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ss returns RAW novel - Chapter 104
102. 은퇴
시간이 빠르게 가고 있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임태식은 신변 정리를 했다. 그리고 오늘, 은퇴를 한다.
하성은 매일같이 저택에 방문을 하여 할아버지와 함께 출근을 했다. 그리고 그것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하성은 할아버지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었다.
“벌써 일주일이 흘렀구나.”
“빠르네요.”
하성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할아버지가 은퇴를 하고 나면 내일부터는 하성이 신화그룹 전체를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었다.
지금 태진그룹의 규모도 만만치 않았지만, 양쪽 회사가 합쳐지면 규모가 얼마나 커질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이제는 네가 대한민국의 기둥이다.”
“대한민국의 기둥이라니…….”
“잘 이끌어 나가야 한다.”
하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민국의 기둥이라는 말에 어깨가 무거워졌다. 지금부터는 누군가가 끌어 주는 사람이 없을 것이었다.
끌어 주는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힘들 것이다. 경영 능력을 따지면 하성은 천재나 다름이 없었지만, 후원자가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외로운 싸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저택은 네가 쓰도록 해라.”
“할아버지.”
“혹시라도 내가 병에서 낫는다고 해도 이곳으로 돌아올 일은 없을 거다.”
“어째서요?”
“여행이나 슬슬 다니며 인생을 정리하는 것이지.”
할아버지는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부터는 완전히 혼자가 되는 걸까.
“만약 난관에 부딪친다면…….”
“웬만한 일은 네가 알아서 했으면 하는구나.”
“후우, 알겠습니다.”
이것으로 할아버지의 뜻은 잘 알았다.
하성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그나저나 오펙은 어찌 되었느냐?”
“오늘 정도에 터뜨릴까 싶습니다.”
“터뜨린다고?”
“아마 오펙의 수뇌부가 줄줄이 입건될 겁니다.”
하성은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압달 에드리는 하루하루를 피가 마르는 날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이미 태진그룹에서는 오펙이 모든 일의 원흉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오스트리아 검찰에서도 조사가 들어왔지만 아직까지 그가 멀쩡하게 이곳에 앉아 있는 것은 확정적인 증거가 없어서였다.
“어쩌면…….”
압달은 의자에 몸을 푹 파묻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그냥저냥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능한 이야기일 수도 있었다.
증거가 없다면 오히려 이걸 기회로 만들 수도 있었다.
“총장님!”
비서실장 아문이 들어왔다.
이런 식으로 쳐들어오니 깜짝깜짝 놀랐다.
도대체 무슨 일로 아문의 얼굴이 이리 다급한 걸까.
“TV를 보십시오!”
“TV는 왜?”
삑!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일단 압달은 TV를 틀었다.
TV에서는 태진그룹이 발표한 증거 자료들에 대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이게 뭔가?”
“피하셔야 합니다!”
증거 자료들이 공개되었다.
최근 들어 결사대가 털리고 놈들은 오펙 본사까지 들어와 자료들을 챙겨 갔다. 그냥 스며들어 가져간 것이다.
오늘, 그 자료들이 터졌다.
쾅!
갑자기 사람들이 총장실로 밀려 들어왔다.
그들은 검찰이었다.
“검찰입니다. 함께 가 주셔야겠습니다.”
“이렇게 허무하게…….”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
미란다 원칙이 귓가에 들리고 있었지만,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이대로 끝인가.”
하성은 신화그룹 본사에 도착하였다.
오늘은 은퇴식이 있는 날이었다.
최소한 하성이 성인이 되고 난 후에 회사를 물려줄 것이라고 생각한 재계의 많은 사람들이 상당히 놀라고 말았다.
임태식은 하성이 일가를 이루었고 거대 기업을 스스로 세우면서 능력을 입증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하였지만, 여전히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하성의 업적은 사실이었다.
누구도 그 짧은 시간 안에 그만한 위업을 달성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은퇴식에는 정재계의 수많은 인사들이 모였다.
“임 회장, 이렇게 은퇴하는 거요?”
“나 회장, 나도 쉬어야지.”
“허허허! 나도 물려주고 심산유곡에나 틀어박혀야겠군.”
“우리 나이가 되면 욕심은 내려놓아야지.”
임태식은 현자와 같은 모습을 보였다.
재계의 수많은 늙은이들이 남아 있지만, 그들은 잡은 것을 놓지 않으려 했다. 어떻게 해서든 기득권을 유지하려 애썼다.
하지만 임태식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자 했다.
물론 그것이 암 때문이기는 하였지만, 굳이 암이 아니라고 해도 임태식은 하성이 성인이 되자마자 회사를 물려주려 계획하고 있었다.
임태식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 하성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회장님.”
“은별 씨?”
꽤나 놀랐다.
이은별은 치우 본가에 있어야 했다. 그런데 여기까지 찾아왔던 것이다.
그녀가 구속되지 않은 것은 하성이 뒤에서 힘을 썼기 때문이었다.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어떤 은혜요?”
“회장님의 은혜로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후후,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하성은 어깨를 으쓱였다.
오펙의 결사대를 무너뜨린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놈들이 남아 있다면 언제고 하성의 앞길에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치워 버렸다.
이것은 굳이 이은별 때문이 아니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입사하고 싶습니다.”
“공장에 말입니까?”
“본사에 입사를 하면 안 될까요?”
하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은별 정도라면 상당한 인재라고 말할 수 있었다.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꽤나 훈훈한 열기가 감도는 것 같았다.
은퇴식이 시작되었다.
할아버지는 은퇴와 동시에 하성이 취임식을 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건 하성이 거절하였다.
오늘은 할아버지만의 날이 되어야 한다.
스포트라이트가 하성에게 비춰지는 것은 사양이었다.
단상으로 임태식이 올라왔다.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여러 가지 감정들이 스쳐 지나갈 것이다. 그는 신화그룹의 창업주였고 오랜 세월 회사에 몸을 바쳐 왔다.
“6.25 전란 중에 맨몸으로 내려왔을 때가 생각나는군요.”
“…….”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는 평양 사람이었다.
전란 중에 내려와 터를 잡았고 유명한 건달로 성장하였다.
물론 이 자리에서 건달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맨몸으로 기업을 일으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제 손자 놈은 그만한 기업을 단 2년도 채 되지 않아 일으켰죠. 실로 어마어마한 천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험험.”
하성의 얼굴에 할아버지가 금칠을 하자 그는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너무 칭찬이 노골적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할아버지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 때문에 저는 가벼운 마음으로 은퇴를 하려 합니다. 손자 놈이 아니었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죠.”
임태식은 잠시 생각에 잠기었다.
곧 그의 입이 열렸다.
“은퇴식에 참석을 해 주신 여러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저는 이제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려 합니다. 드디어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회사 일은 잊고 그저 그렇게 묻혀 가야겠지요. 그것이 제가 원하는 삶의 마지막이기도 합니다. 은퇴식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짝짝짝짝!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은퇴식을 화려하게 할 수도 있었지만, 할아버지가 그것을 바라지 않으셨다.
하성은 단상을 내려오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은퇴식이 끝났다.
사람들은 돌아갔고 하성은 할아버지와 둘이 남았다.
“이제 내려가야겠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허허허, 그래 주면 고맙고.”
그들은 남해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남해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 할아버지는 정착을 하려 했다. 초로의 노인으로 살아가려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는 네가 고생을 해야 한다.”
“예, 할아버지.”
“지금부터는 네 세상이다. 기업인의 자세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일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명심해라. 한국을 강대국 반열에 올릴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다.”
“명심하겠습니다.”
하성은 그다지 애국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그리하라고 명한다면 그리할 생각이 있었다.
차량은 남해 상주면에 멈춰 섰다.
예로부터 남해는 경관이 수려하기로 유명하였다.
아직까지 남해는 개발이 되지 않는 곳이 많았다. 또한 지대가 높은 곳에서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지형도 많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
이곳에 전원주택이 멋지게 지어져 있었다.
“어떠냐?”
“좋습니다.”
여기서 낚싯대를 던져서 낚시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할아버지는 낭만을 아시는 분이었다.
“여기서 여생을 보내려 한다.”
“여행도 다니고 하셔야죠.”
“후후, 여행은 무슨. 이미 충분히 가 보았다.”
할아버지는 전 세계를 누비며 회사를 운영하셨다. 여행을 겸하기도 하였으니 전 세계 가 보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뜻이 그렇다면 존중을 해야 한다.
“종종 오겠습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할아버지…….”
“조용히 여생을 정리하고 싶구나.”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누구도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고 살아간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죽음을 인지하고 계셨다.
“언젠가는 너도 알게 될 날이 올 거다. 혼자 여생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오겠지.”
“그럼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긴급한 일이라면 찾아와도 좋다. 하지만 그런 일을 네가 만들지는 않을 것 같구나.”
정말 현자와 같은 눈빛이었다.
하성은 할아버지에게 절을 한 후에 차에 올라탔다.
서울로 향하는 길.
마음이 왜 이렇게 무거운 걸까.
윤다희가 말했다.
“걱정 마세요. 선대 회장님이 원하신 일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걸 원하시잖아요.”
“후우.”
하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꾸만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할아버지가 원한 일이었으니 최대한 들어 드리면 된다.
윤다희가 말했다.
“그보다는 내일이 취임식이로군요.”
“그렇군요.”
태성그룹과 신화그룹이 병합되는 날이다.
이건 전 세계적인 대규모 이벤트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
투둑 투두두둑.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가만히 있다가도 비가 오면 소주라도 한 잔 걸치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하성은 집으로 돌아가다가 비가 오자 보이는 포장마차 앞에 멈추었다. 윤다희가 앞에 앉아 있었지만 그녀만으로는 갑갑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 때문에 백호를 불렀다.
어쩌면 백호가 할아버지의 건강에 대한 답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부르셨습니까.”
“술이나 한잔하죠.”
“이런 날에 술이라면 풍류라고 말할 수 있지요.”
백호가 그리 말을 한 후에 하성의 맞은편에 앉았다.
미역국 냄새가 진동을 했다. 아마 밤새도록 이곳에서는 미역국을 끓이는 모양이었다. MSG를 적당하게 푼 미역국이야말로 포장마차의 훌륭한 기본 안주라고 말할 수 있었다.
오이와 미역국이 나오자 하성은 술을 개봉했다.
쫘르르륵.
소주 뚜껑이 돌아가는 소리가 경쾌하다.
하성은 백호와 윤다희에게 한 잔씩 돌렸다.
“후우.”
“걱정이 있으시군요?”
“물론입니다.”
“선대 회장님의 은퇴 때문입니까?”
“할아버지께서 암에 걸리셨습니다.”
“으음.”
아직 백호는 모르는 이야기였다.
백호는 그제야 왜 하성이 갑갑해하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건강이 이 정도로 악화되었으니 갑갑한 것은 당연했다.
백호도 답답한지 술잔을 기울인다.
“몇 기입니까?”
“3기 말이라고 하더군요.”
“수술은요?”
“췌장암이고 이미 전이가 많이 되었다고 합니다.”
“췌장암……. 무서운 병이지요.”
백호도 췌장암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암 중에서도 최악이라고 불리는 췌장암이다. 췌장암을 발견하였을 때에는 이미 늦은 경우가 허다했다.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가요?”
“주인님께서 남기신 소림대환단이라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소림대환단이요?”
“내공을 증진시켜 주는 효과가 있지만 그 전에 앞서 병을 치료하는 데 탁월한 효능이 있습니다. 기록에 보면 반위라고 불리는 암을 정복한 사례들도 있습니다.”
“남아 있나요?”
“한 알 있습니다.”
하성의 얼굴에 희망이 떠올랐다.
꼼짝 없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현대 의학이 발전을 하였어도 한계는 있는 법이었다. 게다가 췌장암이라고 하니 포기를 했었다.
임태식도 그 사실을 받아들인 것 같았다.
하지만 임태식이 치료를 받으려 할지는 미지수였다.
“할아버지가 받아들이셔야 할 텐데요.”
“설득을 하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일단 내일 취임식 이후에 남해로 내려가야겠습니다.”
“함께 가도록 하지요. 추궁과혈을 하려면 제가 필요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무슨 말씀을. 치우는 주인님의 것입니다. 치우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 역시 주인님의 것이지요. 당연하게 생각하셔도 됩니다.”
하성은 새삼 치우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어쩐지 할아버지를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성은 한 병만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그러시죠.”
백호가 소림대환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오늘 밤새도록 술을 마셨을지도 몰랐다. 그만큼이나 가슴이 허전하였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하성은 천애고아가 된다. 물론 여동생이 있기는 했지만 뒤를 든든하게 지켜 줄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수아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녀석도 좋아하겠지.”
그 넓은 저택에서 혼자 살고 있는 수아였다.
물론 저택에는 유모도 있었고 집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임수아 역시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성은 집으로 돌아왔다.
술을 마신다고 전화를 해 두었지만 유서화는 하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북엇국까지 끓여 두었다.
“어서 오세요.”
“빨리 왔습니다.”
“오늘 늦으실 거라고 해서 그런 줄 알았어요.”
“앉아 보세요.”
어차피 취하지도 않는 몸이었기에 해장국은 필요 없었다. 하지만 유서화의 정성을 생각해서 하성은 밥을 한술 떴다.
유서화는 하성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좋은 일이 있으셨나요?”
“어쩌면 할아버지의 병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인가요?”
“이번에 찾은 보물 중에서 답이 있을지도요.”
“좋은 소식이네요.”
하성은 유서화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임가의 보물 창고를 찾으면서 그곳에서 비급을 비롯하여 영약들이 쏟아져 나왔다. 소림대환단도 그중 하나였다.
그것을 이용하면 가능성이 있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우선은 할아버지를 설득해야겠습니다.”
“그때에는 저도 함께 가요.”
“그러죠.”
“아가씨도 함께 가는 것이 어떤가요?”
“수아도요?”
“아가씨가 눈물로 호소를 하면 먹힐 수도 있잖아요? 할아버지가 치료를 거부할 때를 생각해서요.”
“좋은 생각입니다.”
하성은 내일 수아와 함께 남해로 내려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취임식 아침이다.
어제보다 아침이 상쾌했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성에게 영향을 줄 수 없었지만, 소림대환단이 할아버지를 살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느낌이 그랬다.
오늘은 유서화도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그녀는 정장을 갖춰 입었다.
“멋지네요.”
하성의 말이었다.
유서화는 커리어 우먼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실제로 유서화는 상당히 능력이 있는 여자였다. 어려서부터 하도 주입식 교육을 받아서인지, 원래 신념이 그런 것인지 지금은 현모양처를 표방하고 있었지만 기업을 맡겨도 잘 이끌 여자였다.
지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성을 챙기는 것은 잊지 않았다.
“갈까요?”
“네.”
그들은 집을 나섰다.
아파트 앞에는 리무진이 대기하고 있었다.
윤다희가 인사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사모님.”
“취임식 준비는 다 되었나요?”
“끝나 있을 겁니다.”
“갑시다.”
드디어 신화그룹의 회장으로 취임을 하는 날이다.
오늘부터 태진그룹은 신화그룹의 이름으로 병합될 것이다. 유서화의 이름을 따서 ‘서화그룹’으로 개칭하려 하였지만, 유서화가 극구 말리는 바람에 그룹의 이름은 신화그룹을 계승하기로 했다.
어쨌든 이 두 그룹의 합병으로 초거대 기업이 탄생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성의 신경은 할아버지에게 가 있었다.
“취임식을 끝내고 곧바로 남해로…….”
“그래도 비전 발표 정도는 해 주셔야 합니다.”
“그건 그렇겠군요.”
비전이라고 말한다면 간단한 일이다.
앞으로 구 태진그룹은 수소 에너지 사업에 주력한다. 수소 에너지가 아니더라도 신재생 에너지에 많은 투자가 이루어질 것이다.
일단 거기까지만 해도 상당한 비전이라 말할 수 있었다.
하성은 수아에게도 연락을 하기로 한다.
-여보세요?
“나다.”
-오호, 오빠라고 불리는 사람 아니야? 얼굴을 까먹었는데 어쩌나?
“좀 바빴어.”
-그러시겠지.
수아는 상당히 토라진 것 같았다.
하기야 여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가끔 까먹을 정도였으니 그녀가 그렇게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오늘 남해에 같이 가자.”
-남해는 왜?
“어쩌면 할아버지가 나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뭐라고?
예상대로 임수아는 격한 반응을 보였다.
할아버지는 하성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여동생에게도 중요한 사람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점심시간쯤에 조퇴를 해. 데리러 갈 테니까. 그때 자세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자. 이야기하려면 좀 길어서 말이야.”
-알겠어.
수아도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이것이 하성에게도 편했다.
수아와 통화를 하는 동안 차량은 신화그룹 본사 앞에 도착하였다.
본사에는 거대한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경축! 임하성 회장님 취임!]이미 하성은 신화그룹의 유일한 후계자였다. 게다가 엄청난 무력을 보유하고 있기도 했다. 회사의 장악에는 문제가 없었다.
할아버지에게 충성을 다하던 조직원들은 물론 하성에게도 충성을 다했다.
“그럼 가 봅시다.”
강당 안은 상당히 조용했다.
거대한 강당에 빽빽하게 직원들이 모여 있었다. 그렇다고 본사 직원 모두가 모인 것은 또 아니었다.
그동안에 신화그룹의 규모도 커져서 이제는 강당이 비좁아 보일 지경이었다.
저벅저벅.
하성은 천천히 강단으로 올라섰다.
사실, 취임식이라고 해서 별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연설이나 한 번 하고 내려오면 그것으로 끝이다.
게다가 태진그룹의 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비공개로 진행된다. 기자들이 없어서인지 더 조용한 느낌이었다.
“할아버지의 유지를 이어 신화그룹의 회장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희 그룹은 한빛그룹, 태진그룹, 신화그룹이 합병하는 초거대 기업으로 도약합니다. 그 엄청난 규모만큼이나 저도 책임감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그룹의 이름은 신화그룹으로 개칭합니다. 이에 따라 태진그룹과 한빛그룹 산하에 있던 모든 회사들은 신화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많은 지지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짝!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것으로 끝이었다.
얼마 전에 임태식이 은퇴를 하였는데 괜히 화려하게 취임식을 할 필요는 없었다.
“임원들은 대회의실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팅!
드르륵.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임원들은 이미 대회의실에 모여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가득하였다. 이미 하성의 경영 능력은 충분히 검증이 된 것이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한빛그룹을 일구었으니 가히 천재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았다.
누구도 우려를 표하지 않는다.
만약 갑자기 하성이 회장이 되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능력을 사람들이 아는 이상은 기대감만이 가득했다.
하성은 좌중을 둘러보았다.
“반갑습니다. 임하성입니다.”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축하드립니다!”
다시 축하 인사가 쏟아졌다.
하성이 입을 열었다.
“저희 신화그룹은 명실상부 대한민국 재계 1위가 되었습니다. 사실 이만한 규모의 회사는 전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입니다. 저희가 대한민국의 경제를 받치고 있다는 각오로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임원들은 그런 사실을 통감하고 있었다.
세 개의 대기업이 병합을 하며 탄생한 회사였으니 잘못되면 대한민국의 경제가 휘청거릴 것은 자명했다.
한국은 고속 성장을 하였고 그 원천이 대기업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기업 기반의 수출이 한국의 경제라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하성을 비롯한 사람들의 각오는 남달랐다.
“저희 신화그룹은 수소 에너지 사업에 전념합니다.”
“역시나.”
웅성웅성.
여러 면에서 걱정이 되는 정책이었다.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말씀하세요.”
“오펙은 정리가 된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