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ss returns RAW novel - Chapter 1
프롤로그
“쿨럭!”
임하성은 핏물을 뱉어 내었다.
횟칼이 갈빗대 왼쪽을 파고들어 좌늑골하신경을 끊었다. 비장이 파열되었고 폐에는 기흉이 생겨 연신 핏물을 올려대고 있었다.
횟칼로 찌른 상대방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얼굴을 보니 옛띠었는데, 치혈하게 싸우는 틈을 타서 뒤쪽에서 찌른 것이었다.
신사동파를 이끄는 고진성과 일심파를 이끄는 유한백이 손을 잡고 임하성을 쳤다. 놈들은 정예조직원 20명을 동원하였고 신화파에서는 고작 임하성을 호위하던 네 명의 조직 간부들이 한 시간을 고군분투하며 막아냈다. 도주를 하며 싸우기를 반복한 끝에 이른 곳은 한적한 숲속이었다.
신사동파와 일심파가 적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숲속 별장에서 회동을 가진 것이 폐인요소라고 할까. 이런 것을 두고 자업자득이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음의 순간에는 지난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한다. 그것은 임하성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신화그룹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지금의 말로 한다면 그야말로 입에 다이아를 물고 태어난 격이었다.
한 때, 신화그룹은 시가총액 100조, 한해 매출액 150조원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에너지, 화학, 통신, 건설, 금융, 엔터테인먼트 등으로 진출하였으며 2004년에는 한국기업들의 고질적인 문제점이라 할 수 있는 순환출자제도를 정리하고 지주회사와 사업자회사로 분할해 단순한 지배구조를 확립하였다.
한국 재계의 한축을 담당하였던 신화그룹이 찢어진 것은 이른바 9월 항쟁 덕분이었다.
신화그룹은 유럽의 마피아들처럼 한국 전국구 조직 ‘신화파’가 전신이었다. 신화파는 90년대 말, 전국구 조직 신사동파와 일심파를 흡수하여 한국 최대 조직으로 거듭났으며 임하성의 조부인 임태식이 초대 회장에 앉았다.
임태식은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한국을 주름잡던 신화파를 일구어낸 주역이었으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업들을 수면 위로 부상시키기 위하여 부단히도 노력하였다. 90년대 초부터 조직의 사업들을 정비하여 죽기 전에는 한국 재계 3위의 위업을 달성하였으니 가히 조폭계의 위인이라 할 만 하였다.
다만 임태식은 후계구도를 완전히 정립하지 못했다.
임태식의 외동아들인 임현진은 2000년 초에 교통사고로 사망하였으며 손자인 임하성에게 조직과 회사를 그대로 물려주려 하였지만 그 당시에도 임하성은 자폐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였다.
물론 자폐증 하나로 거대 회사가 순식간에 무너지지는 않는다. 전문 경영인에게 맡겨도 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문경영인을 세우는 것을 조직 내에서 심각하게 반대를 했다는 것이었다.
회사가 무너진 가장 큰 원인은 역시나 타 조직의 계파 싸움이었다. 이 싸움을 신화그룹에서는 9월 항쟁이라 불렀다. 싸움이 촉발된 것은 초대 회장의 죽음이었다.
2005년, 임현진이 죽고 갑작스럽게 임하성이 회장이 되었지만 순탄치가 않았다.
전문 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는 것을 조직의 간부이자 이사들이 반대했고 임하성은 할아버지가 키워낸 회사에 두문불출하였다.
그 틈을 노리고 신사동파와 일심파가 갈라졌다. 그 때가 2007년 9월이었다. 초대 회장이 죽고 2년 만에 회사가 갈라진 것이다.
회사가 산산조각 나고 나서야 하성은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그 때부터 고군분투가 시작되었다.
전국 조직들이 항쟁에서 벗어나 수면위로 부상하였고 각 사업들을 합법화 하는 시기를 맞았지만 신화파와 일심파, 신사동파는 마치 90년대 초반의 항쟁처럼 치혈하게 싸웠다. 하성은 전투에 전투를 거듭하며 죽을 위기들을 넘겨왔다.
놈들과 싸우며 하성은 신화그룹을 노리고 있던 신사동파와 일심파의 뒤에 거대한 흑막이 존재하는 것을 짐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하성은 그들이 누군지 밝혀내지도 못한 채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려 하는 것이었다.
하성이 피를 연신 토해내고 있을 때, 유한백과 고진성이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이 새끼들! 쿨럭!”
“형님. 이제 좀 편안하게 가쇼. 이게 뭡니까? 꼴사납게.”
“어찌 선대 회장님의 은혜를…….”
“은혜는 개 뿔. 어차피 신화파에 흡수된 것부터가 계획이었지. ‘그 분’께서는 그것을 원하셨으니까.”
“뭔 개소리…….”
“그러게 평소에 몸 관리 좀 하지 그러셨소? 전국구 조직 보스와 간부들이 고작 행동대원 20명을 못 막아서야 쓰겠소.”
“크르륵. 크르륵.”
하성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그 분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정말로 신화파가 결성된 것에는 다른 흑막이 존재하였다는 말인가.
그 흑막이란 무엇일까.
수도 없이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하성은 생각을 이어 나갈 수가 없었다.
고진성이 하성의 목을 횟칼로 그어 버렸다.
츄아아아악!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간다.
한 많았던 임하성의 인생이 그렇게 마감되었다.
아니, 마감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을 줄이야.
하성은 꿈을 꾸고 있었다.
어릴 적,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두 눈에 담아야 했다.
할아버지가 일구어낸 전국구 조직 신화파는 가히 한국 최고의 세력을 자랑하였지만 그 만큼이나 적도 많았다.
96년 봄, 조폭계 역사상 가장 치혈한 싸움이 있었다. 신화파와 재범파의 전쟁 중에 적들은 하성의 가족들을 모조리 도륙하려 하였고 한밤중에 쳐들어 온 적들에 의해 어머니가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지금만 하더라도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그렇게 조폭들이 칼을 들고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는 않았지만 90년대만 하여도 조폭계는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광경을 두 눈에 담고 난 후에 하성은 조폭 자체를 경멸하게 되었다. 트라우마 때문에 자폐아가 되었고 그것은 20대까지 이어졌다.
설상가상, 고등학교 1학년 때에는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며 고아가 되었는데, 할아버지가 직접 하성을 거두어 함께 살게 되었다.
지금의 기억은 하성이 야자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편린이었다.
할아버지는 술이 얼큰하게 취하여 하성을 서재로 불렀다.
서재에는 한국식 장검인 박도가 걸려 있었고 오래 전에 찍은 빛바랜 가족사진이 큼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들내외의 사진을 보며 홀로 술잔을 기울인 듯 했다. 이런 모습은 일상이라 큰 감흥은 없었다.
그 당시 하성은 삶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회의감이 들었던 것이다.
조폭의 후계자로 태어난 것.
삶은 선택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하필 조폭의 후계자라니. 아버지의 사고도 석연치 않은 것으로 보아서는 머지않아 하성도 같은 꼴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할아버지는 하성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한 잔 하겠느냐?”
“괜찮습니다.”
“사내새끼가 18살이면 성인이지. 조직 꼬마들도 18살이면 성인으로 친다. 그러니 너도 술을 마셔도 된다.”
‘그건 또 뭔 개 소리…….’
한숨을 내쉰 하성은 술잔을 들었다.
이 집에서는 할아버지의 말이 곧 법이었다. 아직까지 하성은 자폐증을 앓고 있는 소년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할아버지의 말을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오래된 비사를 꺼냈다.
“너는 우리 가문이 어떤 가문인지 알고 있느냐?”
“조선 최고의 거상인 임상옥의 직계후손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 돈으로 산을 쌓았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상계의 후손이다. 그것도 직계지. 그 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워낙에 돈이 많아 권력자들에 휘둘린 끝에 스스로 장사를 접고 낙향을 했으니 돈을 멀리 하라는 그 말인가요.”
하성은 제법 말이 될 듯 한 소리를 했다. 자폐증이라고 해서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사람을 멀리하고 집안에 틀어 박혀 있는 날이 많을 뿐이었다. 그나마 학교라도 강제로 나갔으니 다행이었다.
“아니다. 낙향을 할 때에 그 많은 재산들이 어디로 갔느냐는 것이다. 그것도 몽땅 금괴로 말이다.”
“…….”
이때만 해도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임상옥이 금괴를 파묻은 것과 하성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는 집안일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조폭 집안에 태어나 부모님이 모두 피살되고 고아가 되었는데 집안일에 관심이 있을 턱이 없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에게 지도가 있다. 모두 일곱 장으로 만들어진 지도지. 헌데 그 중 두 장이 사라졌다는 게다. 그 지도만 있다면 신화그룹은 한국 최고의 재벌로 우뚝 설 수 있다.”
“선조께서 돈이 많기는 했나 보네요.”
“많다마다. 인삼 독점권으로 엄청난 금력을 휘둘렀지. 너는 나를 이어 그 과업을 완수해야만 한다. 그 지도조각을 찾아 완성해야 하는 것이다.”
“…….”
“더불어 가문의 무술인 ‘수박’을 익히도록 해라.”
“후우. 꼭 그래야 합니까?”
“네가 살기 위해서는.”
“원하신다면.”
별로 익힐 생각은 없었지만 일단 하성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 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잔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 뻔했던 것이다.
“언젠가 가전의 전통무예가 네 목숨을 지켜줄 것이다. 선조의 재산은 우리 신화그룹을 한국 최고의 재벌로 만들어 줄 것이 확실하지. 내 장담한다.”
하성은 잠에서 깨어났다.
“허억!”
회귀를 하였다고 깨달은 이후로 부쩍 오래 전 할아버지가 말씀해 주셨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악몽도 아니었는데 침대에는 땀이 흥건하였다.
분명히 그는 칼에 맞아 죽었는데, 갑자기 20년 이상을 거슬러 돌아오고 말았다. 틀림없이 꿈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절대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40년 이상 살아온 인생이 허상이었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것이 허상일 리가 없었다. 마지막 순간, 살갗을 뚫고 들어왔던 차가운 칼날은 몇 번이나 비틀렸다. 그래야만 상처가 악화되고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끔찍한 고통이 허상일 리는 없는 것이다.
하성은 혼란스러웠고 그 혼란을 수습하는 데만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오늘은 과거로 회귀를 한지 10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지난 10일 동안 하성은 미친 인간처럼 살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시절의 그는 자폐증에 걸려 미친 인간보다 더 심각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말을 할 때도 있었지만 말을 하지 않기 시작하면 일주일 동안 입을 닫기 예사였다.
그렇게 좀비처럼 살아가다가 어제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그의 삶에는 많은 비밀이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은 직접 목격을 하였지만 아버지의 죽음은 의도된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죽음마저 조작이라는 의심을 품었었고 죽는 순간,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신화그룹을 비롯하여 집안의 모든 사람들을 죽여 없애 버린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게다가 그 존재들은 암중에서 그룹 내부에 침투해 있었다.
그 외에도 임상옥 가문의 직계로, 여러 가지 비밀을 안고 있었으며 선조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오직 자신의 능력으로 신화그룹을 한국 재계 3위까지 올려놓았으니 하성이 죽는 순간까지 선조에 대한 비밀은 파헤쳐 지지 않은 채였다.
그가 자폐증을 극복하고 정신을 차린 이후, 신화그룹은 갈가리 찢겨 있었고 오직 고군분투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온 순간부터는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신화그룹을 찢어 버린 것은 물론 가족들을 모조리 살해한 자들을 찾아내 죽여 버리는 것과 신화그룹을 재계 1위의 빛나는 기업으로 우뚝 세울 수 있는 기회 말이다.
아직 머릿속이 복잡하여 하나하나 세부적인 계획은 잡히지 않았지만 이 하나 만큼은 확실하였다.
“이번 생에는 개 호구 같이 당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