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ss returns RAW novel - Chapter 67
65. 기적적인 생환
달달달달.
하성은 다리를 떨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여기서 잘못되면 수아의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제가 너무 무심했습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임태식도 탄식했다.
일에 치여 살다 보니 수아를 등한시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신경을 썼을 것이다.
아니, 지금까지의 태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일이 바쁘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수아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아.”
“후우.”
하성과 임태식은 동시에 탄식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회귀를 한 이후에 담배는 가능하면 피우지 않으려고 했는데 너무 초조해서 한 대는 피워야겠다.
하성은 임수아의 소식을 듣고 달려온 오달수에게 담배 한 개비를 얻었다.
옥상으로 올라가자 유서화가 쫓아왔다.
찰칵!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마신다.
조금은 나아지는 느낌이다.
“괜찮을 거예요.”
“그러기를 바라야죠.”
“금방 털고 일어날 거예요. 그럼 함께 학교도 다니고 피크닉도 다니고 하면 되잖아요? 저도 수아를 잘 챙길게요.”
“일어나면요.”
의사의 말로는 바로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것을 보면 금방이라도 목숨을 잃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으로서는 기도를 할 수밖에 없는 걸까.
‘내가 좀 더 강했다면.’
아직도 하성은 경지를 밟지 못하고 있다.
조금 더 노력을 해서 백호를 뛰어넘었다면 추궁과혈을 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하성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니, 상당한 박탈감마저 느껴졌다.
“제발 일어나라. 네 소원은 뭐든 들어줄 테니까.”
스아아아!
툭툭!
추궁과혈을 하고 있는 병실 내부에서는 엄청난 양의 내공이 흘러나와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임수아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양학적으로 보자면 백혈병이었지만, 한의학적으로 보니 기혈이 엉키고 막힌 곳이 대부분이었다. 이러니 사람이 살아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의학의 힘으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지만,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혈맥이 완전히 상했고 기가 통하지 않았다. 꼭 백혈병이 아니더라도 이런 상태라면 어떤 병에 걸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 이상은 무리인가.’
아무래도 포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주인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슬픔에 잠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는 화타가 강림을 한다고 해도 고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음?”
백호가 포기를 하려 할 때였다.
끊어졌던 혈맥들이 하나씩 이어지기 시작하였다. 몸 안에 자리 잡은 어떤 기운이 백호의 기운과 만나 세력을 키웠고 강제로 혈맥을 잇고 망가져 있던 몸을 회복시키기 시작하였다.
투둑. 투두두둑.
빠르게 혈맥이 이어지고 있었다.
막혀 있던 기혈들이 뚫려 나갔고 혈색이 돌아오고 있었다.
백호는 더욱 내공을 쏟아부었다.
‘신기한 일이로구나.’
백호는 면역 세포가 정확하게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임수아의 몸 내부에서 어떤 기운을 형성하였고 엄청난 회복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체감을 하고 있었다.
“후우우.”
임수아가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 스스로 숨을 쉬었으며 빠르게 얼굴색이 돌아왔다. 심지어는 말라 있던 근육마저 복원되고 있었다.
내부의 장기들도 튼튼해졌고 뼈와 인대, 심줄까지 제자리를 찾아간다.
‘거의 환골탈태 수준이로군.’
아마 면역 세포만으로는 이런 기적을 바라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백호 정도 되는 고수가 직접 손을 썼기에 이만한 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백호는 손을 뗐다.
이제 알아서 면역 세포가 임수아의 몸을 치료하고 있었다.
피부에 윤기까지 돌고 있는 것을 보면 가히 기적이라고 할 만했다.
“곧 깨어나겠군.”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런 기적이 백호의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달달달달!
하성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다리를 떨고 있었다.
담배를 하나 피웠더니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다시 초조함이 찾아왔다.
여동생이 죽는다는데 초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드르륵.
병실의 문이 열리고 백호가 나왔다.
사람들이 우르르 백호에게 몰려갔다.
“백호! 어떻게 되었습니까?”
“곧 깨어나실 것 같습니다.”
“정말이요?”
“다만 지금은 회복하고 있는 중입니다. 대략 한 시간 정도 기다리면 깨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저도 신기했습니다. 면역 세포라는 것이 실로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더군요. 몸의 망가진 부분을 알아서 복원했습니다. 면역 세포가 아니었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제 내공과 만나 힘을 불려 끊겨 있던 혈맥을 복원하더군요. 말라 있던 근육이 살아나고 장기가 살아나고 있는 중입니다.”
“허어!”
사람들은 감탄을 내뱉었다.
백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기적이라 말할 수밖에 없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니요. 저는 한 일이 별로 없습니다. 조금만 더 내공을 수련하시면 주인님께서도 하실 수 있습니다. 면역 세포라는 것이 정말 뛰어난 것이었습니다. 굳이 따지면 주인님의 공이라 말할 수 있죠.”
“아니에요.”
하성은 고개를 흔들었다.
조금 더 여동생에게 신경을 썼더라면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너무 무신경했다.
이제 수아가 깨어나기를 기다려야 한다.
수아가 깨어난 것은 정확히 30분이 흘러서였다.
수아는 정말 멀쩡한 모습으로 눈을 떴다.
“으하하하함! 잘 잤다.”
“수아야!”
“다들 무슨 일 있어요? 왜 이렇게 몰려왔어요?”
“크윽! 깨어나 주어서 고맙다.”
하성은 와락 수아를 끌어안았다.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임태식도 상당히 격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당장 눈물이라도 쏟을 것 같았지만 참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 녀석아!”
임태식도 수아를 끌어안았다.
정작 당사자인 임수아만 어리둥절했다.
“왜들 이러세요?”
“몸은 어때?”
“으쌰!”
수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신도 모르게 튕겨져 나갔는데, 떨어지는 몸을 받아 주어야만 했다.
“어라?”
“아프지는 않아?”
“날아갈 것 같아요!”
수아는 팔을 붕붕 휘둘렀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인이나 다를 바가 없어 보였는데, 주치의에게 정확한 진단을 받아 보아야 할 것 같았다.
주치의가 바로 달려와서 진찰했다.
“음…….”
“어떤가요?”
“희한한 일입니다.”
“정확히 어떻게요?”
“기적입니다!”
주치의는 소리까지 내질렀다.
아마 이런 경우는 학계에도 보고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죽어 가던 사람이 하루 만에 기력을 되찾았으니 이해가 되지 않을 만도 하다.
주치의는 혀를 내둘렀다.
“심장도, 폐 기능도 정상 수치가 나올 것 같습니다. 자세하게 검사를 해 봐야 하겠지만 이대로라면 정상인에 가까울지도…….”
“정말이요?”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단순히 생명만 연장이 되었다고 해도 춤을 출 지경이었는데 이 정도라면 완치의 단계까지 조심스레 바라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완치……?”
“그건 검사를 해 봐야 압니다.”
“그럼 바로 검사하도록 하죠.”
수아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퇴원을 하고 싶은 얼굴이었다.
이제는 수액을 맞지 않아도 멀쩡해 보였다.
“바로 검사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신화그룹의 힘이 대단하기는 한 것인지 몇 시간 만에 검사가 완료되었다.
그리고 하성과 임태식은 믿을 수 없는 결과를 통지받았다.
“와, 완치입니다.”
“완치라고요!”
“네, 모든 수치가 정상입니다. 병자라고 볼 수 없습니다.”
“허어.”
사람들은 탄성을 내뱉었다.
골수 이식을 한다고 해도 살아날 수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굳이 그런 수술을 받지 않고서도 완치가 된 것이다.
아마 면역 세포와 백호의 추궁과혈, 수아의 특이한 체질이 만나서 그런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건 기적이라고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감사합니다!”
“저는 딱히 한 일이 없습니다.”
“고맙소!”
임태식도 주치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주치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수아가 주치의에게 물었다.
“그럼 퇴원을 해도 되나요?”
“그래도 되긴 합니다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며칠은 입원을 하시는 게…….”
“퇴원할래요. 그래도 되죠?”
“네, 뭐.”
주치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것 같았다.
죽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하루 만에 벌떡 일어났으니 이게 무슨 기적인가 싶을 것이다.
“이제 집에 간다!”
수아는 만세를 불렀다.
지금까지 이런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을 거다. 이제야 완치가 되었고 수아는 집으로 돌아간다.
이 정도라면 면역 세포가 가진 힘은 충분히 증명이 된 것이었다.
백호의 추궁과혈이 어떤 효과를 준 것인지 정확하게 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어쩌면 여러 가지 조건이 우연하게 맞아떨어졌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수아가 몇 시간 만에 완치가 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짐을 싸서 병원을 나섰다.
정말 귀신에 홀린 것 같은 느낌이다.
멀쩡하게 뛰어다니고 있는 수아의 모습을 보니 여동생이 병원에서 10년이나 있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기 힘들었다.
“면역 세포라.”
임태식은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냉정해졌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전부 사업가였다.
수아에 대한 문제는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완치가 되었으니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태진그룹 유민성 회장은 면역 세포에 관심을 보였다.
“이제 보니 사위의 사업이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것이었군요?”
“그러게 말일세.”
“어쩌면 의학계가 뒤집힐지도 모르겠습니다.”
***
어떻게 보면 이건 일대 사건이라 말할 수도 있었다.
지금, 한빛제약의 면역 세포는 임상 실험 단계에 들어가 있었다. 별다른 부작용만 없다면 곧바로 출시를 해도 될 것 같았다.
유민성 회장이 말했다.
“백혈병만이 아니라 다른 불치병에도 소용이 있는가?”
“네, 다른 불치병에 사용하면 생명 연장의 기능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 내공이라는 것을 가미한다면……?”
“완치가 가능할 수도 있죠.”
“불치병의 정복이라!”
“와아.”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불치병이 정복되면 혁명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더 이상 병으로 인해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노환으로 죽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병으로 죽는 것은 막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얼마만큼의 파급력을 만들어 낼지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세계 최대의 재벌이 탄생하겠군요.”
“전 세계 정부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겠군.”
“자네, 이제 더욱 성공하겠군.”
“다 회장님들이 저를 밀어 준 덕분입니다.”
“하하하! 내가 사위 하나는 잘 얻었지!”
유민성 회장은 매우 들뜬 표정이었다.
이전부터 그랬지만, 사위라고 아예 대놓고 부르고 있었다. 문제는 누구도 그런 유민성 회장의 말에 의구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다 깨지면 어쩌려고.’
하성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으로서는 유서화와 헤어질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사람의 일이라는 것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다.
“집에 안 가요?”
수아가 재촉했다.
임태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민성과 유서화를 배웅했다.
“오늘 고생 많았네.”
“아닙니다, 사돈어르신.”
“살펴 가도록 하게.”
유서화는 하성에게 손을 흔들었다.
“주말에 약속 잊지 마시고요.”
“알겠습니다.”
“어디를 가는데?”
수아가 끼어들었다.
“여행.”
“나도, 나도!”
눈치 없는 수아는 함께 가고 싶다고 보챈다.
하지만 유민성 회장과 임태식은 동시에 외쳤다.
“그건 안 된다!”
“왜요?”
“아무튼 안 된다.”
두 그룹의 회장들은 이것만큼은 양보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수아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신 창밖을 살피고 있었다.
“정말 많이 변했구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10년 동안 병원에 처박혀 있던 수아는 바깥의 세상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더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앞으로는 놀러도 많이 다니고 하자.”
“그럼 당장 주말에는 안 돼?”
“그건 말이야.”
“네 오빠가 약혼녀와 데이트를 하는데 꼭 쫓아가야겠느냐?”
“쳇, 약혼녀라 이거지?”
“일단은.”
“그럼 다음에라도 가자. 약속을 해.”
“그래.”
수아는 활기가 넘쳐흘렀다.
병에 걸려 병석에 누워 있을 때에는 한없이 약한 모습만 보였는데, 예전의 성격을 서서히 회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아는 하성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고마워.”
“뭐가?”
“오빠 덕분에 내가 살아난 것 알아.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자식, 고마우면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해라.”
“으으윽.”
“병이 나았으면 공부해야지? 그래야 대학을 갈 것 아니냐.”
“그건 오빠도 마찬가지 아니야?”
“나는 이미 대기업 회장인데? 공부할 필요가 있나 모르겠다. 웬만한 교수보다 내가 나을 텐데. 그리고 배울 것이 있으면 할아버지에게 배워야지.”
“불공평한데?”
“불공평하다니? 이게 세상 이치지.”
이제 사람 사는 것 같았다.
여동생이 집에 들어오면 조금 더 살맛 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다음 날 아침.
하성은 일찍부터 일어나 수아를 깨웠다.
“야! 일어나!”
“으음……. 아침부터 왜?”
“운동을 하자.”
“운동을?”
“맥을 한번 짚어 보고, 괜찮으면 오늘부터 당장 운동을 하도록 해.”
“꼭 그래야 해?”
수아는 아직 졸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혈색은 어제보다도 좋아져 있었다. 거의 정상적인 몸이 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운동을 해서 면역력을 더 키워야 한다.
“팔 내밀어.”
수아는 거의 반쯤 자면서 팔을 내밀었다.
하성은 맥을 짚어 봤다.
두근! 두근!
어제보다도 맥이 힘차게 뛰었다. 이 정도면 또래의 소녀들보다 더 힘차게 뛰지 않나 싶었다.
하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됐다. 가자.”
“너무하는데, 아침부터.”
“네가 다시 병에 걸리지 않게 하려는 특훈이다! 나와 매일 같이 운동을 하자.”
“으으으!”
수아는 질색을 하면서도 운동을 하러 나섰다.
수아의 입장에서도 병원은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10년이나 보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운동을 하고 나서 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
수아는 대화중학교 3학년으로 편입을 한다.
대화중학교는 대화재단에서 운영했고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같이 붙어 있었으므로 하성과 함께 학교에 갈 수 있었다.
유모가 두 개의 도시락을 챙겨 주었다.
“아가씨가 돌아오시다니……. 정말 꿈만 같네요.”
“헤헤, 앞으로 유모가 귀찮아지겠죠.”
“귀찮아지다니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유모는 수아도 자식처럼 돌보았었다. 수아가 돌아와서 기쁜 것은 절대 거짓말이 아닐 것이다.
곧 할아버지도 내려오셨다.
“수아도 학교에 가는구나.”
“네, 할아버지.”
“허허허! 이제야 사람 사는 것 같구나.”
할아버지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셨다.
이걸로 한시름 덜었다.
하성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아와 함께 등교를 했다.
등교를 하는 길.
하성과 수아가 지나가는 길에 학생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해 주었다.
이건 하성이 서울의 유명한 양아치들을 격파하며 다녔기에 생긴 현상이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수아가 알 리가 없었다.
“학교 분위기가 왜 이래?”
“내가 양아치 청소를 좀 했거든.”
“오빠가 싸움질을 하고 다녔다고?”
“아니, 양아치 청소를 했다니까.”
“그게 그 말이지.”
수아는 혀를 찼다.
아무래도 수아는 하성을 불량 학생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성아!”
뒤에서 누군가가 달려오고 있었다.
하성은 눈살을 찌푸렸고 수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아마 그레이스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반응일 것이다.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밀리지 않을 외모에 화려한 금발, 거기에 풍만한 바스트까지. 일단 외모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런 여자가 반갑게 달려오더니 하성에게 안겼다.
“어이쿠!”
하성은 곧바로 그레이스와 거리를 두었다.
“뭐야, 오빠는 약혼녀가 있잖아?”
“그러니까 얘는…….”
“이 꼬맹이는 누구야?”
“꼬맹이라니!”
수아는 버럭 성질을 냈다.
병원에만 누워 있어서인지 체구가 또래의 소녀들보다 작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꼬맹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었다.
“내 동생.”
“꺄악! 정말이야?”
그레이스는 수아를 품에 안고서는 비비적거렸다.
그레이스의 커다란 가슴에 파묻힌 수아는 하성을 바라보며 버둥거렸다. 하지만 별로 구해 줄 생각은 없다.
“동생은 병원에 있다고 하지 않았어?”
“퇴원했어.”
“이햐, 이렇게 예쁜 여동생이면 매일 안고 자고 싶겠는데.”
“뭐 그리 위험한 소리를.”
“내가 데려다 키워도 될까?”
“이 여자 뭐야!”
수아는 하성의 등 뒤에 숨었다.
그레이스는 수아를 바라보며 침을 질질 흘렸다.
“그레이스는 우리 회사 소속의 연예인이야. 얼마 전에 CF 모델로 데뷔를 했지.”
“가슴만 커 가지고는.”
“이리 온. 언니가 예뻐해 줄게.”
“됐거든요?”
아무래도 학교생활이 더 풍성해질 것 같았다.
수아가 병원에서 나오니 정말 사람 사는 것 같아졌다.
하성은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잘나가도 되는 걸까. 뭔가 일이 터질 때가 되었는데…….’
너무 평온한 나날이 반복되고 있어 오히려 더 불안했다.
회에서 뭔가 일을 터뜨릴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잠잠하니 더 불안해지는 것이다.
하성은 고개를 흔들었다.
회에서 가만히 있어 준다면 그걸로 된 것이 아닐까.
점심시간이 되었다.
하성은 도시락을 챙겨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에는 수아와 그레이스가 옥신각신하고 있었고 유나가 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꺼내고 있었다.
“여기들 있었구나.”
“오빠! 이 여자 좀 말려 줘!”
“사이 좋구만 뭘 그래?”
“으으으!”
수아는 여전히 그레이스의 품에 안겨 버둥거렸다.
하성은 기지개를 한 번 켰다.
우두두둑!
아침부터 점심까지 내내 잠만 퍼질러 잤더니 여기저기 결렸다. 스트레칭을 한 번 하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식사를 했다.
점심을 먹고는 곧바로 회사에 출근을 해야 할 것이다. 회사에 가서 면역 세포 출시에 대한 정확한 일정을 잡아야 한다.
불치병 치료에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하고 광고한다면 실로 어마어마한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었다.
지이잉!
밥을 거의 다 먹어 갈 즈음에 전화가 울렸다.
“잠깐만.”
하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백호였는데, 전화까지 한 것을 보니 급한 모양이었다.
“접니다.”
-주인님! 가능하면 본가로 빨리 오셔야겠습니다!
“무슨 일 있나요?”
-회에서 총공세를 준비하고 있다는 첩보입니다!
하성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도 없기에 잠잠한 줄 알았더니 뒤에서 이런 짓을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