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ss returns RAW novel - Chapter 8
7. 아버지의 유산
상행일지는 임상옥 조사가 약관 무렵에 떠났던 상행부터 시작된다.
의주 태생의 임상옥은 사신 행렬을 따라 중국 연경을 드나들며 인삼을 밀매하였던 임봉핵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장사를 하던 과정에서 임봉핵은 빚을 지고 죽었으며 아버지 대신 종살이를 하다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인삼장수가 되었다.
첫 상행에서 임상옥은 큰돈을 벌여 들었다.
장미령과의 인연은 이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첫 상행부터 큰돈을 번 임상옥은 아버지의 유지에 따라 상즉인(商卽人)의 도리를 지키기 위하여 사창가에 팔려온 장미령을 사서 풀어주지만 그 자신은 공금유용죄의 명목으로 조선상계에서 파문 당한다.
장미령은 임상옥의 은혜를 평생 동안 가슴에 담으면서 고간대작의 첩으로 살아가는 한 편, 남편 몰래 상단을 운영하여 임상옥에게 은혜를 갚으려 하였다. 하지만 끝내 장미령은 임상옥과 만나지 못했고 그에 대한 은혜를 ‘만대에 이르도록 반드시 갚도록 하라’는 유언을 남기며 세상을 뜬다.
장미령은 단순히 유언만 남긴 것이 아니었다. 증표만 가지고서는 세월이 지나 은혜를 잊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상단을 조직할 때, 아예 제약을 걸어 두었으며 상단의 지분을 임가에 귀속시키고자 하는 문서를 만들어 공증까지 받아 두었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제약을 걸어 두었기에 만약 하성이 장미령의 삶에 대해 파헤칠 수 있다면 뜻하지 않게 조직과 회사를 운영하는데 있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털썩
하성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들고 읽었을 뿐이었지만 감당이 되지 않음을 느꼈다.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던 상단이라면 지금쯤 얼마나 커졌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며 없어졌을 수도 있었지만, 임상옥에 대한 은혜를 갚기 위해 장미령이 임가의 후손들에게 안배를 남겼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성은 임상옥의 비밀을 파헤치는 과업의 첫 번째 임무로 장미령을 꼽았다.
“할아버지라면 어느 정도 조사를 했을지도 모르지.”
그는 그렇게 확신했다.
임태식 역시 임가의 가주로써 조사에 대한 여러 가지 비사와 비밀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임태식의 안전을 염려하여 상행일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그와 비슷한 서적, 혹은 구전으로 전해지는 정보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치우.”
무엇보다 하성은 치우의 존재가 클 것이라고 생각했다.
치우는 북한산 어느 암자에 표식을 걸어 두면 며칠 안에 그들이 먼저 하성을 찾을 것이라고 하였다.
어떤 원리로 그리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그리 말씀을 하였으니 반드시 치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성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곳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각종 문서들이었다.
금괴는 차후에 옮기기로 하고, 문서와 상행일지, 그리고 치우를 부를 수 있는 표식만 챙기기로 했다.
막상 아버지의 안배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임상옥 조사가 안고 있는 비밀들과 마주하니 어깨가 무거웠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성은 금고의 문을 열었다.
간략하게 문서만 챙겨 넣었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문득 문을 열려고 하자 상당한 살기들이 바깥에서 풍겼다. 하성은 레버를 당기기 전에 잠시 강화유리 너머를 바라본다.
바깥에서는 안쪽이 보이지 않았지만, 이곳에서는 바깥을 살필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다.
그 말은 애초에 아버지가 금고자체를 설계하였다는 것이었다.
“이건 대체…….”
식은땀이 한 방울 흘렀다.
그래도 앞으로 나아갈 길을 얻었다고 여겼는데, 창고 앞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건장한 사내들이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H-23창고 앞.
일심파의 비밀세력인 불곰파의 보스 유진석은 미행전문가를 붙여 임하성이 창고로 가는 것을 잡아냈다.
일심파 후계자인 유한백은 임하성이 정신을 차린 이후, 그를 주시하였으며 신화물산 전 사장이었던 임현진이 그의 아들인 임하성에게 분명이 자신들이 알아냈던 비밀들을 안배의 형태로 남겼음을 확신했다.
유진석이 임하성을 전담마크하게 되었으며 미행 하루 만에 덜미를 잡은 것이다.
미행전문가가 H-23으로 임하성이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고 이 앞에 유진석이 자리 잡은 것이 30분 전이었다.
그르르르륵
“형님! 문이 열립니다!”
“포진하라!”
“예!”
여기서 임하성을 잡은 이후에는 죽여서 묻어 버리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모든 준비를 마쳤을 때, 문이 열리려 하고 있었으니 단숨에 잡아 챌 것이다.
“…….”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는다.
영등포 갈치가 입을 열었다.
“형님. 놈이 알아챈 모양입니다.”
“그런 것 같군.”
눈치 하나는 귀신 같이 빠른 놈이었다.
얼마 전에는 자폐증에 걸려 있었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약삭빠를 줄은 생각도 하지 못하였다.
이렇게 하려면 본능에 따라 살기를 감지해야만 한다.
“범의 자식이라 이건가.”
“어쩔까요?”
“놈은 인간이다. 먹을 것이 없다면 며칠 안에 나올 거다. 우리는 기다리도록 한다.”
“예!”
이미 창고관리자와는 이야기를 마친 상태였다.
그들이 이곳에서 텐트를 치고 숙식을 한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땅거미가 지고 어둠이 깔렸다.
회사에서 돌아온 임태식은 손자가 돌아오지 않자 망치를 호출했다.
“찾으셨습니까, 회장님.”
“손주 놈은?”
“볼일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볼일이 있었다고?”
“예. 자세한 이야기는 캐묻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때문에 도련님을 믿고 보내드린 겁니다.”
“으음.”
임태식은 턱을 쓰다듬었다.
그의 곁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던 오달수가 입을 열었다.
“도련님은 명석한 분입니다. 게다가 한창 나이니까 하루 정도 외박을 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지요.”
“그래도 이상하구나. 외박을 한다면 전화 한통은 넣었을 텐데 말이다.”
“술을 마셨다면 깜빡했을 지도 모르죠.”
“그렇겠군.”
임태식은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오달수의 말이 맞았다.
사내자식이 술을 마시고 필름도 끊겨 보고 사고도 치고 해 보아야 한다. 혹시라도 여자 친구와 밤을 새우고 들어온다고 해도 나무랄 생각이 없었다. 놀다보면 전화 정도는 깜빡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걱정 마시죠.”
“그래. 사내자식이라면 응당 그래야지. 다른 안건으로 넘어가지.”
“예, 회장님.”
시간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은 새벽 2시.
이 정도 시간이라면 잠을 자고 있어야 했지만 하성은 그럴 수가 없었다. 바깥에 열 명이 넘는 건달들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미치겠군.”
전화는 먹통이었고 바깥과 연락을 할 방법이 없었다. 이곳은 그야말로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이 된 시크릿 룸이었다.
외부 관리실과도 연결이 되지 않았고 설령 된다고 해도 한통속일 것이 분명하였으므로 하성의 속은 타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대로 나가면 하성은 살해될 것이 뻔했다.
털썩
결국 하성은 정좌를 하고 앉았다.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고 했지. 필생즉사라 하였으니.”
하성은 최대한 빠르게 문을 열고 포위를 빠져 나갈까도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바깥을 잠깐 살펴 본 결과, 그럴 수는 없어 보인다.
적들은 촘촘하게 포진을 하고 있었고 아예 텐트까지 쳐 두었으며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일어나서 포위를 할 것이다.
그 방법은 불가다.
“천년만년 버틸 수도 없고.”
하성은 가방을 뒤져 보았다.
평소 초코바를 좋아하는 그였기에 혹시 몰라 두 개는 챙겨왔다. 배가 고파지면 먹으려 하였던 것이다.
여기에 생수 한 통이 반 정도 비워져 있다. 이것이 하성이 가진 식량의 전부였다.
촤악!
그는 지도를 폈다.
“나가서 포위망을 뚫고 숲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지.”
하성은 고심했다.
지금 그가 처한 상황은 목숨에 관련된 일이었다.
바깥의 조직원들은 생전 처음 보는 놈들이었다. 그렇다면 일심파나 신사동파에서 의뢰를 했거나 비밀리에 복속을 시킨 놈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소리가 된다.
유한백은 하성이 정신을 차렸고 앞으로 위협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였으니 기회가 있을 때 죽이려 들지도 몰랐다.
아니, 확실히 죽이려 들 것이었다.
그렇다면 빨리 판단을 내려야 한다.
결국 하성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저들 중 최소한 둘은 상대하고 그 틈으로 빠져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재수가 없으면 다구리를 맞아 죽을 수도 있다.
“지금의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하성은 이를 악물었다.
정신을 차린 후에 수박을 수련하고 있었지만, 미숙했다. 육체가 아직까지 수련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싸워야 한다면…….
“천령단!”
달칵
하성은 검은 색 목합을 열었다.
알싸하고 청량한 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지금의 위기를 타계할 수 있는 방법은 강해지는 것뿐이다!
최소한의 틈만 만들 수 있다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하성은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천령단을 입에 넣었다.
***
쿠르르르릉!
“허억!”
하성은 천령단을 삼킴과 동시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처음 천령단이 들어갔을 때에는 부드러웠다. 극도의 청량감이 감돌았으며 자연스럽게 기운이 퍼지는 듯 했다.
헌데 그렇게 들어간 천령단은 갑자기 사나운 맹수가 된 것처럼 날뛰었다.
온몸의 장기들을 때리고 있었고 알 수 없는 기운들이 북 치듯이 치고 들어간다.
“아아아악!”
하성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무협지의 한 장면처럼 운기 중에 소리를 지르면 주화입마에 들린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너무 고통스러웠다.
하성은 오달수의 말을 떠올렸다.
배꼽 아래를 조각하는 과정에 들어서면 자신의 의지로 그것을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육체에 활력이 돌면서 인간을 뛰어 넘는 파괴력과 근력, 지구력과 스피드를 갖게 되지. 경지에 올라가면 무협영화의 한 장면처럼 칼을 쓸 수 있게 된다고 하던데 아직 그런 경지에 이른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기를 뭉친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상상해야 하죠. 의념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경지에 오른다면 능히 원천지기를 다룰 수 있게 될 겁니다.
하성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필사적으로 오달수의 가르침을 떠올리려 하였다.
‘호(呼)와 흡(吸)의 길이를 같게 한다. 팔자결(八字訣)의 원칙으로써, 유연하게, 가늘게, 고르게, 조용하게, 부드럽게, 깊게, 길게, 천천히 소리가 나지 않아야 하며 숨이 끊어지거나 막힘이 없어야 한다. 이를 어기면 안하니 만 못하게 된다.’
“후욱!”
하성은 유(悠), 세(細), 균(均,) 정(靜), 면(綿), 심(深), 장(長,) 완(緩)의 수법으로 호흡을 해 나갔다.
숨을 들이쉴 때 아랫배를 내밀어 천령단의 지기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숨결이 점점 가늘고 길어져야 하며 깊어지고 느리게 해야 폭주를 막을 수 있는 것이다.
하성의 얼굴에 핏줄이 돋아났다.
핏줄에서는 지렁이가 기어가듯이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이는 천령단의 천령기가 온 몸을 타고 돌면서 생기는 현상이었다.
하성은 필사적으로 호흡 수련에 필요한 자세를 떠올렸다.
수련에는 양반자세, 반가부조, 가부좌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눈은 반개를 하여 코 끝날의 연장지점을 응시한다.
의식을 집중하는 것이야 말고 현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었다.
‘의식으로 천령기를 움직이라니. 그렇다면 의념이 기를 제어할 수 있다는 뜻일까.’
본의 아니게 하성은 임상옥이 저술한 수박의 새로운 단계인 수금지화목토천의 초입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10년은 수련해야 간신히 입문을 할 수 있을까 말까했지만 천령단을 흡수함으로써 인공적으로 단계에 진입을 하려 애썼다.
으드드득!
어금니가 꼭 깨물어진다.
호흡이 안정되어가자 정신을 집중하기 수월해졌으며 천천히 천령기가 아랫배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분명히 이는 무협에서 말하는 단전을 형성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의념의 공간, 즉 하성의 의지로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을 실제화 시킴으로써 그곳에 천령기를 가두고 온 몸으로 은은하게 퍼트려 나갈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다.
쿠르르르릉!
하성은 막대한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기를 느끼는 데만 해도 몇 년이 걸리지만 천령단의 기운은 느끼지 않으려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이를 의지로 조절을 하려 하였는데, 어떤 간질거리는 느낌이 커지며 천령단의 기운들을 감싸 안는 것을 느꼈다.
하성은 빠르게 상상 속의 공간을 실제화 시키며 기운들을 이동시킨다.
실체화된 공간에 천령기가 모이기 시작하였다.
쿠구구구구!
폭발할 듯이 일렁거렸지만 간신히 그것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여전히 날뛰던 기운들은 오장육부와 전신 근육, 뼈에 이르기까지 스며들었다.
하성은 눈을 번쩍 떴다.
“허억! 허억!”
식은땀이 미친 듯이 흘러내린다.
지금 보니 땀에서 악취가 풍겼는데 아마 천령기가 몸에 쌓여 있는 노폐물을 밖으로 밀어 냈기에 생긴 현상 같았다.
그가 만들어낸 의념의 공간은 대략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나머지 천령기는 전신으로 퍼져 나갔고 수련을 통하여 의념의 공간을 늘리게 되면 자연스럽게 흡수가 될 것이었다.
하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팟!
“어어엇!”
쿵!
그는 자신의 몸을 제어하지 못하고 한쪽에 쳐 박혔다.
그야말로 온 몸에서 활력이 샘솟고 있었다.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장풍을 쏘아 대는 초인이 된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조직의 중간간부 둘 셋 정도는 박살내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성은 정권을 내질러 보았다.
팡!
공기가 압축되어 터지는 것처럼 상당한 충격에 허공에서 퍼져 나간다.
하성은 쾌재를 불렀다.
“힘이 생긴 건가!”
하지만 하성은 섣불리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싸움이라는 것은 힘만 강하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힘과 더불어 수련을 통하여 제대로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한다.
힘을 분배하지 못한다면 하성의 괴물과 같은 육체적인 능력은 고작해야 3분 정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성은 의지를 이용하여 천령기를 끌어낸다.
팡팡팡!
기가 빠져 나감과 동시에 외부에서 자연지기가 흘러들어온다.
하성은 이것이 삼투압현상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좋았어! 지금부터는 수련이다.”
할아버지가 집에서 걱정을 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 걱정보다 하성은 살아남는데 집중해야 했다.
일단 살아 나가기만 하면 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이해해 줄 것이었다.
하루가 흐르고 있었다.
불곰파는 안으로 들어간 임하성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식량을 얼마나 가지고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추적자는 가방 하나를 매고 왔다고 한다. 그 안은 가볍게 비어 있었다고 하는데, 길어봤자 이틀을 넘기지 못할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임하성의 인내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나오지 않는군요.”
“이곳에서 기다리면 나온다.”
“차라리 자살을 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지는 않을 거다.”
유진석은 그리 확신하고 있었다.
기껏 자폐증에서 정신을 차렸으니 어떻게 해서든 빠져 나가려 할 것이다. 자살을 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형님. 아무래도 다른 수를 써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른 수를 쓴다고?”
“그러니까…….”
신화그룹 사택, 삼성동 본가.
임태식 회장은 오늘 출근을 하지 못했다.
분명 손주 놈이 아침에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들어오지 않았다. 약간 걱정을 안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후가 지나고 어둠이 깔리는 시간까지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은 주말이었지만, 전화 한 통 없이 이틀이나 외박을 한다는 것은 이해를 하기 힘든 일이었다.
“회장님.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겠구나.”
“회장님! 혹시 도련님께서 어떻게 되신 것은 아니겠죠?”
임하성의 유모 김수련이 울먹거렸다.
이 정도라면 실종이라고 보아야 한다.
정신을 차린 임하성은 똑똑했으며 경영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려 하고 있었다. 그런 임하성이 무단으로 이틀씩이나 외박을 한다는 것은 이해를 하기 힘들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김수련이 걱정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결국 임태식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경찰에 신고를 하도록 하게.”
“그리 하겠습니다, 회장님.”
“언론에는 퍼지지 않게 하고.”
“단단히 주의를 주겠습니다.”
아직 언론에까지 나갈 단계는 아니었다.
뭔가 일이 벌어졌다면 지금쯤 끝장이 났을 것이다. 가장 쉽게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가정이 신사동파나 일심파에서 일을 벌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휘하 조직원들은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고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적대세력이나 일심, 신사동에서 비밀리에 키우고 있는 조직을 이용하였을 가능성이다.
그렇게까지 하였다면 문제가 커질 수도 있었다.
“돌아만 와다오.”
임태식은 초조함에 입술을 짓씹었다.
손녀인 임수아가 백혈병으로 죽을 것이 확실시 되는 지금, 임하성은 신화그룹의 유일한 후계자였다.
그런 후계자가 실종되었으니 그의 속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는 것도 절대 무리가 아니었다.
팟팟!
서걱 서걱!
하성은 기본적이 검술을 수련하고 있었다. 검은 아버지가 남긴 임가의 가보로, 천둔검(天屯劍)이라는 글자가 검집에 양각되어 있었다. 그 검으로 하성은 검을 수련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수박에 수록되어 있는 검법은 상고시대부터 그 맥을 찾을 수 있었다.
한민족 역사의 근원인 환국은 기원전 7197년부터 기원전 3897년까지 3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환인임금이 다스렸다. 지금 파생되어 있는 수박이나 해동검도, 택견 등의 무예들은 환인임금에 의해 창시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한단고기(桓檀古記)의 환국본기(桓檀本紀)에는 환인임금이 천산에 살면서 도를 깨달았다고 표기했고 삼일신고(三一神誥)에서는 ‘밝은 사람은 느낌을 그치고, 숨을 고르게 쉬며, 부딪침을 금하여 오직 한 뜻으로 행하므로 망녕됨을 돌이켜 참에 이르고, 신기를 크게 발하여 본성을 통달하고 동이 완성된다’고 하였다.
환인임금의 치신득도는 오늘날까지 이르렀고 임상옥은 고대에 남겨진 설화와 같은 무예서록을 참고하여 임가의 무예를 완성하였다.
한민족 무예의 기본이 되는 내가신장의 원리는 천지인(天地人)으로 시작된다.
천은 원으로 표시되며, 지는 사각형, 즉 방(方)으로 표시가 되고 인은 각(角)이라 불리는 삼각형으로 칭한다.
하성은 상상력으로 구현하여 완성한 기의 그릇에서 천령지기를 빠르게 전달하며 검법의 기본원리를 깨우치는데 힘쓰고 있었다.
단순하게 설명하면 내리치고 베며, 긋는 동작이었지만 이 안에는 태극의 원리가 숨어 있었다.
부드럽게 검을 운용하여 강함을 제압하는 묘리는 수박에 수록된 검법의 요체라 말할 수 있었다.
즉, 하성이 깨달으려 하는 것은 태극의 원리다.
소수로 다수를 제압할 수 있는 최적의 검법으로 오직 기본기만으로도 능히 수백의 적을 벨 수 있다고 전해진다.
물론 하성은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였지만 조금이라도 그 원리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필사적으로 검을 휘두르는 것이다.
팟팟!
하성의 검에서 작은 물결이 생겼다.
이 물결이야 말로 태극의 원리로 가는 가장 기본적인 힘이었다.
다만 정신력이 너무 소모되었다.
“허억! 허억!”
정신력은 곧 육체에너지의 소비로 이어진다.
하성은 바닥에 주저앉아 남은 초코바를 모두 먹어 치웠다. 반 밖에 남지 않았으며 물도 마지막이다.
꿀꺽 꿀꺽!
이것으로 하성은 남아 있는 식량을 모두 소비하였다.
아직 검법은 기본조차 떼지 않았지만, 태극의 원리를 조금이나마 맛보아 최소한 적진을 돌파할 수 있는 힘은 갖추게 된 것이다.
하성은 잠시 정좌를 하고 앉아 정신을 가다듬었다.
정신을 한 곳에 모아 집중하는 것이야 말로 이 상황을 타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더 이상은 수련을 할 수도, 머물 수도 없었다. 식량이 떨어진 지금, 더 버틴다면 나갈 수 있는 기회조차 잃게 될 것이었다.
하성은 눈을 번쩍 떴다.
“강행 돌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