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ss returns RAW novel - Chapter 21
19. 전설의 시작
“상감청자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구나.”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릴 적에 아버지가 지나가듯 말한 적이 있어서요.”
“후우. 그래. 하지만 나 역시 확실한 것이 아니라 너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너도 임가의 자손이니 임상옥 조사께서 파문을 당한 내용은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알고 있어요. 장미령님을 구하려다가 파문을 당하셨다고요.”
“그래. 상계에서 파문이 된 후에 복귀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상계의 아무런 도움 없이 혼자 행로를 개척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지. 조사는 상계에 복귀하기 위하여 이조판서 박종경(朴宗慶)의 정치적 권력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에게 인삼독점권을 따 내려 하였던 것이지. 그 때 사용했던 것이 바로 고려 상감청자라고 전해진다.”
“뇌물을 쓰려 하셨군요.”
“그렇지. 그 당시에 사용하려 했던 상감청자는 포장이 되어 나가기 직전이었다. 헌데 그 전에 조선팔도에서 홍수가 발생했다. 수재민들이 넘쳐났고 백성들은 굶주리고 헐벗었지. 조사께서는 상즉인(商卽人)을 항상 강조하셨다. 일전의 상행으로 벌어 두셨던 돈으로 이재민 구호에 나섰는데 이 소문이 박종경에게 들어갔다.”
“그렇다면 그 때?”
“박종경은 조사의 인간됨에 반하여 아무런 조건 없이 상계에 복귀를 시킨 것은 물론이고 인삼의 무역 권을 독점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것이 바로 만상의 시작이니라. 성의표시로 상감청자를 진상하려 하였으나 박종경은 거절했다. 이에 임가에서 상감청자를 보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의 행방은요?”
“조사께서 지도조각을 나누실 때, 상감청자에도 암호문 형식으로 음각을 했다고 한다. 그것도 안쪽에 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자취를 감추었지. 그리고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그랬군요.”
“그저 구전설화 중 하나인지, 정말로 그 청자가 실존했는지는 알 길이 없으니 갑갑한 일이지.”
하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가 굳이 하성에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아무래도 이에 대한 이야기는 치우에게 해 두어야 할 것 같았다.
만약 대신 모바일 부지에서 지도조각이 하나 발견된다면 다음 조각에 대한 희망이라도 있었다.
작은 희망이었지만, 하성에게는 큰 것이었다.
최소한 다른 조각이 어디에 있는지 조사를 하기 위한 단서를 알아 낸 것이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온 하성은 김수련의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도련님! 지금 병원에서 나오시면 어떻게 하나요!?”
“아, 유모.”
“아직 낫지도 않았다면서요? 그런데 이렇게 돌아다녀도 되는 건가요?”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김수련은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 당연히 하성이 걱정을 해서 하는 소리였다. 하지만 어디 어머니의 잔소리를 진지하게 듣는 사람이 많을까.
하성은 한 귀로 대충 흘려들었다.
“조심할게요.”
“조심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병원으로 돌아가셔야죠!”
“제 몸은 제가 챙길게요.”
“정말 이러기에요!?”
하성은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 와서 병원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성은 김수련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유모.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멀쩡하니까요.”
“도련님의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죠!”
하성은 그 자리에서 윗옷을 벗어 버렸다.
정말로 하성의 몸은 깔끔했다. 속이야 엉망이었지만, 최소한 외상은 없었고 매끈하기까지 하였다.
이제야 유모는 의심을 거두었다.
“그럼 오늘은 푹 쉬도록 해요.”
“회사에 나가야…….”
“절대 안 되요!”
“하하…….”
“그래. 유모의 말이 맞다. 오늘은 푹 쉬도록 해라. 회사나 학교는 내일 가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다.
하성은 한 가지 일은 반드시 처리를 해야 했다.
“그렇다면 전화로 하나만 일처리 할게요.”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 정도는 허락하도록 할게요.”
하성은 유모가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져 차마 출근은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요양에 집중을 해야겠군.’
그날 저녁.
하성은 윤다희를 집으로 불러 들였다.
그는 땅거미가 질 무렵에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하는 중이었다.
신화그룹의 사택 정원은 어마무시하게 넓었고 족히 한 시간 이상은 돌아야 겨우 한 바퀴를 돌 수 있었다.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는 정원을 걷다가 그는 차량을 발견한다.
그렇지 않아도 윤다희도 하성을 발견하고는 승용차에서 내렸다.
“사장님!”
“오셨어요?”
“큰 사고가 있으셨다면서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트럭이 차의 옆구리를 쳤다고 합니다.”
“그래도 이만하기를 다행이네요.”
윤다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여기서 하성이 죽거나 다치면 신화 엔터테인먼트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 그러니 최대한 몸을 보중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걱정을 하고 있는 윤다희를 애써 무시한 채, 하성은 그녀에게 법적대응을 지시한다.
“제가 대신그룹의 지분 30%에 대한 권리를 쥐고 있음을 알고 계실 겁니다.”
“강 비서에게 대충 들어서 알고 있어요. 하지만 너무 문서가 오래 되었고 증명할 자료가 없어서…….”
“그래서 노른자위의 땅을 임가에서 보유하고 있는 겁니다. 아버지의 창고에 땅문서가 많이 있었는데, 지금 보니 대신그룹 여러 공장부지의 핵심적인 땅이었더군요.”
“그것으로 증명이 될까요?”
“최소한 권리를 주장하고 그들을 흔들어 놓을 수 있겠죠. 이 사실이 만약 언론에 터진다면 어떻게 되었어요?”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타격이 있겠군요.”
“바로 그런 거죠.”
윤다희는 이제야 납득을 했다.
단순히 증명서만 남아 있다면 어찌 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지만, 노른자위의 땅을 보유하고 있다면 이야기 달라진다.
대기업에서 멍청하지 않은 이상은 노른자위 땅이 박혀 있는 채로 사업체를 올리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장이나 사업부지를 옮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애초에 세워진 터에 발전을 거듭하였고 결국에는 것이 그들의 약점이 되었다.
“그럼 부탁드려요.”
“바로 소송을 진행하겠습니다. 달리 시키실 일은요?”
“이번에 신화그룹과 태진그룹의 혼인동맹이 체결되기 직전입니다. 그 이야기는 들으셨죠?”
“축하드려요. 경사네요.”
“그 말이 아니라 혼인동맹을 제외하고 동맹을 맺을 수 있는 방안을 알아봐 주세요.”
“꼭 그럴 필요 있으신가요?”
“당연하죠.”
윤다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성은 향후 10년 안에 2대 회장에 오를 것이고 혼인동맹으로 회사의 경영권을 강화하거나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면 매우 유리할 것이다.
한데, 하성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윤다희는 하성에게도 어떤 사정이 있을 것이라 여기고 대충 넘어가기로 하였다. 사실, 결혼에 대한 문제까지는 그녀가 신경 쓸 사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 할게요.”
“그럼 부탁드려요. 오늘 더 일을 하고 싶지만 서슬 퍼런 눈들이 많아서.”
“후후. 내일 오후에 뵙죠.”
윤다희는 차량에 올라탄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하성이 승부수를 띄웠으니 태진그룹에서도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었다.
대신그룹 본사.
대신그룹 내에서 엄청난 사건이 터졌다.
방금 전에 접수된 하나의 소송 때문이었는데, 이것이 그룹 전체를 쥐고 흔들 수 있음에 최상위 경영진 회의가 소집되었다.
최고위 회의는 새끼이사들(막 이사가 된 상무급)은 제외를 하고 회사를 움직이는 핵심 인물만 모였다.
이들은 물론 반 임가 연합에서도 외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간부급이었다.
회에서는 수많은 기업들을 운영했고 부동산이나 사모펀드에 들어가 있는 돈도 상당했다. 대신그룹은 그 중 하나일 뿐이었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10대 기업 안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오늘, 신화 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인 임하성이 대신그룹의 지분 30%를 주장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일 때문에 윤도식은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쾅!
“일처리를 이 따위로 밖에 못하나!?”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가 말하면 다냐는 말이다!”
그는 씩씩거렸다.
이번 일이 잘못되면 회에서 어떤 문책이 내려올지 몰랐다. 만약 정말로 놈들이 대신그룹을 삼켜 버린다면 회에서 사형을 선고할 수도 있었다.
그 사실을 알기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하였던 것이다.
“윤 이사! 도대체 어찌 된 건가? 왜 처리를 하지 못한 게야?”
“치우의 힘이 강했습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죄송합니다.”
결국 자만 때문이 일이 이렇게 된 것이었다.
윤성진도 이를 부득 부득 갈았다.
천지단의 단주는 치우는 물론이고 임하성까지 손쉽게 찍어 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 자체가 오만이었지만, 그들은 방심했고 결국에는 다 잡은 고기를 놓쳐 버렸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법이었다.
신화그룹이라는 배경과 임가의 후손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메리트를 고려하면 그들이 가만히 있는 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이 사단이 났다.
조용히 앉아 있던 영업이사 한득진이 손을 들었다.
“말해봐.”
“이렇게 된 이상은 원하는 것을 줄 수밖에요.”
“대신 모바일은 안 된다.”
“왜 안 됩니까?”
“그곳에 임가의 비밀이 파묻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찾지 못했지요.”
“만약 그곳에 지도조각이 묻혀 있다면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것이야.”
“적을 이용하여 찾게 만든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지요.”
“……!”
의외의 전략에 이사들은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말대로 이쪽에서 방법이 없다면 적들은 방법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임하성이라는 놈은 의외로 경영에 소질이 있었고 강하기까지 했다. 최소한 비실거리지는 않았던 것이다.
임가의 비밀까지 근접하고 있는 것을 보면 네 번째 조각을 스스로 찾아낼지도 몰랐다. 그 때에 꿀꺽 해 버리면 최상의 전략이라 말할 수 있었다. 게다가 대신 모바일을 거래 조건으로 한다면 당분간 소송을 취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 하여 시간을 번다면 지도조각을 찾는 즉시, 임하성을 죽여 버리면 그뿐이었다.
“어떻습니까, 회장님?”
“훌륭한 전략이다. 다들 어찌 생각하나?”
“동의합니다. 이 수밖에는 없겠습니다.”
“내일 당장 협상을 타결하고 오도록 하라.”
“그리 하겠습니다.”
이것으로 일은 일단락이 되는 듯 보였다.
다음날 아침.
하성은 일찍부터 일어나 운동을 하는 중이었다.
어제 밤새도록 기공치료를 했고 내상도 어느 정도는 아물었다. 그렇다면 오늘부터는 본격적인 수련에 들어가야 한다.
수련이라는 것은 실전경험을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상 조직을 격파하는 것은 조폭계에 큰 전쟁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했다. 그리할 수는 없는 일이었고 일단 실력이 다져지기 전까지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서울에도 양아치들이 많으니 그들을 처리하며 수련효과를 얻는다. 이것이야 말로 일거양득이겠어.’
하성은 눈을 떴다.
예전 같았다면 공포의 대상이었을 놈들이 지금은 수련상대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워낙에 천외천의 세상을 보고 겪었기에 일진들 따위는 눈에 차지도 않았다.
그래도 하성은 다대일 결투가 몸에 배일 필요가 있었다.
산을 내려와 씻고 난 후에 하성은 지도를 편다.
서울에는 수많은 학교도 있었고 일진들은 대립각을 세우며 대치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싸움이 나기도 했고 그렇게 한 지역구의 캡짱이 탄생하기도 했다.
동대문구는 이미 하성의 손에 떨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대화고교의 캡짱이 동대문구를 휘어잡고 있었고, 하성이 격파를 했으니 조금은 희한한 형태로 하성은 양아치들 사이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하성은 명성(?) 따위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실력을 배양하기 위해 움직이려는 것뿐이었다.
***
하성은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등교를 하려 했다.
오늘부터는 오전에 등교를 하고 오후에는 회사에 나가 일을 처리하는 평상적인 생활을 하게 될 것이었다.
물론 겉으로만 드러난 평화였고 외부에서는 어떤 압력들이 가해질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싸움을 해야 하는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과거에 하성이 칼에 맞아 죽은 것은 조족지혈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들은 조직 세력이었고 회(會)라고 불리는 자들은 나서지도 않았다. 이번에 회에서 한 번 나섰을 뿐, 앞으로 얼마나 강한 놈들이 튀어 나올지 알 수 없었으므로 전반적인 실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어서 오십시오, 도련님.”
저택 앞에는 고급 세단차량이 대기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 회에서 나서면서 차량이 완전히 망가졌고 임태식이 하성을 위해 이번에 개발하고 있는 초경량합금 방탄차를 새롭게 내어 주었다. 아직 시험단계였지만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경도가 강한 강판과 유리라고 한다. 혹시나 이번에 또 그런 사태가 일어나면 막아내기 위해서였다.
달칵
문을 얼고 들어가자 앞좌석에 백호가, 하성의 옆 좌석에는 윤다희가 타고 있었다. 이들이 이렇게 빨리 나왔다는 것은 뭔가 중요한 일이 터졌거나 급한 일을 처리해야 할 때뿐이었다.
“어서 오세요, 사장님.”
“아침나절에 죄송합니다.”
“무슨 일인가요?”
“대신그룹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벌써요?”
“그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겠죠.”
윤다희의 말이었다.
하성은 그녀의 말속에서 대신그룹이 협상을 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일단 들어 보겠습니다.”
백호가 입을 열었다.
“향후 2년 안에 소송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제안을 해 왔습니다.”
“어떤 제안이죠?”
“약속이 잘 지켜진다는 가정 하에 우리가 원하는 대신 모바일을 헐값에 넘겨주겠답니다.”
“그렇게 쉽게 말인가요?”
“저도 그게 의문입니다.”
“도대체 어떤 꿍꿍이지……?”
하성은 생각에 잠긴다.
하성이 알기로 반 임가 연합은 엄청난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임가 전체를 쓸어버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들이 천천히 상황을 처리해 나가는 이유는 명확했다. 신화그룹을 완전히 흡수하고 더 나아가 임상옥이 남긴 유산을 온전하게 흡수하기 위해서였다. 임가에서 임상옥의 비밀을 완전히 밝혀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이쪽에서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을 하려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백호에게는 짐작 가는 것이 있었다.
“주인님을 통하여 뭔가를 찾으려 하는 것이겠죠.”
“대신 모바일에 묻혀 있는 ‘뭔가’로군요.”
“지도조각이 될 수도 있고 유산이 묻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뭐가 되었건 대단한 것이 묻혀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전까지는 휴전이라고 봐도 무방하겠군요.”
“그럴 수도 있지만, 틈이 보이면 주인님을 납치하여 강제로 불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 후에는…….”
차마 백호는 하성을 무자비하게 고문하여 원하는 것을 얻은 후에 토막을 쳐서 바다에 버릴 것이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하성은 그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어쨌거나 하성으로써는 이 제안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좋습니다. 약속 잡으세요.”
“괜찮을까요?”
“그들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협상을 하는 자리에서 움직이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협상테이블을 이쪽에서 마련하면 됩니다.”
“가능하면 빨리 처리해 주세요.”
“오늘 당장이라도 준비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퇴근 무렵 하도록 하죠.”
“그리 하겠습니다.”
백호라면 알아서 철저히 준비를 할 것이다. 더구나 얼마 전에 사건도 있었으니 촘촘하게 경비를 세울 것이 틀림없었다.
적들도 용담호혈에 들어와 허튼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대비는 철저히 해야 한다.
하성에게는 부담이 하나 더 늘었다.
등교를 하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띠링
문자가 울린다.
-몸은 좀 어때요?
“이 여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그는 한 가지 고민을 더 안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예비 약혼자인 유서화 때문이었다. 그녀는 하성에게 친근하게 대하고 있었지만, 감정을 배제한 채로 대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결혼을 해도 된다는 것일까.
하성은 대충 문자를 찍어 보냈다.
-그럭저럭 괜찮아요.
-몸조심 하시고 저녁에 시간이 되시면 보도록 해요.
“음……. 시간이 되려나.”
오늘은 조금 바쁠 것이다.
학교 내에서는 수련을 쌓으려 작정을 하고 있었다. 저녁에는 대신그룹 사람들과 만나 M&A를 마무리해야 한다.
모두 처리를 하면 밤이 되지 않을까.
-오늘은 일이 있어 조금 늦을 것 같아요.
띠링!
-괜찮아요. 기다릴게요.
-잠깐이라도 괜찮다면 그렇게 해요.
-회사 앞에서 기다리면 되겠죠? 그럼 좋은 하루 보내세요.
하성은 고개를 흔들었다.
어쨌거나 그들은 양가 가장들의 허락을 받고 공식적으로 사귀는 사이였다. 만에 하나라도 밤을 지새웠다면 경사가 났다면 곧바로 결혼 날짜를 잡을 판이었다.
일이 그렇게 흘러가게 두어서는 안 된다.
‘치우나 윤 비서가 방법을 찾아 주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머리가 슬슬 아파온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왔구나.”
이유나가 하성에게 아는 척을 했다.
그녀의 얼굴은 예전보다 더 좋아졌다. 바쁜 스케줄 가운데에서도 꾸준하게 관리를 하고 있었기에 더 예뻐졌고 옷을 입어도 태가 났다.
이유나의 데뷔는 조금 당겨져 다음 달로 예정이 되어 있었다. 회사의 모든 역량을 그녀에게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쁜 와중에도 이유나는 꼬박꼬박 등교를 하려 애썼다. 여기에 하성이 등교를 하지 않으면 그녀 역시 하지 않았으므로 교내에서는 그들이 사귀는 사이라고 소문이 파다하게 났다.
하성은 공식적으로 그런 소문을 일축했다.
이유나는 흠이 없어야 한다. 데뷔 전에 뭔가 구설수에 휘말리면 뜨기도 전에 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나는 것은 자제를 해야 하지 않을까?”
“왜 그래야 하는데?”
“네가 데뷔하여 성공을 하려면 말이야.”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차라리 데뷔를 하지 않을래.”
“…….”
‘이건 뭐지.’
하성의 머리는 더욱 복잡해진다.
이것은 간접적인 고백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하성은 애써 무시한다.
“빨리 등교를 하도록 하자.”
“응.”
그들은 나란히 등교를 할 수밖에 없었다.
드르륵
하성은 교실의 문을 열었다.
그가 나타나자 잠시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하지만 하성은 임가의 후손으로, 상즉인이라는 가훈을 뼛속까지 담고 있었다.
다소 거칠게 행동은 해도 약자를 괴롭히지는 않았기에 다시 교실은 소란스러워진다.
하성은 장백기가 누워있는 책상을 걷어찼다.
퍼억!
“크윽!”
“이 새끼가. 인사 안 하냐?”
“와, 왔냐?”
“가서 오문식 불러와라.”
“문식이를?”
“가서 데려오기나 해.”
“아, 알겠어.”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하성이 교내 부캡짱인 장백기를 괴롭히자 지금까지 놈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학생들은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 일진들은 학생들을 괴롭힐 수 없게 되었다. 삥을 뜯을 수도, 빵셔틀을 시킬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하성이 곧바로 보복을 하였기 때문이다.
하성은 나름대로 서울 시내를 평정하려 하며 목표를 세웠다.
‘학교폭력이 없는 서울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가 일을 벌이려는 이유는 오직 강해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부수적으로 학교폭력을 척결한다면 그것도 가훈에 부합이 되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학교폭력에 대한 문제는 예전부터 대두가 되어 왔던 일이었지만, 경찰이나 교육청에서는 해결할 수 없었다.
단속을 한다고 해도 그 때뿐이었으며 그저 방관하는 자세를 취해왔다. 하성은 이 문제를 학생들 내에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창한 의미는 아니었지만 겸사겸사 서울의 학생들이라도 마음 놓고 학교를 다닐 수 있었으면 했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오문식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소란이 멎는다.
아직까지 오문식을 보며 오금을 저리는 학생들이 많았다.
오문식은 꽤나 자존심 상한 얼굴로 나타났다.
“왜 불렀냐?”
탓!
퍼어억!
하성은 단순히 천령기를 이용하여 빠르게 이동을 한 후에 그의 발목을 걷어 차 버렸다.
오문식은 처참하게 바닥을 굴렀다.
“크윽!”
“말을 예쁘게 해야지 않겠냐?”
“그, 그래. 용건은…….”
“너 서울 지역구 캡짱들은 대충 알고 있지?”
“그렇지. 우리들은 서로 연락을 취하고는 하니까.”
“성동구 캡짱이 어떤 놈이냐?”
“이세식?”
“이세식인지 나발인지 내가 알 필요는 없고 어떤 놈인지나 불어.”
“권투를 오래 했다고 하지. 작년도 학생부 서울 챔피언이기도 하고 주먹을 기가 막히게 쓴다고 알려져 있어.”
“너와 싸우면?”
“비슷할 걸?”
“그럼 수월하겠네.”
“……??”
오문식이 호출되면서 일진들도 함께 왔다. 또 하성이 무슨 일을 벌일까 싶어서였다. 그들은 머릿속에 의문을 가졌다.
하성이 이세식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다소 의아한 일이었다.
오문식이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설마 성동구를 치겠다고!?”
“그래.”
“미쳤구나! 성동구 애들은 강해! 내가 일대일로 이세식과 결투를 벌인다면 물론 비슷하겠지. 승률은 반반이다. 하지만 성동구 사천왕이라고 불리는 놈들은 모두 고만고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어. 다구리를 털면 아무리 너라고 해도…….”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이미 오문식은 하성이 괴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성은 대화고교 일진들을 한 번에 털어 버리는 실력을 갖추었다. 하지만 오문식은 한 학교의 일진들과 싸우는 것과 한 지역구를 먹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했다.
“잘못하면 정말 죽을 수도…….”
“잔말 말고 연락해서 오늘 점심시간에 나오라고 해라. 출근하기 전에 이세식이 다니는 학교를 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