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99)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99)화(99/326)
“저기, 저 청자!”
“저 청자는 얼마요?”
나와 영선이 거의 동시에 소리를 지르자 안내하고 있던 사내가 만족스러운 듯 씨익 웃었다.
“아이고, 안목이 높은 분들이셨군요. 저 청자는 고려 시대 왕실에 납품되던 물건입니다. 당시 문하시중을 지냈던 분의 후손이 내놓은 진품입지요,”
그리고 도자기를 수건으로 살살 닦아 내며 윤을 냈다.
“하지만 저 도자기는 지금 당장 구매할 수 없으십니다.”
“이미 다른 사람에게 팔린 것이오?”
소이의 말에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그 정도의 값을 치를 수 있는 분이 아니 계시기도 하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옵고. 저 청자의 주인께서 청자를 담보로 돈을 빌려 가셨는데 아직 기한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보관을 위해 이곳에 두었을 뿐입지요.”
사내는 닷새 후에도 청자의 주인이 빌려 간 돈을 상환하지 않으면 그때부터 판매에 들어갈 거라고 덧붙였다.
“그럼 닷새 후에 판매한다는 겐가?”
“그렇습니다.”
“닷새 후에 우리가 사러 오도록 할 테니 다른 사람에게 팔지 말고 놔두게나.”
“하지만 원하시는 분들이 많은 물건이라.”
“방금 아직 그 정도의 값을 치를 수 있는 분이 아니 계신다고 하지 않았나?”
소이의 말에 사내는 어물어물 말을 바꿨다.
“아, 하하. 아직 보러 오실 분들이 더 계십니다.”
“그럼 그날 저 청자를 원한다는 이들끼리 가격을 정하면 되겠지.”
“하지만 다들 대단하신 집안 분들이셔서 가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온데…….”
“이 도자기를 구매하시는 분도 대단하신 분이니 자네가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네.”
“대단하신 분이라면…….”
“어떤 분이신지 자네가 알아서 무엇하려는 겐가.”
굳이 내가 무얼 사고 다닌다고 알릴 필요가 없었으므로 자꾸 말을 질질 끄는 사내에게 소이가 차갑게 말을 잘랐다.
소이가 내 앞에서야 허술하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까지 허술한 건 아니었다.
궁녀들의 패시브 스킬인 철벽치기에 움찔한 사내는 곧 고개를 끄덕이며 금액을 알려 줬다.
“예?? 아, 아이고 알겠습니다요. 그럼 이레(7일) 후까지 다른 분들께도 보여 드리고, 그때도 구매하시겠다는 다른 분이 안 계시면 바로 넘겨드리겠습니다.”
“알겠네.”
우리는 깐깐한 가계약서를 만든 후 사저로 돌아왔다.
“아기씨, 소인이 이레 후에 집안사람을 데리고 와서 저 도자기를 매입해 오겠습니다.”
“나도 이레 후에 나와서 확인할 테니 감별사 불러 놔.”
“아니, 아기씨, 또 나오시려고요? 정말 괜찮으시겠사옵니까?”
“괜찮아. 보기 드문 물건이니 내가 확인하고 구매해야지. 가격이 낮은 것도 아니고.”
도자기 외에도 몇 가지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두었지만 그 도자기만큼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옹주 자가,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이. 딱히?”
덕분에 궁에 돌아와서 한동안 궁녀들에게 이런 말을 들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레 후, 그날과 같은 멤버로 다시 가 보니 무언가 이상했다.
다행히 구매하겠다는 이가 없었다며 사내는 바로 물건을 내줄 수 있다고 운이 좋으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나와 영선은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
“예. 소인이 그날 본 것과 조금 달라 보이옵니다.”
전문가를 불러오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분명, 그날 본 것과 달랐다.
“이대로 포장해 드릴까요?”
“……그래. 포장해 주게. 자네 말대로 고려 시대 유물이 맞다고?”
“예 그렇습니다.”
“만약 아니라면 어찌하겠나?”
나의 영선의 대화를 들은 소이의 말에 사내가 자신이 아는 감별사라며 불러온 나이 지긋해 보이는 할배를 소개했다.
하지만 남이 데려온 감별사를 어떻게 믿겠는가? 나는 오늘 갑자기 이상하게 급한 일이 생겼다며 오지 못한 단골 감별사를 떠올렸다.
“여기 감별사가…….”
“응. 그래, 그렇다면 자네, 이거 진품 맞다고 지장부터 찍게.”
“아니, 이거 왜 이러십니까.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사내는 안 팔아, 배째를 시전하였으나 속아 넘어가 주기에는 너무 성의가 부족했다,
“한두 푼짜리가 아닌데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럼 진품이 확실하다고 지장을 찍으면 지금 당장 가서 대금을 지급해 줄 수 있는데 어찌하겠나?”
“그, 그러시다면…….”
사내는 지장을 찍었다.
우리는 대금을 지불하겠다고 잠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사내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포도청에 가서 신고하자.”
“예?”
평소라면 그냥 안 사고 대충 넘어갔을지도 몰랐다. 귀찮아서…….
하지만 오늘 나는 기대했던 반작용 때문인지 몹시 기분이 안 좋았다.
그렇게 성 겸사복에게 내 신분패를 맡기고 포도청에 위작 판매하는 놈들을 신고해 버렸다.
왕족의 신고. 이건 귀하네요.
“바로 추포하겠습니다.”
민중의, 아니 백성의 지팡이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권력이 이렇게 좋아.’
평소에도 이렇게 민중의 지팡이 노릇을 해 주면 좋을 텐데.
그렇게 포도청을 통해 가장 공신력(公信力)있는 감별사를 불러 감별한 결과 예상대로 위작임이 드러났다.
‘그냥 모작이라고 하고 팔았어도 평범하게 좋은 가격을 받았을 텐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낌새를 눈치챘는지 달아난 놈들도 있었지만 여러 사람이 붙잡혔다. 성 겸사복도 포졸들 사이에서 반항하는 놈들 제압하는 걸 도왔다.
듣기로는 예전에도 비슷한 짓을 하다 걸린 놈들이었는데 이번에야말로 뿌리를 뽑아 버리겠노라고 종사관 하나가 의욕이 넘치게 외쳤다.
이런 위작 판매는 보통 개인이 아니라 조직으로 이루어지는 법이었으니까.
“그런데 분명 대단하신 분이 사는 거라고 일러두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허술한 사기를 친 걸까요?”
“호사가들이라고 다들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니니 물건 가치를 잘 모를 거라 생각한 게 아닐까요?”
“하지만 구매하면 당연히 감별사도 부를 것인데.”
“사실이 밝혀져도 속았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신고를 하지 못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아.”
하긴, 명색이 수집벽이 있는 애호가인데 모조품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하면 체면이 말이 아니겠지. 도자기나 유물 같은 값비싼 물건들을 수집할 정도면 그야말로 있는 집 사람이 아니면 어려운 일이니까.
“저어. 그럼 아기씨께서 사려고 하셨던 그 도자기는 어떻게 된 걸까요.”
“사기 치기 위해 일부러 진품을 놔두었을 수도 있지만 처음부터 가짜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기꾼들을 체포한 포졸들이 감별사들의 도움을 받아 위작들을 정리하기 시작했으나 진품들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본 그 도자기는 정말 진품 같았는데.”
“어찌 그리 생각하십니까?”
“그게…….”
소이의 말에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뭐가 다르냐고 물어보면 설명하기 어려운데 그 뭐랄까.
“때깔이 다르다고나 할까.”
“……그렇군요.”
“보는 순간 아 이거다! 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거야. 물론 미세한 비율의 차이도 있고, 색도 조금 다르고, 광택도 다르고.”
“전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딘가에 숨겨 놨을지도 모르지. 누가 봐도 값비싼 진귀한 물건이니.”
“비싸 보이긴 했습니다만…….”
슬프지만 고려 왕실에 납품되었던 최고급 청자라도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그냥 도자기일 뿐이다.
‘영화 같은 데 보면 꼭 뒤쪽에 비밀 통로나 작은 공간이 있어서 그 안에 숨겨진 재물 같은 것이 있지 않나.’
나는 대충 풍비박산 나고 있는 사기꾼들의 가게를 지켜보다가 포졸들이 이미 한번 훑고 지나간 창고 안으로 슬쩍 들어갔다.
“앗, 아기씨! 들어가시면 안 돼요.”
“이런 데에 있을 법하지 않나.”
하도 물건이 많아서 이거 확인이나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었다.
안에는 커다란 항아리 같은 것들이 많았는데 상자에 들어간 것도 있고 그냥 굴러다니는 것들도 있었다. 일단 이 건물 자체를 출입 금지 시켜 두고 물건들은 나중에 처분할 모양이었다.
나는 어른이 들어가도 공간이 남을 듯한 커다란 항아리를 들여다보곤 소이를 향해 웃었다.
“이런 항아리가 실은 밑이 뚫려 있어서 거기 숨어 있다 나오거나 그런 일은 없겠지.”
“에이. 아기씨도 참……?”
그리고 다음 순간 무언가가 내 목덜미를 잡고 튕기듯 움직였다.
“어?”
“조용히.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이 꼬맹이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헉……?”
진짜, 항아리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
“아, 아기씨!”
“비켜!”
아닛, 내 인생 왜 이렇게 스펙터클…….
실제 나이는 어쨌든 외관상으로는 고작 일곱 살 정도인 내 몸은 사기꾼 일당의 손에서 가볍게 달랑거렸다.
소이는 어떻게든 빈틈을 엿보는 것 같았지만 남자의 손에는 흉기가 들려 있었다.
아직은 말 그대로 쥐고만 있는 상태였지만.
“아기씨를 놓아주시면 도망치는 걸 도와드릴게요.”
“말하는 걸 보면 좋은 집 아기씨 같은데. 그래, 너희들도 도자기를 사러 왔던 걸 보면 분명 돈이 많은 집 자식들이겠지? 이 아이를 살리고 싶으면 몸값을 가져와.”
“예?”
사기꾼이 유괴범으로 변모하는 순간이었다.
금액과 돈을 가져올 시간 장소를 외친 남자가 뛰쳐나가자 소이는 소리를 질렀다.
“아, 안 돼!!”
그리고 이 멍청한 사기꾼은…… 그냥 멍청했다.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나를 들고 사람들 지나다니는 골목길로 뛰어든 것이다.
포졸들은 대부분 떠났다지만 소란이 일었기에 호기심에 기웃거리고 있던 사람들이 뜻밖의 흉흉한 풍경에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유괴범이다!!”
“도적이다!!”
“아, 젠장!”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사내는 그제야 칼을 치우고 나를 옆구리에 뛰고 달리기 시작했다.
“아기씨!”
멀리서 소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기절하고 싶다.
“……!!”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 것 같았다.
***
안타깝지만 승차감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에 저 사기꾼 일당, 아니 유괴범이 날 땅바닥으로 내려 주자마자 나는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우으…… 어지러워.”
“꼬마야, 얌전히 있으면 해치지는 않으마. 알았느냐?”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괴당했을 때는 원래 순순히 말을 듣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했었지.
유괴범은 내 눈을 가린 채 다시 나를 들고 산길을 달려가더니 어느 집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야, 이 미친놈아. 이거 뭐야.”
“도망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런 어린애는…….”
“광에 가둬 놔. 아직 쪼그만 어린애니까 나중에 풀어줘도 뭘 알겠어.”
말하는 걸 보니 다행히 정말 해칠 생각은 없나 보다.
어린아이라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인지 다른 조치도 없었고.
‘아마 혼자 훌쩍훌쩍 울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광에 갇힌 나는 눈을 가린 천을 풀고 얌전히 웅크린 채 주변을 살폈다. 작은 창이 있으니 도망칠 수 있을 거 같기도 했다. 가능한 한 소리를 내지 않고 안에 있는 물건들을 차곡차곡 쌓았다.
해치지 않는다고 했지만 혹시라도 모를 일이었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긴장하며 움직이는데 옆방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분이신데 누가…… 하면…… ……잖아?”
“시끄러……! 그분이……시면 얼마나……겠어?”
“……지만 곧 ……고…… 다방골 기방에서…….”
기방?
“그럼…… 열아흐레…… ……이야기…… 그곳…… 돈을…….”
“……만, 세자…….”
세자?
익숙한 단어에 내가 움찔 떠는 순간, 문소리가 들렸다.
끼이이익-
“뭐 하는 거냐.”
“형님.”
“그게…… 위작 판매를 들켜서 몇 명이 잡혔습니다. 저는 간신히 도망쳤고요.”
“젠장, 목격자는 없겠지?”
“그게…… 어린아이 한 명이.”
“예외는 없다. 우리의 대계(大計)에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면 모두 처리해야 해.”
“!”
때마침 창틀에 손이 닿았다. 작은 창이었지만 나는 어린아이였다.
‘자라지 않은 걸 감사하게 될 줄은 몰랐네. 읏차!’
그리고 궁술(弓術)과 마술(馬術)로 비교적 단련된 팔다리를 가지고 있기도 했고.
단번에 창틀 위로 몸을 올린 나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는 동시에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있던 광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꼬마, 어디 숨었냐?”
나는 뒤도 보지 않고 달려갔다.
‘금방 들키겠지만 조금이라도…….’
도망쳐도 산길에서 길을 잃으면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찾았다!”
“꺄아아악!”
사내가 나를 향해 달려드는 순간, 무언가가 그를 강타했다.
“악! 넌 뭐…… 아니?!”
뭔진 모르지만 살았다!
나는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친 듯이 달려갔다.
그리고 무언가에 걸려 넘어진 후,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