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91)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91)화(91/326)
자세한 얘기를 듣고 보니 걱정과는 달리 그리 큰일은 아니었다.
“길에서 시비가 붙었다고?”
“시정잡배들이 아이들에게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합니다.”
광부 필요하다고 거리에 있던 사람들 많이 쓸어 간 거 같은데 꼭 저런 사람들은 어째 없어지지도 않아.
“그렇다고 다칠 정도로 싸우면 안 되지.”
“시장에서 채소를 팔던 여자아이들을 겁박하는 것을 보고 항의하다가 그만 사람을 상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래,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뜻밖에 제대로 된 이유가 있었으므로 나는 빠르게 태세를 전환했다.
물론 폭력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가 그렇게 나온다면 아무리 방어적으로 대응하려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시영원 아이들은 적당한 인성 테스트를 거친 후 호신술까지 익히는걸.’
날고 기는 건달들이라고 해도 시영원 아이들을 쉽게 이길 수는 없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우리 애들은 머릿수가 많았다.
다들 일한다고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져 있을 때가 많아서 그렇지.
심지어 요새 자꾸 사람이 늘어서 좀 심란했다. 사람들이 은근슬쩍 미아인 척하고 아이들을 밀어 넣는 것 같기도 한데 사실 이유가 너무 선명해서 그거 붙잡고 혼내기도 좀 그랬다.
‘천민들이 아이들만이라도 신분 세탁하고 싶어 하는 걸 막을 수가 있어야지.’
그렇게 넣어 놓고 괜히 주변을 알짱거리니까 다 들키잖아.
민 상궁을 비롯해서 시영원 사람들은 대부분 눈치채고 있어 내게 어찌해야 하겠느냐 묻기에 일단은 모른 척해 주자고 했는데 그것도 걱정이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시영원 주변을 얼쩡거리는 사람들과 시비가 붙기도 한답니다.”
“으음.”
이런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아마 자기 아이를 보고 싶어 알짱거리는 거 같기는 한데 거기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야 낯선 사람들이 자꾸 안을 엿보려고 하니 신경이 예민해질 만도 했다.
“게다가 시영원 내외에서 남자아이들끼리 싸우는 일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다들 성가시겠네.”
거리 생활을 하던 아이들이 많으니 다소 행동거지가 거칠 것은 예상 범주의 일이었다.
시영원 초반에는 워낙에 여자들이 많기도 했고 남자아이들은 대부분 어려서 비교적 얌전했지만, 나이가 들면 사춘기가 오지 않던가.
덕분에 슬슬 소란을 피우는 아이들이 생기고 있었다.
게다가 그 나이 또래 아이들에게는 건달의 길이 더 편해 보일 법도 했다. 공부는 어렵고, 글자 좀 배운다고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그간 적당히 넘어가 주고 있었는데 이렇게 거리에서 건달들과 싸움이 나서 다리가 부러질 뻔했다는 말을 들으니 강제 노역의 필요성이 느껴졌다.
‘하지만 단순히 농사 같은 건전한 육체노동만으로는 벌이라는 생각이 안 들 텐데.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실례고.’
고민 끝에, 나는 혈기가 넘치는 아이들을 위해 건전한 일거리를 만들기로 했다.
놀이기구를.
***
“너 또 공부(工部)에 이상한 거 자문해 달라고 찾아왔었다며.”
“누가 또 가서 일렀어?”
내가 결심을 실행에 옮긴 지 며칠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세자가 찾아와 말을 얹었다.
요새 세자는 많이 바빠서 얼굴도 보기 힘들었기에 의외였다.
“설마 공부에서 그런 일로 굳이 나를 찾아왔겠느냐. 그래서 뭘 만드는 것이냐.”
“……오랜만에 봤다고 나에 대해 너무 꼬치꼬치 캐묻는 거 같은데.”
“나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니다.”
“나도 바빠요.”
“그러게 말이다. 어린아이가 대체 뭐가 그리 바쁜지.”
세자는 한숨을 쉬며 나와 시선을 맞췄다.
“요즘 아바마마께서 피곤해하시니 한번 찾아뵈렴.”
“아라써.”
이게 본론이었군.
세자와 왕이 바쁜 건 내가 저질러놓은 일들 때문이기도 했기에 나는 조금 찔렸다.
“아이고. 이제 네 나이가 몇인데 그런 아기 같은 말투를 쓰는 것이냐.”
“몸도 마음도 아기라고 치자.”
“거짓말하지 말고.”
“빼앵!”
“나 참. 정말 아기 때처럼 우는 소릴 내는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세자는 시원하게 웃으며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얘가 이제 곧 열아홉 살인가아.’
나는 아직도 이리 작은데 세자는 이리 훌쩍 커 버렸으니 원. 기분이 이상했다.
“이거 좀 재밌어.”
“이게 재미있느냐?”
“응.”
설마 내가 놀랄 줄 알았니.
세자는 자신의 젊음을 믿고 나를 번쩍번쩍 들었다 올렸다 하며 채신머리없이 놀다가 세자를 찾아온 내관들의 눈총을 받으며 끌려갔다.
나는 나대로 세자의 말대로 왕을 찾아가기 위해 미리 대전에 사람을 보내고 간식을 만들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래서 이게 무엇이더냐, 시아야.”
“여기 이걸 이렇게 잡고 밀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이옵니다.”
회전문처럼.
나는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만든 놀이기구의 미니어처 사이즈 모형을 들고 왕을 찾았다.
내가 만들려는 놀이기구는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다.
유원지의 기초적인 놀이기구들은 대부분 빙글빙글 도는 거니까.
현대의 동력원인 전기가 없어서 그렇지 구조 자체야 뭐…… 쳇바퀴 정도만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그 비슷한 걸 예전에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했고.
그래도 나 혼자서는 제대로 만들 수 있을지 좀 불안했기에 공부(工部)에 가서 몇 가지 자문을 얻고, 미니 사이즈로 한번 만들어 보고 제작했더니 생각보다 꽤 멀쩡한 게 나왔다.
머리 식히려면 이런 얘기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계란 샌드위치와 함께 가져갔다.
빵 사이에 반숙으로 삶은 달걀과 절인 오이를 넣은 간단한 것인데, 다른 간식과 비교하면 달지도 않고 떡처럼 무겁지도 않지만 든든해서 왕과 세자가 좋아하는 간식이었다.
“흐음. 수차(水車)와 비슷한 원리로구나. 이것으로 무얼 하려는 것이냐.”
“시영원에서 잘못을 한 아이들에게 이걸 돌리게 할 것입니다.”
“?”
“여기에 의자를 만들어서 어린아이들을 태워 주면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아아.”
“시영원에는 아이들이 많으니까요.”
“그래, 재미있는 생각을 해냈구나.”
물론 사람이 타야 하는 건 튼튼하게 만들어야 하니 좀 시간이 걸렸지만.
내가 가장 먼저 만든 건 쉽게 설명하자면 회전목마 같은 놀이기구였다. 말 모형 대신 의자를 만들고 거기 앉아서 빙글빙글 도는 거였다.
‘말 모형은 만드는 데 시간도 걸리고 단가도 올라가고.’
아이들이 튕겨 나가지 않도록 안전을 위해 울타리도 만들도록 했다.
그렇게 설계가 완성된 후, 조립은 시영원까지 찾아가 마당에서 했고.
완성된 기구를 본 시영원 사람들은 의아한 낯을 했다.
“이게 대체 무엇입니까, 아기씨?”
“벌칙 도구 겸 놀이기구?”
“예?”
일단 처음에는 위험할 수 있으니 전직 체탐인들이 먼저 타 보기로 했다. 물론 돌리는 것도 마찬가지. 무게를 가늠하기 어려웠으므로 여인들 몇 명이 타고 남자들이 돌리기로 했다.
“아이고? 이게 뭐야.”
“어머? 깔깔깔.”
처음엔 이게 대체 뭔데? 하던 이들도 일단 타고 나면 깔깔깔 웃었다.
그 모습을 본 아이들 역시 너도나도 타 보겠다고 나섰다.
덕분에 체탐인 아저씨들은 아이들을 태우고 끝도 없이 빙글빙글 돌아야 했다.
“헉, 헉…… 이, 이거 생각보다 힘이 듭니다. 아기씨.”
“그래서 벌칙용이라는 거죠.”
“!”
주동력은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이었다.
시영원에는 어린아이가 많았으므로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에게도 애 보기를 시켰지만 당연히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므로 단순 육체노동으로 아이들과 강제로 놀아 줄 수 있는 도구를 만든 셈이었다.
안전 문제로 이것저것 더 보강하려면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다만, 다들 너무 재밌어해서 처음 목적은 잊고 그냥 큰 애들이 돌아가며 돌리며 탈 정도였다.
그래……. 너희가 즐겁다면 됐다.
나중에는 어떻게 소문이 퍼졌는지 외부에서도 타 보고 싶어 해서 사람이 찾아올 정도였다.
외부인들이 너무 들락거리는 걸 좋지 않게 생각한 민 상궁이 서신을 보냈기에 아예 시영원 근처 공터에 하나 더 만들고, 이제는 그냥 기운이 남아도는 아이들이 돈을 받고 돌려 주기로 했다.
신이 난 아이들이 너무 속도를 내다 다치거나 하지 않도록 어른이 한 명씩 붙어 안전요원 역할을 하며 요금을 걷었다.
수익금은 물론 노동자에게 돌아갔지만 그중에서 적당히 수수료를 떼어 시영원 운영자금에 보태기로 했다.
다들 좋아하더라.
“이거 뜻밖에 창조경제네…….”
“아기씨. 대체 뭘 만드신 겁니까.”
“놀이기구.”
“그냥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데 왜 재밌어하는 걸까요?”
“그네도 그냥 앞뒤로 왔다 갔다 하는 건데 재밌잖아.”
“그리 말씀하시면 그런 것 같기도 하옵니다만…….”
민 상궁은 이해가 안 가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다들 즐거워하니 그냥 납득한 듯했다.
“조금 다른 것도 만들어 볼까.”
“예?”
내가 기억하는 회전목마처럼 지붕이 있고 말 모형도 있는 것을 만들어 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건…… 무게 계산을 잘못하면 그냥 인간 학대가 될 거 같았다.
그래서야 수익성이 좋지 않았으므로 하중에 대해서는 고려하고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다음으로 만든 것이 흔히 커피잔이라고 부르는 놀이기구였다.
여기서는 마찬가지로 비슷한 모양을 만들어 찻잔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안에는 현대에서 했던 것처럼 핸들을 돌려 빙글빙글 돌 수 있게 만들었다.
공터가 넓었고, 기운이 남아도는 노동력들은 공부하고 남는 기력을 여기에 쏟아부어 돈을 벌었다. 장작 패기나 나물 캐기보다 즐거운 모양이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어머, 이거 정말 재미있사옵니다.”
“까르르르.”
소문이 나니까 양반 아가씨들이나 기녀들도 와서 타고 가더라고.
덕분에 추가 제작도 했다.
나는 기왕 판을 키운 김에 어릴 적에 타 본 적이 있는 놀이기구 중에 다람쥐통이라고, 쳇바퀴 같은 구조의 통 안에 들어가 360도 회전하는 놀이기구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왜인지 다들 나를 고문 기술자 보듯이 쳐다봤다.
궁녀들은 그렇다 치고 전직 체탐인들조차도.
“아니, 그건 좀…….”
“아이들이 무서워하지 않겠습니까……?”
아냐…… 돈 주고 타는 거야…… 난 돈 주고 탔다고……!
아이들을 얕보지 마! 그 정도는 탈 수 있어!!
“재밌을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도 고문인데 그걸 돈 내고 타겠다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음, 하긴 내 친구 중에도 무서워서 못 타는 애들이 있었지. 하지만 걔들은 바이킹도 못 탔는걸.
아이들이 타고 다니는 장난감 자동차 모형 비슷한 거라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는데 아무래도 누군가 들고 튈 거 같아서 관두기로 했다.
덕분에 시영원 근처의 공터, 아니, 말이 공터지 이 근방 땅은 내가 야금야금 사 모으다 보니 상당 부분이 이미 내 소유가 되어 있었으므로 그 공터 역시 내 사유지였다. 아무튼 공터에 놀이기구들을 설치하면서 또 뜻밖의 장단점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