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98)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98)화(98/326)
송비는 내 사가에서 더 확인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고 해서 적당히 하고 쉬도록 했다.
아무래도 나중에 집안일을 돌보는 건 송비의 몫이 될 듯하니 노비들도 송비를 따르도록 명했다.
“이전부터 가끔 들르시던 항아님께서 집안을 돌보실 줄 알았사옵니다.”
“아아. 가이는 아무래도 바깥일을 더 많이 하니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내가 사가로 나오게 되면 집안일은 대체로 송비가 돌보게 될 거야.”
“그렇군요.”
“영선이 할 일은 변하지 않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가이가 워낙에 엄격한 사람이라 겁먹고 있던 이들도 다정다감해 보이는 송비를 접하고 조금 마음을 놓은 듯했다.
가이도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닌데. 하긴 자주 보는 것도 아니니 그런 것까지 알 리가 있나.
‘두 사람은 채찍과 당근 역할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고.’
집안일은 송비에게 맡기고, 나는 영선과 소이, 거기에 성 겸사복까지 데리고 출타했다.
“좋은 물건이 있으면 좋겠구나.”
“예, 아기씨.”
나를 안에서는 옹주, 밖에서는 아기씨라고 부르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영선이 말에 오르기 전 마지막으로 아까보다 조금 수수한 옷으로 갈아입은 내 옷매무새를 정리할 때였다.
“!”
갑자기 성 겸사복이 고개를 돌리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왜…… 그래?”
“누군가 쳐다보는 것 같았는데…… 송구합니다. 소인이 지나치게 예민했나 보옵니다.”
“음, 위험한 거 같으면 돌아갈까?”
내 눈에는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밖에 없는데.
하지만 시영원에 있는 사람들도 그렇고 전직 체탐인들은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모르는 위기 감지 본능이 뛰어난 느낌이었다.
“아닙니다. 살기가 느껴진 것도 아니고…… 어쩌면 옹주 자가에게 뇌물을 주고 싶어 하인들이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것일 수도 있고요.”
“하긴…….”
어지간해서야 나를 노릴만한 메리트도 없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 사람이 많은 곳에 가기 전까지는 말에 오르지 않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린아이라도 말 위에 타고 있으면 아무래도 눈에 띄는 법이고.
결국 성 겸사복은 멀리 가면 다리가 아플 것이라며 나를 업고 가기로 했다.
적아의 고삐는 내가 잡고 내 뒤를 소이와 영선이 둘러싸듯이 따르고 있어 어찌 보면 웃긴 모양새였다.
“이제 적아가 성 겸사복을 보고 도망가지는 않지?”
“아기씨 없이 다가가면 여전히 거리를 둡니다.”
“왜 다가갔어.”
“이제 익숙해졌으니 안 도망가려나 하고 사복시에서 다가가 본 적이 있습니다.”
“흠. 오라버니는 안 피하던데.”
어릴 때부터 봐 온 사람은 남자라도 안 피하는 걸까.
적아의 기준을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적아는 언제 보아도 참 훌륭한 말이옵니다.”
“그렇지?”
내 뒤에서 걷고 있던 영선은 말을 타던 사람이라 그런가 적아를 볼 때마다 감탄하곤 했다.
어째선지 대화하다 보면 꼭 다른 얘기로 빠졌지만.
“청자 중에 동물 모양으로 만든 것들이 있지 않사옵니까.”
“맞아. 물고기 모양 연적이라든가, 꽃 모양이라든가.”
“어찌 그런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 내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정식으로 출궁하게 되면 내 처소에서 보관 중인 청자들도 함께 진열할 거야. 특히 아름다운 향로가 있는데…….”
“꼭 보고 싶사옵니다.”
덕분에 소이와 성 겸사복은 그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걸을 뿐이었다.
“소인은 아무리 보아도 뭐가 그리 좋은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취향의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오늘은 들러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으므로 두 사람은 엄마 옷 사는데 끌려온 초딩 아들처럼 이미 마음이 지친 듯했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지.’
유물을 파는 건 전문 업자도 있지만, 소장하던 사람이 죽고 그 가족이 생활고 때문에 정리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는 가능한 한 값을 잘 쳐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래도 고인이 아끼던 물건이니 마찬가지로 잘 관리해 줄 사람이 가져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매수자를 찾는다. 그러다 보니 나같이 유명한 사람에게 판매 의사를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물이나 도자기 수집에 가산을 탕진하는 수집가들에 비해 나는 다소 소소한 편이어서 그들이 기대하는 만큼 대량 구매를 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었다.
‘나는 그냥 맘에 들면 사는 편이니까.’
아니면 역사적 가치가 있거나. 지금까지 딱히 감별 전문가를 고용하지 않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근래에는 내가 바쁘니 안목이 있는 영선에게 일단 대리로 일을 맡기고 가이나 소이 등 다른 나인들이 동석해 거래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중에는 거의 대리로 맡길 거 같은데.’
유물 종류는 위조된 가품인 경우도 있으니 이제 슬슬 전문가를 고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오늘도 일단 나오기 전에 감별사한테 집으로 오라고 불러 놓긴 했다.
그렇게 도착한 첫 번째 가게는 고려 유물을 주로 취급하는 곳이었다.
“이건 고려 시대에 쓰던 동경(銅鏡)입니다. 무늬가 섬세하기로 유명했지요.”
“흐음.”
“그리고 이건 청자로 만든 주전자로 모란 모양이…….”
“오오.”
몇 가지 마음에 드는 것들은 계약서 작성 후 예약금부터 주고 집으로 보내게 했다. 대체로 금액이 크다 보니 바로바로 값을 치르기는 어려웠다.
‘카드 결제나 계좌이체가 그립네.’
내가 마음에 들어 한 것 중에는 역시 청자가 많았고.
그 외에도 은세공품이나 고려 시대 때 절에서 사용했던 향로 등 종류도 다양했다.
‘박물관 다니는 기분인데.’
시작은 그렇게 비교적 단출했다.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소이와 성 겸사복의 표정이 비교적 살아있었는데.
비관심 장르를 강제 관람하느라 지친 얼굴이었던 소이와 성 겸사복은 몇 군데를 도는 사이 배는 더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골동품 판매하는 곳들이 다들 모여 있어서 국중박(국립중앙박물관) 전체 한 바퀴 도는 것보다 체력적으로 덜 힘든 것 같은데.’
상설 전시관에 특별, 기획전까지 돌고 나면 기력이 소진되기 때문에 취향이 맞는 친구가 아니면 함께 가기 힘든 곳이었지.
소이와 성 겸사복은 아마 체력이 문제라기보다는 그냥 지루한 게 문제겠지만. 둘 다 직업상 그런 걸 티 내는 업종이 아닌데 내가 많이 편해졌구나…….
참고로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는 동네들이라 이제 성 겸사복이 업고 다니지는 않았다.
“또…… 가십니까.”
“아직 한 군데 남았어.”
“정말 거기까지 가 보시려 하십니까?”
“응.”
사가에 찾아왔던 이들한테는 다 방문했고, 도중에 모 종친 부인에게 들었던 VIP용 가게도 멀지 않다는 걸 확인했기에 나온 김에 거기까지 가 보기로 했다.
“검증되지 않은 곳이라 불안하옵니다.”
“일단 가 보고 물건이 어떤가 확인해 보려고.”
“아기씨는 정말 기력이 넘치십니다.”
이미 여러 집을 보아야 했던 소이는 다소 질린 얼굴이었다. 나도 똑같은 것만 사는 사람은 아닌데 말이지.
“소이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보약이라도 해 먹어야 하는 거 아냐?”
“어휴, 아기씨도 참.”
“송비는 집에서 쉬라고 하길 잘했네.”
“그건 소인도 동감이옵니다.”
내가 어릴 때 송비가 20대 초반이었으니 내가 열여섯이 된 지금 송비도 이제 나이가 적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소이가 아니라 송비와 가이에게 보약을 지어줘야겠구나.’
30~40대면 아직은 한창 일할 나이라지만 둘 다 몸이 예전 같지는 않을 터였다.
이 시대 평균 수명이 긴 편은 아니지만 사실 여기서도 40대가 딱히 늙은 나이는 아니었다.
현대에는 다들 오래 사니까 평균 수명이 길어져서 헷갈려 하는 사람이 많은데, 예를 들어 평균 수명이 40세라고 하면 40세에 노인이 되는 거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워낙에 영유아 사망률이 높은데다 젊은 나이에도 온갖 사고나 병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고, 여성의 경우 출산 시 사망률도 높으니 그로 인해 평균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게다가 과도한 노동은 육체 노화를 촉진하는 법이니 고된 노동을 하는 계급일수록 수명이 짧을 수밖에.
그러니 위생과 영양 상태가 좋고, 의료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는 부유한 지배층들은 비교적 오래 사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쪽은 그쪽대로 과식, 과음, 운동 부족 등등으로 인해 현대인의 질병과 다르지 않은 병을 얻는 경우가 많지만.
조선 시대 왕들도 과도한 영양 섭취에 비해 심각한 운동 부족과 정신적 스트레스, 과로 등등이 아니었다면 다들 꽤 장수 했을 거다.
‘스트레스가 심한 업종이긴 해.’
생각해 보니 궁에 있는 동안 왕이랑 세자한테 잘해 줘야겠다…….
아무튼 궁녀들은 그나마 출산도 하지 않았고, 영양 보급도 비교적 좋고, 의료 서비스도 받을 수 있는 직종이라 민가의 여인들처럼 고생한 얼굴은 아니었다. 물론 궁녀들도 궁녀들대로 또 마음고생이 심한 인생이겠지만.
사실 우리 처소 궁녀들은 내가 수명을 좀 깎이게 만든 장본인 같기도 해서 많이 찔렸다.
정작 본인들은 내가 나이를 안 먹으니 자신들도 나이를 안 먹는 거 같다고 애써 웃었지만 그걸 보는 내 마음도 편치는 않았다.
‘여주 빨리 와라.’
나보다 내 주변이 더 마음 졸이는 게 솔직히 말해서 좀 미안했다. 그렇다고 무슨 신 내린 거처럼 곧 내 몸을 치료할 사람이 나타날 테니 모두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 다들 옹주가 드디어 미친 거 같다고 할 거 같고.
에휴, 취미 생활이나 해야지.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놀고 있어야 다들 걱정을 덜하니.
잡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덧 마지막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곳을 찾는 사람이 적지 않은지 문 앞에서 사내 하나가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안내를 받아 안에 들어가 보니 드물게도 꽤 오래전 유물들도 진열되어 있었다. 보통은 고려 시대 정도인데 여기는 삼국 시대 유물들도 제법 있었다.
‘진짜라면 꽤 괜찮은데.’
나는 영선이와 시선을 나눴다. 일단 생각보다 질이 괜찮았다.
“하하하. 어서들 오십시오.”
주인으로 보이는 사내가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조금 웃기지만, 우리 중에 겉보기로 가장 아가씨 같은 차림새를 한 것은 소이였기 때문에 다들 소이를 정중하게 모셨다.
어쩔 수 없다. 영선은 노비였고, 나는 어린아이였으니까. 아무리 옹주가 자라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다지만 옹주가 직접 돌아다닐 거라는 생각은 다들 잘 하질 않았다.
성 겸사복? 이 아저씨는…… 분위기가 이런 일에 대리인으로 나설 분위기가 아니었다.
우리처럼 소문 듣고 찾아온 이가 있었는지 다른 손님들도 여럿 보였다.
“자, 혹시 찾으시는 물건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여기 있는 물건들은 어디에서 나온 물건이오?”
“경상도에 있는 어느 양반댁에서 나온 것들이온데, 그 댁이 혼사 때문에 재물이 필요하여 처분한다는 것을 소인이 한걸음에 달려가 사 왔습니다요.”
“흐음.”
보기에는 물건이 너무 괜찮은데.
“앗.”
“앗.”
고개를 돌리던 나와, 영선이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그곳에는 완벽한 곡선과 무늬의 청자 항아리 하나가 고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건 사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