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ss returns RAW novel - Chapter 38
36. 땅굴
설마 유서화가 찾아왔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고 보니 유서화에게는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건 유서화가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유서화는 하성을 바라봤다.
“미국에 출장을 다녀오셨다고 들었어요.”
“그렇게 되었어요.”
“그럼 문자라도 한 통 넣어 주시지 그랬어요.”
“그건…….”
“어디 가서 이야기 좀 할까요?”
“그러시죠.”
하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거나 유서화와는 공식적인 연인이었다. 하성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어른들은 달랐다.
유서화는 전통적인 재벌가에서 자랐고 또 그렇게 키워졌다. 자신은 정치적인 희생양이 된다고 해도 전혀 문제를 삼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하성과 유서화와의 관계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들은 커피숍에 이르렀다.
하성은 오늘 확실히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런 관계를 유지하기에는 버겁다.
“서화 씨, 도대체 당신은 무슨 생각인가요?”
“뭐가요?”
“자신의 의지는 전혀 없는 건가요? 아무런 감정도 없이 저와 만나는 것이 좋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데요.”
“왜 그렇게 생각을 하셨나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서요.”
“그렇게 받아들이셨을 수도 있겠네요.”
유서화는 커피 잔을 내려놓고 하성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저도 의지가 있어요.”
“예?”
“아버지께서는 몇 사람을 추천해 주셨죠. 물론 신화그룹과 이어지게 된다면 시너지가 있을 테죠. 그래도 아버지는 정치적인 상황만 고려하지 않았어요. 원한다면 자유롭게 연애를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해도 된다고 하셨어요.”
“뭐라고요?”
“그런데 제가 선택한 일이에요.”
“도대체가…….”
하성은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서화는 스스로 정치적인 희생양이 되기를 바랐다는 걸까.
하성이 오해를 하고 있을 때, 유서화가 말을 덧붙였다.
“많은 후보들 중에서 제가 당신을 택했고 만나 본 후에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 연인이 되기를 원했죠.”
“사실인가요?”
“아버지께 물어보셔도 돼요.”
이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유서화는 하성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말이 되는 걸까?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여러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서화 씨는 저에게 관심이 없었잖아요.”
“여자의 입으로 그리 말하기는 좀 그렇죠.”
“그저 정치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은요?”
“나름대로 당신을 자극하기 위한 수단이었죠.”
“…….”
하성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도대체 이 여자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성공을 한 것 같네요.”
“뭐라고요?”
“처음부터 제가 당신을 좋아한다고 말을 했다면 전혀 효과가 없었을 것 아닌가요. 아무리 세상이 변했어도 그건 아니죠. 그런 여자는 매력이 없다고 생각해요.”
“하아?”
“하지만 당신이 이렇게 관심을 갖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된 거죠.”
의외의 일이었다.
유서화는 처음부터 자신이 하성을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맞선을 본 이후에도 아버지가 의사를 물었다고 했다.
유서화는 그때 하성을 또 선택한 것이다.
물룬 그녀의 말을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제 어떤 모습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는 신념이 저를 움직였죠.”
“그런가요.”
“만약 당신이 저를 사랑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고 지금에 이르렀죠. 원래 이쯤에서 밝히려고 했어요.”
“처음부터 계획…….”
“그러지 않았다면 저는 매력 없는 여자가 되고 말았을 테니까요.”
하성은 충격을 거듭 받고 있었다.
그녀는 정말 하성이 어떤 말도 할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계획하였고 또 실행했던 것이다.
그녀가 하성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저는 당신을 좋아해요. 첫눈에 반했다는 것이 바로 그런 뜻이겠죠.”
“아…… 저는.”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돼요. 만약 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 결혼은 무효로 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예.”
하성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유서화가 이렇게 순순히 물러날 줄이야.
갑갑했던 것이 한순간에 사라진 느낌이었다. 결국 유서화와 파혼을 한다고 해도 하성에게는 어떤 타격도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께 말씀을 드려서 지금까지의 협력 관계를 계속 구축하라고 할게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예?”
“주말에 어떤가요?”
“아, 그건.”
“아직 우리가 연인이라면요.”
하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으니 유서화와는 애인인 것이 맞았다. 그러니 데이트를 거절할 수 있는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가능하면 지금, 하성은 그녀와 헤어지려 하였지만 진심 어린 소리를 듣자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어떤 사람도 자신을 좋아해 주는 이성을 매몰차게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하성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됐어요.”
유서화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사 일이 급하지 않으신가요. 며칠이나 출장을 다녀오셨잖아요.”
“그렇지요.”
하성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마음속은 꽤나 복잡해졌다. 유서화의 말대로 하성의 가슴에 파장이 일어나고 있었다. 오히려 쉽게 놓아 버려도 된다고 하니 그럴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유서화는 하성을 한 번 끌어안았다.
“그냥 제가 좋아서 안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요.”
유서화는 그렇게 속삭이고는 사라졌다.
하성은 멍한 표정으로 회사 로비를 걷고 있었다.
윤다희가 곁으로 다가왔다.
“맹랑한 연인이네요.”
“다 보셨나요?”
“안는 정도만 보았죠. 어떻게 하기로 했나요?”
“모르겠어요.”
윤다희도 하성이 유서화 때문에 고민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어쩐지 무슨 일이 터질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하성이 입을 열었다.
“이 결혼, 파투를 내도 된다고 합니다.”
“그런가요?”
“게다가 처음부터 저를 좋아해서 선택을 했다고 하더군요. 원한다면 바로 파혼을 해도 된다고.”
“승부사 기질이 있는 여자네요.”
“예?”
“처음부터 사장님을 좋아한다고 밝혔다면 이렇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겠죠. 하지만 이렇게 적절한 때에 폭탄을 투하하였으니 마음이 흔들리는 것 아닌가요?”
“그런 것 같네요.”
“그러니까 승부사라고 하는 거죠.”
그녀는 싱긋 웃었다.
하성도 나름대로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연애를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그러니까 하성은 유서화에게 한 방 먹은 격이었다.
하성은 개발 팀에 이르고 있었다.
개발 팀에서는 한창 게임이 개발되고 있는 중이었다.
게임 캐릭터가 잡혀 갔고 여기저기서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하성이 도착하자 안상덕이 달려왔다.
“사장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별일 없으셨죠?”
“캐릭터들을 모두 잡았습니다. 초기 지도를 그렸고 던전을 디자인했습니다.”
“그런가요?”
“함께 가시죠.”
안상덕은 하성을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왔다.
이곳에는 수많은 종잇조각들이 굴러다녔는데, 안상덕은 정말 일을 하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는 거대한 판을 보여 주었다.
“이것이 지도입니다.”
“꽤 잘 만들었군요.”
대륙 전도가 표시되어 있었다.
망국의 왕세자가 전 대륙을 돌아다니며 마왕의 졸개를 물리치고 주민들을 구원한다는 플롯이었다.
던전에는 수많은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곳을 하나씩 점령하며 던전 주변의 마을들을 구하는 플롯도 마련되어 있었다.
한쪽에는 게임 캐릭터들이 생동감 있게 서 있었다.
“괜찮네요.”
“이렇게 갈까요?”
“그러시죠.”
하성은 그저 구경을 하러 온 것에 불과하였다.
어디까지나 게임 분야에 있어서는 안상덕이 최고였다. 지금까지 안상덕이 제대로 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은 딸의 치료 덕분이었다.
일단 딸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기에 안상덕의 얼굴도 많이 좋아졌다.
하성은 자리에 앉아 안상덕이 내미는 서류들에 사인을 했다.
스스스슥
이 서류는 이대로 개발을 진행하겠다는 확인서임과 동시에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승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성으로서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안상덕은 알아서 과거에 알고 있던 일러스트들과 프로그래머들을 섭외해 왔다. 그리고 그들을 기용하여 빠르게 게임을 구축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라면 하성이 해야 할 일을 대신 처리해 주는 것이라 말할 수 있었다.
하성은 그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기로 했다.
“그리고 SL제약을 인수했습니다.”
“뭐라고요!”
안상덕은 놀람을 드러냈다.
설마 하니 하성이 SL제약을 정말로 인수할 것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따님의 치료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시도를 할 것이니까요.”
“가, 감사합니다.”
안상덕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감사를 하성에게 느끼고 있었다.
물론 SL제약을 인수한 것이 안상덕 때문은 아니었지만 그가 계기가 된 것은 확실했다.
“회사 차원에서 지원이 들어갈 겁니다.”
“예, 사장님!”
안상덕은 하성의 호의를 거절할 입장이 아니었다.
“다만.”
“예?”
안상덕은 약간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에 조건을 단다고 해도 안상덕은 거부할 수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하성도 본성이 그리 악하지는 않았다.
“열심히 해 주세요.”
“무,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열심히 하고 있던 안상덕이었다.
하성이 보기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으며 게임의 퀄리티도 상당했다. 출시와 동시에 돌풍을 이어 나갈 것이 확실했다.
하성이 제시한 게임의 플롯과 시나리오는 미래에도 대박이 나는 작품이었다. 몇 년 앞으로 거슬러 올라오기는 하였지만, 오히려 안상덕은 게임의 퀄리티를 더욱 살려 냈다. 충분히 유저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하성은 사장실에 들러 몇 가지 서류에 사인을 한 후에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이동을 하기로 하였다.
모바일 회사 내부에서는 게임의 개발이 바쁘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다른 곳에서는 비밀스럽게 땅굴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오후가 되자 백호가 깨어나 출근을 하였는데, 그는 하성의 앞에서 안내를 하고 있었다.
“백호, 괜찮나요?”
“괜찮습니다.”
“조금 더 잠을 자고 나오시지 그래요?”
“충분히 잤거든요.”
백호의 신색은 많이 회복이 되어 있었지만, 완전히 회복을 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기어코 회사에 나온 것이었다.
그들은 회사 외곽지에 이르렀는데, 주변에 CCTV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창고 안으로 들어간다.
이곳에서는 공사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최대한 빨리 팠지만, 역시나 여기서 나오는 흙이 문제였습니다. 조심스럽게 운반해서 나가는 데 한계가 있어 조금 늦었습니다.”
저벅저벅.
하성은 땅굴을 걷고 있었다.
땅굴을 잘 만들 필요는 없다. 그저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폭이면 되었다. 그래도 신경을 썼는지, 세 명은 충분히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의 통로였다.
땅굴은 끝부분에 이르렀는데, 백호가 지도를 폈다.
촤악!
“대략 이 부근입니다.”
“거의 다 왔군요.”
“맞습니다. 내일 정도면 발굴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드디어 네 번째 조각이네요.”
“좀 더 빠르게 팔 수 있었는데, 죄송합니다.”
“아니요, 이 정도면 빠른 것이죠. 그리고 다섯 번째 조각에 대한 단서도 없는데 급하게 서두를 것도 없어요.”
“그건 그렇지만요.”
하성은 땅굴을 빠져나왔다.
이번 일은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하는 일이다. 가능하면 적들이 알지 못하게 발굴을 해야 했다. 백호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내일 결행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하성은 바로 승인을 했다.
백호가 조심스러워하는 것은 네 번째 조각을 자신이 직접 발굴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디까지나 그 조각은 하성의 소유여야 했다.
“저는 백호를 믿습니다.”
“주인님…….”
“혹시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 대비를 하도록 하세요.”
“그리하겠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는 일을 끝낸 것 같았다.
엔터테인먼트와 모바일의 일을 처리했다. SL제약의 인수도 순조로웠다. 다만 레이트 인수에 대한 건은 어찌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후우.”
하성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에 대한 건은 나중에 처리를 해도 충분할 것이다.
하성은 차에 올라탔다.
“이제 학교에 가도록 하죠.”
“학교에요?”
“할 일은 다 했으니까요.”
“그렇군요.”
하성은 회사를 운영하지만, 어디까지나 본분은 학생이었다.
최소한 학교는 졸업해야 했기에 나가 보아야 하는 것이다.
하성은 오랜만에 학교에 도착하였다.
도착하니 거의 2시였는데, 몇 시간 후에는 하교를 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결석은 아니었기에 오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왔구나!”
유나가 하성을 반겼다.
“어라? 학교에 와 있었어?”
“네가 온다고 했으니까.”
유나는 아무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속삭였다.
이제 그녀는 스타였고 괜히 하성과의 친분을 과시한다면 여러 가지 구설수에 휘말릴 수도 있었다. 그 때문에 조심을 하는 것이다.
유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보고 싶었어.”
“어……. 어?”
“네가 없으니까 버팀목이 없더라고. 그래서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
그녀는 해맑게 웃고 있었지만, 하성으로서는 매우 부담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유나가 하성에게 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위험하다.’
하성은 유나를 밀어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녀가 가까이 접근을 하면 막아 내야 했다.
오히려 그녀를 밀어내야 했지 유나에게 말려들 수는 없었다. 하성은 화제를 전환했다.
“콘서트 준비는 잘되고 있어?”
“그렇기는 한데 조금 떨려.”
“잘될 거야.”
하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나는 무대 위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충분히 잘 해낼 것이다.
“티켓 판매가 벌써 끝났다면서?”
“그러게……. 발매가 되자마자 매진이라는데.”
“잘됐네.”
“부담돼.”
그녀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역시나 유나는 아직 때가 묻지 않았다. 순수함 그 자체였던 것이다. 하지만 하성은 그런 유나가 좋았다.
“콘서트에 갈게.”
“고마워.”
하성은 기지개를 켰다. 지금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죽을 뻔했고 아버지의 유산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큰 것은 바로 레이트의 주식 40%를 보유하게 된 것이다.
아직 이것은 극비 사안이었다.
하성이 레이트의 주식을 그렇게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외부로 알려진다면 여러 가지 일에 휘말릴 수도 있었다.
최소한 레이트의 경영권을 가지고 오기 전까지는 극비를 유지해야 했다.
하성은 천천히 잠이 들었다.
오히려 학교에 오니 편한 느낌이었다.
몇 시간을 잤는지 모른다. 누군가가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으음…….”
“종례 끝났어.”
“벌써 그렇게 됐나?”
하성은 하품을 하였다.
지금까지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터지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 편하게 쉴 수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오늘 할 일을 거의 처리했기에 쉴 수 있는 것이었다. 내일부터는 다시 바빠질 것이다.
“누가 왔는데?”
오문식이 하성을 찾아왔다. 놈은 여전히 하성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대면하는 것 자체를 꺼려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볼일이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서 있다는 느낌이었다.
“할 말이 있다.”
“해 봐.”
하성은 가방을 싸고 있었다.
학교에서 한 일이라고는 그저 잠을 잔 것뿐이었지만 벌써 하교할 때가 된 것이다.
“내일 시간 있겠지?”
“내일?”
내일은 토요일이었다.
주말이었지만, 아직 학교는 토요일에도 수업을 했다. 회사도 오전 근무는 했기 때문에 당연히 활동을 하는 날이다.
“날이 잡혔냐?”
“그래, 내일은 꼭 나와야 한다.”
“걱정 마라.”
“어렵게 끌어모았으니까.”
하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이 동대문구 일진들과 결전이었다.
하성은 이번 일을 겪으면서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강해지지 않으면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 없었다.
지금이야 백호를 비롯하여 치우가 하성을 보호해 주고 있었지만, 위험에 처할 경우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실력이었다.
실력을 배양하기 위하여 수련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 하성의 실력으로는 치우와 직접적인 대련은 할 수 없었다. 대련을 한다고 해도 치우의 단원들이 한참 봐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서 일진들과 격돌하는 것이 가장 좋은 대안이었다.
“알겠다. 내일 보자.”
“약속 시간은 2시다. 양재동에서 보기로 했으니까 공원으로 오면 된다.”
“그래.”
“꼭 와라!”
오문식은 그렇게 말을 덧붙였다.
하성은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만든 싸움이었고 피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후우우웅!
하성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긴 하루가 끝났다.
내일도 중요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지만, 최소한 오늘만큼은 편하게 쉴 수 있을 것이었다.
하성은 윤다희와 헤어졌다.
그녀의 집 앞까지 하성이 데려다주었다.
“내일 뵐게요.”
“그래요.”
문득 하성은 그녀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괜히 윤다희를 끌어들여 고생을 시킨 느낌이었다. 미국에 윤다희를 데려가지 않았다면 그런 모진 고초는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뭐가요?”
“미국에서 목숨을 걸게 만든 거요.”
“별말씀을 다 하세요.”
“만약 이번 일로 회사에 대한 재직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고 해도…….”
“그럴 일 없어요.”
“그렇다면 감사하고요.”
하성은 정말로 그녀에게 고마워하였다.
만약 윤다희가 퇴사를 한다고 해도 잡을 생각은 없었다. 하성과 함께하는 것이 너무 험난한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다희는 전혀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성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저녁 즈음에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씻고 나오자 저녁이 준비되었는데, 가능하면 하성은 할아버지와 함께 저녁 식사는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수련도 식사 후에 시작되었다.
“오늘 고생했다.”
“아닙니다, 할아버지.”
달그락달그락.
식사가 시작되었고 가볍게 와인도 곁들여졌다.
할아버지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역시 레이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성은 할아버지에게 한참이나 인터넷 시장의 활성화에 대하여 피력했다. 물론 임태식도 하성과 비슷한 생각이었다.
“네 말대로 레이트는 충분히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인터넷 업계 자체가 엄청난 파급력을 갖게 되겠지. 그건 부정할 수 없다.”
“저와 같은 생각이라 다행입니다.”
“그러니 더욱 묻지 않을 수가 없구나.”
“무엇을 말인가요?”
“네 장인에게 도움을 청하겠느냐?”
“그건…….”
“충분히 생각을 했으리라고 본다.”
하성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결정했습니다.”
“결론은 무엇이냐?”
하성의 입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