만 잘 부르면 다가 아니야.”
“앗, 그건 싫어.”
“싫긴 뭐가 싫어. 배워.”
노래랑 춤이 쉬워 보이니?
안됐지만 전생에 아이돌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탑아이돌 무대만 가끔 봐 온 현대 한국인은 쓸데없이 눈만 높단다.
사실 국악으로 가면 더하지. 나 같은 일반인은 TV에 나오는 무형문화재급 명창들 아니면 들어볼 일도 없었다.
내가 애기들이 헛바람 들지 않게 다독이며 쫓아내는 걸 지켜보던 매향이 대뜸 물었다.
“아기씨는 기녀들이 꺼려지지 않으십니까?”
“딱히? 별생각 없는데.”
“여인들은 다들 기녀를 싫어하지 않사옵니까.”
어린애한테 뭘 묻는 거야, 이 사람.
“글쎄. 기녀를 싫어한다기보다는 기녀를 찾는 사내들을 싫어하는 거겠지. 하지만 그런 남자들이 자기 남편이나 시아버지나 아들이니 욕을 할 수도 없으니 만만한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는 거야.”
욕했다간 패륜으로 몰리는 세계관이고.
말해 놓고 보니 그리스 로마 신화의 헤라 포지션이군.
뭐 그런 세계관으로 만들어 놓은 게 남자들이지만.
“기녀들이야 천민이니 그야 만만하긴 만만하겠군요.”
“음. 미안한 얘기지만 처우가 좋지 않으니 역시 애들이 기녀가 되겠다면 말리고 싶지. 게다가 정말 재능이 있고 능력이 있는 사람은 흔치 않으니까.”
“어머나. 후후.”
“왜. 저 아이들 중에 눈에 차는 재능이 있는 아이가 있던가?”
“있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말했지 않나. 실력이 쓸 만하면 옹주 자가께서 거두실지도 모른다고.”
“옹주 자가께서 말이지요.”
매향은 뭔가 깨달은 듯 은근한 얼굴로 나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아 왜 그래, 무섭게.
“후후후후후.”
“왜 그리 웃어?”
“소인, 아기씨가 좋아져 버렸습니다.”
“나 좋아해서 뭐 하게…….”
궁에 돌아가면 나 좋다는 궁녀들 한 트럭으로 있다.
솔직히 다들 내가 아니라 내가 만들어 주는 빵이나 과자가 목적 같지만.
공부하라는 말에 흩어져 버린 아이들 덕분에 나와 매향의 주변은 그럭저럭 한산해졌다. 마당은 여전히 소란스럽고, 아이들은 아직도 흥이 넘쳐서 저들끼리 노래하고 춤을 따라 하며 정신없이 뛰놀고 있었다.
웃고 있던 매향이 얼굴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조금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소인도 옹주 자가의 댁으로 들어갈 수 있사옵니까?”
“옹주 자가가 거둔다면 옹주 자가의 사가에서 머물게 되겠지만, 웅주 자가께서 아직 하가하지 않아 그 사가는 지금 비어 있다네. 옹주 자가도 아니 계신데 언제 들어갈 수 있겠나?”
저 아이들은 아직 한참 어리고.
“그런데 어찌 그리 설레는 말씀을 하시옵니까? 저 아이들보다, 듣고 있던 소인들이 더 설레었사옵니다.”
“……그냥 생각난 거야. 확정 아니고.”
아……. 기생을 첩으로 들여 면천시켜 주는 일이 많다지만 옹주 자가라면 그리하지 않고도 빼낼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네.
그야 방법을 찾으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기녀의 면천은 원래 다른 어린아이를 그 자리에 넣는 것으로 이뤄지는 법이었다.
데려가는 사람은 돈만 낸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결국 그 돈으로 다른 아이를 사서 채워 놓는 법이라. 내가 기녀들을 내 가기(家妓)로 들인다고 해도 비슷한 방법을 써야 하니 내키지 않았다.
사실 내가 새삼 저런 말을 꺼낸 것도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매향이 때문이기도 했다.
‘노래 잘 부르는 아이들을 내 사가로 들이면…… 외부 유출 금지로 내가 전생에 듣던 곡들을 가르쳐서 라이브 시키는 거 가능할 거 같아서.’
그야 가능하겠지.
내 사저는 엄청 넓으니 하인들 단속만 잘한다면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하는 것도 가능할 거 같았다.
‘어, 이거 잘하면 내 전속 걸그룹, 아니 밴드? 도 만들 수 있지 않나?’
이것이, 권력의 참맛?
걸그룹 안무라도 기억하고 있으면 가르쳐 볼 텐데! 하지만 이 시대 기준으로는 춤들이 지나치게 선정적일 거 같아서 떠올리자마자 아웃이었다.
나는 그렇게 소심한 야망을 키웠다.
물론 보이그룹도 키워 보고 싶지만 잘못해서 이상한 소문 나면 진짜 유폐라도 당할지 모르니 일단 제쳐 두자.
‘그런데 아까 듣고 있던 남자애들도 눈을 반짝이는 거 같던데.’
아니면 이렇게 된 거 현대에는 거의 사라져 버린 혼성 그룹을…… 만들면 또 막 문란하다고 난리 칠 거 같지…… 에이, 귀찮아 죽겠네.
내가 소박한 야망을 불태우며 머리를 굴리는 옆에서, 매향은 또 다른 의미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옹주 자가께 다른 쓸모는 필요 없으십니까?”
“뭔 쓸모?”
“소인들 같은 천한 것들도 옹주 자가께서 많은 일을 하시는 것은 알고 있사옵니다. 그런 분께는 눈과 귀가 필요하지요.”
“뭘 자원하는 거야…… 위험하게시리.”
아니, 나는 그런 어둠의 세력 같은 거 키울 생각 없다고.
물론 앞날을 생각하면 필요하다는 생각은 가끔 해. 하지만 그런 조직은 사극 같은 데서 보면 꼭 현장직인 아랫사람은 일찍 죽더라고.
차라리 민간인1 포지션이 안전하지.
나 살자고 누굴 위험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세자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물어보고 싶지도 않고.
“어머, 아쉬워라.”
“자네 너무 위험한 생각은 그만두는 게 좋아. 저렇게 따르는 사람도 많은데.”
“하지만 기녀를 찾는 더러운 자들과 있는 것보다는 아기씨의 곁이 더 좋아 보입니다.”
그리 말하며 나를 향해 고개를 기울이며 눈을 반짝인다.
아니. 세상에, 지금 나 유혹하는 거야?
내가 전생에 TV에서 본 많은 연예인들 얼굴에 본의 아니게 반쯤 단련되어 있지 않았다면 홀랑 넘어갔을 미모이기는 했다. 이래서 매향이 없어서 힘들었다고 기녀들이 툴툴거렸나 보다.
매향은 곧 시원스레 웃으며 내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혹시 무슨 일이든, 소인이 필요하다면 불러 주십시오. 아기씨.”
“예인(藝人)이 왜 자꾸 첩자처럼 말해.”
“예, 소인은 예인이지요.”
나는 평범하게 자선사업과 의료 사업에 손을 뻗고 있는 선량한 금수저인데 뭔가 오해받고 있는 거 같다.
‘으음. 아무래도 눈치챘을까.’
내가 도중에 말실수를 한 거 같기도 하고.
민 상궁이 아이들 입단속을 열심히 하는 거 같은데 내가 이래서야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이날 일은 뜻밖의 곳에서 화제로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