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ss returns RAW novel - Chapter 57
55. 소풍
“아직 PC 게임으로의 진출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군요.”
“왜죠? 온라인 게임은 몇 년 사이에 두드러지게 성장을 하고 있어요. 모바일 게임으로 이만한 성과를 냈다면 마땅히 온라인 게임으로는 엄청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해도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습니다. 모바일 게임은 그래도 어설픈 부분을 감수하고 넘어갈 수 있죠. 아직까지 발달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온라인 게임 시장은 다릅니다.”
“그래도 단칼에 자를 수는 없다고 봐요. 회장님도 게임을 해 보셨잖아요?”
“확실히 중독성은 있죠.”
“제가 밤을 새울 정도라면 중독 수준이 아니죠.”
그녀는 ‘파멸의 왕좌’에 대한 게임성을 생각하며 혀를 내둘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히 그녀의 말이 맞았다. 실로 어마어마할 정도의 파급력을 가진 게임성은 충분히 유저들에게 어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설프게 PC 게임 시장에 진출을 했다가는 막대한 자금만 갉아먹고 실패할 것이다.
하성은 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게임의 차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 둘의 차이가 거의 사라지게 되는 2017년 무렵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퀄리티에서부터 차이가 극명하였다.
“이 문제는 회장님이 출근하신 후에 논의를 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방법을 생각하고 있을 테니 회장님께서도 마냥 거절만 하지 마시고 충분히 생각을 해 주세요. 그냥 모바일 게임에 묻히기는 아까운 게임성이니까요.”
“알겠습니다.”
하성으로서는 탐탁지가 않았지만, 대놓고 그녀의 말을 무시하기는 힘들었다.
윤다희는 한빛그룹의 구조본부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녀의 사업 수완에 대해서는 인정할 만하였기에 그런 자리를 준 것이다.
하지만 모바일 게임을 기반으로 PC 게임이 탄생하였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성공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차량은 교문 앞에 도착하였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멀리서 내려 걸어왔지만, 이제는 거리낌이 없었다. 하성의 행보를 숨길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으니 차라리 대놓고 행동을 하는 것이 나았다.
“그럼 살펴가세요.”
“오후에 뵙도록 하죠.”
평화로운 아침이다.
학생들은 저마다 무리를 지어 등교를 하고 있었고 여러 가지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이 바깥은 전쟁터였지만 최소한 학교에서만큼은 그런 전쟁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웅성웅성.
“임하성이다.”
“파멸의 왕좌에 대해 물어보면 알려 줄까?”
“아서라. 괜히 험한 꼴 당하지 말고.”
“그래도 궁금한걸. 다음 업데이트는 무엇인지 말이야.”
학생들은 소곤거리고 있었지만, 극도로 오감이 발달해 있는 하성은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여기저기 파멸의 왕좌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은 분명히 파멸의 왕좌를 플레이했을 것이다. 그들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은 분명 모바일 게임에 심취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는 등교를 하면서도 파멸의 왕좌를 플레이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하성아!”
학생들은 함부로 그에게 접근하지 못하였는데, 그레이스가 웃으며 그의 앞을 가로막는다.
“그래.”
“무슨 반응이 그렇게 미적지근해? 이런 미녀가 말을 걸어 주었는데 기쁘지가 않아?”
“미안하지만 너는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기쁘지는 않네.”
“정말 특이해. 특이하단 말이야.”
“나는 유나가 더 예쁜데?”
“쳇, 그 계집애는…….”
그레이스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들은 동양과 서양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미녀들이었다. 어느 누가 아름답다고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그레이스는 게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오디션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번에 한빛 엔터테인먼트에서 오디션을 본다는 소식을 들었어.”
“어제 지시를 내렸거든.”
“나도 참가할 수 있을까?”
“당연하지.”
“정말이야? 어떤 조건 같은 건 없고?”
“실력만 있으면 되는 거지. 연기나 노래, 코미디에 이르기까지 선택지는 다양하니까, 자신 있는 분야에 지원을 하라고.”
“네가 심사 위원이 되면 잘 봐줘.”
“미안하지만 나는 철저하게 실력으로 평가한다.”
“이러기야?”
“클래스메이트라고 봐주는 건 없지.”
“그럼 유나는?”
“유나는 천상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 너도 들었잖아?”
“쳇.”
그레이스는 자존심이 상하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녀와 같이 아름다운 소녀는 극히 드물었다. 살아오면서 아름답다는 말만 듣고 살았을 테니 하성의 반응에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어쨌든 반드시 연예계에 입문하고 말 테니까!”
“열심히 해라.”
그녀는 전의를 불태워 올리지만 미래를 알고 있는 하성으로서는 그녀가 심히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꽤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절망에 허우적거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학교 전체가 게임 열풍이었다.
일간 인터넷 검색어 1위가 ‘파멸의 왕좌’였다. 게다가 언론사에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삽시간에 그에 대한 이야기가 퍼져 나가고 있었다.
하성은 모바일 인터넷에 접속하여 기사를 읽고 있었는데, 눈에 띄는 문구가 있었다.
-‘파멸의 왕좌’, 이대로 해외 진출까지 가는가.
-한국의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일본과 중국, 미국에서도 관심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해외에서도 다운로드가 가능하였고 ‘파멸의 왕좌’를 플레이한 유저들의 입김에 힘입어 해외 진출까지 검토하고 있다.
“해외 진출 검토라니.”
그런 말은 나오지도 않았다.
만약 해외 진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면 윤다희가 보고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꽤 중요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기자들의 추측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하성은 매끈한 턱을 쓰다듬었다.
“그렇다고 해도 신빙성이 없는 것은 아니야. 파멸의 왕좌 정도라면 충분히 해외 진출을 노려봄 직하지.”
“왜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고 있어?”
“유나 왔구나.”
유나는 괘나 피곤한 얼굴로 털썩 주저앉았다.
금방이라도 눈이 감길 기세다.
“그 게임, 장난 아니더라.”
“너도 했구나?”
“회사에서 하도 그 이야기를 들어서 호기심에 접속을 했어. 그런데 몬스터를 한 마리 잡는 순간, 멈출 수가 없더라고.”
“중독성이 있기는 하지. 나도 밤을 새웠거든.”
“큰일이네. 오늘 소풍도 가야 할 텐데.”
“소풍이라고?”
“몰랐어?”
하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전달받은 기억이 없었다.
“며칠 전에 안내문이 나왔는데…….”
“하아, 잠자기는 글렀네.”
“그러게 말이야.”
하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오늘은 편하게 쉬지 못하고 이리저리 끌려다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소풍이라고는 해도 곧 있으면 고3이었기에 근처 공원에 잠깐 들르는 것이 전부였다. 그 이상은 학업에 지장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 근처로 소풍을 갈 것이라면 도대체 왜 가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학생들은 볼멘소리를 흘렸다.
“선생님! 그냥 가서 공부를 하면 안 되나요?”
“그럴 수가 없다. 교육청 지침이라서 말이야.”
“그럼 빨리 해치우고 와요!”
“그래, 그러자.”
억지로 학생들을 끌고 가는 담임도 썩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드디어 주변 생태 공원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대충 간식을 먹은 후에 작은 이벤트를 하고 나면 학교로 복귀를 하는 것이다.
하성은 물론이고 많은 학생들이 하품을 했다.
담임이 학생들을 한곳에 모았는데, 모두가 귀찮은 기색이 역력하였다. 교육부 방침이라고는 해도 담임조차 귀찮아했다.
“여기서 보물찾기다.”
“하아, 시간 낭비입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두 시간은 버텨야 하거든.”
“하려면 빨리합시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보물을 찾는 학생은 곧바로 귀가다.”
“정말인가요?”
“한 입으로 두말할 것 같냐?”
갑자기 학생들 사이에서 활기가 돌았다.
보물은 총 두 개였기에, 별로 승산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움직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벤치에 앉아 게임이나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하성과 유나는 적당한 벤치를 찾아 그곳에 앉았고 그레이스가 나타나 한쪽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들은 말없이 게임에 몰두하였다.
이미 보물찾기를 포기한 학생들도 많았다. 그 시간에 게임을 하겠다는 것.
하성의 주변으로 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웅성웅성.
“하성아, 정식 오픈은 언제 하냐?”
“아마 다음 주 중에?”
“빨리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마음 놓고 지르지.”
“지르다니? 뭘 질러?”
“몰랐어? 현금 거래가 판을 치고 있는데?”
“아직 베타 테스트인데?”
“그래도 현질할 놈들은 하거든. 며칠이라도 즐겁게 하겠다고 말이야.”
하성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베타 테스트는 겨우 며칠만 오픈을 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게임에 현질을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잡지는 않을 거지?”
“그럴 리가 있나.”
하성은 고개를 저었다.
아이템 거래가 불법은 아니었다. 결국에는 대법원에서도 합법이라고 판결을 내리지만 어디까지나 회사 내규에 따른다는 조건을 붙였다.
지금도 아이템 현금 거래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었다. 게임상의 머니를 사유 재산으로 인정을 해야 하느냐, 하지 말아야 하느냐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성은 게임 머니도 사유 재산이라고 생각했다.
“노가다로 번 돈이니 당연히 재산권이 있지. 나는 현금 거래를 막을 생각이 없다.”
“그럼 대놓고 해도 된다고 하게?”
“그에 대해서는 침묵해야겠지.”
“다른 회사들처럼 말이지?”
학생들이 돌아가며 물었다.
아마 게임이 정식으로 오픈하면 현질을 할 학생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빠르게 강해지고 싶은 것이다.
게임의 원작자인 하성조차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학생들이라고 해서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사실 나도 현질하고 싶은 심정이다.”
“하하하! 정말이냐?”
“그래.”
“너라면 그냥 게임 머니를 찍어 내도 되잖아?”
“그럴 수는 없지. 게임 경제를 망치게 될 거야.”
“그럼 우리는 모두 공정한 거네?”
“그런 셈이지.”
하성은 그렇게 답했다.
아직 오픈도 하지 않은 게임이었기에 추후에도 유저가 이렇게 많을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성은 지금보다는 최소한 유저가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게임 머니 거래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웅성웅성.
학생들이 하성에게 몰려 있을 때, 좌우로 그들이 갈라진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장백기가 걸어오고 있었다.
하성에게는 놈이 꼬붕이었지만, 그래도 장백기는 한 때 학교의 2인자의 자리에 있었다. 그러니 학생들이 한 수 접어주는 것이다.
“꼬붕1호 아니냐. 어쩐 일이야?”
“험험, 게임 머니 관련해서 뭐 좀 물어보려고.”
“뭔데?”
“혹시 게임 머니 중개 사이트는 오픈 안 하냐?”
***
“중개 사이트라고?”
“혹시나 해서.”
하성은 생각에 잠겼다.
왜 지금까지 아이템 중개 사이트를 만들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그리할 수 있다면 미래에는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확신이다.
‘게임 산업의 발전은 매우 빠르게 두드러지겠지. 그에 따라서 게임 머니 중개 사이트도 우후죽순으로 늘어난다.’
전생을 돌이켜 보면 게임 머니나 아이템 중개가 상당한 돈벌이가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현재 게임 머니의 중개 수수료는 5% 수준이다.
대부분의 게임 머니 중개 사이트의 수수료도 그에 맞춰 4~5% 수준을 들락거렸다. 수수료를 4% 정도에 맞추고 출금 수수료로 천 원만 받아도 상당히 짭짤할 것이다.
“계획은 있다.”
“정말이냐?”
웅성웅성.
하성의 말에 학생들은 술렁거렸다.
만약 하성이 중개 사이트를 만든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을 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파멸의 왕좌’를 서비스하면서 연계를 한다면 회원의 숫자도 빠르게 모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었다.
오늘따라 장백기가 밉게 보이지가 않았다. 이런 아이템을 주었으니 칭찬을 해야 마땅한 일이었다.
“오픈하게 되면 추첨으로 마일리지를 적립하는 이벤트를 할 거야. 너희들이 가입을 하면 내가 약간의 월권행위를 하여 적립을 해 줄 수도 있지.”
“오오!”
“단, 비밀이다?”
“당연하지!”
학생들은 그렇게 외쳤다.
하성은 본격적인 구상에 들어갔다.
어떤 식으로 중개를 해야 하는지는 머릿속에 꿰어 차고 있었으니 이 사업은 땅을 짚고 헤엄치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게다가 하성은 이제 중견 기업의 반열에 올라가 있었다. 대기업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지만 신화그룹이 뒤에 버티고 있었으니 안정성 또한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최소한 신화그룹이 망하지는 않을 테니까.
소풍이 끝난 후에 하성은 회사로 돌아가려 하였다.
유나도 학교를 나와 회사로 돌아가려 하였는데, 그레이스가 쫓아왔다.
“너는 왜?”
“조퇴했어.”
“아, 그래.”
세세한 것은 캐묻지 않기로 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그레이스와는 엮이고 싶지가 않았다.
“그리고 너를 쫓아갔으면 해.”
“그건 왜?”
“구경 좀 시켜 주면 안 될까?”
“음…….”
하성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제발 데려가 달라고 불쌍한 눈빛으로 하성을 바라보니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레이스에게 관심은 없었지만, 그 아름다운 외모에는 당해 낼 수가 없다.
유나까지 거들었다.
“구경인데 뭐 어때? 같은 반 친구이기도 하니까 내가 데리고 다닐게.”
“그래 줄 수 있겠어?”
“어렵지 않은 일이지.”
“고마워!”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그레이스는 인사부터 했다. 하성이 유나에게 무르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성은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 사고는 치면 안 된다.”
“그럴게!”
후우우웅!
저 멀리서 하성과 유나를 데리러 오기 위하여 차량이 들어오고 있었다.
고급 세단이 멈춰 서고 문이 열린다.
“타세요, 회장님.”
“오셨군요.”
윤다희가 직접 하성을 데리러 왔다.
차량 안은 매우 넓었는데, 세 명이 타도 넉넉할 정도였다.
그레이스가 가운데 앉았다.
“이 예쁜 아가씨는 누군가요?”
일단 매우 아름다웠기에 윤다희가 그녀에게 관심을 가졌다. 한빛그룹은 엔터테인먼트가 모태였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관심이 가는 윤다희였다.
현재 회사에서는 오디션을 준비하고 있었다. 유나만으로 회사를 이끌어 나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탓이다.
이런 와중에 이렇게 예쁜 소녀가 나타났으니 윤다희의 눈이 뒤집어질 만도 했다.
“반 친구입니다.”
“이햐, 학교에 인물들이 많네요. 유나도 그렇고.”
“그런데 노래와 연기는 영…….”
“흥! 네가 본 것도 아니잖아?”
“척 보면 알아.”
“윤 비서님, 오디션을 미리 보면 안 될까요?”
“오디션을요?”
“부탁해요.”
“아름다운 소녀의 부탁이라면 거절할 수는 없죠.”
“볼 필요도 없을 텐데…….”
결과를 빤히 알고 있는 하성이었기에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회사로 돌아온 윤다희는 임원들을 소집하였다.
그녀가 판단을 하기에, 그레이스는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었다. 일단 외모만으로도 반 이상은 먹고 들어갈 것이기에 오디션을 미리 보고자 했던 것이다.
사람들이 오디션장으로 들어오자 잠시 소란이 일었다.
“천사가 강림을 했네.”
“외모가 빼어나서 어느 정도만 실력이 되면 바로 데뷔를 시켜도 문제가 없겠어.”
“대화고교에 인물이 많군.”
웅성웅성.
다들 그레이스를 좋게 판단했다.
하지만 하성은 동의할 수 없었다. 발 연기나 음치에도 어느 정도가 있는 것이었는데, 그레이스는 전혀 재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레이스는 자신만만이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하하! 자세가 마음에 드는구먼.”
윤제문까지 그녀에게 홀린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레이스의 실력을 보게 된다면 그때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먼저 가창력 테스트다.
“노래는 이선희 씨의 명곡인 ‘나 항상 그대’를 부르겠습니다.”
“거 좋지.”
사람들은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목소리가 유나의 반만 나와 준다고 해도 가수로 데뷔는 확정이다. 어디까지나 외모발이라는 건 무시를 못 하니까.
띠리링!
반주가 나온다.
사람들은 눈을 감았다.
절로 기대를 하게 만드는 그레이스의 아름다움. 그 때문에 목소리도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곧 노래가 시작되었다.
“나 항상 그대를~ 보고파 하는데.”
“크윽!”
“이건 무슨 소리지?”
“음향 장비가 고장이 났나?”
사람들은 뭔가 깬다는 얼굴로 퍼뜩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음향 장비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그녀는 노래를 이어 나갔다. 클라이맥스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귀를 틀어막았다.
“불~같~은 나의 사랑~ 피할 수 없써어어어어!”
“커어어억!”
사람들은 피를 토할 것 같다는 듯이 손사래를 내저었다.
“그마아아아아안!”
윤제문이 비명을 질렀다.
음정의 높낮이도 문제였지만 돼지 멱따는 듯한 소리가 귀에 거슬려 더 이상은 들을 수가 없었다.
윤제문은 식은땀을 흘렸다.
“재앙이야, 재앙. 귀가 멀어 버리는 줄 알았네.”
“크윽, 저도요.”
프로듀서들도 고개를 내저었다.
인간에게는 버틸 수 있는 음역대가 있었다. 하지만 그레이스의 영역은 도저히 버틸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윤제문은 숨을 몰아쉬었다.
“노래야 못 하면 어떤가?”
“맞습니다. 연기는 잘하겠죠.”
“신이 여러 가지 재능을 한 사람에 몰아 주지는 않습니다.”
“제 노래가 그렇게 별로인가요?”
그레이스는 눈물을 글썽였다.
아름답고 연약한 이미지에서 풍기는 감정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래, 이거다.’
윤제문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미 그렇게 판단을 내린 것 같았다. 이 정도로 사람들의 마음을 쥐고 흔들 수 있다면 연기는 문제가 없으리라 여겼다.
“간단하게 대본을 외우고 바로 연기에 들어가도록 하지.”
“네!”
잠깐 쉬는 동안 사람들은 휴게실로 향했다.
여기서 그레이스에 대한 기대감이 드러나고 있었다. 특히나 윤제문은 흥분을 하고 있었다.
“회장님, 도대체 저런 원석을 어떻게 주워 온 겁니까?”
“반 친구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요.”
하성은 커피를 한 모금 머금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워낙에 소속 연예인들이 없어 윤제문의 마음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은 이해를 하겠지만, 곧 똥 밟았다면 인상을 쓸 것이다. 그런 미래가 훤히 그려지니 하성으로서는 미안할 뿐이다.
“별로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녀는 인재입니다!”
“맞습니다. 회장님께서 왜 그렇게 판단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후우.”
하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백날 말을 해 봤자 인간은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른다. 아까 들었던 노래만큼이나 실망감이 클 것이다.
그레이스가 밝은 표정으로 휴게실에 들어온다.
“다 외웠어요!”
“그걸 벌써?”
“헤헤, 제 머리가 좀 비상하거든요.”
“인재라니까.”
윤제문이 웃었다.
하성은 그들의 기대에 초를 치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곧 있으면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될 일이었기 때문이다.
대본은 최근 한빛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하고 있는 영화 ‘파도’의 한 장면이었다.
여주인공은 남주인공의 죽음에 오열한다.
감정이 잔뜩 실려 있는 연기를 해야 했는데, 만약 여기서 그레이스가 좋은 연기를 보여 준다면 단숨에 데뷔의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의 눈은 기대에 차올랐다.
“액션!”
“크윽! 이렇게 죽으면 안 돼에에에에!”
“끄아아아악!”
사람들은 귀를 틀어막았다.
무식하게 소리만 꽥꽥 지르는 것이, 슬프다기보다는 내상을 입힐 수준이었다.
윤제문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레이스 양은 슬픔을 그렇게 표현하나?”
“저는 지금 감정이 잡혀 있어요.”
“그럼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을 하면서 연기를 해. 아직 감정이 완전히 잡히지는 않은 것 같아.”
“조금 미숙하다는 말씀이로군요. 다시 할게요.”
그녀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프로듀서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왠지 지뢰를 밟은 것 같다는 표정이다.
“액션!”
“아아아악! 이렇게 죽으면 어쩌라고!”
“컷!”
윤제문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잘 보았습니다.”
“결과는요?”
“내일 알려 드리도록 하죠.”
“잘 부탁드립니다!”
사람들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더 이상 이 자리에 있는 것조차 불편하다는 표정들이었다.
그들은 황급하게 자리를 빠져나갔다.
“헤헤헤.”
그레이스는 뭐가 좋은지 실실거렸다.
하성은 도대체 그녀를 어떻게 떼어 놓아야 하는지 고심하고 있었다.
그때 윤다희가 구원해 준다.
“회장님! 아까 아이템 중개 사이트에 대해 거론하셨죠?”
“그랬죠.”
“빨리 가시죠. 중역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죠.”
“좀 이따가 보자!”
그레이스는 하성에게 손을 흔들었다.
하성과 윤다희는 그녀를 못 본 척하며 자리를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