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ss returns RAW novel - Chapter 6
5. 이사회
하성은 집으로 돌아가기 전, 이유나에게 몇 가지 사안을 당부하고 있었다.
이유나는 꿈을 위해 달려갈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었다. 본인의 의지도 충분하였고 하성의 회사로 들어가기로 약속까지 되어 있었다.
하성으로써는 감지덕지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앞으로 3년 이내에 K-POP의 황제로까지 거듭나게 되며 2003년부터 슬슬 시동을 걸어 2004년 이후에는 한류의 바람을 타고 세계적인 가수로까지 성장을 하는 그녀가 엉망진창의 회사에 들어오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직 이유나는 자신의 재능에 대해 확신이 없는 상태였다. 지금까지 꾸준하고 노력을 해 왔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내일부터 이유나의 삶은 전반적으로 변하게 될 것이었다.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별로 눈이 나빠서 안경을 쓰는 것은 아니니까 내일부터는 안경을 벗고 머리칼도 신경을 쓰도록 해.”
“왠지 발가벗겨지는 기분이 들어.”
“익숙해 져야 하지. 겨우 반 친구들 앞에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면서 어떻게 대중들 앞에 서겠어?”
“그, 그것도 그렇지만.”
이유나의 결심도 확고했지만 역시나 단번에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성은 이유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과업의 시작이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를 연예계에 데뷔시키고 그것을 기반으로 삼아 도약하는 것이다. 이는 이유나에게나 하성에게나 서로 WIN-WIN하는 관계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교복도 좀 다리고 치마단도 조금은 줄일 수 있겠어?”
“으으으! 거기까지는 도저히 못해!”
이유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하성은 씩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거기까지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맨 얼굴을 드러내게 하는 것만으로도 반쯤은 성공한 것이다.
한꺼번에 생활 전반에 변화를 가하면 거부반응이 있을 것이 틀림없었으므로 하성은 흥정을 한 것이었다.
‘흥정에는 꽤나 재능이 있을지도. 임가의 피를 타고 나서 그런가.’
“그럼 번호.”
“으, 으응?”
“번호교환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잖아?”
하성은 작년에 출시된 PDA폰을 꺼낸다.
핸드폰도 빠르게 발전을 하여 2001년 현재는 CDMA기술보다 더욱 진보했다. 유선, 무선 및 위성환경에서 음성과 고속 데이터, 영상서비스까지 제공하는 멀티미디어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신화그룹과 전자부분은 관계가 거의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언젠가 핸드폰 산업이 폭발적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사실을 하성은 잘 알고 있었다.
PDA폰에 비해 이유나의 핸드폰은 단음 벨소리의 옛날 폰이다. 그래도 요즘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는 학생이 별로 없었는데, 그녀도 핸드폰이 있어 다행이었다.
이유나는 얼굴을 붉혔다.
“나, 남자에게 번호를 알려 주는 것은 처음이라.”
“남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회사 사장님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 아니겠어?”
“그, 그래. 그 정도라면.”
하성과 이유는 휴대폰 번호를 교환한다.
이유는 시계를 바라보았고, 하성의 등을 떠밀었다.
“해가 지고 있어.”
“안 잡아먹는다니까?”
“고, 곧 이모가 올 거야. 괜히 오해를 하면 곤란하니까…….”
“그래.”
하성은 가능하면 빨리 빌라를 벗어난다.
이유나는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였다. 너무 무리해서 변화를 시키려 하면 도중에 포기를 할 가능성이 높았으므로 가능하다면 천천히 나아가야 할 것이다.
하성은 망치를 호출했다.
후우웅
“모시러 왔습니다.”
“집으로 가죠.”
하성은 의자에 몸을 깊게 파묻는다.
오늘, 꽤나 큰일을 벌였다. 할아버지 정도의 정보력이라면 하성의 일거수일투족을 알 수 있을 것이었다.
더욱이 사람 둘을 팼고 그 중 하나는 상태가 꽤나 심각했다. 은연자중을 하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는데 사고를 쳐 버렸으니 어떤 꾸지람을 들을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째깍. 째깍.
벽장에 붙은 괘중시계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가자 집안 메이드와 집사들이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며 서 있었고 할아버지는 쇼파의 상석에 앉은 채로 하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임태식의 뒤에는 그의 오른팔이자 하성의 무예스승인 오달수가 각을 잡고 서 있다.
‘심각한데.’
하성은 한 눈에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다.
혹여 오늘 사고를 친 일 때문에 엔터테인먼트의 일이 무산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그리 되면 정말 안 되는데. 큰일이군. 일단 헤쳐 나가는 수밖에.’
“다녀왔습니다.”
“오냐.”
“험험.”
하성은 임태식의 맞은편에 앉는다.
역시나 문제가 터진 것이 확실하다.
하성은 한숨을 내 쉬었다. 사고를 친 것은 맞았으니 지금이라도 수습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분명히 은연자중을 하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뭐라는 것이냐? 정말 축하한다!”
짝짝짝짝!
“예?”
하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까지는 다 설정이었는지 할아버지는 물론이고 메이드와 집사, 오달수까지 손뼉을 쳤다. 특히나 오달수는 더 기뻐했다.
오달수가 하성의 어깨를 두드렸다.
“정말 대견하십니다!”
“무,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너의 17년 인생에서 처음 사람을 팬 것이 아니냐!”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러니 기쁠 수밖에.”
“…….”
하성은 순간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어느 정도는 할아버지의 심정도 이해는 되었다.
자폐에서 벗어나 무예까지 배우고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한 발전이었는데 조폭가문의 후계자가 사고하나 치지 않고 학창시절을 보낸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게 박수를 받을 만한 일인가.
다른 집 같았다면 혼이 났을 것이었지만, 하성이 사람을 패고 들어온 것은 거의 집안에서 경사가 날 일이었다.
조직에 몸을 담은 이상 싸움을 피할 수 없다. 특히나 항쟁이 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는데, 지금이라도 실전경험(?)을 쌓고 돌아온 하성이 대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 이사!”
“예, 회장님!”
“오늘은 술 한 잔 해야겠으니 42년산 가져오게!”
“물론입니다!”
곧 술판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혼이 날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하성은 엔터테인먼트가 걱정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달수는 하성에게 잔을 내밀었다.
“제 잔 받으십시오, 도련님.”
“아, 예.”
쪼르르륵
“마시자! 오늘은 내 손주 놈이 정식으로 조직에 입문을 한 기념이다!”
챙챙!
하성은 독한 위스키를 목으로 넘겼다.
“크으!”
오랜만에 느껴보는 화끈한 기분이 들었다.
오히려 하성의 정신은 맑아지는 것 같았다. 축하를 하기에 앞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었다.
“할아버지. 걱정이 됩니다. 저는 오늘 실수를 한 것이 아닌가요?”
“실수가 분명하기는 하다. 은연자중을 하였다면 네가 회사를 받기 전까지 신사동이나 일심 놈들이 발광을 하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오늘 일이 귀에 들어갔다면 아마 방해공작을 할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해서 네가 한 발 나아간 것에 기쁘지 않을 수가 없구나.”
“대책은 있으십니까?”
“이사회가 당겨졌다.”
“예?”
“월요일로 예정되어 있던 이사회를 내일로 당겼다. 놈들이 방해공작을 하기 전에 일처리를 해 버리려는 것이다.”
“아아!”
임태식은 하성을 뒤에서 밀어주기로 하였다.
죽기 전까지는 하성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는 동시에 힘까지 키워주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임태식은 후일을 대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이었다.
그런 그였으니 엔터테인먼트를 하성에게 밀어 주는 일을 소홀하게 처리하였을 리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당연한 일이다.”
이제야 하성은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는 교복의 넥타이를 풀었다.
“할아버지. 제가 얼마나 주당인지 모르실 겁니다.”
“성이 네가 술을 그리 잘 마셨더냐?”
“임가의 피를 타고 났으니 주당이 아닐 리가 없죠.”
“그래. 오늘은 마시고 죽어 보자꾸나!”
“안 됩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오래오래 사셔서 저에게 모든 것을 물려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제가 조직과 기업을 반석 위에 올릴 것이 아닌가요.”
“으하하하하! 그래. 성이 너만 믿는다!”
그렇게 시작된 술자리는 2차 3차까지 이어졌고 결국 하성의 필름이 끊어진 후에야 끝이 났다.
다음날 아침.
하성은 머리가 부서지는 느낌과 함께 잠에서 깨어난다.
“으으으!”
“일어 나섰어요?”
“유모.”
“도대체 어제는 술을 얼마나 마신 건가요? 아마 술을 처음 마신 거라고 생각 되는데요.”
“할아버지와의 대작, 좋잖아요.”
“정말 회장님도 너무하시지. 이런 아이에게 술을 그렇게 먹이다니.”
김수련은 하성에게 꿀물을 내밀었다.
꿀물 한 사발을 들이키고 나자 어느 정도는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3차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에는 어디를 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깨어 보니 침대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오늘 괜찮겠어요?”
“괜찮아요.”
“다음부터는 그렇게 무리해서 술을 마시지 말아요. 남자들이야 의리 운운하면서 술을 퍼 마시지만 그것이 제 살 파먹는 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해요.”
“네, 네.”
하성은 건성으로 듣고 흘렸다.
유모가 하성의 어깨를 짚었다.
“제 말을 명심해요.”
하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수련은 하성을 어린 시절부터 돌봐 왔기에 어머니와 유사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하성 역시 어머니처럼 따랐으니 사실상 김수련은 그의 부모나 다름이 없었다. 감정적으로 매우 의지를 하는 사람이었으니 그녀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다.
다만 엄마의 잔소리처럼 대충 듣고 흘릴 뿐이었다.
하성은 기어코 숙취를 이겨 내기 위하여 연무장을 20바퀴 정도 뛴 후에 씻고 준비를 하였다.
어제는 할아버지와 처음 대작을 하느라 필름이 끊어질 정도로 마셨지만, 앞으로 그럴 일은 드물 것이다.
하성은 교복이 아니라 정장을 입고 있었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었으니 학교보다는 회사에 나가야 했다.
하성이 사고를 친 덕분에 이사회가 오늘로 당겨졌다. 어쩌면 오늘 회사가 하성에게 돌아오는 것을 이사들이 극렬하게 반대할 수도 있었으므로 각오를 단단하게 다져야 한다.
메이드와 집사들이 그들을 배웅했다.
“다녀오십시오, 도련님!”
“다녀오세요!”
유모가 하성의 넥타이를 고쳐 매 주었다.
“조심하세요.”
“걱정 마세요.”
“그곳은 호랑이 소굴이니까요.”
“정신을 바짝 차릴게요.”
곧 할아버지가 준비를 마치고 나온다.
회장 전용 리무진이 대기하고 있는 중이다.
할아버지가 하성을 바라보았다.
“준비 되었느냐?”
“물론입니다.”
“그럼 가보도록 하자.”
***
본사로 향하는 도중에 임태식은 하성에게 신화그룹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들었다.
“신화그룹의 모기업은 신화건설이다. 모기업이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웬만한 경영지식은 갖추고 있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내가 신화건설의 주식을 51%를 보유하고 있다. 신화건설이 신화통신의 지분을 30% 보유하고 있고 신화통신이 신화에너지 지분 35%를, 에너지가 엔터테인먼트와 금융을 비롯한 몇 개 계열사의 지분을 가지고 있지. 그리고 계열사들이 신화건설의 지분을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고 이사들도 각각 지분을 소유하여 영향권을 발휘하고 있다.”
“순환출자구조로군요.”
“그렇지. 순환출자구조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아느냐?”
“장점이라면 막대한 자금의 융통과 문어발식 경영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네 말이 맞다. 90년대 중반까지는 경기가 좋아 문어발식 확장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어렵다. 핵심기술부터 시작하여 여러 가지 경쟁력을 갖춰야 하지. 현재 가장 고심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단점은 무엇이겠느냐?”
“한 기업이 타격을 받으면 연쇄적으로 부도를 맞을 수도 있고 자금의 융통과정이 복잡한 것이 사실입니다. 합법적으로 자금을 융통하려면 여러 가지 제재도 있고요. 여기에 오너의 힘을 약화 시키는 결과를 가져 오기도 하겠죠.”
“바로 보았다. 특히나 우리 신화그룹은 타 기업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가지고 있다. 힘으로 지분을 빼앗아 버리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지. 그와 같은 맥락으로 반란의 가능성도 항상 존재하고 있다.”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하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임태식의 말은 예상이 아니었다. 실제로 임태식이 죽은 이후로 9월 항쟁을 통하여 신화그룹이 갈가리 찢어졌다.
말이 항쟁이지 조직 내에서 반란이 일어난 것이었다.
휘하 조직들의 간부들은 어느 정도 신화그룹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충분히 회사를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신화그룹은 조직으로 묶여 있었고 힘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것으로 보였지만, 내부를 파고들면 경영이 만만치 않으리라는 것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임태식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때문에 지배구조를 개편하려 한다.”
“지금 당장이요?”
“지배구조를 단순화 시키는 과정은 하루 이틀 만에 되는 일이 아니다.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겠지.”
“그룹 내 인수합병을 할 계획이시군요.”
“그래. 신화건설과 통신을 병합한다. 그리 된다면 출자구조가 훨씬 단순해지고 오너의 영향력도 강화될 것이다. 특히나 네가 손쉽게 회사를 물려받을 수도 있을 것이니라.”
“그렇다면 자사주 매입에 시간이 많이 들어가겠습니다.”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지.”
후우웅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차량은 여의도에 들어서고 있었다.
임태식은 얼굴을 살짝 구겼다.
“네가 보기에는 조직과 회사가 잘 굴러 가는 것 같지만, 내부에서는 권모술수가 난무하고 있다. 평화라는 것은 그저 겉으로 보이는 것뿐이지.”
달칵
거대한 건물에 도착했다.
크리스탈 캐슬을 보는 듯한 59층의 빌딩.
이곳이 바로 신화그룹의 본사였다.
내리기 전에 하성이 대답했다.
“제가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기획사를 받은 후에 발전시켜 자사주 매입에 동참하겠습니다.”
“허허허허! 든든하구나.”
말은 그렇게 해도 하성에게 진짜 도움을 받을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신화 엔터테인먼트는 만년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당기순이익이 -56억을 기록하고 있었으니 본사를 돕기는커녕 회사를 정상화 시키는 것만 해도 엄청난 발전이라 이야기 할 수 있었다.
회사로 들어와 임태식은 웃음기를 지웠다.
하성 역시 안면을 바꾸었는데, 회사 내에서는 어디에 눈과 귀가 깔려 있을지 몰랐으므로 항시 조심을 해야 한다.
팅!
임원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들은 대회의장으로 이동하였다.
“나오셨습니까, 회장님!”
회의장 복도에는 조직의 간부들을 호위하는 조직원들이 쫙 깔려 있었다. 회사 입구까지만 해도 평범했는데 경영진들이 모인 곳에 오자 역시나 조폭들이라는 사실이 실감난다.
그 안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열 명 이상 모여 있었다.
그들이 바로 신화그룹을 이끌어 나가는 실질적인 수뇌부였다.
하성은 숨을 한 번 몰아쉬었다.
‘반드시 신화 엔터테인먼트를 손에 넣고 만다.’
웅성 웅성
회의실 내부는 조금 어수선했다. 이미 하성이 어제 학교에서 벌인 일이 알려진 모양이었다.
신화그룹은 표면적으로 신사동파와 일심파를 끌어안는 모양을 취하고 있었지만 내부에서는 권모술수가 난무한다.
하성이 전생에서 회사를 물려받고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신사동과 일심이 분리가 되어 나간 후였다. 그렇기에 정치적으로 싸움을 하는 것이 덜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싸움이 절정에 달해 있는 시기였다.
하성은 회의장에 들어와 주변을 둘러본다.
역시나 신사동파의 고진성과 일심파의 유한백의 모습이 보인다.
아직까지 그들은 조직 전면에 나서지는 않고 있었지만, 각 계파의 후계자로 굳어져 있었다. 일선에서 활동하는 파벌의 보스들은 이제 슬슬 은퇴 준비를 하고 있었고 후계자들에게 세력을 물려주고 있는 과정에 있었다.
‘저 새끼들이 반대를 하려나.’
반대를 한다면 고진성과 유한백이 나설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대 놓고 하성에게 불만을 표출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계파들의 힘이 강한 것은 맞았지만, 신화파가 그들을 찍어 누를 수 있는 힘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임태식이 들어오자 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앉지.”
임태식의 곁에 하성도 앉는다.
신사동파 보스이자 총무이사인 한경식이 물었다.
“회장님. 오늘 이사회를 당긴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이에게 회사 하나를 독립적으로 떼 주기 위해서지.”
“독립적으로 떼 주신다니요!?”
“신화 엔터테인먼트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 통신일 거다. 신화 통신에서 임하성에게 주식을 판매하여 매각하는 형식을 취할 것이다.”
“말도 안 됩니다! 엔터테인먼트는 모 기업이나 다름없습니다!”
“모 기업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회장님께서 일구신 초창기 사업을 일개 고등학생에게 따로 떼어 주신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보십니까?”
이번에는 고진성이 압박했다.
신사동파의 후계자 고진성은 지금 물류 쪽의 본부장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그 실력을 높게 평가 받고 있었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명분을 찾고 있었다.
명분이라 한다면 하성의 나이가 어리다는 것. 고등학생이 회사를 맡아 이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임태식이 테이블을 내리쳤다.
쾅!
“내 돈으로 회사를 매입하여 독자적으로 분리를 하겠다는 것인데 뭔 말들이 그리 많은가?”
“그리 되면 친족계열분리가 되어 세금이…….”
“세금도 내가 감당할 것이다. 게다가 지금 신화 엔터테인먼트의 주식은 바닥이지. 빚까지 잔뜩 있는데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 임하성은 신화그룹의 유일한 후계자이고 지금부터 경영수업을 시키려 한다. 더 이상 반발은 항명으로 알겠다.”
“…….”
어느 정도의 반대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임태식이 주변을 노려보았다.
이곳에 있는 조직원 치고 임태식에게 안 깨진 인간들이 없었다. 이렇게 사납게 노려보니 반박할 여지를 잃었다.
이대로라면 불만이 폭발해 버릴 것이다. 지금이야 임태식의 기에 눌린 것같이 보였지만 실상 놈들은 눈에 봬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오늘은 무사히 넘어가도 후일을 기약할 수 없다.
생각에 잠겨 있던 하성이 손을 들었다.
“할 말이 있느냐?”
“제가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간부들은 하성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전면에 등장하여 경영수업이라는 이유로 회사를 물려받으려는 그였다. 신화파나 일심파에서 볼 때에는 상당히 경계할만한 일이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회사를 떼어주는 것이 쉬울 것이다. 그의 뒤를 밀어 주며 세력을 부상시키려는 의도가 뻔했다.
신화그룹은 타 회사와는 달리 회사 아래에 딸려 있는 식구들이 많았다. 순수 전투조직원도 있었지만 경영에 참여하는 조직원도 많았다. 그러니 회사를 떼어 준다는 것은 그 만한 세력을 갖춰 주겠다는 뜻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아마 이대로라면 큰 마찰이 있을 것이다.
“이사진의 걱정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 제 경영이 미숙하여 회사에 피해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것이죠. 아무리 회사가 떨어져 나간다고 해도 신화그룹과는 협력관계에 있고, 지원을 받지 않을 수 없으니 말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도련님.”
한경식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사진도 한 목소리로 맞는다고 말했다.
설득의 기술은 무엇이 되었건 일단 긍정을 이끌어 내는데 있었다.
“그렇다면 제 능력을 증명한다면 반대를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반대할 이유가 없지요.”
“어떻게 증명을 한다는 거요?”
“올해 안에 신화 엔터테인먼트의 경영을 정상화 시키겠습니다.”
“……!”
하성은 승부수를 띄었다.
사람들의 표정은 엇갈렸다.
하성이 자폐증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행보가 이렇게 거침이 없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성은 단순히 회사를 받아 전전긍긍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회사를 받아 이유나를 데뷔시키면 경영은 꽤나 펴질 것이다. 그리고 하성이 알고 있는 미완성의 스타들을 찾아다니며 몇 명만 발굴을 해도 경영은 정상화 된다.
하지만 경영진에서는 이런 사실을 알 도리가 없었다.
하성이 전생자라는 사실은 어디까지나 그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매니지먼트와 에니전시를 넘어 영화, 드라마, 식음료 프랜차이즈까지 분야를 넓혀 나갈 수 있지. 지금은 아니라도 차후에는 그것이 트렌드가 되니까.’
하성에게도 전략이 있었다.
단순히 이유나를 비롯한 연예인의 매니지먼트에 모든 걸려 하지 않았다.
그는 미래에서 시간을 타고 거슬러 왔고 미래의 기획사는 여러 가지 분야로 발을 넓혀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가만히 앉아 있던 유한백이 입을 열었다.
입술이 얇게 빠졌고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20대 중반의 남자다. 지금도 잔인한 인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욱 심화된다. 고진성과 함께 하성을 죽인 원수이기도 했다. 놈들이 아버지를 살해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참아야 한다.
“만약 올해 경영이 정상화 되지 않는다면 요?”
“그 때에는 제가 성인이 될 때까지 경영에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아예 회사나 조직의 일에 손을 끊고 공부나 수련에 전념하도록 하죠.”
“약속하실 수 있습니까?”
‘이 새끼가…….’
유한백은 끝까지 하성을 붙잡고 늘어지려 하였다.
어차피 능력을 보여야 인정받는다는 것은 이 사회의 기본원리였다. 특히나 신화그룹과 같이 특수성을 띤 회사는 더욱 심했다.
하성은 아예 쇄기를 박는다.
“공증을 하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