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ss returns RAW novel - Chapter 34
32. 인수하다
하성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수잔은 물론 하성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 윤 비서와 동갑이었으니 이성적인 감정으로 접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연구소장으로서 하성에게 하는 제안일 것이다.
“저와 함께 술을 한잔해요.”
“술을요?”
하성은 머리를 긁적였다.
도대체 이 여자는 하성이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 걸까.
“저는 18살인데요.”
“18살이면 성인…… 이 아니죠.”
“제가 고교생인 것은 몰랐나요?”
“알고 있었죠. 하지만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 보니 너무 성숙하셔서 잠시 잊고 있었답니다.”
‘설마요. 당신과 같이 똑똑한 사람이.’
하성은 어깨를 으쓱였다.
“술, 먹으러 가죠.”
“괜찮겠어요?”
“문제없어요. 한국에서도 술을 잘 마시는 것으로 유명하거든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그녀는 두 손을 모아 합창했다.
역시나 수잔도 꽤나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열 살이 넘게 차이 나는 아줌마였기에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윤다희도 함께하겠다고 했다.
“저도 가요.”
“저도 갑니다.”
백호까지 나섰다.
수잔은 별 상관없다는 얼굴이다.
“사람이 많으면 더 좋은 일이죠.”
수잔은 그렇게 웃으며 일행들을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술이라고 해서 거창하게 마시자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간단하게 아몬드와 치즈, 과일 하나를 준비했고 위스키 잔을 돌렸다.
백호는 거절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같이 마시겠다면서요?”
“그런 말은 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함께 오겠다고 한 것이죠.”
“왜요?”
“사장님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경호원이세요?”
“그런 셈이죠.”
수잔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호가 술을 마시든 안 마시든 그녀로서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다만, 미성년자인 하성에게 술을 권한다는 것이 조금 미안한 모양이다.
“술이 좀 그러시다면 차를 드릴까요?”
“그럴 수야 있나요. 마시려면 술을 마셔야죠. 안 마시면 모르겠지만.”
하성은 그녀가 따라 주는 술을 단숨에 비웠다.
“크! 좋네요.”
“와……. 그 독한 술을 단번에.”
“수잔 씨도 한 잔 받으세요.”
“이거 영광인데요? 잘생긴 고교생에게 술을 다 받아 보고.”
“그거 꽤나 아줌마 같은 소리인 것은 알죠?”
“띠 동갑 이상이면 아줌마죠.”
그녀는 낮게 웃었다.
수잔도 꽤나 하성을 매력적으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이 차이 때문에 선을 긋는 것뿐이다.
“그보다 하실 말씀이 무엇인가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말씀을 드렸으면 해서요.”
“본질적인 문제라…….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그녀는 술을 연거푸 들이켰다.
세 잔을 마셔 대던 수잔이 입을 열었다.
“SL제약을 인수하시는 정확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발전 가능성이 있어서죠.”
“그런 뜻이 아니라 그렇게 발전을 시켜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는 말이죠.”
“으음.”
하성은 작게 신음을 내뱉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수잔은 하성에게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라고요?”
“저는 이 회사의 약으로 죽어 가는 많은 사람들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언젠가는 불치병이 정복되리라고도 생각하죠.”
“돈 때문이 아니고요?”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죠. 회사가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설립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자선 단체가 아닌 이상은요. 하지만 회사의 이윤보다는 목숨을 구하는 쪽에 무게를 더 주고 싶네요.”
수잔을 하성을 빤히 바라보았다.
살짝 얼굴이 붉어질 것 같았지만, 하성은 간신히 제어를 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열 살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여자에게 쉽게 호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었다. 수잔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수잔은 하성을 끌어안아 비비적거렸다.
“크윽! 이게 무슨 짓…….”
“정말 귀엽네요.”
“무슨 말씀이세요?”
“성숙하게 말을 하는 것 같지만 그런 표정이라니. 참을 수가 있어야죠.”
윤다희가 수잔을 떼어 냈다.
“이게 무슨 성희롱이야?”
“좋은 걸 어떻게 해?”
“쯧쯧, 주제를 알아라.”
수잔은 더 이상 원론적인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아마도 수잔은 하성의 생각이 듣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로 인하여 회사의 미래가 어찌 될지 떠보았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
하성은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아무리 신체가 강화되었어도 위스키를 한 병 이상 혼자 다 마셨으니 머리가 핑 돌아 쓰러져 버렸다.
눈을 떠 보니 수잔의 집이었다.
술병이 아무렇게나 굴러다녔고 윤다희와 수잔은 서로 껴안은 채로 잠들어 있었다. 하성은 소파에서 잠들었다가 깨어난 것이었다.
“으음…….”
하지만 숙취는 거의 없었다.
수박을 수련한 이후로 하성의 신체는 매우 강해졌다. 부작용이라면 술을 마셔도 잘 취하지 않는다는 것. 그 때문에 술을 많이 마시게 되었다.
일어나서 물을 마시려는데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백호가 보였다.
“어라? 백호는 안 잤나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당신을 지키는 것이 제 의무이니 죄송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피곤해서 어떻게 해요?”
“한 며칠 잠을 안 잔다고 해서 어찌 되지는 않으니 걱정 마십시오.”
백호는 진심인 모양이었다.
그로서는 어제의 일이 꽤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더 심혈을 기울였다면 하성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으리라고 여겼다. 그 때문에 자책도 많이 했을 것이다.
하성은 백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제는 백호의 탓이 아니에요.”
“제 탓입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어쨌거나 이건 제 의무니까요.”
“으하하함!”
하성이 백호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윤다희가 잠에서 깨어났다.
“어머!”
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뒤로 넘기다 하성과 백호를 바라보며 화들짝 놀랐다. 그럴 만도 할 것이다.
백호가 윤다희와 수잔을 옮겨 놓지 않은 이유는 그 사이에 하성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우려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성이 윤다희를 바라봤다.
“잘 잤어요?”
“사장님도 잘 주무셨나요.”
“그렇게 보니 매력적이네요.”
“뭐라고요?”
윤다희는 폐인과 같은 몰골이었다.
여자로서는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가 않을 것이다.
“정말 너무하네요. 저도 여자거든요.”
“뭐, 그렇다고 하죠.”
그녀는 살짝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하성은 그런 모습이 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 윤다희는 항상 냉철한 마녀와 같은 인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이 트는 무렵이었다.
신기하게도 수잔은 라면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역시 해장에는 라면만 한 것이 없었다.
“으으으.”
수잔은 머리를 짚었다.
하기야 어제 그렇게 술을 퍼 마셔 놓고 몸이 멀쩡하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드세요.”
“직접 끓이셨어요?”
“뭐, 라면은 전문입니다.”
하성은 쓰게 웃었다.
혼자 오랫동안 살았기도 하고 한국 남자치고 라면을 못 끓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을 정도였다.
하성도 마찬가지다.
콩나물과 라면은 숙취 해소에는 그만이었기에 권한 것이다.
라면으로 속 풀이를 하자 속도, 머리도 좀 나아진다.
띠리리링!
씻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윤다희의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아, 지금요? 알겠습니다.”
윤다희는 전화를 끊는다.
“로버트 씨인가요?”
“그렇습니다. 지금 보자고 하시네요.”
“가 보도록 하죠.”
하성은 준비를 끝마치고는 복장을 점검한다.
로버트도 하룻밤 사이에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침 무렵에서야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드디어 결전의 시간이었다.
로버트 잭터는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연구소의 소장인 수잔의 의견을 들어 보기로 하였다.
어차피 이 연구 자체가 수잔이 없으면 진행되지 않는다. 그녀가 있음으로 인하여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로버트는 어제 수잔이 임하성 일행과 술을 마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제 어떻게 되었나요?”
“괜찮은 사람 같았어요.”
“괜찮은 사람이라…….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죠.”
“회사의 미래를 책임져 줄 것 같더군요.”
“그렇군요. 그밖에는요?”
“최종 목표가 저희들과 일치합니다.”
“인류를 위한다는 것이로군요.”
“솔직하게 말해서 이윤을 전혀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더 믿음이 간 것이고요.”
“소장님이 그런 말을 하시니 놀랍군요. 어떤 사람을 믿는다는 경우는 흔치 않았는데 말이죠.”
“그러게요.”
그녀는 옅게 웃었다.
로버트의 말이 맞았다.
수잔은 별로 사람들을 믿지 않았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한 겹의 보호막을 치는 것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그로 인하여 사람들과도 많이 절연을 했다.
“어차피 이대로는 연구 진행이 힘듭니다. 경영은 지금까지처럼 대표님이 하시면 돼요. 다만 최고 투자자가 바뀌는 것뿐이죠.”
“그렇다고 해도 간섭은 있을 겁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로버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회사가 이 지경이 된 것도 그가 경영을 잘못하였기 때문이다. 다른 사업에도 주력을 해야 했는데, 너무 연구에만 몰두하였다.
연구가 끝나면 분명히 약에는 엄청난 수요가 있을 것이었고 그리된다면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믿었었다.
결국 그런 믿음이 회사를 나락으로 빠뜨렸다.
“이제 결정했나요?”
“소장님을 만나고 확실해졌군요.”
“그럼 이제 만나 보도록 하죠.”
회사 내 마련되어 있는 휴게실.
하성 일행은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수잔과 로버트의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20분이 지났을 때, 수잔이 나왔다.
“들어오시라고 하네요.”
“그러죠.”
집무실로 들어오자 로버트가 꽤나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기야, 그럴 만도 할 것이다. 회사의 경영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어떤 CEO라도 씁쓸할 것이다.
“앉으시죠.”
하성은 자리에 앉았다. 방금까지 커피를 마시고 왔기에 윤다희는 녹차를 가져왔다.
하성은 녹차를 한 입 머금었다.
로버트는 꽤나 확고한 표정이었다. 이것은 복잡한 마음과는 다른 것이었다. 하기야 창립한 회사가 이 지경이 되었으니 표정이 좋을 리는 없다.
“정하셨나요?”
“그렇습니다.”
***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로버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회사를 매각하겠습니다.”
“하아, 잘 생각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SL제약의 창립자가 바로 로버트였다. 평생 회사를 일구어 왔던 사람이 매각을 결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로버트는 그런 결정을 내렸다.
로버트가 입을 열었다.
“이 결정은 저만을 위해 내린 것이 아닙니다.”
“알고 있어요.”
“인류를 위한 결정이죠.”
“인류를 위한 결정이라…….”
“사장님께서도 약속을 해 주십시오. 어떤 일이 있어도 인류를 위해 공헌한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운영해 줄 것을 말입니다.”
“그리하겠습니다.”
사실, 하성이 SL제약을 인수하려는 것은 그런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회사가 발전하고 성공할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제 하성은 연구소장 수잔과의 대화를 통하여 이들의 신념을 알게 되었다. 단순히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 고차원적인 목표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성 역시 어느 정도는 동조하고 있었다.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그것도 대기업을 운영하려면 이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인류에 공헌을 한다는 생각을 깔아 달라는 것이 이들의 주문이었다.
“그럼 계약을 하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오히려 감사하죠. 꾸준히 연구비를 지원해 주신다면…….”
“다만 지금까지와의 경영과는 다르게 회사를 운영해야 할 겁니다.”
“그건 저도 동의합니다.”
로버트는 자신의 실책을 순순히 인정했다.
사실 연구소에서는 면역 세포만 연구하는 것은 아니었다. SL제약은 두통약에 특화되어 있었고 그밖에도 여러 가지 약을 연구했었다.
지금까지 연구되어 온 약들을 상용화하려면 꽤 많은 돈이 들어갈 것이었지만, 그 이후에는 자리가 잡힐 것이다.
비서가 계약서를 들고 왔다.
“읽어 보세요.”
하성은 계약서를 쭉 읽어 내려갔다.
표준 계약서에 몇 가지 조항을 추가한 것이었다.
첫째로는 지금 일하고 있는 직원들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내용과 로버트가 경영권을 이어 간다는 것이었다.
다만 로버트가 실책을 거듭한다면 해임할 수 있다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성으로서는 더 이상 계약 내용을 건들 이유가 없었다.
스스스슥!
하성은 사인을 마쳤다. 로버트도 사인을 마치고는 계약서를 교환했다.
“윤 비서님, 곧바로 계약금을 이체하도록 하세요.”
“예, 사장님.”
윤다희는 한빛그룹 비서실에 전화를 넣어 바로 계약금을 이체하라 지시를 내렸다. 이것으로 SL제약의 최고 투자자가 바뀌게 된 것이다.
로버트는 하성에게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요.”
하성은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건 경영자 로버트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었다. 좀 더 숭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하는 인사였다.
로버트가 말했다.
“이렇게 되었으니 직원들을 모으겠습니다.”
“직원들을요?”
“제가 대표직을 맡고 있지만, 중요한 결정은 이제 회장님이 하셔야 합니다.”
“회장이라니요?”
“SL제약까지 세 개의 회사가 그룹을 이루게 되었으니 회장으로 불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건 아직 무리입니다.”
하성은 손을 내저었다.
지금의 사업으로는 회장이라고 불리기는 무리였다.
“어쨌든 호칭은 그리하겠습니다.”
하성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로버트가 그리 부르겠다는데 말릴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하성은 회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대강당에서 진행되는 회의는 실질적인 취임식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사업의 자잘한 부분은 모두 로버트가 처리를 하겠지만, 중요한 일들은 하성이 처리하게 될 것이었다.
대기실에서 백호는 조금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느낌이 좋지를 않아요.”
“회사를 인수해서요?”
“그것이 아니라 회에서 이렇게 조용한 것이 말입니다.”
“못 찾는 것이겠죠.”
“글쎄요. 마음만 먹으면 못 찾을 것도 없을 텐데요.”
백호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지금이 꼭 폭풍 전의 고요함과 같다는 것이었다.
놈들은 작정을 하고 미국에 히트맨을 파견하였다. 그리하여 하성이 죽기를 바라는 것이다. 정말로 죽기를 바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칼을 들이댄 것은 맞았다.
회의 특성상 이렇게 쉽게 넘어가지는 않을 것인데, 왜 이렇게 미온적으로 나오는 것인지 백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공항에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본 것도 그렇고 어젯밤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하세요.”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백호는 그렇게 대답을 하였지만, 아직도 표정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윤다희가 백호의 어깨를 쳤다.
“왜 이렇게 남자가 소심해요? 한국으로 돌아갈 때나 조심을 하면 되겠죠.”
“저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똑똑.
“들어오세요.”
대기실로 수잔이 들어왔다.
“준비되셨나요?”
“그냥 가서 포부만 밝히면 되는 건가요?”
“회장님의 생각을 아낌없이 말씀해 주셔야 해요. 진실로 말하면 직원들도 이해를 해 줄 것이니까요.”
“그럼 가죠.”
저벅저벅.
하성은 강당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직원들의 숫자는 150명가량이었다.
연구진과 공장의 직원들, 사무직 직원들까지 모두 모은 숫자였다. 이것만 보아도 회사의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하성을 바라보며 기대감에 차 있었다.
‘부담스러운데.’
지금까지 하성은 사람들에게 이익을 만들어 주기 위하여 노력해 왔었다.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달랐다.
‘로버트나 수잔의 생각에 전염된 사람들 같군.’
그는 강단에 올랐다. 이곳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자 그런 표정들이 더욱 눈에 들어왔다.
하성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안녕하세요, SL제약 최고 투자자가 될 임하성이라고 합니다. 몇몇 분들은 제가 어려서 걱정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은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대표직은 계속 로버트 씨가 이어 갈 것입니다. 다만 저는 뒤에서 조용히 지원을 할 뿐이지요.”
“…….”
사람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하성의 입에 집중을 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더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하성은 편하게 생각하기로 하였다.
“여러분들의 목적이 돈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더 숭고한 의미의 목표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저 역시 그런 정신을 본받아 회사를 지원할 것임을 밝힙니다. 지금의 정책들은 모두 유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짝짝짝짝!
사람들은 박수를 쏟아 냈다.
하성은 그저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은 것이었지만, 이것이 사람들에게 먹혔을지는 미지수였다.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다.
하성은 미국에서 곧바로 스위스로 향할 것이었다.
계약금은 지불을 하였지만, 잔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버지의 유산이 필요하였다.
애초에 이번 인수 건은 아버지의 유산이 없다면 실행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성이 출발하려 하자 사람들이 몰려나와 있었다.
“회장님, 살펴 가십시오!”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하성은 회사를 경영하며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사람들은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었다. 이로 인하여 그들은 일자리와 꿈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이었다.
바쁜 관계로, 하성은 앞줄의 사람들과만 악수를 나누었다. 그 끝에는 수잔과 로버트가 있었다.
수잔은 하성을 끌어안았다.
“다음에 또 와요.”
“물론이죠.”
“그때에는 좋은 술을 준비해 놓고 있을게요. 싸구려 위스키가 아니라요.”
“그렇다면 환영이죠.”
마지막으로 하성은 로버트를 바라봤다.
“최종 경영 조정안을 며칠 내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세요.”
“그때에도 꽤 많은 돈이 필요할 겁니다. 지금까지 연구되어 왔던 약들을 출시해야 하니까요.”
“물론입니다.”
로버트도 이번 일을 계기로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경영을 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 않아서 그렇지, SL제약이 약을 출시한다면 꽤나 잘 팔릴 것이다. 연구원들에게는 그만한 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성은 차에 올라탔다.
“그럼 가죠.”
백호가 직접 차를 몰았다.
“하아!”
하성은 숨을 몰아쉬었다.
윤다희가 물었다.
“어떤가요? 좋은 사람들 같죠?”
“그런 것 같네요. 한국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하던 일이네요.”
“후후, 한국에도 착한 사람들이 많아요. 다만 요즘에 돈이 전부인 세상이 되어 가고 있으니 문제인 것이죠.”
이제 스위스에 들러 아버지의 유산을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하성은 아버지의 유산에 뭔가가 더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스위스로 날아가는 것이죠?”
“그래야죠.”
“선대 사장님이 돈만 남겼을 것이라고 보나요?”
“아니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뭐가 더 있을까요?”
하성은 윤다희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의 입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