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ss returns RAW novel - Chapter 105
103. 설득
“물론입니다.”
하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펙은 이미 끝장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오펙의 사무총장부터 휘하의 수많은 임원들이 쇠고랑을 찼다.
이 정도라면 정리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다면 해 볼 만합니다.”
“오펙도 우리를 건들 수 없습니다. 강대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제가 강대국들의 핵 가방을 탈취했었습니다.”
“……!”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평소 같았으면 미쳤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성은 언론을 통하여 충분한 힘을 보여 주었다. 가히 초능력자라 말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핵 가방을 탈취했었다는 것은 사실이었고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거침없이 직진합니다.”
사람들의 얼굴에 비장함이 어렸다.
하성의 말은 석유 에너지 기반의 산업들을 수소 에너지 기반으로 바꾸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이 없었다.
석유와는 다르게 수소는 그냥 물을 전기 분해하면 얻을 수 있었다.
수소와 더불어 산소도 함께 나온다. 수소 에너지 사업과 더불어 산소도 활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프라만 갖춰진다면 최고의 사업이 될 것이 확실했다.
“지금 한국에 인프라가 갖춰지고 있습니다. 세계로 곧 뻗어 나갈 것이니 그에 대한 사업책도 구상을 하도록 하십시오.”
회의는 한동안 이어졌다.
그 밖에도 다루어진 주제는 게임이나 핸드폰, 바이오 분야에 대한 투자였다. 특히나 면역 세포를 활용한 사업들은 심도 깊게 다루어졌다.
더 할 말이 많았지만, 회의는 점심 무렵이 되어서 파해졌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점심을 넘길 수는 없었다.
오늘은 백호와 임수아 등을 데리고 남해로 내려갈 것이었다. 전화로 할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해 봤자 거절할 것이 뻔하였으므로 갑자기 쳐들어가려는 것이다.
학교 앞.
이제 곧 있으면 점심이 끝날 시간이다.
수아에게는 조퇴를 한 후에 곧바로 하교를 하라고 하였으니 지금쯤이면 올 시간이 되었다.
차 안에는 백호와 유서화가 함께 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아가 교문 앞으로 나왔다.
“오빠!”
“왔냐?”
“안녕하세요, 새언니.”
“어서 오세요, 아가씨.”
아직까지는 수아가 유서화를 어려워했다.
아무래도 재벌가의 후계자였던 유서화였고 은연중에 흘러나오는 포스라는 것이 있었다. 하성과 같은 경우에는 유서화의 몇 배에 달하는 기운을 가지고 있었기에 느끼지 못하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곧장 남해로 향했다.
수아가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로 할아버지를 고칠 수 있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 게다가 우리에게는 면역 세포도 있으니까.”
신화제약에서 생산되는 면역 세포는 암세포를 억제한다. 이것도 할아버지에게 말을 하였지만, 거부했었다.
면역 세포를 투여할 때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젊음이다. 이미 나이가 많이 든 노인에게는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약간이라도 효과가 있다면 투여를 해 보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쩌면 면역 세포와 소림대환단이 시너지 효과를 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시너지가 나면 할아버지의 병을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남해까지는 거리가 꽤 있다. 거의 네 시간을 달려 상주면에 도착했다. 그나마 운전기사가 거칠게 차를 몰아 이 시간에 도착한 것이다.
집에는 할아버지가 계시지 않았다.
혼자 살겠다며 도우미 하나도 쓰지 않았기에 행방을 알 길은 없었다.
“어? 할아버지!”
수아가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할아버지는 낚시를 하고 계셨다.
“너희들이 어쩐 일이냐?”
병자 치고는 아주 양호한 상태다.
하기야, 췌장암이라고 해서 곧바로 죽지는 않는다. 말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있었기에 아직 할아버지는 건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최소한 겉보기에는 말이다.
“상의드릴 일이 있어 왔습니다.”
“이렇게 죄다 몰려온 것을 보니 치료 때문이로구나.”
“맞습니다.”
“돌아가도록 해라.”
할아버지는 단호했다.
이미 마음속으로는 어떤 결심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돌아가라.”
“말이라도 들어 주십시오.”
“부탁할게요!”
수아가 할아버지에게 매달렸다.
손자에게는 매몰차게 해도 손녀에게는 차마 그럴 수 없던 모양인지 그는 침음을 흘렸다.
“으음, 잠시 동안이라면 들어는 주마.”
“감사합니다!”
그들은 할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어떻게 운을 떼야 할까.
유서화는 커피를 끓이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표정은 매우 편안했는데,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인생의 막바지. 노환으로 죽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요즘에는 의학 기술이 발달해서 진통제를 사용하면 그럭저럭 아프지 않게 삶을 살다가 죽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치면 나쁘지 않은 인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할아버지는 커피 대신에 녹차다.
“할아버지, 차 드세요.”
“고맙구나.”
후루루룩.
가볍게 차를 마시는 할아버지.
하성이 뭔가를 내밀었다.
달칵.
“이것이 치료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게 뭐냐?”
“소림대환단입니다.”
“소림대환단?”
목합을 열자 일반인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강렬한 기운이 퍼져 나간다. 확실히 영약은 영약이다.
제조된 지 천 년이 지났지만 전혀 변질이 없었다. 괜히 영약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에 탄성을 내었지만, 그뿐이었다.
“네가 먹거라.”
“할아버지.”
“나는 살 만큼 살았다. 이제 인생을 정리하려 한다.”
“억울하지 않으십니까?”
“뭣이?”
“여행도 다니시고 하고 싶은 일을 하셔야지요. 지금까지 그러지 못하셨으니까요.”
“후후, 됐다.”
모든 것을 포기한 것 같았다.
분명 여행도 다니고 인생도 정리를 하기는 할 테지만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하성이 생각하기에 인생을 정리하는 시간은 최소한 10년쯤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10년만 더 살아 주세요.”
“1년만 더 살아도 감지덕지지.”
“소림대환단과 면역 세포를 함께 투여하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돌아가거라. 나는 마저 낚시나 하겠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생을 정리하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더 살라고 말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할아버지의 고집은 보통이 아니었다.
뚝심 하나로 전국의 조직을 일통하고 신화그룹을 세웠다. 하성과 수아에게는 자애로운 할아버지였지만 전국 조직을 일통한 대부 격의 인물이 바로 임태식이었다.
“오빠 어쩌지?”
“후우.”
하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략을 변경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할아버지는 낚시를 하러 나가셨다.
일행들은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하성이 결정을 해야 한다.
“오빠, 말 좀 해 봐.”
“아무래도 상주를 해야 할 것 같다.”
“상주를 한다고?”
“어차피 잘됐어. 여기는 마당도 있고 넓으니까 수련을 하기에는 제격이지. 다 같이 머물면서 할아버지를 설득하기로 하자.”
“좋아.”
수아도 각오를 다졌다.
할아버지가 이곳에 머무는 것을 허락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해 보려 했다. 안 된다면 강제로 치료를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 것은 할아버지를 존중하였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여기서 다 사기로 하고 눌러앉도록 합시다.”
“좋아요.”
유서화도 동의하였다. 오히려 그녀는 열의를 불태워 올렸다.
하성으로서도 잘된 일이었다.
제갈천을 꺾기 위해서는 수련이 필요했다. 어떻게 해서든 수련하는 시간을 마련하여 ‘토’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한다.
지금으로서는 가망이 없었다.
“그럼 저는 할아버지를 설득하겠습니다.”
“저는 식사 준비할게요.”
벌써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하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당 앞으로 향했다.
촤아!
마당 앞에서 바다를 향해 낚시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메리트가 아닐 수 없다.
깎아지는 듯한 절벽이라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였지만, 안전장치가 되어 있어 크게 상관은 없었다.
“할아버지.”
“…….”
할아버지는 낚시에 열중하고 계셨다.
“읏차!”
갑자기 할아버지는 낚싯대를 당겼다.
“월척이구나!”
꽤 큰 숭어다.
할아버지의 표정은 정말로 즐거워 보였다.
“이곳에서 머물겠습니다.”
“올라가라.”
“그냥 잠시 머물다가 가겠습니다. 손님으로 방문을 한 겁니다.”
“네 저의를 모를 것 같으냐?”
“어차피 수련도 해야 합니다. 곧 있으면 목숨을 가르는 대결이 있습니다. 서울에 있어 봤자 회사 일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수련을 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여기서 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놈 참.”
할아버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임태식 역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다. 손자와 손녀가 내려와 잠시 머물겠다는데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어쩔 수 없구나.”
“감사합니다!”
“수련에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
“예!”
며칠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느긋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끈질기게 할아버지를 설득하다 보면 방법이 나오지 않을까.
그날 저녁.
주방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곳은 시댁이었지만, 유서화는 아무렇지도 않게 식사를 준비했다. 게다가 불편한 기색도 없었다.
유서화에게도 이곳은 하나밖에 남지 않은 친척 어른의 집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하성에게는 남은 친척이 없었다.
정갈한 반찬들이다.
나물무침에 된장국, 생선튀김이다.
몸에 좋다는 음식들이었는데, 유서화가 꽤나 신경을 썼다.
“허허허, 이것 참. 새아가는 안 불편하겠느냐?”
“전혀요. 걱정 마세요.”
“어쩌다 보니 이렇게 모여 살 때도 있구나.”
할아버지가 먼저 수저를 드셨다.
식사가 시작되었다.
하성은 아무렇지도 않게 할아버지의 치료에 대해 말을 꺼냈다.
“할아버지,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어떤가요?”
“그 말을 하려거든 올라가도록 해라.”
“10년은 더 살 수 있으십니다.”
“되었다니까.”
할아버지는 꽤나 강경하셨다.
하성이 하는 치료가 연명 치료라고 생각을 하는지도 몰랐다. 사실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냥 몰래 치료를 해야 하나?’
갑갑한 일이다.
어떻게 설득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하였지만 딱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일정대로 이곳에서 수련을 하며 기회를 엿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장기전으로 가는 수밖에.’
차라리 잘되었다.
하성은 이곳에서 철저하게 수련을 하여 다음 단계를 밟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
할아버지의 집에 아예 틀어박힌 지 3일이 흐르고 있었다.
그동안에는 단순한 생활이 반복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낚시를 다니시거나 농사에 전념했다. 유서화는 집안일을 했고 수아는 할아버지를 쫓아다녔다.
하성은 정좌를 한 채로 수련을 하고 있었다.
토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하성은 전력을 다하는 중이었다.
‘토의 경지라면 행성 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땅(土)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지. 분명히 그것과 연관이 있어.’
땅에 관련된 것이 무엇일까.
깨달음을 그렇게까지 어렵게 구분해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땅이란 무엇일까. 생명의 근원이었다.
생명의 근원인 땅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 하성은 아직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관련이 있다고만 생각될 뿐이었다.
직감적으로 이것만 깨달으면 다음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후우.”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곁에서는 백호가 호법을 서고 있었다.
이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이 알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백호.”
“하명하십시오.”
“땅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땅의 근원이라…….”
“깨달음에 근접해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하니까요.”
“사람마다 깨달음은 다릅니다.”
“그래도 백호가 생각하는 땅에 대한 견해가 있을 것 아닌가요.”
“저도 그런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주인님보다 더 오랫동안 연구를 해 왔습니다.”
하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단계로 접어들고 싶은 것이야 모든 무인들이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백호 역시 경지를 밟지는 못했다.
“어쩌면 제 생각이 주인님의 수련을 방해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알고 싶군요.”
“생명의 근원보다 더 깊은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 깊은 무언가라…….”
이 정도면 되었다.
앞으로 수련을 할 방향성이라도 잡은 것이 어딘가 싶었다.
하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 비서가 도착해 있습니다.”
“가 보도록 하죠.”
테이블 위에는 커피가 올려져 있었다.
할아버지와 수아는 낚시를 나갔으니 한참 있어야 귀가할 것이다.
“오랜만입니다, 회장님.”
“윤 비서는 더 수척해 보이네요.”
“회사 규모는 비대해졌는데 회장님은 계시지 않으니까요.”
“하하하! 미안합니다.”
“…….”
그 거대한 회사가 윤다희의 손에 굴러가고 있었다. 물론 중요한 결재는 하성이 하지만 그녀는 구조본부장으로서 동분서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윤다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 복귀하시나요?”
“할아버지가 치료를 받겠다고 하시면요.”
“아예 복귀를 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리는데…….”
“희망을 가지세요.”
그녀는 서류들을 내밀었다.
하성의 결재가 떨어지지 않으면 도저히 진행되지 않을 일들이 산재되어 있었다. 엄청난 양이 아닐 수 없다.
사사사삭!
하성은 빠르게 사인을 한다.
사인을 하는 도중에 윤다희가 말했다.
“신사업에 대해 말들이 많습니다.”
“신사업이요?”
“수소 에너지 다음에 진행할 신사업 말입니다.”
“나온 말들이 있나요?”
“일전에 한 번 나왔던 자율 주행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율 주행차라.”
분명히 좋은 기술이다.
미래에는 상용화가 되기도 하였지만, 지금부터 거론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일단 내비게이션 기술부터 완비를 해야 한다.
“내비게이션을 완벽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율 주행차가 가능하죠.”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만, 그에 앞서 교통용 위성을 발사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싶습니다.”
“위성이라.”
윤다희는 아예 새롭게 접근을 하고 있었다.
자율 주행차를 만들겠다고 위성까지 쏠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기본적으로 거쳐야 할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위성이라. 좋군요.”
“위성이 있어야 자율 주행차도 가능하겠죠.”
“맞습니다.”
하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일들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보다는 화제를 수소 에너지로 돌렸다.
“오펙에서는 별일 없나요?”
“일단 크게 한 방 맞아서인지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됐습니다.”
언제 터질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잠잠하다는 이야기였다. 그거면 되었다.
윤다희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가 보겠습니다.”
“차가 아직 남았는데…….”
“시간이 없어서요.”
당장 윤다희가 없으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남해도 3일 만에 겨우 내려온 것이었다. 그녀는 아예 헬기를 타고 내려왔다. 차를 타고 이동하기에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빨리 돌아와 주세요.”
“험험, 알겠습니다.”
윤다희는 전원주택을 나섰다.
점심시간이었다.
유서화는 요리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수아가 돕기는 했다.
달그락달그락.
며칠 동안 이곳에서 생활을 하였더니 처음보다 낯선 감이 많이 줄어 있었다.
할아버지가 물었다.
“언제 올라가느냐?”
“할아버지는 언제부터 치료를 하려 하십니까?”
“치료는 하지 않는다.”
“할아버지.”
“그런 말을 하려거든 당장 올라가거라.”
할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연명 치료를 하다가 고통스럽게 죽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성이 하려는 치료는 몇 번이면 끝난다.
“이건 연명 치료가 아닙니다. 딱 두 번만 치료를 하겠습니다.”
“됐다니까.”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아가 말했다.
“내가 아무리 말을 해도 안 되더라고.”
“그럼 단 한 번으로 타협을 하자.”
“그렇게 설득을 할게.”
수아도 괜히 할아버지와 낚시를 가는 것이 아니었다. 여고생이 낚시를 좋아해 봤자 얼마나 좋아하겠으며, 이 땡볕에 나가는 것도 고생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쫓아다니는 것은 할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유서화도 한숨을 내쉬었다.
“할아버님의 고집이 장난 아니시네요.”
“뚝심 하나로 기업을 일으킨 분입니다. 평범할 리가 없죠.”
“그렇겠죠?”
하성도 차를 모두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아버지의 일도 그렇지만, 수련도 게을리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성은 정좌를 하고 있었다.
이제 육체 수련은 의미가 없었다.
그의 경지는 육체 수련을 아득하게 뛰어넘고 있었다. 내면의 깨달음에 전력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하성은 백호가 말했던 내용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땅이란 생명의 근원이다.
이 속에 답이 있다.
‘땅이 생명의 근원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지. 마치 수수께끼처럼 탁 막혀 나아갈 수가 없구나.’
하성은 조금 더 생각을 확장시켜 보기로 했다.
생명의 근원은 어디에든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 세상 모든 것에 생명이 깃들어 있다고 볼 수 있었다.
대기 중에도, 땅에도, 하다 못해 미생물에도 생명의 근원이 깃들어 있다.
‘혹시?’
제갈천의 무공을 떠올려 보았다.
제갈천은 마치 주변의 기를 끌어다 쓰는 것처럼 보였다. 좀처럼 지치지 않았던 것이다. 정신적으로는 피로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육체적으로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이 땅 위의 모든 물체에서 원천을 뽑아내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다.
쿨럭!
스아아아!
갑자기 머릿속이 열리는 것 같았다.
제3의 눈이 열렸다.
영혼의 눈이 열리면서 이 땅 위의 모든 것이 생명으로 넘실거리는 것이 보였다. 생명이 깃들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하다 못해 흙에도 생명이 깃들어 있었고 근원을 품고 있었다.
하성은 주변의 생명들에게서 에너지를 뽑아냈다.
쿠구구구궁!
대지가 흔들렸다.
실로 막대한 에너지가 넘실거렸다.
“감축드립니다!”
“백호!”
“드디어 토의 단계를 밟으셨군요!”
그는 감격한 얼굴로 외쳤다.
하성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정말 토의 단계에 오른 건가요?”
“예!”
하성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부회주와 비슷한 경지에 닿게 되었다. 물론 앞으로 갈 길이 멀기는 했다. 하성이 토의 단계에 접어드는 동안 제갈천도 놀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매일 지옥 특훈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태극검혜도 심도 있게 연구를 하고 말이죠.”
“저희 사대천왕이 주인님을 돕겠습니다!”
이것으로 희망을 갖게 되었다.
제갈천을 부숴 버리고 회를 통합할 수 있다는 희망.
여기에 백호는 희소식을 전해 주었다.
“이 정도라면 선대 회장님을 치료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기공으로 말인가요?”
“예, 면역 세포와 소림대환단, 여기에 주인님의 무공이라면 능히 암세포를 몰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좋습니다. 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설득해 보겠습니다.”
하성은 비장한 각오로 할아버지를 만나기로 하였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낚시를 하고 계셨다.
원래 취미가 낚시였다고 한다. 하지만 회사 일에 치여 살다 보니 낚시를 할 겨를이 없었다고. 이제라도 낚시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년은 편안하게 보내는 셈이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앞으로 1년도 힘들 것이다.
날이 갈수록 암세포는 커져만 갈 것이고 전이도 꾸준하게 이루어질 것이 뻔하였다. 그에 앞서 하성이 막아 내야 한다.
“할아버지.”
“왔느냐.”
이곳에는 작은 막사가 쳐져 있었다. 아무래도 땡볕에 수아가 견디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오빠, 왔어?”
“많이 잡았나요?”
“우럭 몇 마리 잡았지. 어쩐 일이냐?”
“할아버지, 마지막으로 소손의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아직 안 지쳤느냐?”
“죄송하지만 마지막으로 부탁을 드리러 왔습니다.”
“그렇다면 대답도 뻔히 알겠구나.”
“이번에 수락을 하지 않으신다면 강제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뭣이!”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번에 실패한다면 다시는 귀찮게 하지 않겠습니다.”
“협박으로 들리는구나.”
“협박이 맞습니다.”
하성은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입장에서는 귀찮게만 보였을 것이다. 여기에 마지막 부탁이라고 하니 할아버지도 뚝심을 꺾지 않을까 싶었다.
“후우.”
할아버지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네 고집도 정말 대단하구나.”
“임가의 피를 이었으니까요.”
“허허허! 그래, 임가의 핏줄이 질기기는 하다. 고집이 쇠심줄보다 질기지.”
“그럼 수락하시는 겁니까?”
“수락하지 않으면? 강제로 할 것이 아니냐?”
“맞습니다.”
“마지막이다. 이것을 끝으로 다시는 귀찮게 하지 말거라.”
“예!”
드디어 할아버지의 허락을 얻어 냈다.
하성은 할아버지를 고칠 자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