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ss returns RAW novel - Chapter 4
3. 등교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혹시라도 놈들이 이 부근에 창고를 얻은 걸까.
단연컨대 그럴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하필이면 수원창고에, 그것도 H열 부근을 서성거리고 있다는 것은 아버지의 뒤를 추적하였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지독한 놈들.’
하성은 치를 떨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놈들이 H열이라는 것을 확신하지 못했고 수백 개의 창고를 서성거리며 흔적을 찾고 있다는 것이었다.
관리자에게 돈을 먹이고 살피는 중인 것 같았지만, 그래도 창고는 열지 못했다. 거의 은행금고를 방불케 하는 수준이었으니 연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기다렸다가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이런 문제는 자중을 해야 한다.
하성은 물러나야 할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여기서 하성이 나타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이쯤에서 물러나는 것이 상책이었다.
하성은 수원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고속버스에 몸을 싣는다.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하성은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하성은 잠자리에 들기 위해 침대에 누웠다.
오늘 수련도 역시나 지옥이나 다름이 없었다.
어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보다 자유롭게 손질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발전이라 할만 했다.
잠을 자야 내일 학교에 갈 것이지만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는 오늘 있었던 일을 상기한다.
이제 어느 정도는 신사동파와 일심파가 신화그룹 내부에서 암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한데 도대체 수원 창고에 빌어먹을 원수 놈이 나타난 것은 어찌 된 영문인지 아직도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분명히 조심스럽게 행동했을 것이다.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남겼고 그것을 통해 아버지와의 비밀장소를 파헤쳤다. 그렇게 단서와 열쇠를 얻어 수원창고로 향했는데 그곳에 유한백이 나타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놈들의 정보력이 상상을 뛰어 넘는 것이지.”
하성은 한숨을 내 쉬었다.
어쩌면 하성은 터무니없는 적과 대적을 하려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는 인생의 목표를 복수와 신화그룹의 발전으로 세웠다.
죽음 직전에 얼마나 많은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조금만 더 일찍 정신을 차렸더라면 어땠을까. 조금 더 노력을 했다면 미래는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이제 하성은 과거로 돌아와 일찍 정신을 차렸고 노력을 하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미래도 바뀔 수 있지 않을까.
다음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운동을 하였다.
오늘은 등교를 하는 날이었다.
어제 많은 생각을 하느라 잠을 설쳤지만, 학교는 가야 한다.
하성은 교복을 갖춰 입었다.
거울에 그의 모습이 비춰져 있었는데, 역시나 옷걸이가 좋지 않았다. 삐쩍 말라 있었고 더벅머리에 안경까지 쓰고 있었으니 그리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머리라도 쳐 버릴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이사회까지 며칠 남지도 않았는데 괜히 변화를 주고 싶지가 않았다.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가능하면 지금은 자중을 하는 편이 나았다. 변화를 하거나 날뛰는 것은 회사를 받고 난 후에 해도 충분했다.
그는 집을 나와 회사차 앞에 이르렀다.
“타십시오, 도련님!”
‘전라도 망치인가?’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아마 맞는 것 같았다.
그는 하성의 전속기사다.
앞으로 며칠 동안은 평소와 다름없는 나날을 보내야 할 것이었다. 재수 없게 하성이 회사를 받기도 전에 신사동이나 일심에서 움직이면 엔터테인먼트가 허공에 뜨거나 매각될 수도 있었다.
가능하다면 갑작스럽게 하성이 등장해야 한다. 그러니 앞으로 며칠은 죽은 듯이 지내야 할 것이었다.
“가시죠.”
“예, 도련님.”
하성은 창을 열어 밖을 바라본다.
지금은 2001년 가을.
내년이면 2002월드컵이 시작되고 신화그룹 사업전반에 큰 폭풍이 몰아닥칠 것이다. 임태식 회장은 올해부터 순환출자구조의 고리를 끊기 위하여 자금을 끌어 모으고 자사주 매입에 들어간다.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으니 가능하다면 하성이 빨리 성장을 하여 할아버지를 도와야 할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죽기 전에 모든 것을 물려받는다.
찢어지지 않은 신화그룹을 물려받아도 임가를 노리는 흑막을 제거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그러니 최대한 힘을 키워야 한다.
“이쯤에서 내려주세요.”
“교문까지 가지 않으십니까?”
“그러고 싶지는 않습니다.”
학교에서 하성은 만년 왕따였지만 괴롭히기 좋은 부잣집 아들로 소문이 나 있었다. 고급차를 타고 다니면서 조직원들이 한 번도 학교를 건들지 않았으니 그리 소문이 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오늘부터는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걸어갈 생각이었다.
“그럼 다녀오십시오!”
“저녁에 뵙죠.”
하성은 등교를 하면서 한 가지 걱정이 들었다.
분명히 신화파에서 신사동파와 일심파가 떨어져 나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하성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었다.
하성이 다니는 대화고교에도 알게 모르게 꼬마들이 짱박혀 있을 것이었다.
꼬마들이란 이제 막 조직생활을 시작하는 놈들로 18살이 되면 신규조직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조직에서는 18세라는 나이를 꽤나 중시한다. 18살이라면 성인이라고 보는 것이다. 동시에 학교생활을 할 수도 있었으므로 하성을 감시하기 위한 놈이 있을 수도 있었다. 꽤나 큰 확률로 대화고교 일진일 가능성이 높다.
신화그룹 일가에 대해서는 혀를 내 두를 정도의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놈들이었으므로 며칠은 분명히 몸을 사릴 필요가 있다. 최소한 회사를 받기 전까지는.
전생에서는 아무런 생각 없이 왕따 생활을 견디며 살았을지 모르겠지만 보스로 15년 정도 살아왔던 그가 그 생활을 견딜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래봤자 3일이지.’
이전에는 평소와 같은 삶이 지금은 지옥일 수도 있다.
엔터테인먼트를 받고 난 후에는 하나씩 쳐서 복수를 하겠지만 그 전까지는 몸을 움츠리고 최대한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짝짝!
하성은 자신의 뺨을 양 손바닥으로 쳤다.
“그깟 놈들이 때리면 좀 맞아 주어야지. 그 후에 지근지근 밟아주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결심을 하고 나니 마음이 좀 가라앉는다.
그가 내린 곳은 학교 근처 놀이터로, 이곳에서 학교까지 대략 5분 거리다.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보였다.
그 중에서 어깨를 움츠러뜨리고 고개를 숙인 채로 걸어가는 여학생이 보였다.
그녀의 이름은 이유나로, 지금은 그저 하성과 같은 신세였지만 내년에 학교를 자퇴하고 화려하게 변신하여 연예계에 데뷔한다.
한 눈에 보아도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뱅뱅이 안경과 길게 늘어뜨려 얼굴의 반을 덮은 머리카락, 뺨에 난 주근깨 덕분에 답답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소심한 성격까지 더하여 여자 일진계의 빵셔틀로 불리는 존재다.
예전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보니 동병상련의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내가 엔터테인먼트를 받으면 가장 먼저 연예계로 데뷔시켜야 할 사람이기도 하지.’
“유나야.”
“아아앗!?”
하성이 이유나의 어깨를 짚자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녀가 놀라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전생의 하성도 그랬으니까.
“너, 너는…. 내 짝꿍…….”
“임하성이다. 지금까지 짝꿍인데도 관계가 좀 소홀했었지?”
“왜, 웬일이야?”
“함께 등교를 하자.”
“그, 그래.”
이유나는 몸을 새우처럼 구부리고 있었다.
언제 어디에서 그녀를 괴롭힐지 알 수 없었으므로 이렇게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너는 왜 그런 뱅뱅이 안경을 쓰고 다니는 거야?”
“그냥…….”
“마음이 편해서?”
“그, 그런 것도 있지. 왜, 왠지 나를 가려주는 것 같거든.”
“그 안경만 벗고 머리만 어떻게 하면 참 예쁠 텐데 말이야. 그렇게 할 생각은 없어?”
화악!
그녀의 얼굴이 확 붉어진다.
하성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작업멘트로 비춰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성은 나름대로 스카우트(?) 작업을 하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받아들이기 나름이었다.
“왜 예쁜 얼굴을 가리고 다녀?”
“예, 예쁘다니…….”
그녀는 얼굴을 푹 숙인 채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하성은 끈질기게 그녀를 설득하려 하였다.
지금부터라도 친해져서 그녀의 마음을 열게 하고 그녀를 연예계로 데뷔를 시켜야 한다.
지금은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이유나는 천상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평소에 학교가 끝나면 오락실 노래방에 들러 노래를 부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고 천성적으로 감각이 탁월하여 데뷔를 하자마자 음반 50만장을 팔아 치우는 기염을 토한다.
그런 보물이 눈앞에 있었는데 취하지 않으면 그것도 실례다.
“여어!”
한창 분위기가 좋을 때 그들의 앞을 한 무리의 학생들이 가로 막는다.
이유나는 하성의 파상공세에 고개를 숙이느라 그들을 보지 못했고 하성은 작업을 하기에 한창이었기에 못 본 것이다.
그들은 일진들이었다.
대화고교 남녀일진들은 함께 몰려다니기도 하였는데 그러면서 온갖 못된 짓들을 일삼았다.
오늘은 대화고교의 빵셔틀들인 하성과 이유나가 함께 등교를 하고 있었으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좋은 먹잇감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성과 같은 반 일진 장백기가 그의 머리통을 후려 쳤다.
퍼억!
“크윽!”
“이 새끼들이, 연애 하냐?”
“…….”
하성은 고개를 들어 장백기를 노려보았다.
그야말로 죽일 듯이 노려보았는데, 하성이 내뿜는 살기에 장백기가 한 발 물러나고 말았다.
하성이 자폐증을 앓고 있던 시절에는 그저 힘없는 좀비처럼 보였지만, 회사가 조각나고 제정신을 차린 이후에는 호랑이 같은 기세를 갖게 되었다. 범에게서 개가 태어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
임가의 피를 물려받아 제왕의 기운까지 타고 났으니 그 카리스마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 더하여 그는 아수라장을 겪어왔다. 대규모 전쟁만 수십 번에 달했으니 그러한 전쟁을 겪으며 정신은 충분히 단련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하성은 순간적으로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면 안 되지.’
겨우 며칠이었다.
엔터테인먼트를 받기 며칠만 참으면 되는 것이었는데 함부로 기세를 뿜어낸 것이었다.
장백기가 뒤로 물러나자 함께 온 일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장백기 이 새끼, 임하성에게 쫀거 아니야?”
“그러게 말이야. 장백기도 알고 보면 좆밥이었네.”
“크윽! 아니야!”
“아니라고? 그럼 증명을 해 보아야지.”
장백기가 주먹을 휘둘렀다.
‘보이는군.’
하성이 눈을 빛냈다.
퍽퍽퍽퍽!
하성은 요령껏 얻어맞고 있었다.
사실, 맞는 것에는 이골이 났다. 다른 것은 몰라도 맷집 하나는 튼튼했으니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모진 세월을 겪어왔고 수도 없이 실전경험을 쌓았다. 정신에 비해 육체가 쫓아가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지만 겨우 이런 애들에게 당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는 장백기의 주먹이 모두 보였다.
하성은 몸을 조금씩 틀어 주먹을 약간 흘렸다.
겉으로는 맞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얼굴을 가드하고 숙이며 요령껏 흘린 덕분에 몸에는 별다른 타격이 없었다.
“허억! 허억!”
장백기가 숨을 몰아쉬었다.
하성이 얼굴을 들었을 때였다.
휘이이익!
퍼어어억!
“아아아악!”
하성의 얼굴에 오문식의 발차기가 날아왔다.
입안이 터져 피가 후두둑 쏟아진다.
오문식은 학생부 한국 킥복싱 챔피언으로, 서울 동대문구를 거의 장악하다시피 하였다. 건달로 들어왔다고 해도 대성할 놈이었다. 실제로 내년에는 신화파의 꼬마로 들어와 눈부신 승진을 하기도 하는 입지전적의 인간이다.
하성이 방심을 하다가 얻어맞았고 몸에 힘이 쭉 풀렸다.
“감히 어디다가 눈을 부라려? 가서 20만 원 뽑아 와라. 그리고 우리들이 뭘 먹을지는 알고 있지?”
“으으으으.”
“그럼 사와라.”
일진들이 몸을 돌렸다.
급하게 이유나가 그의 몸을 살폈다.
“괘, 괜찮아?”
으드드득!
“가뜩이나 이 몸의 실전경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앞으로 재밌겠군.”
***
일단 하성은 오문식을 살생부 리스트에 올려 두었다.
어쩌면 학교에서 양아치들이 설치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무예수련이라는 것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실전경험이 그 만큼이나 중요했다.
하성의 정신은 분명히 수도 없는 실전경험을 거쳐 왔지만 지금의 육체는 아니었다. 육체가 본능적의로 기억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으므로 학교 양아치들을 상대로 수련을 쌓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보았다.
물론 수련을 하는 것은 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양아치에 한한 것이었고 그를 괴롭힌 인간들은 학교를 다니는 내내 꼬붕으로 부려 먹을 작정이었다.
촤아아아!
하성은 수돗가에서 피를 닦아 내었다.
입안이 터져서 피가 아직까지 흐르고 있었다.
이제야 조금씩 진정이 되는 느낌이다. 아까는 위험할 뻔했다. 이성을 잃고 달려들 뻔 하였으니 정말 초인적인 인내로 참은 것이었다.
‘정말 간만에 빡돌았다.’
지금까지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은 왜 놈들이 하성을 괴롭히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왕따를 시키고 학창시절을 보내면 마음이 편할까 싶었다.
‘단순히 자신들의 편의 때문에 그런가?’
하성에게는 3년 동안 놈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기억이 있었다. 하루에 적게는 몇 만 원, 많게는 수 십 만원씩 뜯어갔다.
다행히 하성의 계좌에는 잔고가 넉넉한 편이어서 다 감당할 수 있었다. 만약 다른 학생이었다면 절대 그 많은 돈을 갖다 바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성아, 괜찮아?”
“괜찮아.”
“그래도 아직도 피가…….”
“별거 아니야.”
하성은 씻고 나서도 흐르는 피를 대충 닦아 냈다.
“아, 아까는 놀랐어.”
“뭐가?”
“네가 장백기를 죽이는 줄 알고…….”
“마음으로야 수백 번씩 찢어 죽이지. 그런데 말이야. 복수라는 것은 때가 있는 거야. 아무런 준비도 없는 복수는 역으로 당하게 되어 있지. 네 복수도 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나는…….”
“그대로 살게 두지는 않을 테니까.”
하성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매점으로 향했다.
일단은 설치게 둔다.
지금이야 몸을 사려야 했으므로 어쩔 수 없었지만, 때가 되면 하나씩 쳐서 격파를 해 버릴 것이다.
그러다 맞으면 또 하나씩 격파를 하면 된다.
독기와 끈질김은 하성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무기였다.
지이잉!
오문식은 조직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그는 한국 최고의 조직인 신화파에 몸담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연줄도 있었다.
다만 신화파에서는 그에게 한 가지 지령을 내렸는데, 그것은 바로 이 학교에 다니는 임하성을 감시하라는 것이었다.
전화를 걸어온 남자는 구 일심파의 중간 간부인 이두일이다.
오문식은 신화파에 들어가려는 꼬마답게 조직이 어떤 식으로 성립되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내부에서는 신화파, 신사동파, 일심파가 끊임없이 견제를 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었다.
처음에 놀란 것은 임하성이 조직의 후계자라는 것이었는데, 그 때문에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임하성을 괴롭히다 잘못되면 이두식이 모두 커버를 쳐 주기로 하였기에 이런 식으로 날뛸 수 있었던 것이다.
“접니다, 형님.”
-오늘이 개학이었나?
“그렇습니다, 형님.”
-그 새끼는 뭐 하고 있냐?
“평소와 같죠.”
-평소라면?
“오는 길에 쳐 맞고 매점에 빵 사러 갔습니다.”
-뭐 특별한 것은 없고?
“특별한 것이라…….”
특별한 일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놈이 일진을 한 번 노려보고 한 발 물러나게 했다는 것이 굳이 보고를 해야 할 일인가 싶었다.
“없습니다.”
-잘 감시하도록 해라. 이번 학기 끝나면 정식으로 조직에 입문시켜 주마.
“감사합니다!”
-명심하도록. 놈이 살고 싶지 않게 괴롭혀야 한다.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오문식은 생각에 잠긴다.
오늘은 어떤 식으로 임하성을 괴롭혀야 할까. 어떻게 해야 놈이 자살하고 싶어질까 고민을 하는 것이다.
하성은 꿈을 꾸고 있었다. 지금의 기억은 신화파와 신사동파, 일심파가 동맹을 맺고 쳐들어 왔었던 2010년의 편린이었다. 그는 과거로 회귀를 하였지만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던 덕에 현재와 뒤섞였고 꿈의 형태로 그 당시의 일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진득진득한 피가 이마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으며 사방에서는 적들이 쇄도하고 있었다.
온몸에 칼자국이 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전라도 망치가 급하게 하성에게 날아오는 칼을 쳐 낸다.
“큰형님! 피하십시오!”
“그럴 수는 없다! 끝까지 함께 할 것이다!”
“미쳤소!? 끝까지 밀렸지 않소. 이대로라면 형님도 죽을 거외다!”
“닥쳐라!”
짜악!
“너나 닥쳐라!”
그들은 휴게실로 들어와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 중이었다.
신사동파 이남길이 도끼로 문을 찍어대고 있었다. 곧 있으면 문짝이 날아갈 것이고 수십에 이르는 적의 정예들이 우르르 밀고 들어올 것이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은 전투로 다져진 하성이었지만 수십 명을 한꺼번에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망치는 하성의 멱살을 쥐었다.
“네가 살아야 식구들이 산다! 너는 내 가족들까지 책임을 져 주어야겠다!”
“망치…….”
“보스의 자리란 그런 거다. 동생들은 물론이고 그 가족까지 지키기로 맹세하지 않았더냐! 빨리 가라!”
“삼촌!”
“빨리 꺼지라니까!”
콰아앙!
문짝이 박살나고 있었다.
하성은 거의 등이 떠밀려지다시피 하여 그 자리를 벗어났다.
힐끔 뒤를 돌아보니 망치가 수도 없이 칼을 맞은 채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와중에서 이쪽으로 달려오던 조직원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고 등에 칼이 꽂힌 채로 절명하였다.
“망치 삼촌, 미안합니다.”
하성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지하통로를 벗어나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 망치의 가족들을 돌봐 주어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망치의 가족들까지 하성이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다.
지하통로는 어딘가에서 막혀 있었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본사건물에는 밖으로 통하는 여러 가지 통로가 존재하였다. 통로가 갑자기 막힌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주변으로 어둠이 내렸으며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저벅 저벅
하성은 피투성이가 된 채로 서 있는 여자를 발견하고 절규했다.
“어머니!”
입에서는 피가 흘렀으며 옷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들…….”
“어머니! 가지 마세요! 어머니!”
“복수를 부탁…….”
“어머니!! 허억!”
하성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눈을 떠보니 땀이 흥건하였다.
분명이 그것은 꿈이었다. 그 당시에 겪었던 일이 꿈의 형태로 표출되었다. 어머니가 나온 것은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하성이 소리를 지르며 깨어나자 반 학생들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일진들은 ‘미친 새끼’를 연발했다.
“임하성! 수업시간에 존 것도 모자라서 잠꼬대까지 하냐!? 복도에 서 있어!”
“예…….”
복도로 나온 하성은 꿈에 대해 생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것을 계시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오늘의 꿈으로 확실해졌다. 어머니를 찔러 죽인 자들도 함께 복수를 해야 한다고 말이다.
헌데 이 감각은 무엇일까.
“아니겠지. 그건 아닐 거야.”
96년, 재범파와의 항쟁을 신화파 내 계파인 신사동이나 일심이 도왔다는 생각이 불현듯이 들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하성은 재범파와의 항쟁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는 신화파 내부 계파와는 상관이 없다고 여겨왔다.
헌데 그들의 뒤에 거대한 세력이 버티고 있다고 확신을 하자 이상하게도 몇 가지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듯 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마지막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 중 끼어 있는 수업시간.
오문식은 어떻게 임하성을 괴롭혀야 할까 고심을 하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일진이 왕따를 괴롭힌다는 것이 아니었다.
오문식은 지령을 받았고 놈을 자살직전까지 몰아넣어야 했다.
임하성은 자폐증으로 유명하였고 전교생이 가까이 하기를 꺼린다. 그 때문에 예전부터 그렇게도 하성을 괴롭혔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아픔을 모두 담고 있는 그 쓸쓸한 느낌에 찜찜함을 느꼈고 자신에게까지 전염되었던 느낌을 떨치기 위해 괴롭혔다.
헌데 이번에는 조금 더 괴롭힘을 심화시킬 필요성이 있었다. 그래야만 신화파 정예부대로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이었다.
이두일이 뒤를 봐 준다고 했으니 죽이지만 않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었다.
오문식은 임하성의 뒤통수를 후려 쳤다.
퍼억!
“임하성!”
“…….”
오문식은 임하성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놈은 마치 백치가 된 것처럼 멍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이 새끼가, 연기하나?’
“내가 말했는데 대꾸도 안 하지?”
“왜 그러는데?”
“바닥을 기면서 멍멍이 소리를 한 번 내봐라.”
임하성의 얼굴이 묘하게 꿈틀거렸다.
어떻게 하면 수치를 줄 수 있을까 생각을 하다가 좋은 수를 생각해 냈다. 개 짖는 소리를 내게 하면서 올라타서 말처럼 이용하고 걷어 차 버리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때, 임하성이 입을 열었다.
“차라리 가랑이를 기면서 개 소리를 내면 안 될까?”
“으, 응?”
임하성은 순순히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괴롭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었는데, 갑자기 가랑이를 기겠다고 말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학생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괴롭히는 것도 정도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임하성이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려 할 때였다.
“어이쿠!”
꽈직!
“끄아아아아악!”
놈은 갑자기 넘어지며 팔꿈치로 낭심을 가격하였던 것이다.
오문식은 비명을 지르며 날아간다.
그야말로 엄청난 고통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임하성은 구석으로 물러가 몸을 덜덜 떨었다.
“미, 미안해!”
“으, 응급차…….”
오문식은 그대로 기절을 해 버리고 말았다.
그 시각, 하성은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아무리 이틀이라고는 하지만 그 시간 동안 괴롭힘을 참고 있는 것이 성미에 맞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은연자중을 하라고 했고 나름대로 실수를 빙자하여 불알 한쪽을 박살내 버린 것이었다.
단순히 실수로 팔꿈치로 낭심을 찍어 버린 것 같았지만 여기에는 사혈의 묘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아주 적은 힘으로도 강력한 파괴력을 낼 수 있었고 찍어 비틀며 낭심을 완전히 뭉개버렸다.
아마도 놈의 한쪽 불알은 앞으로 기능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제야 속이 좀 시원했다.
학교로 응급차가 도착했고 오문식은 그대로 실려 나갔다. 하성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몸을 덜덜 떨었는데, 누구도 그가 가해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딩동댕동!
마지막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침에 하성의 눈빛에 기겁하여 한 발 물러났던 장백기가 하성을 바라보며 검지손가락으로 목을 그었다.
하성은 고개를 푹 숙였지만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목을 긋는 시늉을 한다고 해도 일개 학생에 불과한 장백기가 횟칼로 경동맥을 그어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단순히 조금 쥐어 팬다는 신호를 보냈을 뿐이었다.
평소, 그렇게 자신을 괴롭혔던 오문식의 불알 한쪽을 작살냈으니 그것으로 복수는 어느 정도 한 셈이었다.
회사를 받고 난 후에는 매일 샌드백 같이 두드릴 예정이었지만, 지금은 장백기가 때리면 맞아 줄 용의가 있었다.
하성은 책상에 엎드렸다.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이유나가 하성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왜 그러는데?”
하성이 잠시 그녀 쪽을 돌아보았다.
“서, 설마 일부러…….”
“복수에는 다 때가 있다고 했잖아. 그게 단순히 운으로 보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