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ss returns RAW novel - Chapter 112
110. 경지를 찾아서
다음 날 아침.
하성은 북극으로 향할 준비를 하였다.
북극의 기온은 남극보다 저온이다. 그야말로 극음지에 발을 들이는 것이었다. 그러니 챙길 것도 많았다.
“양말은 챙겼어요?”
“네.”
“양말이 중요하다고 해요. 자주 갈아 신어요.”
“알겠어요.”
이미 하성의 경지는 그런 것들을 뛰어넘었다. 유서화의 걱정은 그야말로 기우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서화의 말에 따르는 것은 그녀의 불안감을 해소해 주기 위해서였다.
“핫팩은요?”
“다 챙겼어요.”
“이제 된 것 같네요.”
유서화는 꼼꼼하게 챙겨 주었다.
배낭에는 안 들어 있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먹을 것도 신경을 써서 최소한 김치 정도는 넣어 주었다. 라면도 몇 개 챙겼다. 일회용 밥도 넣었고 최악의 환경에서도 버틸 수 있을 만큼 방한장비도 챙겼다.
전혀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말이다.
딩동!
초인종이 울린다.
윤다희가 도착한 모양이다. 이번에 북극으로 향하게 되면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 최대한 회사 일을 처리하려는 것이다.
끼이익.
문이 열린다.
예상대로 윤다희가 서 있었다.
“정말 조심하도록 해요.”
“물론입니다.”
“이제 책임감이 더 늘어났으니까요.”
하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서화의 말대로 어쩐지 어깨에 무게가 느껴졌다.
묵직한 무게의 정체는 바로 책임감이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한 생명을 더 책임지게 되었다는 것에 막중함을 느끼는 것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하성은 무거운 발걸음을 떼었다.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길이다.
사대천왕과는 공항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지금은 출근 시간이었고 차가 꽤나 막혔다. 어차피 시간은 조금 넉넉하게 잡았으니 상관없었다.
그동안에 하성은 회사의 급한 서류들을 처리하기로 하였다.
신화그룹과 태진그룹이 합쳐지면서 초거대 기업 집단이 탄생하였고 그 덕분에 처리해야 할 일들도 많았다.
“여긴 신화에너지에 대한 서류입니다.”
“그쪽에는 문제가 없나요?”
하성은 신화에너지에 대한 문제를 면밀하게 살폈다.
바로 엊그제 신화에너지의 파업 문제를 해결했다. 거의 다 쓸어버리다시피 하였지만 직원들에게도 숨구멍은 틔워 주었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괜찮네요.”
“불온한 움직임은 없고요?”
“없습니다.”
“다른 노조들은 어때요?”
“얼어붙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딱 맞을 것 같습니다. 뭐라고 할까. 불안감에 떤다고 할까요?”
“잘됐네요.”
“일단은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행입니다.”
촤륵!
하성은 서류를 넘겼다.
신화에너지만 멀쩡하다면 다른 사안들은 문제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빠르게 사업들을 추진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신화게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가상현실에 도전을 하려 한다고요?”
“일단 도전일 뿐이지요.”
“시기상조가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뇌파를 이용한 가상현실 구현은 어느 정도 연구가 진행되어 있습니다. 상용화를 하기에 부담이 있었을 뿐이지요.”
“가능만 하다면 그만한 아이템이 없을 겁니다.”
“혁명이 일어나겠죠.”
하성도 윤다희의 말에 동의했다.
가상현실 게임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분야에 진출을 할 수 있게 된다. 그야말로 신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연구가 진행되는 중이다.
“그럼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죠.”
“다음 안건은…….”
차 안에서 작은 회의가 진행되었다.
지금은 하성이 너무 바빠서 상당 부분의 일을 윤다희에게 일임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지만, 일단은 윤다희를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공항에 도착했다.
윤다희와는 회의를 2시간 이상 진행했다. 덕분에 서류의 많은 부분을 처리할 수 있었다.
그녀는 하성의 측근이었으니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먼저 들려주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윤 비서님. 저 아빠 됐습니다.”
“……!”
윤다희는 놀람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왜 지금 했냐고 핀잔했다.
“아까 이야기를 했으면 사모님께도 인사를 했을 텐데요.”
“하하! 따로 전화하도록 하세요.”
“축하드려요! 진짜!”
윤다희는 갑자기 하성의 등을 후려쳤다.
짜악!
“사모님께 잘하세요. 속 썩이지 말고.”
“그다지 속을 썩이지는…….”
“집에 잘 안 들어가잖아요.”
“인정합니다.”
하성은 그녀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매일 출장이다 뭐다 해서 집에 들어가지 않는 일이 허다했다. 게다가 집에 들어가는 날도 야근을 하다가 늦는 경우가 많았다.
바빴기 때문이지만, 이건 핑계일 수밖에 없다.
하성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조심하세요. 진짜 이제는 조심해야 해요. 책임감이 막중하시잖아요.”
“알겠습니다.”
하성은 윤다희에게 조심하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을 해야 했다.
로비에서 사대천왕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주인님.”
원래대로라면 한쪽 무릎이라도 꿇을 그들이었지만, 이곳은 공항이었고 보는 눈이 많아서 생략을 한 것이다.
“준비는 되셨나요?”
“충분합니다.”
북극으로 가는 길은 원래 좀 복잡하다.
인천에서 하와이, 알래스카로 이동, 헬기를 타고 배에 승선하여 베링 해협을 따라 간다. 가는 길만 거의 이틀이 소요된다.
하지만 하성은 재벌이었고 그 덕을 조금 보기로 했다.
알래스카에서 수송헬기를 타고 바로 북극으로 간다. 중간에 한 번 정도 급유를 하고는 비축된 연료로 이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 12시간 이상 단축될 것이다.
하와이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 할 때였다.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몇몇 사람들과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제갈천!”
주작이 제갈천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어차피 제갈천이 북극에서의 단서를 가졌다는 소식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날에 출발할 줄은 몰랐다.
이건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 아닐까.
“하하하! 이거 반갑습니다.”
제갈천이 다가와서 인사를 했다.
하성의 기분도 썩 좋은 것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지금 마주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제갈천은 일부러 시간에 맞춰 온 것이다.
“치우의 주인을 뵙습니다.”
“대체 무슨 의도입니까?”
“의도요? 그런 것 없습니다. 선의의 경쟁을 해 보자는 것이지요.”
“선의의 경쟁이라. 퍽이나 선의의 경쟁이 되겠습니다.”
하성은 고개를 흔들었다.
제갈천이 함께 간다면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었다. 그걸 노린 걸까.
제갈천이 눈을 가늘게 떴다.
“어차피 가 봤자 건질 것도 없을 겁니다. 경지라는 것은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는 것이거든요.”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것이지요.”
“무운을 빕니다.”
제갈천이 먼저 사라졌다.
하필이면 같은 비행기라니.
“혹시 제갈천이 비행기에 수작질을 벌여 놓지는 않았겠죠?”
“그러지는 않았으리라고 봅니다. 그럴 이유도 없고요. 그냥 우리들이 신경 쓰였을지도 모르지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제갈천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였지만 북극에서 단서를 찾는 내내 신경이 쓰일 것이 틀림없었다.
“제갈천이 습격을 할 가능성은요?”
“그래도 약속은 지키는 인간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재수 없게 남극에서 습격을 받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북극에서도 오지로 향하는 것이었으니 방심은 할 수 없다.
“조심하도록 하죠.”
“경계를 철저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은 출국장을 통과하였다.
제갈천은 저 멀리에서 회의를 하듯이 둥글게 모여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천령대주 오필상이 물었다.
“부회주님. 저들과 경쟁을 하실 생각입니까?”
“경쟁이라. 그럴 수도 있지.”
“신경 쓰이게 할 작정이시군요.”
“혹시나 놈들이 천의 단계에 오른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염탐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하지만 이제 겨우 목의 단계에 올라 있다고 합니다.”
“그래? 정보가 늦군.”
“네?”
“저기 보이는 치우의 주인은 토의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말도 들리던데?”
“……!”
오필상은 눈을 부릅떴다.
토의 단계에 올랐다는 것은 부회주와 비슷한 경지에 올랐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건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게 가능할 리가…….”
“나도 완전히 믿지는 않아. 그렇다는 첩보가 있다는 거지.”
“그건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놈이 가는 이유는?”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지요.”
“그래. 그렇다고.”
제갈천은 약간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히 치우의 주인은 수박에 입문을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토의 단계에 올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목의 단계에 오른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첩자의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었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일의 연속이다. 치우의 주인이 작정하고 경지를 숨기고자 하는 것이라면 추후에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다.
일단 토의 단계에 정말 오른 것인지나 확인을 하고 싶었다.
물론 약간은 조급함도 있었다.
만약 이번에 치우의 주인이 천의 단계를 완성한다면?
그때는 대재앙이 일어난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먼저 캐치를 하고 대비를 해야 한다.
즉, 제갈천이 북극으로 향하는 것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물론 기회가 된다면 그 역시 천의 단계를 노릴 것이다.
“면밀하게 감시하도록.”
“그리하겠습니다.”
몇몇 대원들이 움직였다.
만약 치우의 주인이 다음 단계를 밟는다면 대원들이 먼저 알아차릴 것이었다.
***
비행기가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의도를 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하성의 바로 곁에는 제갈천이 탑승하고 있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제갈천도 이런 상황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건 뭐,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
“으음.”
앞으로 장시간 비행을 해야 한다.
바로 옆에 인생 최대의 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제갈천이 앉아 있었다. 아마 북극에 도착하기 전까지 내내 어색함이 지속될 것이다.
“원한 상황은 아니지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갈천은 단연 부정하였다.
그는 이런 상황을 원한 것이 절대 아니었다. 자리를 바꿀 수도 있었지만 그리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건 기회일 수도 있었다.
제갈천과 깊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언제 또 있을까 싶었다. 만약 앞으로 있을 대결에서 치우가 패하게 된다면 기약 없는 싸움이 이어질 것이었다.
“제갈천. 당신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제 목표요?”
“치우를 집어삼키는 겁니까?”
“가장 이상적인 목표이기는 하지요.”
“그렇다면 현실적인 목표는?”
“치우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뿐인가요?”
“그뿐입니다.”
“후후.”
이건 그야말로 개소리다.
당연히 제갈천은 치우를 없애 버리고 싶어 할 것이다. 추후에 피가 마르지 않는 전쟁을 할 이유이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 나가겠다는 걸까.
이쪽에서는 화기애애하지만 약간 떨어진 곳에서는 어마어마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 당장이라도 칼부림이라도 일어날 것 같았다.
물론 칼을 소지하고는 비행기를 타지 못한다. 하지만 화물칸에는 날붙이들이 실려 있었다. 여차하면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다.
“당신은 약속을 중시한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습니다.”
“약속은 꼭 지키시리라고 믿습니다.”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갈천은 그렇게 단언하였다.
하기야, 제갈천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벌써 치우와 회는 치고받고 싸웠어야 한다.
“이번에 패한다면 제 밑으로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약속이었으니까요.”
“진심으로 충성을 맹세하는 것입니까?”
“제 상대는 혹시 치우의 주인이십니까?”
“그렇습니다.”
“토의 단계에 올랐다는 보고가 있었는데 그게 사실이었던 모양입니다.”
“…….”
하성은 부정하지 않았다.
최대한 비밀로 하려 하였지만 어디선가 새어 나간 모양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첩자를 통하여 제갈천에게 전해졌던 것이다.
“사실이로군요.”
“이미 확신을 하신 것 같군요.”
“이번에 뭔가 단서를 얻을 수 있다면 제가 패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강자에게 굴복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저를 꺾으신다면 당연히 주인으로 모시겠습니다.”
“회를 들어 바치겠다는 뜻입니까?”
“예.”
그는 담백하게 말했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제갈천은 뒷말을 남겼다.
“다만 패하신다면 종국에는 목숨까지 거셔야 할 겁니다.”
제갈천은 차갑게 웃었다.
하성은 피가 끓는 것을 느꼈다.
“마음대로 하시죠.”
하성은 그대로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제갈천은 의외라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편하게 잠을 잘 생각을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하성은 눈을 감았다.
제갈천은 약속을 지키는 남자다. 그러니 잠을 자고 있는 와중에 암습을 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북극에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
아무리 토의 단계에 올라 있는 하성이라고는 하지만 잠을 자지 않으면 힘을 쓸 수 없는 것이 당연하였기 때문이다.
타다다다다!
수송헬기가 이동하고 있었다.
지루한 비행을 끝내고 알래스카에서 헬기를 탔다.
헬기는 한 번 급유를 한 후에 거침없이 북극 대륙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헬기는 두 대다.
뒤에서 제갈천과 일행들이 타고 있는 헬기가 쫓아오고 있었다.
사대천왕들은 그다지 잠을 못 잔 모양이었다.
“으하하함!”
주작이 하품을 한다.
“그러게 아까 잠을 좀 자지 그랬어요?”
“그럴 수가 있어야죠. 언제 칼이 들어올지 모르는데 잠을 잘 수는 없으니까요.”
“후후. 그런 일은 없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셨나요?”
“제갈천은 약속을 지키는 남자잖아요. 그런 남자가 치졸하게 암습 따위를 할 리는 없죠. 그렇게 생각한 것뿐입니다.”
“역시 대단하신 분이네요.”
주작은 자랑스럽다는 듯이 하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머쓱한 느낌이다.
백호가 말했다.
“주인님께서는 이기실 수 있을 겁니다.”
“글쎄요. 천의 단계로 향하는 길이 순탄치는 않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저희는 모두 주인님을 믿고 있습니다.”
사대천왕의 눈에서는 확고한 믿음이 전해지고 있었다.
하성은 그들에게 명했다.
“이번에는 다툼이 아니라 천의 단계로 향하는 길에 근접해야 합니다. 제갈천은 약속을 했습니다. 북극에서는 어떤 싸움도 벌이지 않겠다고요.”
“믿을 수 있을까요?”
“약속이 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약속을 한 상황이니 깨달음에 집중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게 쉬울지는 모르겠습니다.”
“본인의 수양에 따른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이건 딜레마였다.
분명히 사대천왕들은 제갈천이 약속을 꼭 지키는 사람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정말로 이것이 지켜질지, 그렇지 않을지 걱정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성은 제갈천을 경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북극에 있는 동안에는 말이다.
휘이이잉!
차가운 칼바람이 몰아쳤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어떤 사람들도 추위에 몸을 떨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한서불침의 육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들 배낭을 하나씩 메고 있었다.
근처에서 제갈천 일행의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하성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가도록 하죠.”
“저들은…….”
“어차피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냥 두도록 하죠. 신경을 끄세요.”
“주인님을 믿겠습니다.”
“갑시다.”
팟팟!
먼저 하성 일행이 출발했다.
그 뒤를 쫓아 제갈천 일행이 달려왔다.
아마 그들도 길을 아는 모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란히 달리게 되었다.
제갈천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건투를.”
“부회주도 건투를.”
적이지만 서로를 응원한다.
이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들은 그리하고 있었다.
아마 여기서 1시간 정도만 나아가면 세상의 끝에 도착할 것이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극지.
그곳에 단서가 있었다.
휘이이잉!
눈보라가 몰아쳤다.
세상의 끝에 섰다고 생각을 하였을 때, 주변의 지형이 바뀌었다. 그리고 미친 듯이 바람이 불었다.
이곳에 진법이 펼쳐져 있었다.
기운이 한가운데로 몰리는 것이었다.
꽈득! 꽈드드득!
일반인이라면 이곳에 발을 들이자마자 몸이 갈가리 찢겨 나갔을 것이다. 호신강기를 극성으로 펼쳐야 버틸 수 있었다.
이곳에 온 자들은 모두 ‘목’의 단계 이상의 경지였다. 아마도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이지 않을까 싶었다.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점으로 다가갔다.
콰릉! 콰르르르릉!
이곳에는 폭풍까지 불고 있었다.
도대체 이런 곳에 무엇이 있다는 걸까.
하성은 그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몸이 날아갈 수도 있었기에 천근추를 사용하여 몸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제갈천도 눈을 감았다.
‘이곳에 뭐가 있다는 걸까.’
일단 그것을 시작으로 생각을 거듭하였다.
도대체 천으로 가는 길이 무엇인지 이곳에서 알아내야 하는 것이다.
임상옥 조사도 이곳에 와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하였을 테니까. 그렇다면 이곳에 뭔가 비밀이 있다는 뜻이었다.
‘과연 그 비밀은?’
하성은 점점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시간 동안 하성은 ‘천’이 무엇을 뜻하는지 고심했다.
천이란 행성 천왕성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었지만, 하늘을 뜻하는 것이었다. 하늘의 끝에는 우주가 있다.
그렇다면 우주에 대한 것이 실마리일 수밖에 없었다.
야밤에 눈을 뜬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별이 보이지 않았다. 이미 이곳의 기운은 뒤틀려 뭔가 강렬한 기운이 소용돌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들어왔던 그대로 기후는 변하지 않았다.
‘하늘의 뜻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 그건 아니다. 분명 천의 단계는 우주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리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우주의 탄생에 대한 것에까지 생각이 미쳤고 우주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에너지에 대해 고찰했다.
‘본질적인 우주 에너지!’
꽈득! 꽈드드득!
하성은 눈을 번쩍 떴다.
이곳을 휘몰아치고 있는 것은 우주 에너지다. 그것을 가두어 두었기에 이렇게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실마리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도대체 이 우주의 근본을 어떻게 다스리느냐 하는 것.
‘이것이 실마리다.’
우주의 근원을 탐색하는 것.
그리고 그 힘을 사용하는 것.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우주가 되는 것. 그 힘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다. 내 스스로가 우주에 속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물아일체다.’
쿨럭!
스아아아아!
하성의 몸으로 우주의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피가 뿜어져 나왔으나 곧바로 엄청난 기운에 흩어졌다.
우주의 기운을 받아들이자 육체가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건 환골탈태 이상이었다.
꽈득! 꽈드드드득!
온몸이 부서지는 듯하였지만 아무런 고통도 없었다.
하성은 공중으로 떠올랐다.
폭풍이 휘몰아쳤지만 그 근본적인 힘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하성의 몸으로 말이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폭풍이 멎었다.
하성은 모든 힘을 흡수하였다.
스스스슷!
그리고 하늘로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