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92)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92)화(92/326)
장점은 아이들이 다들 그쪽으로 몰리다 보니 시영원 근처를 기웃거리며 제 자식을 훔쳐보던 이들 역시 시영원이 아닌 공터에 모인 덕분에 시영원에서 일하는 이들의 신경이 덜 예민해졌다는 거였다.
“그렇게 걱정되면 직접 키우면 좋겠는데요.”
“하하.”
아이들끼리 싸우다 다치면 갑자기 튀어나와 화를 내는 어른들이 있다고.
“고맙단 소리 한번 못 듣고 키워 주고 있는데 말이죠.”
“그 애들은 또 자기가 부모가 있다는 걸 알아요. 그러니 정말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무시하기도 해서 싸움이 나기도 하고요.”
“흐음.”
나는 실무자들의 고충을 들으며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공터에 사람이 많이 모이니까 또 여기다 은근슬쩍 아이 버리고 가는 사람이 늘어나는 단점도 있었으니까.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인가.’
하지만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 시영원 아이들도 입양을 가는 경우는 있었다.
당연히 생활에 여유가 있는 양인 부부가 아이를 원해서 찾아오곤 했는데 왔다가 여기 있으면 교육도 받을 수 있다고 낮에는 도로 여기로 보내더라.
혹은 입양해 가더니 일 잘한다고 일만 시켜서 힘들다고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있고.
“위탁 가정 제도를 만들면 어떨까.”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아이들을 입양하는 것이 아니고 가정의 형태를 배울 수 있도록 아이와 위탁 부모를 이어 주는 거야.”
“그야 좋은 뜻이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 아!”
내 말을 듣던 민 상궁이 내 뜻을 깨달은 듯 탄성을 질렀다.
“아이를 시영원에 두고 간 부모가 가정 위탁을 하겠다며 아이를 찾아가겠군요.”
그렇게 하면 일단 아이의 신분은 양인으로 유지되며 부모와 함께 살 수 있었다.
물론 편법이었지만 아이를 양인으로 키우고 싶지만 동시에 자신이 키우고 싶기도 한 부모 마음을 가능한 한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아이가 시영원에서 계속 교육받기를 원한다면 이 근처로 이사 오면 되는 일이고.
애초에 자주 아이를 보러 올 정도라면 그냥 이사를 오는 게 나을 것이다.
안 그래도 시영원 인근은 이미 시영원 관련자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으며 작은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일부러 하려고 한 건 아닌데, 시영원 아이들이 독립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이들이 워낙 많으니, 시끄러워 민원이 들어오는 일이 많아서 그냥…… 내가 돈을 좀 넉넉하게 주고 집을 사 버리다 보니 그렇게 됐다.
이것이 금수저의 민원 해결 방법…….
내가 한 일이지만 솔직히 좀 어이없었다. 물론 모두가 기뻐하는 결말이었으니 다행이다만.
***
시영원의 직원들은 그렇게 내 정책을 반영하여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에게 접근해 위탁 가정을 권하기로 했다.
놀이기구를 타는 것도 아닌데 괜히 공터에서 한 아이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면 그 사람이 아이의 친부모일 가능성이 높았으므로 일부러 몇 명씩 공터에 나와 사람들과 아이들을 관찰하다 매의 눈으로 친부모를 찾아내 가정 위탁에 성공했다.
그리고 가끔씩, 도리어 양육비를 달라고 요구하는 양심 가출한 사람에게는 양육비를 받아 내기로 했다.
“실은 저 아이의 친부모 되시죠?”
“예, 예에? 제가요?”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이를 데려가서 이웃분들께 물어보면 확인이 되겠지요. 아닙니까?”
“저, 저는…….”
“압니다. 아이를 양인으로 키우고 싶었겠죠. 아닙니까?”
“예, 예예.”
“그런데 아이를 이렇게 맡기고 설마 돈까지 요구하실 생각은 아니실 테고. 아, 혹시 제가 양육비를 지급하겠다는 말을 잘못 들은 걸까요?”
“드, 드리겠습니다!”
“이 일이 발각되면 아이가 어찌 되는지는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아실 테지요.”
“그럼요, 그럼요…….”
마우리 씨 그렇게 안 봤는데…… 말을 참 잘하시더라고.
옆에서 딴청 피우며 마우리의 영업을 듣고 있는데 마침 아는 얼굴이 보였다.
“어머, 아기씨,”
“자주 보네.”
“소인이야 이곳을 자주 찾지만 아기씨는 자주 뵐 수 없지 않사옵니까.”
이제는 익숙해진 매향이었다.
‘이곳을 소문낸 사람도 아무래도 매향이 같지.’
나야 영업이 되니 좋긴 하다만.
“이제 이곳은 완전히 놀이터로 굳어진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노는 땅이었는데 아무려면 어때.”
놀이기구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니 나날이 북적이고 있었다.
아예 어린이용과 성인용 놀이기구를 따로 만들어 운영했는데 그것도 평이 나쁘지 않았다.
참고로 성인용은 남녀가 유별하므로 따로 태우고 있었다.
거기에 전생의 유원지를 떠올리며 시영원 사람들에게 엿이나 식혜를 만들어 팔게 했는데 이것도 그럭저럭 수익이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사람이 많으니 사당패가 온다면 여기서 공연을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으음. 땅을 좀 더 다질까.”
안 그래도 아이들 많이 모이는 곳이라 작은 그네도 만들고, 시소도 만들어 주느라 슬슬 땅이 좁은 거 같다.
땅을 더 살까 고민하는데 매향이 뜻밖의 말을 했다.
“참, 학당을 여신다는 말씀은 들었습니다. 어찌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여인들의 병을 전문으로 하는 의원이 생긴다면 소인 같은 기녀들도 진료받을 수 있는 것이옵니까?”
“그게 소문이 났나? 기녀든 누구든 당연히 치료받을 수 있네. 왜 진료를 안 해?”
“양반가 부인들 전담 의원이지 않을까 했습니다.”
“양반가 여자들이 많으면 얼마나 많다고. 그리고 의원은 그런 거 가리는 거 아냐.”
“그렇사옵니까?”
예상치 못한 화제였으므로 나도 생각난 김에 물었다.
“기녀들도 아프면 의원을 부를 거 아냐. 그럼 남자 의원이 오나?”
“저희야 그런 걸 그리 꺼리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의녀가 오는 것이 더 편하지 않아?”
“여인들이야 역시 실력 있는 의녀가 봐준다면 편하겠지요. 특히 부인병에 관해서는 의원들도 꼭 잘 안다고 할 수도 없고요. 하지만 의녀들이 과연 실력이 있을까요?”
“지금 뭐라고 했소?”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은…… 하필이면 허성지였다.
“아기씨, 오랜만이옵니다.”
“응, 오랜만이네…….”
일단 나에게 인사부터 한 성지는 매향이를 곱지 않은 눈으로 흘겨보며 물었다.
“보아하니 기녀인 모양인데 무슨 근거로 의녀의 실력을 매도하는가?”
“보아하니 의녀이신 모양인데 그야 실력이 좋은 의녀를 본 적이 없으니 당연하지 않습니까?”
“흥. 그러니 기녀의 노래에는 품격이 없다는 소리나 듣는 게 아닌가?”
“지금 무어라 하셨습니까?”
응……. 딴 데 가서 싸워 주면 안 될까…….
하필이면 서로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셈이니 누군가가 끼어든다면 필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 날 거 같았다.
물론 신분만 보면 내가 혹등고래겠지만 나는 저 사이에 끼고 싶지 않았으므로 가이를 데리고 뒤로 물러났다.
“아기씨, 말리지 않아도 되겠사옵니까.”
“한 명은 여기 애들에게 의술을 가르치러 오는 사람이고, 매향은 여기 자주 놀러도 오고,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러도 오는 사람인데 둘이 싸우면 알아서 날짜 나눠서 오겠지.”
우린 빠지자.
네, 아기씨.
그렇게 소곤거리며 빠져나가려 했으나 눈치 빠르기로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두 사람은 동시에 나를 붙잡았다.
“어딜 가시옵니까.”
“소인 아직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
무섭다. 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자 두 사람은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하더니 성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일전에는 숙부님께서 큰 폐를 끼쳤습니다.”
“괜찮다면 다행이지.”
일단 신원 확인은 그럭저럭 된 셈이었지만 그 숙부는 여전히 걱정이었다.
선생 노릇은 하기로 수락했다는데 괜찮겠지.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에는 지장이 없도록 할 것이니 걱정 마십시오.”
“응. 부탁할게.”
성지의 용건이 끝난 듯하자 이번에는 매향이 입을 열었다.
“일전에 전두와 함께 주신 비누를 좀 더 얻을 방도가 없겠습니까. 소인 같은 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물건이옵니다.”
“아, 실은 저도 비누에 대해 여쭙고 싶었습니다. 구할 방도가 없습니까.”
“으음. 혜민서 같은 데에 우선적으로 공급하다 보니 물량이 좀 달려서.”
아직 정확한 통계 자료를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내의원 어의들은 비누의 효능에 대해 이미 인지하고 있다 보니 비누의 대량 생산을 원하고 있었다.
그건 나도 원하고 있었지만 애초에 아직 돼지를 늘리는 데 집중하는 단계이다 보니 기름이 그리 풍족하지는 않았다.
“만드는 데 기름이 필요한데 기름이 워낙에 흔한 물건이 아니지 않은가.”
“그럼 동백기름도 상관없사옵니까?”
“그건 너무 비싸지 않은가.”
“비싸도 괜찮습니다.”
안 그래도 나 때문에 시작된 비누 사용이 자연히 왕실의 문화를 따라 하고 싶어 하는 관리들, 사대부와 궁인에게로 퍼지고 있었다.
그동안 왕실과 의국에는 무상으로 공급해 주고 있었지만 나도 이제는 돈을 내고 사라는 입장이었고.
왕실은 물론이고 병자들을 위해 보내 주는 비누까지 다들 몰래 팔고 있다고 밀고가 들어오더라.
그래서 내게 밀고해 온 궁녀와 의녀들을 비누 공급책으로 지정해서 수익을 떼어 줄 테니 아예 비싸게 팔아 오라고 했다.
덕분에 돈은 벌었는데 아직도 수요가 가파르게 늘고 있어서 난처할 지경이었다.
‘돼지 농장이 아직 미비해서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네.’
그래, 어차피 비싸게 팔 거 그냥…… 비싼 식물성 기름을 섞어 만들고 비싸게 팔자.
식물성 기름은 종류에 따라 잘만 만들면 냄새가 좋지만, 잘못하면 아주 극단적인 냄새를 풍기게 될 수도 있었다.
‘특히 참기름 비누라든가.’
하지만 이 시대 조선에는 튀김 요리가 거의 없고, 약과도 참기름에 튀기는걸.
그러니 비누로 만들 기름도 참기름이 제법 많아서…… 어떻게든 동물성 기름과 섞어야 했다.
뭐 사실 가릴 처지가 아니면 참기름 냄새가 문제가 아니라 오래된 기름으로 만들어 쩐내가 나도 일단 그냥 쓰는 거고.
비누도 많이 만들다 보니 다들 요령이 생겨서 요즘에는 점점 품질이 좋아지고 있었다.
물론 이것도 재료빨은 무시 못 해서 좋은 재료를 쓸수록 좋은 비누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 어떤 기름이 비누 만들기에 좋은 기름인지, 어느 정도 비율로 섞어야 좋은지는 정말 맨몸으로 부딪혀 알아낸 것들이었다.
이걸 무료로 나눠 주었던 건 초반에 생산한 비누의 품질이 낮고, 생산량이 적었던 것도 있지만 사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였고. 공공의료나 내 사업체와 관계없는 곳에서 사 간다면 이제 비싸게 파는 수밖에.
그리고 비누 생산을 포함한 내 사업체를 관장하는 건 내가 아니라 가이였다.
“그럼 어느 정도 물량을 생각하는지부터 듣겠네.”
“……아기씨?”
“가이가 내 대리인이나 마찬가지니까 이쪽에서 얘기해. 나는 이제 학당 기초만 잡으면 좀 놀 거니까.”
“그럼 아기씨께선 우선 저와 말씀 나누셔야겠군요.”
어째서일까, 성지가 매향을 보고 이겼다는 듯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딱히 친하게 지내라고까지 하고 싶지는 않지만 싸우지만 않았으면 좋겠네.
생각해 보니 이제껏 몇 년간 나 너무 바빴던 거 같지.
놀아야지 놀아야지 하면서도 놀지도 못했고, 학당 세우고 졸업생들 나오기 전까진 청자랑 유물이나 모으며 금수저 백수의 삶이나 만끽해야지.
‘그때쯤이면 여주, 지화도 슬슬 등장해 주려나.’
하지만 언제나, 사람이란 쉬고 싶다고 쉴 수 있는 생물이 아닌 법이었다.
특히 남다른 혈육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