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ss returns RAW novel - Chapter 84
82. 폐관 수련
주작은 의외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였다. 아마 하성이 바로 오케이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하성의 결심은 굳건하였다.
지금 상태에서라면 언제라도 죽을 수 있었다.
물론 ‘지’의 단계에 오르면서 실로 어마어마한 실력의 상승이 있었지만 사천왕급에 오르려면 ‘목’의 단계에 .
그 정도는 되어야 웬만한 암살에도 버틸 수 있었다.
부회주 제갈천은 ‘도’의 단계에 올라 있거나 그걸 뛰어 넘었을 수도 있다고 하니 얼마나 괴물일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놈의 발치에라도 쫓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련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그럼 내일 아침에 출발한다.”
“알겠습니다.”
주작은 하성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반말을 했다. 하지만 하성은 그녀에게 불만이 없었다.
그가 주작의 주인이 된 것은 그저 임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실력도 주작에게 미치지 못하였고 통솔력도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언젠가 주작이 하성에게 존대를 할 날도 올 것이다.
주작은 그렇게 몸을 돌렸고, 하성은 방으로 돌아왔다.
하성은 할아버지에게 폐관 수련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폐관을 한다고?”
“네, 이대로는 적들의 공세를 모두 막아 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폐관이라……. 하지만 오래 자리를 비우지는 못할 거다. 회사 일도 중요하지 않느냐.”
“걱정 마세요. 3일 정도 폐관을 할 생각입니다.”
“그 정도는 무리가 없겠지.”
할아버지는 흔쾌히 수락했다.
적들의 암살에서 살아남기 위해 폐관을 한다는데 막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하성을 응원하였다.
“반드시 일취월장해서 돌아오도록 해라.”
“예, 할아버지.”
하성은 스스로도 각오를 다졌다.
다만 김수련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도련님, 갑자기 폐관이라니요?”
“그렇게 되었습니다.”
“고생스러운 길이 되지 않을까요?”
“아마도 그렇겠죠.”
“제가 가서 밥을 해 드릴까요?”
“아니요.”
하성은 고개를 흔들었다.
폐관이란 말 그대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괜히 김수련을 데리고 가서 호의호식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침에 출발이라고?”
“네, 할아버지.”
“일찍 자도록 해라.”
하성은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한 후에 방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오늘부터 폐관 수련을 해야 하기 때문에 푹 잠을 잤다. 체력이 모자라면 당연히 수련이 잘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짐이라고 해 봤자 세면도구와 그곳에서 갈아입을 옷 정도였다.
나머지는 주작이 알아서 마련을 한다고 했다.
하성은 일찍부터 윤다희에게 전화를 넣었다.
-여보세요?
윤다희는 다소 피곤한 기색이다.
지금 시간이 6시 30분이었으니 피곤할 만도 하다.
“회사를 잘 부탁드립니다.”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녀는 잠에서 번쩍 깨어난 듯한 목소리였다.
‘너무 진지하게 말했나?’
하성은 머리를 긁적였다.
“다름이 아니라 잠시 어디 좀 다녀오려 합니다.”
-어디를 다녀오시게요?
“수련을 좀 쌓으려 합니다. 이대로는 적들을 모두 막아 내지 못할 것 같아서요.”
-갑자기 폐관이라니……. 회사는 어쩌시고요?
“그동안 윤 비서가 잘해 주길 부탁드립니다.”
한마디로 윤다희에게 회사를 통째로 맡긴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바람과 같이 행동하시네요.
“죄송합니다. 어쩔 수가 없어요.”
-알겠어요. 제가 회사를 운영하고 있을게요.
하성은 전화를 끊었다.
윤다희에게는 통보를 했고, 이제 약혼녀인 유서화에게 이야기를 할 때다.
하성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유서화의 목소리는 맑았다.
새벽 6시면 일어나서 이것저것을 준비하는 그녀였기에 지금 시간이라면 깨어나서 한창 활동을 할 것이다.
“서화 씨, 며칠 동안 못 볼 것 같아요.”
-출장 가시나요?
“네.”
-어디로 가시나요?
“잠시 중동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3일 정도 잡았는데, 더 빠를 수도 있고요.”
-어쩔 수 없죠.
출장이라는 소리에 유서화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승낙했다.
그녀에게 수련을 위해 폐관을 한다고 말하면 당장 쫓아온다고 떼를 쓸 수도 있었다. 그것을 미연에 막기 위해 이런 술책을 쓴 것이다.
주변 정리는 끝났다.
밖으로 나오자 주작이 기다리고 있었다.
“굼뜨군.”
“이것저것 챙겨야 해서요.”
“가자.”
“둘만 가나요?”
“그럼?”
주작은 눈살을 살짝 찌푸린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은 일체 배제를 하고 주작은 오직 하성에게만 전념을 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차에 올라타자 주작이 말했다.
“착각은 하지 말라고. 나 역시 수련을 하기 위해 겸사겸사 들어가는 것이니까.”
“그렇다고 해 두죠.”
주작은 분명 하성에게도 신경을 쓰고 있었다.
어느덧 그녀와도 정이 많이 들었다.
“어디로 가나요?”
“계룡산으로 간다.”
“계룡산이라면 공주에 있는 그 산을 말하는 건가요?”
“그렇지.”
“하필이면 계룡산인가요?”
“그곳에 암자가 있다. 진법을 구성하여 인위적으로 기를 많이 받아들이게끔 건설되었지. 그곳에서라면 아무리 바보라도 어느 정도의 성과는 얻을 수 있으니까.”
“끄응.”
아무래도 주작은 아직까지 하성을 어린애 정도로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차량은 부드럽게 서울 시내를 가로질렀다.
계룡산 입구에 도착하였다.
동학사에서 출발을 하여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향할 예정이었다.
계룡산은 예로부터 도사가 많았다. 그만큼이나 기의 순환이 잘되는 곳이었다.
선조들은 일찍부터 계룡산을 눈여겨보았고 암자를 건설했다. 그리고 진법을 깔아 자연지기가 암자로 모이도록 했다.
그들은 등산로를 타고 가다가 이탈했다.
“지금부터 잘 쫓아와라.”
팟팟!
주작은 경공을 사용했다.
하성 역시 경공을 사용하여 엄청난 속도로 산을 타기 시작하였다.
산 중턱 부근에 이르자 사방이 절벽으로 가로막혀 있는 곳이 나타났다.
주작은 갑자기 절벽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
“허억!”
놀라운 일이다.
분명히 절벽이었는데, 손이 쑥 들어가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진법의 놀라운 일면이었다.
환영미로진도 적들에게 환상을 보게 하는 진법이었다. 이 정도는 치우에게 있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안쪽으로 들어오자 새로운 세상이 나타났다.
“절벽 안의 세상이라니.”
“그곳은 절벽이 아니다. 절벽으로 보이는 것뿐이지.”
하성은 혀를 내둘렀다.
암자는 깔끔하게 관리가 되고 있었다.
화장실과 작은 집 한 채, 부엌과 마당이 있었다.
근처에는 폭포도 있었고 사방은 울창한 숲으로 막혀 있다. 위성으로 이곳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대단하네요.”
“자연기가 느껴지지 않아?”
“그러네요.”
하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이곳에서는 자연기가 월등하게 높았다.
아마 이곳에서 폐관 수련을 한다면 ‘화’의 단계에는 오르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일취월장하여 하산할 수 있을 것이다.
주작이 말했다.
“끼니는 벽곡단으로 해결한다. 그리고 자는 시간도 줄여 수련에 몰두할 것이다.”
“벽곡단이라면?”
“무협지를 보았다면 알 텐데?”
곡물 가루를 뭉친 덩어리다.
한 덩어리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으며 최근에는 여러 가지 재료들을 섞으면서 영양적인 문제도 해결했다.
항아리 안에 벽곡단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럼 식사 후에 폭포로 가자.”
“그러죠.”
식사라고 해 봤자 벽곡단 한 알이었다,
맛은 미숫가루를 뭉쳐 놓은 것 같아 그럭저럭 괜찮았다. 맑은 물을 한 사발 퍼 먹자 아침 식사가 끝났다.
그들은 폭포로 이동하기로 했다.
콰과과과!
폭포에서는 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폭포 아래에는 돌이 깔려 있었는데, 자연적으로 생긴 것은 아니었고 아마 인위적으로 만들어 둔 것 같았다.
주작이 설명했다.
“폭포 수련은 정신을 집중하기에 가장 좋은 단련법이다.”
“어떤 정신 수양을 해야 하나요?”
“네게 필요한 것은 깨달음이다.”
“깨달음이라…….”
“다음 단계에 도달하는 방법은 바로 ‘화(火)’에 대한 깨달음이다.”
“저는 행성으로 단계를 나누어 놓은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
하성은 침음을 흘렸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임상옥 조사가 만들어 낸 수박은 행성의 이름을 따라 경지를 나누었지만 최초에는 오행에 기준을 두고 만들었다. ‘토’ 이상의 단계는 거의 상상력에 따라 구현을 하였으니 오행에 기준을 두고 생각하는 것이 기본이다.”
“아!”
하성은 탄성을 내뱉었다.
지금까지 그저 우주와 삼라만상에 대해서만 생각을 했었는데, 주작의 말에 따른다면 그것이 아니라 오행에 근거하여 만들었다는 것이다.
주작이 날카롭게 말했다.
“그러니 불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을 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언젠가 네가 나를 뛰어넘게 되면 영혼의 주인으로 모시겠다. 허접함을 벗어 버린다면 말이야.”
“그러죠.”
하성 역시 반쪽짜리 주인으로 군림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호기로움이 치솟는다.
‘반드시 정진을 하여 당신을 뛰어넘도록 하죠.’
콰과과과과!
하성은 폭포를 맞고 있었다.
이제 하성은 생각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행성의 이름이 아닌 단순히 불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다.
‘주작이 말하는 것은 불의 속성이다.’
불의 속성에 대해 깊게 파고드는 것이 실마리라고 생각되었다.
하성은 깊게 고찰했는데, 어느덧 무아지경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오직 하나의 생각에 몰두하며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한 인지를 놓는 것이다.
그러자 이 세상에 존재하는 원소에 생각이 미쳤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원소가 존재한다. 불과 물, 번개, 바람, 대지에 이르기까지. 이것을 5대 원소라고 부르지 않을까. 불은 원소의 가장 기본적인 단계이다.’
문득 하나의 깨달음이 있었다.
대기 중에 오대 원소가 모두 존재할 것이고 자연지기는 그런 기운들을 포괄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하성은 자연지기 속에 녹아 있는 화염의 기운을 느껴 보기 위해 노력하였다.
뭔가 대기 속에서 꿈틀거린다.
‘설마 이것이 화염의 기운인가?’
하성은 눈을 뜨고 무아지경에서 빠져나왔다.
화염의 기운을 느꼈으니 그것을 끄집어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아니, 찰나의 순간에 지나간 기운이 정말로 화염의 기운이 맞는지부터 밝혀내야 한다.
눈을 뜨자 해가 뜨고 있었다.
“으음!”
하성은 침음을 흘렸다.
“깨어났군.”
주작은 조용히 정좌를 한 채로 하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얼마나 이렇게 있었습니까?”
“밤새도록.”
“아아!”
몇 시간 정도 흘렀을 것이라고 인지를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밤을 새워 버리고 말았다.
그동안 하성은 깊은 고뇌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주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생각보다는 진전이 빠르군.”
“칭찬이죠?”
“그렇게 받아들여도 좋지.”
하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작이 하성을 인정하였다.
“가서 아침이나 들도록 하지.”
“그러지요.”
아침이라고 해 봤자 벽곡단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정신을 맑게 해 주는 효능이 있는 녹차도 함께 준비되어 있었다.
식사라고 하면 차를 마시는 것까지 포함이었다.
벽곡단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그 이후에 주작은 물을 끓였다.
무쇠 솥에 물을 끓여 차를 만들어 왔는데, 하성과 주작이 마주 앉았다.
주작은 정좌를 한 채로 차를 마셨다.
꽤나 기품이 있었고 다도(茶道)에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득 하성은 아버지와 주작의 관계가 정말로 내연이었는지 알고 싶었다.
“질문이 있습니다.”
“어떤 질문이지?”
“제 아버지와는 어떤 관계였습니까?”
“음…….”
주작은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선친에 대한 질문은 주작을 언제나 곤란하게 만든다. 하지만 하성은 알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후우, 그래.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주작의 표정이 풀렸다.
지금까지는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아마도 하성을 제자 정도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주작의 표정은 여자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말한다.
“네 아버지와는 연인이었다.”
“연인이라면?”
“그래, 사귀는 사이였지.”
“내연의 관계였습니까?”
“그건 아니지. 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한참의 시간이 지났으니까.”
“그랬군요.”
“나는 그분과 결혼을 원했지만 거절하셨다. 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지극해서겠지.”
하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는 짐작을 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아버지와는 연인이었던 관계다.
주작은 살짝 눈시울을 붉혔다.
“내가 그분을 지키지 못하였기 때문에 돌아가신 거다.”
“사고라고 들었습니다.”
“사고를 가장한 살인이었지.”
“회에서 한 짓이겠군요.”
주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의 죽음과 회는 깊은 연관이 있었다. 하지만 주작은 그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말했다.
조금만 더 노력을 했다면 아버지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분의 아들인 너에게 사죄하고 싶은 마음으로 전담을 하기로 했다.”
“그렇군요.”
이것이 주작의 진심이었다.
하성을 진심으로 인정한다거나 휘하에 들이고 싶어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 때문이었다.
주작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하자. 수련을 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뿐이다.”
“그러죠.”
더 자세한 이야기는 하성도 알고 싶지 않았다.
어쨌거나 주작과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연인 간의 비밀스러운 일이었다. 그것을 굳이 캐고 싶지 않았다.
‘그럼 주작은 내 어머니뻘 되는 여자인가?’
아버지의 연인.
어쩌면 새어머니가 되었을 수도 있는 사람이 주작이었다.
주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련을 계속하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타닥. 타닥. 타닥.
하성은 잠시 수련법을 바꾸어 보기로 하였다.
주작은 작은 깨달음이 오면 수련자가 알아서 길을 개척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조언했다.
뭔가 감을 잡았을 것이니 주변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깨달음을 얻어 나가라는 뜻이었다.
불은 붉은 화염을 머금고 있었다.
불은 뜨거움이다.
이 세상에 불보다 뜨거운 것은 없다. 용암을 만들고, 암석조차 녹여 버리는 존재였다.
‘불을 느끼다 보면 막연한 깨달음보다는 실질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거다.’
하성은 나름대로 머릿속을 정리해 나가고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하성은 불에서 떨어졌다. 그러고는 마당 한가운데에서 정좌를 했다.
스아아아!
수많은 기운들이 자연지기 속에서 좌충우돌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화염의 기운을 느껴 보려 하였다.
‘아직 작다.’
아주 극미량이다.
과연 이걸로 깨달음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건 절대적으로 아니었다.
“후우.”
하성은 눈을 떴다.
잠깐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고 여겼는데 마당에서 눈을 뜨니 저녁이었다.
“시간이라는 것이 참.”
“빠르지?”
“그렇군요.”
“깨달음을 추구하다 보면 그렇게 되지. 도사들이 왜 산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는지 조금은 이해했겠지.”
“맞습니다.”
하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작의 말처럼 깨달음을 추구하는 재미가 있었다.
진리를 좇다 보면 시간이 무의미해지는 때가 있다.
주작은 하성에게 한마디 조언을 했다.
“초조해하면 안 된다.”
“알겠습니다.”
“초조함은 해악이다. 그것을 명심하도록.”
저녁이 되었으니 간단하게 식사를 해야 한다.
벽곡단을 먹으니 신기하게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뭔가를 섭취하지 않아도 포만감이 한참이나 갔다.
“신기하군요.”
“선조들이 수백 년 동안 연구를 해서 만든 벽곡단이다. 허접할 리가 없지.”
“그렇군요.”
하성은 자정까지 정좌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며칠 동안 ‘화’의 기운을 찾으려고 노력하였지만 그건 꽤나 힘든 일이었다.
도대체 그 단계에는 어떻게 접어드는 걸까.
이제는 반 정도는 포기를 했다. 필사적인 생각이 아니라 느슨하게 생각을 하였고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까지 생겼다.
하성은 천천히 숲을 걸었다.
스아아아!
한 줄기 바람이 불었다.
이것이 바로 바람의 기운이다.
바람의 기운과 불의 기운은 서로 다르다. 하지만 두 가지 기운이 합쳐졌을 때에는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만들어 낸다.
하성은 라이터를 켜 보았다.
휘이이잉!
작은 불이 바람에 꺼진다.
그 순간,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화염의 기운! 답은 단순히 불이 아니라 각 오행의 조화를 말하는 것이다. 화의 기운이 오행의 근본이 되기에.”
털썩.
하성은 그 자리에서 정좌하였다.
스아아아아!
수많은 깨달음이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하단전이 강제로 넓어졌고 온몸에 여러 가지 기운들이 스며들어 온다.
자연이 주는 충만함.
하성은 그 속에서 진정한 편안함을 느꼈다.
그는 눈을 떴다.
“깨달음을 얻었군.”
“덕분에요.”
“이제 하산할 때가 되었다.”
***
하산을 하여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다.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장마가 시작된다는 소식이 있었고 아마도 앞으로 일주일 정도는 비가 내릴 것 같다.
하성과 주작이 탄 리무진이 빗살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지금은 아침.
아마 집에 도착하면 9시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주작이 말했다.
“오늘 오후에 자체 대결이다.”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요?”
“각 대에서 한 명을 뽑고 그들이 대결하여 최후의 승자를 결정한다. 오늘은 우리 주작대 안에서 자체 대결을 하는 거지.”
“저도 참여합니다.”
주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성은 드디어 ‘화’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주작을 비롯한 사천왕은 하성의 참여를 말리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화’의 단계에 접어들지 못한다면 승리는 불투명했다.
하성은 드디어 한계를 돌파하였고 이번 경지를 넘어선다면 사천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하성은 주작에게 존경을 받기를 원했다.
“제가 주작대를 모두 꺾으면 당신에게 도전을 하고 싶군요.”
“네가 나를 꺾는다면 영혼의 주인으로 모시도록 하겠다.”
하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작은 표면적으로는 하성에게 복종하고 있었지만, 진심으로 그를 따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성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치우의 주인은 지속적으로 바뀌어 왔었다.
임가의 후손으로 주인이 바뀌지만 치우의 입장에서도 진심으로 모시는 주인이 죽어 버리면 타격이 상당했다.
“기대하지.”
서울에 하성을 데려다주고 주작은 인천으로 돌아갔다.
지금부터는 주작이 하성에게 알려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성은 정확하게 3일 만에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출근 준비를 하고 계셨다.
“다녀왔습니다.”
“왔느냐?”
“별일 없었나요?”
“전혀. 오히려 일심과 신사동에서 아무런 일도 일으키지 않아 수상하구나.”
“그렇군요.”
하성은 쓰게 웃었다.
치우와 회는 약조를 했다.
대대적인 대결이 있기 전까지는 휴전을 하기로 말이다.
운명의 승부가 머지않았다.
지금은 그야말로 폭풍 전야. 만약 치우가 그들과의 대결에서 패하게 된다면 일심과 신사동은 곧바로 독립할 것이다.
‘이번 대결이 더욱 중요하군.’
내심 어깨가 무겁다.
일심과 신사동이 그룹에서 나간다는 것은 곧 신화그룹의 분열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만큼은 막을 필요가 있었다.
“수아는요?”
“진즉에 등교했다.”
“저도 곧 내려오겠습니다.”
하성은 양복으로 갈아입고 내려왔다.
간만에 하성은 할아버지와 나란히 출근을 하기로 했다.
후우우웅!
차량이 미끄럽게 도심을 가로질렀다.
9시가 넘어가자 서울 시내도 한산했다.
물론 한산하다는 것이 매우 상대적인 것이라 지방의 출퇴근 시간 정도는 차가 막혔다가 풀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하성을 바라본다.
“나도 슬슬 은퇴가 할 때가 아닌가 싶다.”
“……!”
하성은 눈을 치켜떴다.
아직까지는 할아버지가 버텨 주어야 한다.
이 험난한 세상을 하성 혼자서 헤쳐 나갈 수 없었다.
“그게 무슨 참담한 말씀이세요?”
“이미 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일이다.”
하성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할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회장직을 하성에게 물려주겠다는 뜻이었다.
그건 무리다.
그런 거대한 사업을 과연 하성이 운용할 수 있을까.
“조금 더 도와주세요.”
“결혼식까지는 도와주겠다.”
“허억!”
할아버지는 이미 결심을 한 것 같았다.
하성이 결혼을 하고 성인이 되는 동시에 회사를 물려주고 은퇴를 하기로 말이다.
할아버지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나도 늙었어.”
“아직 정정하십니다.”
“게다가 예전과는 사회가 많이 바뀌어서 어떤 식으로 경영을 해 나가야 할지 헛갈릴 때가 많지. 하지만 너는 아니지 않느냐.”
“저도 힘에 부칠 때가 많습니다.”
“나보다는 낫겠지.”
“할아버지.”
“이미 결심이 섰다.”
하성은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이렇게까지 결심을 한 것이라면 무를 수가 없었다.
어떤 경우라도 할아버지는 허언을 내뱉는 경우가 없었다.
“나는 너를 믿는다.”
“할아버지…….”
신화그룹 앞에 도착했다.
오늘따라 할아버지의 어깨가 축 처져 있는 것 같았다.
90년대 조폭계를 주름잡았던 할아버지였지만 이제는 늙은 호랑이였다. 그것은 본인 스스로가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 저녁에 뵙겠습니다.”
“오냐.”
하성은 한빛그룹 본사로 향했다.
회사 앞에 도착하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도 하성은 여러 가지 생각들을 했다.
과연 할아버지가 은퇴를 하고 회사를 물려받으면 온전하게 운영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이다.
“하아.”
한숨이 새어 나왔다.
회사 앞에는 익숙한 차량 한 대가 보였는데, 그곳에서 유서화가 나왔다.
“여보!”
“서화 씨!”
유서화가 하성에게 달려와 안겼다.
3일 동안 하성은 전화조차 끈 채로 수련에 매진하였다. 미리 지인들에게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유서화는 그동안에 다섯 번이나 전화를 했다. 혹시나 하성이 받지 않을까 싶어서다.
유서화의 입에서는 여보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하성은 거기까지는 말문이 트이지 않았다.
“보고 싶었어요.”
“저도 보고 싶었습니다.”
“정말이요?”
“그럼요.”
“그런데 어떻게 전화 한 통 없을 수가 있어요?”
“그 지역에 전화가 터지지 않아서요.”
하성은 대충 얼버무렸다.
유서화도 어느 정도는 넘어가기로 했다.
“대신 오늘은 함께 있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하성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심 시간이 될지 걱정이었다.
오후에는 인천에서 주작대의 자체 대결이 열린다. 하성 역시 주작대에 참여를 하기로 하였기에 대결이 끝나면 몇 시가 될지 알 수 없었다.
총 6번의 대결이 진행될 것이었다. 물론 동시다발적으로 진행이 되었기에 몇 시간 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끝나면 밤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다만 오늘 조금 늦을 수도 있겠어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녀가 기다린다는 곳은 바로 신혼집을 말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에게는 저녁에 들어간다고 이야기를 해 놓았는데 어쩔 수가 없다. 사실대로 유서화와 하루 자고 간다고 이야기를 하는 수밖에.
하성은 유서화와 헤어졌다.
“그럼 저녁에 봐요!”
“알겠습니다.”
하성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부터는 회사 일에 집중을 해야 할 때였다.
3일 동안이나 회사를 비워 두었다.
주말이 끼어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비웠기에 서류가 상당히 쌓여 있었다.
게다가 내일부터는 주말이었기에 서류를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똑똑.
“들어와요.”
“회장님! 정말 보고 싶었어요.”
윤다희의 말이었다.
“윤 비서가 왜요?”
“회장님이 안 계시면 도저히 진행되지 않는 일들이 있었거든요.”
하성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니까 윤다희는 함께 일할 사람을 간절하게 기다렸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서류 뭉치를 내려놓았다.
쿵!
“많기도 하네요.”
“많이 추린 거예요.”
“웬만한 일들은 윤 비서의 선에서 처리를 하는 것이…….”
“물론 그렇게 하고 있어요. 상당한 서류들을 처리하고 남아서 가져온 거예요. 심각한 사안들을 제가 처리할 수는 없잖아요.”
“어쩔 수 없군요.”
하성은 서류에 얼굴을 파묻으려 하였다.
하지만 윤다희가 하성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신곡이 완성되었어요.”
“벌써요?”
하성은 서류에서 눈을 떼었다.
신곡이라면 브리아나를 말하는 것이었다.
“타이틀곡 하나를 완성한 것뿐이지만요.”
“3일 만에 완성했다니. 대단하군요.”
“이미 곡을 가지고 있었더라고요. 여기다가 그녀를 옭아매고 있던 문제가 해결되니 예전의 음색을 되찾았어요.”
희소식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엔터테인먼트 쪽에서는 빠르게 손을 써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애써 일군 흑자가 적자로 전환될 수 있었다.
“들어 보실래요?”
“그러죠.”
하성은 윤다희에게 CD를 받아 들어 노트북에 삽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