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ss returns RAW novel - Chapter 13
12. 치우
“…….”
역시나 반응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하성이 조직의 후계자인 것은 맞았지만, 그렇다고 능력도 없는 상태에서 진심으로 충성을 바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엔터테인먼트 내부에서도 두 가지 파벌이 있는 만큼이나 하성은 그들의 통합을 이루어 내야 한다.
이들의 충성을 진심으로 받아내기 위해서는 그에 걸 맞는 능력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윤제문 이사가 입을 열었다.
“도련님의 포부와 회장님의 의도는 충분히 알겠습니다. 신화 엔터테인먼트 내의 세력을 도련님의 개인부대로 활용하려 하신다는 사실도요. 물론 회장님께서 타계하신다면 저희는 도련님을 따를 것입니다. 그것이 현 회장님에게 받은 은혜를 보답하는 길이지요. 하지만 진심으로 충성을 받아 내는 것은 그와 다른 문제라고 봅니다.”
“제가 어쩌면 되겠습니까?”
“그에 대한 실력을 보이는 것이지요. 일단은 식견을 갖춰야겠죠.”
“보아 하니 묻고 싶은 것이 있는 모양입니다.”
“도련님께서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매우 원론적인 질문이었다.
하지만 윤제문 이사가 그리 말을 하는 것도 일리는 있었다.
이들은 신화파가 형성되던 시절부터 함께 해왔던 원로와 같았다. 조직 초창기시절부터 함께해온 사람들도 있었고 중간에 편입되기도 했지만 공통적으로 신화파의 일등공신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던 것이다.
엔터테인먼트가 무너지고 있음에도 회사를 살리기 위하여 고군분투하였던 것도 회사에 가지고 있는 애정 때문이었다.
윤제문은 하성이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대해 얼마나 식견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 하고 있었다. 이것은 곧 부하들이 주군을 결정하는 첫 시험무대가 될 것이었다.
보통의 고등학생이라면 그저 그런 답변밖에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성은 전생자였고 십 년이 넘는 경영을 통해 엔터테인먼트의 본질을 어느 정도는 꿰뚫고 있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간단히 말해 오락의 경제라 말할 수 있습니다. 업계의 지식인이라고 평가되는 마이클 울프의 말을 저는 깊게 생각했고 나름대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현 시대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인식은 별로 좋은 편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겁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고상하지 못한 놀이, 주로 젊은 층을 겨냥한 사업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지요. 돈을 버는 수단이라는 한계점을 넘지 못하고 있으나 21세기를 갓 넘은 지금, 사회적인 시각의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엔터테인먼트는 문화의 일종입니다. 인간과 동물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요소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인류학자들은 ‘문명의 근본은 놀이이고 놀이로써 생겨나며 놀이를 떠나 형성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놀이는 행복이며 엔터테인먼트는 행복을 디자인하는 거대한 산업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하성은 운을 떼었을 뿐이었지만 대다수가 꽤나 큰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하성이 놀이의 근본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업계에서 수십 년 정도 구르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성은 좌중을 한 번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저는 아직까지 사회 자체가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고, 문화가 가지고 있는 본질을 이해를 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저희 엔터테인먼트 사는 행복을 창출하는 ‘행복창출’의 기치를 내 걸고 활동해야 한다고 봅니다. 엔터테인먼트라에는 여러 가지 분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 산업, 연예기획 산업으로 한정하여 생각하는 대중의 인식도 변화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장님께서는 저희에게 어떤 비전을 제시할 수 있습니까?”
“라이브 산업과 미디어 산업을 통합하여 미래의 변화에 주목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나 미디어 산업의 발전은 저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수준입니다. 사회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산업이니 만큼 그에 대한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저희 산업은 여러 가지 시각을 갖고 나아갈 필요가 있지만, 기획을 하였다가 접어버린 여러 가지 사업들을 부활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접은 사업이라면 혹시 게임분야와 카지노 사업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죠. 게임미디어부터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현재 한국은 정부시책으로 1가구 1인터넷 시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 말은 과거와는 다르게 인터넷의 발달이 가속화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각 가정마다 컴퓨터가 보급될 것이고 핸드폰은 발달하여 컴퓨터가 할 일을 핸드폰이 대체하게 될 것이기도 합니다. 게임뿐만이 아니라 미디어를 포괄하는 시각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카지노 사업은 정부시책과 자금력의 한계로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그야 카지노를 사행성 오락으로만 치부하였기 때문이지요.”
“사장님께서는 다른 시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물론입니다. 지금까지 카지노 산업은 도박적인 성향이 강하고 여전히 강력한 규제의 대상입니다. 하지만 여러 나라에서는 카지노 산업을 종합 관광 사업으로 변화시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외화벌이의 수단으로도 이용되며, 고용증진, 부가가치 효율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관광과 호텔, 컨벤션, 쇼핑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조성이 가능하며 그밖에 스키장과 놀이시설을 총망라한 대규모 단지로도 발돋움할 수 있지요. 우리들은 그런 목표에 근접해야 합니다.”
하성은 두 가지 비전을 제시한 것이었다.
카지노를 단순히 도박 산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관광산업으로 분야를 넓히는 것이었고 미디어 분야를 강화시켜 급변하는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생자가 아니라면 가질 수 없는 식견에 간부들은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하성이 단순히 입담만 센 것이 아니라면 한 조직을 책임질 수 있는 혜안을 가지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었다.
“대단하십니다.”
“과찬이십니다.”
“식견은 갖추고 있으나 실질적인 경영능력은 따져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도련님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계시지만 주군에게 목숨을 바치는데 있어 시험을 하는 것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삼국시대부터 신하가 주군의 능력을 보고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겨져 왔죠. 그러니 개의치 않으셔도 됩니다.”
“허허허! 그렇다면 한 가지 제안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하시죠.”
“이번 년도 안에 회사의 경영이 안정된다면 저희들은 도련님을 주군으로 모시고 목숨을 다 바칠 것입니다.”
다른 간부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썩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었지만 하성은 충분한 가능성을 이끌어 낸 것이었다.
그들이 하성에게 조건을 걸었으니 하성도 한 가지 조건을 걸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전까지는 저를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시고 임시로라도 충성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입니다. 회장님에 대한 의리로써, 도련님의 무한한 가능성을 지켜보는 원로로써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마시는 일만 남았군요?”
“하하하! 맞습니다.”
촤르르르륵!
샴페인 타워 끝에 술을 붓자 연속으로 술이 내려가며 모든 잔이 채워졌다.
어쨌거나 하성은 ‘임시주군’이었기에 가장 윗 잔을 들었다.
“회사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위하여!”
챙!
하성은 아예 넥타이를 풀어 버렸다.
오늘 이 자리에서 하성은 젊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주량으로써 보여줄 생각이었다.
신화그룹 삼성동 본가.
시간이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임태식은 아직 잠들지 않았다.
처리해야 할 일이 많기도 했지만 그보다 손자 놈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 같았으면 걱정을 하지 않았겠지만, 임하성이 한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들어온 후에는 괜히 마음을 졸이게 되는 그였다.
오달수가 임태식의 마음을 꿰뚫어 본다.
“지금 조직 간부들과 술을 마시고 있다고 하니 걱정 마십시오.”
“조직 간부들과?”
“엔터테인먼트사 휘하에 들어가 있는 간부들입니다.”
“허허허! 성이가 그들을 흡수하기 위해 움직였다는 건가?”
“분위기도 매우 좋다고 합니다. 윤 이사 성격에 단순한 이유로 호감을 보이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 도련님의 식견이 대단하기에 어울리는 것이겠죠.”
“그렇지. 윤 이사의 대쪽 같은 성격이야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지. 윤 이사의 충성을 받아 낼 수 있다면 신화파 계열의 조직하나를 흡수하는 격이라네. 손자 놈의 개인 부대가 될 수 있겠지.”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이제야 임태식은 임하성에 대한 걱정을 접기로 한다.
“주말의 상견례는 준비되고 있나?”
“걱정 마십시오. 예정대로입니다.”
“성이 놈이 결혼을 해야 제대로 날개를 펼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조금 이르지 않습니까?”
“모르는 소리. 지금으로써는 절대적인 아군이 필요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과도 제휴를 하여 초일류회사로 발돋움을 해야 하네. 성이에게 그런 회사를 물려주기 위해서는 말이다.”
“…허나 결혼은…….”
“오 이사도 반대하나?”
“그런 것이 아니라 도련님의 마음이 문제라는 것이죠.”
지금 임하성은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고 있었다.
혹시나 경영의 천재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결혼은 그와는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지금 때가 어느 시국인데 정략혼을 하나 싶었던 것이다.
재벌가에서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그에 대한 폐단도 적지 않았다.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결혼하면 남자가 두 집 살림을 하는 경우도 많았고 여자가 바람을 피우는 경우도 허다했다.
당장이야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결혼과 전쟁’에 나오는 막장 드라마가 재현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오달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결혼에 대한 문제는 자신이 관여하는데 한계가 있는 일이었다.
새벽 2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2차, 3차로 술자리가 이어졌는데, 이번 생에는 처음으로 ‘유흥’을 즐겼고 거의 만취가 되어서야 끝이 났던 것이다.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은 윤제문과 하성뿐이었다.
윤제문의 눈은 반쯤 풀려 있었다.
“끄윽. 대단하십니다.”
“윤 이사님도 그 나이에 대단하십니다. 어찌 그리 술을 잘 마시는 겁니까?”
“건달이 술도 못 마셔야 쓰겠습니까.”
하성은 만취였지만, 주정을 단숨에 날려 버릴 수 있었다. 다만 그리 하지 않고 있는 것뿐이었다.
윤제문은 비틀거렸다.
“사장님. 부디 저희 회사를 부탁합니다. 지금이야 무너져가고 있지만 신화그룹의 모태나 다름이 없습니다. 모기업이라는 타이틀은 건설에서 쥐고 있는 모양이지만, 원래 건설보다 엔터테인먼트가 먼저 발족했습니다. 신화그룹의 자존심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매각이 되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부디 부탁…….”
쿵!
그 말을 끝으로 윤 이사는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모든 간부들이 쓰러졌으니 하성도 일어나야 한다.
윤 이사도 경호조직원에게 업혔다.
“도련님.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라.”
곧 망치도 룸으로 들어온다.
그는 테이블을 굴러다니고 있는 양주병들을 바라보며 혀를 내 둘렀다.
“정말 주당이십니다.”
“늙은이들에게 져서야 쓰겠어요?”
“하하하! 천하의 윤 이사를 그리 말하는 것은 도련님밖에 없을 겁니다.”
하성은 주정을 날려 버리고는 멀쩡한 정신으로 차에 올라탄다.
차량은 삼성동으로 출발했다.
“내일은 치우를 찾아봐야겠군.”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가 남긴 정보조직, 치우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었다.
***
다음날 아침.
하성은 일찍부터 일어나 산을 오르는 중이었다.
어제 술을 그렇게까지 퍼 마셨지만 멀쩡한 것은 주정을 천령기로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성은 오늘 등교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일과는 운동으로 시작한다.
산으로 올라가 간단하게 육체단련을 하고, 바위 위에서 심법을 수련하며 수박의 기본초식들을 시전한 후에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는 가부좌를 튼 채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심법수련을 마친 후에 명상하는 것은 이제 습관처럼 굳어가고 있었다. 전생과는 다르게 이번 생에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한꺼번에 처리를 해 나갔기에 일의 순서를 정하지 않으면 모든 사건들을 처리할 수가 없었다.
오늘 할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치우를 찾는 것이었다.
치우는 하성이 알지 못하는 여러 가지 비밀들을 알고 있었다. 장미령에 대한 이야기나, 지도의 네 번째 조각에 대한 행방, 그리고 지금까지 조사해 온 임가를 위협하는 흑막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신화파 내부의 세력들이 본격적으로 준동하려 하고 있었고 하성은 정보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하성에게 정보력이 없다는 것을 적들이 알게 되는 순간에는 그의 목이 제 자리에 붙어 있기 어려울 것이다.
생각을 마친 하성은 수련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씻고 나오자 북엇국이 끓여져 있었다.
“도련님. 어제 술을 많이 마셨다고 해서요.”
“그건 그렇죠.”
김수련은 하성을 위해 직접 해장국을 끓여 놓은 것이다.
곧 할아버지가 나왔다.
“어제 회동을 가졌다고 들었다.”
“이제 그들은 제 식구니까요.”
“허허허허! 정말 대견하구나.”
할아버지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임태식은 하성이 한 발 내 딛었다고 보았다. 신화파 내부에서는 누구보다 임태식에게 충성스런 세력이었지만, 그들의 충성이 온전히 하성에게 옮겨지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들이 임태식의 은혜를 갚기 위해 충성하는 것과 하성을 진정한 주군으로 모시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네 기량을 마음껏 펼치도록 해라.”
“예, 할아버지.”
“이번 주말에는 약속이 있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해라.”
“혹시…….”
“상견례를 할 것이다.”
“하아.”
하성은 한숨을 내 쉬었다.
역시나 올 일이 오고야 말았다.
하지만 하성은 이미 마음을 정해두고 있었다. 반드시 정략혼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임태식은 연신 사람 좋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하성의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하성에게 정당한 이유가 없다면 원치 않은 결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결혼을 안 하면 몰라도 이혼할 생각은 없었기에 가능하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것이 하성의 마음이었다.
‘정략혼이 파탄 나는 경우를 워낙 많이 봤어야지.’
마음이 무거웠지만 오늘은 오늘 할 일을 처리해야 한다.
등교를 하기 전에 들릴 곳이 있었다.
치우를 찾기 위해서는 북한산의 옛 암자에 표식을 걸어 두어야 한다고 한다.
북한산은 서울 시민들이 많이 찾는 산이었는데 도대체 이곳에 무슨 폐 암자가 있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지도를 펼쳤다.
“인수봉을 지나서 절벽 사이에 있는 지하통로로 가라니.”
하성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천령기를 가지고 있는 하성도 위험한 등반이었다. 만약 하성이 천령기를 이루지 못했다면 치우를 찾을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성은 북한산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빠르게 달린다.
등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산길을 질주하고 있었는데, 대략 100미터에 10초 정도의 속도로 주파를 시도한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몇몇 등산객들이 보였으나 하성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는 빠르게 일을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성은 잘 포장되어 있는 도로를 지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계단이 끝도 없이 보였지만 이 역시 엄청난 속도로 주파한다.
반쯤 올라왔을 때, 하성은 잠시 쉬어가기로 하였다.
“후욱! 후욱!”
호흡을 조절하고 천령기를 채우기로 한다.
이제는 몇 번 정도 실전을 거치고 수련을 하다 보니 어느 정도는 천령기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역시나 필요한 것은 힘의 분배였다.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힘의 분배에 실패한다면 금방 지치게 된다.
천령기와 더불어 하는 무예의 수련은 반드시 힘의 분배과정이 필요하였다. 이것이 핵심이기도 하다.
천령기를 채운 하성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인수봉에 도착하였는데, 그는 북쪽으로 이동하여 등산로를 이탈한다.
촤악!
하성은 지도를 한 번 더 펼쳤다.
전방에 [위험]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등산객의 접근을 엄금합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곳으로 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과연 그곳을 지나자 절벽이 나왔는데, 몇 번이나 위험하다는 표식을 무시하고 이 자리에 이르렀다.
그는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는데 그야말로 까마득했다. 이곳에서 뛰어 내리면 하성이라고 해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절벽 아래를 보니 그래도 누군가가 내려간 흔적이 있었다. 돌들이 인공적으로 솟아나 있었고 그곳을 밟고 내려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발만 헛딛어도 그의 인생은 끝장이었다. 절벽 아래를 보고 나서 아무런 느낌도 없기에는 아직 수련이 부족한 것이다.
조심스럽게 돌을 터고 내려간다.
역시나 치우를 처음 만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수련을 거쳐야 하는 것이었다. 수련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여기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치우 역시 맹목적인 충성이 아니라 최소한의 조건은 갖추어야 그들의 충성을 받아 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절벽에 작은 구멍이 있었고 겨우 사람하나 들어갈 정도였다.
하성은 구멍으로 들어가 동굴을 통과하였는데,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기 보다는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을 다듬어 놓은 형태였다.
이 정도라면 오래 전에는 승려들이 비밀리에 수련을 하던 비밀공간으로 쓰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동굴의 끝에 숲이 울창한 장소가 나왔다. 그리고 그 끝에 허름한 암자가 하나 나왔는데 ‘비곡사’라는 현판이 크게 달려 있었다.
하성은 아버지가 남긴 표식을 비곡사 현판 옆에 묶는다.
표식은 매듭의 형태였고 현판의 튀어나온 부분에 딱 맞게 제작이 되어 있었다.
하성은 온 김에 암자를 둘러보았는데, 별 특별한 것은 없었다.
재래식 화장실이 암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설치되어 있었고 마루에는 먼지조차 쌓여 있지 않았다.
보수를 하지 않아 페암자 같이 보이는 것이었지 누군가가 청소는 꾸준하게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내부는 더욱 깔끔했는데, 겉보기와는 달랐다.
작은 불상이 놓여 있었고 이불도 한편에 정리가 되어 있었다. 이불을 보니 오래되었지만 깨끗하게 세탁이 되어 있었다.
“신기한 곳이군.”
만약 하성이 조직항쟁에서 패하여 위급한 상황이 온다면 이곳으로 와서 몸을 숨겨도 될 것이었고 폐관수련을 할 때에 이용을 해도 될 것 같았다. 아마 아버지도 이곳에서 폐관을 하며 수련을 하지 않았나 싶었다.
암자를 더 둘러보고 싶었지만, 이제는 이곳을 나가야 한다.
아버지의 뜻대로 모든 것을 해 놓았으니 이제 치우가 찾아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학교에 돌아오자 10시 무렵이었다.
그래도 쉬는 시간에 돌아왔기에 수업 중에 교실로 돌아오는 것만은 피할 수 있었다.
드르륵!
“…….”
하성이 들어오자 교실의 분위기가 한 순간에 냉랭해진다.
하지만 하성은 힘을 가졌다고 해서 누군가를 괴롭히는 부류가 아니었다. 오히려 힘없는 약자들을 보호하는 의협정신도 조금은 가지고 있었다.
그런 하성의 성향을 알고 있었기에 냉각되었던 공기는 금방 풀어졌다.
유한백이 하성을 바라보며 긴장한다.
분명히 어떤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으하하하함!”
하성은 기지개를 켜고는 자리에 앉는다.
유한백을 괴롭히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었지만, 아직 잠이 부족했다. 아무리 천령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어제 그렇게나 술을 퍼 마셨고 얼마 자지 못한 채로 일어나 아침에 수련까지 했으니 피곤하였던 것이다.
바로 옆자리에서는 이유나가 잠을 자고 있었다. 어제 그녀도 안무를 연습하며 상당히 피곤했을 것이다.
하성은 장백기를 부른다.
“꼬붕 원.”
“뭐 시킬 일이라도…….”
“점심에 깨워라.”
하성은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하성은 깊게 잠들어 있었고 누군가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이, 일어나.”
“으음…….”
“지금 점심…….”
퍼어억!
“크으윽!”
하성은 장백기의 머리통을 한 번 후려쳐 주고는 이유나를 깨웠다.
“유나야, 일어나.”
“으으으으.”
“그러게 어제 적당히 연습을 했어야지.”
“어쩔 수가 없었어. 연습을 하는 것이 그렇게 즐거운 일인지 몰랐는걸.”
하성은 김수련이 손수 싸준 도시락을 들고 옥상으로 향한다. 당연히 도시락은 2인분이다. 이유나는 고아였고 이모가 도시락까지 싸주지는 않았다. 그 때문에 대충 빵으로 점심을 해결했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김수련이 이유나의 도시락까지 싸 주었던 것이다.
그들은 옥상에 이르러 돗자리를 편다.
원래 이곳은 일진들이 점령하고 있었는데, 하성에게 호되게 당한 이후에는 얼씬도 하지 않게 되었다.
이유나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모에게 죄송스러운 걸.”
“너는 연습에만 집중을 하도록 해. 내가 최선을 다해서 지원해 줄 테니까.”
“…고마워.”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이유나는 하성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성은 그녀의 눈빛을 무시한 채로 식사에 열중했다.
“선배!”
“누구……?”
꽤 예쁘장하게 생긴 여학생이었다.
1학년생으로 보였는데 명찰을 보니 모르는 이름이었다.
‘이예린이라.’
하기야, 여자에게는 인기자체가 없었던 하성이었으니 후배의 이름을 알 턱이 없었다.
“선배 팬이에요!”
그녀는 하성에게 편지 하나를 전달하고는 사라졌다.
이유나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인기 많아서 좋겠네.”
“별로 바라지는 않은 일이었는데.”
촤악!
하성은 별 생각 없이 편지를 뜯었다.
나름대로는 슬슬 여난이 시작되나 착각을 하였는데 편지의 내용을 보자 눈이 튀어 나올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