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ss returns RAW novel - Chapter 70
68. 무인도 여행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오늘도 일찍부터 일어나 어김없이 수아를 운동시켰다.
이제 처음 회복을 하였을 때보다 훨씬 건강해진 수아는 어떻게 해서든 운동을 빠져 보겠다고 수를 썼다.
그 바람에 강제로 수아를 깨워 데리고 다녀야 했다.
조깅을 하고 돌아올 때에는 걸어온다. 3킬로미터나 되었고 꽤나 멀기에 빠른 걸음으로도 30분은 걸리는 거리다.
이런 아침 시간에는 항상 동생과 이야기를 나눈다.
“왜 그렇게 시계를 쳐다보는데?”
“오늘 여행을 가잖아.”
“나도 가면 안 돼?”
“그건 안 되지. 여자 친구와 첫 여행인데 찌질하게 여동생을 데리고 가겠냐?”
“왜 내가 가면 찌질이가 되는 건데?”
“첫 여행이니까.”
“쳇, 뭔가 이치에 맞지 않잖아.”
수아는 어려서부터 유난히 하성을 잘 따랐다. 어쩌면 하성이 여자 친구가 생긴 것에 대해 약간은 질투를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자고 올 거야?”
“아직 그런 단계는 아니라서.”
“사귀기 시작한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단순히 데이트만 한다고? 조선 시대에서 왔어?”
“험험, 우리는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거잖아? 만약 서화 씨와 잠이라도 함께 자는 날에는 어떻게 될 것 같아?”
“당장 국수 먹어야지.”
“바로 그거다.”
하성이 더욱 조심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단순히 선을 본 것도 아니었고 집안 대 집안으로 먼저 만남을 가졌다. 양가의 어르신들이 만나 결혼을 전제로 그들을 만나게 한 것이다.
이건 일반적인 선 자리와는 완전히 다르다.
“어쨌든 사귀는 건 맞잖아?”
“그건 확실하지. 내 의지로 사귀는 것이니까.”
“그냥 자빠뜨리면 안 돼?”
“너어! 못 하는 말이 없다?”
“우리 사이에 그런 말도 못 하나.”
“여동생과 나누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주제인 것 같다.”
하성은 말을 돌렸다.
‘이 녀석이 언제 이렇게 컸지?’
그러고 보면 수아도 어느덧 16살이었다. 그러니 한창 연애에 관심이 많은 시기였다. 게다가 10년 동안 병원에만 처박혀 있었으니 세상 일이 모두 신기해 보일 것이었다.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온 아기와 같다고 할까.
수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집에 도착했다.
거실에서는 할아버지가 신문을 읽고 계셨다.
“왔느냐?”
“예, 할아버지.”
“오늘은 며늘아기와 여행을 가는 날이지?”
“그렇습니다.”
“허허허! 잘 다녀오도록 해라.”
“예.”
한눈에 보아도 할아버지는 기대를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아직 유서화와 깊은 관계로 나아갈 단계는 아니라서 할아버지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
하성은 샤워를 하고 간단하게 짐을 꾸려 내려왔다.
가방 하나만 달랑 가져왔는데, 할아버지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셨다.
“짐은 그게 전부냐?”
“당일치기 여행인데 뭐가 많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서요.”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 아니냐? 무려 무인도로 여행을 가는 것인데.”
“괜찮습니다.”
하성은 어깨를 으쓱였다.
어디 해외로 나가는 것도 아니었고 인천에 속한 무인도를 가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가까운 곳에 가는데 뭔가 대단히 챙겨 가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다.
“가져가는 것이 좋을 텐데…….”
“예?”
“아니다. 그럼 잘 갔다 와라.”
하성은 샌드위치를 입에 물고는 집을 나섰다.
인천의 부두로 향하는 내내 하성은 할아버지가 남긴 의미심장한 말이 계속 걸렸다.
“짐을 가져가는 것이 좋다고? 도대체 무슨 말씀이지?”
하지만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당장 생각나지 않았다.
하성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머리 아프게 고민하지 말자.”
인천 제3부두.
부두에는 이미 유서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유서화의 아버지인 유민성도 함께 나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하하하! 사위 왔나?”
“오늘 아버님도 가시나요?”
“그 무슨 섭섭한 소리를. 무인도에는 어디까지나 자네와 딸밖에 없다네. 내가 아무리 딸 바보라도 설마 약혼자와 함께 여행 가는 딸과 함께 눈치 없이 가겠나? 절대 아니 될 소리지.”
“아, 예.”
“그러니 자네는 최대한 힘을 쓰도록 하게.”
“힘을 쓰라니요?”
“험험, 말이 잘못 나왔군. 그곳은 무인도이니 생존을 한다는 취지로 여행하는 것이 아니겠나? 직접 해산물도 캐 보고 고기도 구워 봐야지. 집도 짓고. 그러려면 힘을 써야지 않나?”
“맞는 말씀이십니다.”
유민성은 차에 올라탔다.
“그럼 즐겁게 놀다 오게!”
“예, 아버님.”
유민성 회장이 사라지자 가이드가 인사를 했다.
말이 가이드지 그냥 배로 무인도에 태워다 주는 사람일 뿐이었다.
30대 초반의 남자였는데, 어쩐지 배의 선장치고는 젊은 것이 아닌가 싶다.
“안녕하십니까, 오석준입니다.”
“선장님이 꽤 젊으시네요?”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서요.”
“아, 그렇군요.”
하성은 그저 그렇게 넘기고 말았다.
나중에 이들이 어떤 짓을 꾸미게 될지 알게 된다면 절대 이 배에 올라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배는 이미 출발했다.
위이이잉!
여러 가지 의미심장한 일들이 있기는 했지만 하성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괜히 이상한 생각을 하면 부정만 탈 뿐이었다.
그들은 선미에 올라 바람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와아! 정말 영화 주인공이 된 것 같아요.”
“무인도에 여행을 가는 것이요?”
“꿈만 같은 일이에요. 어떻게 무인도에 여행을 갈 수 있는 것인지요.”
“요즘에는 무인도 펜션이 꽤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벗어나 외딴 곳으로 가고 싶어 하죠. 세상에 혼자 혹은, 둘만 남겨진 느낌을 즐기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런 낭만, 좋아요.”
“그럼 종종 무인도 여행을 오도록 해요.”
“네!”
그녀는 천진난만하게 외쳤다.
무인도까지는 한 시간이나 걸렸다. 이 정도라면 길을 모르면 그냥 조난을 당할 수도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
선장은 하성과 유서화를 내려 주자마자 닻을 올렸다.
“그럼 저녁에 오겠습니다.”
“몇 시 정도요?”
“한 7시쯤 오죠. 6시에 인천에서 출발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아직도 하성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할아버지가 직접 준 표였다. 어련히 알아서 잘해 놓았을까 싶었던 것이다.
작은 무인도였는데, 해안가에 작은 집이 있었다.
“집에 들어갈 건가요?”
집은 부득이할 경우에만 들어갈 것이다.
무인도의 여행은 어디까지나 외딴 곳에서 경험하는 낭만이다. 그런 낭만을 굳이 포기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하성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여기 집을 짓고 직접 해산물을 잡아 점심을 해 보도록 하죠.”
“그럼 하성 씨가 집을 지어요. 제가 점심거리를 잡아 올게요.”
“좋은 생각입니다.”
각자 역할이 분담되었다.
하성은 집을 지을 것이었고 유서화는 해산물을 채취할 것이다.
그녀는 해안가로 향했다.
“그럼 간단하게 집을 지어 볼까?”
무인도의 집이라고 해도 특별하게 엄청난 집을 짓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햇빛이나 피하고 비가 들어오지 않으면 된다. 만약 비가 많이 오면 펜션으로 대피하면 되는 것이다.
오늘은 배낭에서 가져온 것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칼 하나와 냄비, 소금만 이용하여 하루를 보낼 계획이었다.
하성은 일반인이 아니었고 집을 짓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었다.
서걱서걱!
단검으로 가볍게 나무를 했다. 소나무들이 많았는데, 그것을 베어 시중에서 파는 자재처럼 잘랐다.
먼저 바닥을 고른 후에 자재들을 깔았다.
툭탁툭탁.
그 이후에는 기둥을 세우고 벽을 둘렀다.
벽도 역시나 나무를 잘라 만들었는데, 그 다음에는 지붕을 얹는 일이었다.
지붕 역시 나무판을 이용하였는데, 그렇게 나무판을 올린 이후에는 소나무 잎을 덮어 완성했다.
그렇게 집을 완성하는 데까지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집을 완성하자 저 멀리서 유서화가 다가왔다.
그녀는 뭔가 한 아름 안고 있었다.
조개와 전복, 성게 등이다.
“와아! 이걸 한 시간 만에 지었어요?”
“간단한 일이죠.”
하성은 어깨를 으쓱였다.
대충 짓기는 했지만, 조금만 심혈을 기울인다면 아예 건축 쪽을 나가도 될 지경이었다.
“역시 제가 남자 하나는 잘 고른 것 같아요.”
“어디 떨어져도 살아남을 수는 있겠죠?”
“그냥 이렇게 살아도 행복할 것 같은데요?”
유서화도 하성과 같은 과였다.
가능만 하다면 세상사를 모두 벗어던지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심심하기야 하겠지만, 서로에게 의지를 한다면 이것도 좋은 일이 아닐까.
“그럼 점심을 만들어 볼까요?”
“서화 씨는 잡아 온 해산물을 손질해요. 저는 고기를 잡아 올게요.”
“고기를 잡아 오신다고요?”
“네.”
하성은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녀는 하성의 몸을 보며 감탄했다.
“멋있어요.”
“뭐 앞으로 지겹게 보게 될지도 모르죠.”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는데요?”
하성은 유서화와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누고는 곧바로 바다로 향했다.
하루가 순식간에 흘러가고 있었다.
점심은 하성이 잡아 온 참돔을 구워서 해산물과 함께 먹었다.
모래성도 지었고, 수심이 약간 차기는 했지만, 물놀이까지 하다 보니 금세 저녁이 되어 가고 있었다.
슬슬 배가 고파진다.
“서화 씨, 저녁은 인천에서 먹을까요?”
“좋죠. 지금이라면 아무거나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배낭에 라면도 있었지만, 여기서 라면을 먹는 것은 좋지 않은 선택 같았다.
어두운 하늘에 구름까지 끼고 있었다. 아무래도 조금 빨리 무인도를 나가야 할 것 같다.
하성은 선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장님, 바로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곧 가겠습니다.
그들은 슬슬 짐을 쌌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하성의 얼굴은 살짝 찌푸려졌다.
선장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선장님, 어디십니까?”
-가고 있습니다!
“빨리 와 주세요.”
-그럼요!
전화기 너머로 파도 가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점점 하늘은 더 어두워졌고 당장 비가 내릴 것 같다.
‘뭔가 당한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
한 시간이 아니라 배는 두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결국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었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솨아아아아!
배가 제때 도착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다. 분명히 인천 시내로 나가 식사를 하고 지금쯤이면 집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지 않을까.
빗줄기가 더욱 거세지자 결국 그들은 펜션으로 대피했다.
지이잉!
하성의 휴대폰이 울렸다.
“접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오늘은 못 갈 것 같습니다.
“뭐라고요?”
-날씨가 이래서 어쩔 수가 없어요. 어차피 연인이시고 약혼까지 하셨는데 함께 자는 것은 상관없으시죠?
“아, 뭐 그야 그렇지만요.”
-하루 좋은 추억 쌓는다고 생각하시고 천천히 즐겨 주세요. 비용은 받지 않겠습니다.
“…….”
전화는 끊어졌다.
유서화는 하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라고 하나요?”
“비 때문에 못 온다고 하는군요.”
“후후후.”
유서화는 낮게 웃었다.
도대체 그녀는 왜 그렇게 웃는 걸까.
“왜 그러세요?”
“뭔가 감이 오지 않으세요?”
“당했다는 감이요?”
“맞아요! 우리는 어른들에게 당한 거라고요. 물론 비가 내릴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하신 것 같지만 지금쯤이라면 축배를 들고 계시지 않을까 싶네요.”
“아아!”
하성은 탄성을 내질렀다.
이 노인네들이 담합을 하여 일을 꾸민 것이다.
하성이 하도 답답하게 진도를 나가지 않으니 오히려 어른들이 이런 계략을 꾸몄다. 졸지에 하성은 유서화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밤을 보낸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지만, 이는 결혼의 명분이 될 수도 있었다.
‘내가 정신만 차리면 그럴 일은 없겠지.’
“그래도 양쪽 집에는 전화를 드리도록 할까요?”
“그래요.”
어른들이 어떤 일을 꾸몄건, 그래도 전화는 해야 한다.
그것이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일차적으로는 하성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었다. 유민성 회장에게도 당한 셈이었지만, 오늘 유서화를 집에 들여보내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 두어야 하는 것이다.
‘에휴, 내가 어쩌다가.’
띠리리링.
달칵!
신호가 가자마자 유민성은 전화를 받았다.
‘이 양반,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군.’
기가 막히는 일이었지만, 여기서는 하성이 죄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버님? 접니다.”
-사위 아닌가! 어쩐 일인가?
“배가 끊겨서 오늘 이곳에서 자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뭐라고?
유민성은 천연덕스럽게 놀란 목소리를 하고 있었다. 연기를 해도 아마 유민성은 대성을 했을 거다.
한숨이 나왔지만 여기서는 하성이 죄인이다.
“죄송합니다. 오늘 일기예보를 확인했어야 하는데요.”
-그리되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푹 쉬다 오게.
“예, 아버님.”
하성은 전화를 끊었다.
별로 유민성 회장은 딸의 안부는 궁금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 유민성 회장의 얼굴이 훤하게 그려졌다.
이번에는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다.
“할아버지, 오늘은 집에 못 들어갈 것 같습니다.”
-오오, 그러냐? 그럼 편히 쉬다 와라.
“예.”
할아버지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정말 호되게 당한 이 기분은 뭘까.
“일단 씻고 만날까요? 욕실이 두 개나 있으니까요. 그리고 식사하도록 하죠.”
“그래요.”
그들은 각자의 욕실에서 씻은 후에 만나기로 했다.
그 시각.
서울 강북의 한 요정에서는 유민성 회장과 임태식 회장이 의기투합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자리에서 임하성의 전화를 받고 끊었다.
임태식이 전화를 끊자 화통한 웃음소리가 터진다.
“됐습니다, 사돈어른!”
“허허허! 이제 끝났군, 그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임하성 이놈, 꼼짝 없이 함정에 걸려들었군.”
“고자가 아니고서는 오늘 밤에 거사가 이루어질 겁니다.”
“날을 잡아야겠군?”
“이를 말씀입니까.”
쪼르르륵.
임태식의 잔이 채워진다.
오늘의 작품은 원래 유민성 회장이 준비를 한 것이었다. 임하성이 자꾸 간만 보고 있었으니 갑갑하기 이를 데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뒤에서 손을 쓰게 된 것이다.
그들의 잔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챙!
“이것으로 되었습니다. 설마 아무 일이 없었다고 잡아떼지는 않겠지요?”
“그럴 리가 있나.”
“그럼 된 겁니다.”
“한데, 하나 질문이 있네.”
“무엇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자네의 딸이 아닌가. 이런 식으로 함정에 빠뜨려서야 어떤 죄책감도 없다 할 수 있나?”
“딸아이가 하성 군을 많이 좋아합니다. 결혼을 했으면 하더군요. 하지만 하성 군이 목석과 같아서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이번 결혼을 결심하였지요. 무인도에서의 하룻밤을 계획한 것도 그때부터입니다.”
“몇 달 되었다는 건가?”
“그렇지요.”
임태식은 혀를 내둘렀다.
딸의 연애사까지 신경 쓰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번에는 집안 대 집안의 중대사라는 것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말이다.
유민성은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모르겠지만, 오늘 거사가 벌어진다면 결혼까지 갑니다. 하성 군도 그 사실을 알고 있겠죠.”
“아무 일도 없다면 어쩌겠나?”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유민성은 고개를 저었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유서화는 매우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결혼을 하고 싶어 하니 이어 주는 것뿐이었다.
어차피 결혼을 해야 한다면 대한민국 최고의 신랑감인 임하성과 결혼해 준다면 그는 아무런 불만도 없었다.
“자자, 한 잔 더하도록 하지.”
“오늘은 코가 비뚤어지게 마셔 보도록 하지요!”
“허허허! 원하는 바일세.”
하성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바깥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들어와 보니 거의 호텔을 방불케 하였다. 이만한 시설을 무인도에 건설하려면 보통 자본력으로는 불가능할 거다.
아마 이곳은 태진그룹이나 신화그룹의 입김이 들어간 곳이 아닐까. 그럴 공산이 컸다.
“후우, 그래도 어른들이 나를 잘못 판단한 거지.”
남녀가 꼭 한 방에서 하룻밤을 보낸다고 해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라고 보았다.
“그냥 하루 즐거운 추억 하나 생겼다고 생각하자.”
꼬르르륵!
결심을 굳히고 나자 배가 고팠다.
촤륵!
욕조에서 일어나 씻고 나왔다.
솨아아아!
다른 욕실에서는 유서화가 씻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유서화도 배가 많이 고플 거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놀았으니 에너지를 모두 소모했을 것이 틀림없다.
사실, 이곳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쌀은 물론이고 냉장고에는 재료들이 가득했고 와인과 위스키를 비롯하여 술도 종류별로 있었다.
하성이 선택한 것은 라면이다.
오늘 바다에서 생선도 잡았고 조개와 소라도 몇 개 주웠다. 생선은 점심에 다 구워 먹었으니 라면에는 조개와 소라를 넣을 수 있었다.
먼저 조개와 소라로 국물을 내고 면과 수프를 넣었다.
보글보글!
라면이 맛있게 익어 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서화가 거실로 나왔다.
“음~ 맛있는 냄새.”
“라면 어때요?”
“좋죠.”
역시 타지로 여행을 나와 라면을 끓여 먹는 맛은 일품이라 할 수 있었다.
식탁에는 라면과 김치뿐이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유서화는 충분하지 않다고 보았던 모양이다.
그녀는 냉장고를 열어 소주를 가져왔다.
“소주도 있고 기가 막히네요.”
“소주를 좋아하셨나요?”
“사실 와인과 위스키는 제 체질이 아니에요. 마시려면 소주를 먹어야죠.”
“그럼요.”
라면 국물에 소주만 한 것이 없었다. 다만 너무 가난해 보였기에 그리 먹지 않았을 뿐이다.
“그럼 건배할까요?”
챙!
하성은 술을 단숨에 삼켰다.
라면도 함께 들어가자 속이 뜨끈해진다.
빈속에 술이 들어가자 빨리 취하는 느낌이 들었다. 한 병 정도 마셨을 때, 유서화의 얼굴이 붉어진다.
술이 올라오는 것은 하성도 마찬가지였다. 약간씩 이성이 마비되는 것 같다. 원래 술이라는 것이 한 번 손을 대면 끝장을 보기 마련이었다.
테이블에는 술이 두 병이나 더 올라왔다.
그들은 조금씩 취해 가고 있었는데, 유서화의 자세가 조금 흐트러졌다.
“오늘 즐거웠어요.”
“저도요.”
“그러다가 한 번은 그리 생각하죠. 평생 당신과 함께하면 어떤 느낌일까 하고요.”
“저도 그런 생각 가끔 합니다.”
“비록 선을 보고 만났지만 이 사람이 내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이 있었죠. 지금까지 그런 느낌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고요.”
이런 말도 술을 마셨을 때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유서화는 평소에 전혀 흐트러짐이 없는 여자였다.
콰르르르릉!
천둥번개와 함께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시작을 했는데, 술을 마시다 보니 테이블에는 빈병이 잔뜩 굴러다니게 되었다.
하성도 점점 이성이 마비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