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ss returns RAW novel - Chapter 86
84. 윤다희의 하루
삐비빅! 삐비빅!
윤다희는 부스스한 얼굴로 잠에서 깨어난다.
이렇게 알람이 울려 댈 때는 시계를 부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윤다희는 구조본부장을 겸임하고 있었고 그녀가 빠져 버리면 회사 자체가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달칵.
5분 더 자고 싶다는 생각을 간신히 지운 후에 시계의 버튼을 누른다.
지금 시간은 새벽 6시.
그녀가 매일 이렇게까지 일찍 일어나는 이유는 임하성 회장에게 받을 결재 서류를 추려야 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임하성 회장은 자신이 회사의 오너라는 자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대부분의 서류를 윤다희가 처리하게 하였다.
그는 연일 사고만 치고 다녔고 수습은 윤다희가 한다. 문제는 그렇게 사고를 쳐 대는 것 치고 안 되는 사업이 없다는 것이다.
촤륵!
간신히 세수를 하고 서류를 읽어 내려간다.
“이번 분기 보고서에 투자 건에, 아주 할 일이 태산이네.”
아무래도 한 시간 정도는 서류를 추려야 할 것 같았다.
임하성 회장은 윤다희에게 막강한 권한을 주었지만 그럴수록 그녀는 수렁에 빠져들고 있었다.
7시가 되자 대충 서류가 꾸려진다.
아침은 간단히 토스트만 먹는다.
계란프라이라도 얹어 먹어야 할 텐데, 그럴 시간이 없었다. 임하성 회장의 등교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는 이 정도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다.
대충 식사를 마친 후에 밖으로 나온다.
지금 시간이 7시 30분.
8시까지 맞춰 가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출발을 해야 한다. 다행히 리무진이 도착해 있었다.
“어서 오세요, 윤 비서님.”
운전기사 한택수가 문을 열어 주었다.
검은 정장에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는 한택수는 조폭이다.
신화그룹은 조직에서 시작한 회사였고 주요 간부들은 모조리 조폭 출신이다. 하다못해 운전기사까지 말이다.
처음에는 조금 꺼려졌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 되었다.
“한 기사님, 조금 빨리 가 주셔야 할 것 같아요.”
“맡겨 주십시오!”
리무진은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러시아워 시간에는 차가 막힌다.
그녀는 시계를 바라본다.
“회장님이 또 타박을 하시겠네요.”
“일을 좀 줄이시는 것이 어떤가요?”
한택수의 말이었다.
그의 입장에서도 윤다희의 일은 과도한 것이다.
가는 길에 화장을 했는데, 한숨이 쏟아졌다.
꽃다운 나이에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나이가 꽤나 들어 보인다.
“이래서 시집이나 갈 수 있을는지.”
“회장님께서 윤 비서님을 총애하시니까 일을 많이 맡기시는 것 같네요.”
“총애라…….”
어떤 의미에서는 총애가 맞는 것도 같다.
하지만 이래서야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그녀의 나이도 곧 서른이다. 노처녀로 접어들어 가고 있었는데, 이대로라면 결혼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비서진을 보강하든지 해야겠네요.”
“제 말이 그 말입니다.”
8시에 간신히 주택가에 접어들었다.
다행히 임하성 회장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8시가 넘어서야 임하성 회장은 교복을 입은 채로 하품을 하며 나온다.
“으하하하함!”
그의 곁에는 임수아도 함께였다.
“언니, 좋은 아침!”
“아가씨, 타세요.”
곧바로 임하성도 리무진에 올라탄다.
윤다희는 서류를 꾸려 그에게 내밀었다.
“오늘 결재분입니다.”
“서류가 이렇게 많은가요?”
“많이 줄였습니다만.”
“요즘 영 시간이 없어서요.”
“끄응.”
임하성을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아 낸다. 서류를 건네는 윤다희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어디 몸이 좋지 않으신가요?”
“스트레스 때문에요.”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입니다. 잘 다스리도록 하세요.”
“정 그렇다면 비서진을 늘려 주세요.”
“알아서 채용을 하세요.”
“에휴.”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어떻게 대기업을 운영하는 회장이라는 작자가 이렇게도 태연한 걸까. 그는 회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별로 관심도 없어 보였다.
“빨리 가서 자든지 해야겠군요.”
“공부는 안 하십니까?”
“공부를 해서 뭐 하나요.”
“그럼 학교는 왜 가시는데요?”
“자러요.”
“으으윽.”
윤다희는 신음을 내뱉었다.
그녀는 매일 지옥과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루를 살아간다는 표현보다는 그냥 버틴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간신히 버텨 나가는 삶.
윤다희는 어쩌다가 임하성의 마수에 빠지게 되었는지 후회를 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는 돌이킬 수도 없다.
스스슥! 스스스슥!
임하성은 거침없이 사인을 해 나갔는데, 도대체 읽어 보기는 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수백억에 달하는 돈이 오가는 서류였는데 읽어 볼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안 읽어 보시나요?”
“윤 비서가 알아서 잘 처리했겠죠.”
“제가 비자금이라도 조성하면 어쩌려고요?”
“하하하! 그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죠.”
“…….”
윤다희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서류 정리는 이런 식이었다.
임하성은 대부분 사업의 뼈대를 잡는 편이었고 윤다희는 세세한 부분을 조율한다. 그리하여 최적의 운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윤다희 스스로도 경영을 하는 능력이 발전을 하였지만 어디까지나 임하성 회장의 보조적인 역할일 뿐이었다.
“브리아나의 음반 출시일은…….”
“그것도 알아서 하세요.”
“사업에 관심이 없으세요?”
“제가 좀 졸려서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으하하하함!”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임하성.
학교에 가는 이유가 잠을 자기 위해서라니.
어쩐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류 정리가 끝났다.
윤다희는 가방에 서류를 모두 집어넣었다. 회사에 돌아가면 서류를 기반으로 예산을 분배하고 또 전쟁과 같은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눈치 없는 임하성이 쓸데없는 질문을 했다.
“윤 비서는 결혼 안 하나요?”
“시간이 없어서요.”
“하하하! 시간은 만드는 겁니다. 저도 바빠 죽겠는데 결혼하잖아요?”
“회장님이 도대체 뭐가 바쁘신 건지…….”
도저히 이해 불가다.
학업과 조직의 일, 회사 일을 병행하며 임하성도 바쁘게 사는 것은 충분히 이해를 하였지만, 윤다희만큼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윤다희는 수라장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주름 늘어납니다.”
“으으윽. 불난 집에 부채질하세요?”
“좋은 남자 소개해 드릴까요?”
“됐거든요?”
지금으로서는 연애를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연애는 사치다. 시간이 생긴다면 모르겠지만.
차량은 대화고교 앞에 도착했다.
“그럼 오후에 뵙겠습니다.”
“그러시든가요.”
“오늘 까칠하시네. 그날인가?”
“뭐라고요!”
“다녀오겠습니다!”
임하성 회장은 후다닥 사라진다.
한택수가 그녀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회사로 모실까요?”
“네.”
차량은 빠른 속도로 도심을 가로질렀다.
회사에 도착한 윤다희는 아침 회의를 소집했다.
원래 이 자리에는 임하성이 앉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임하성은 학교에서 학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학업을 가장한 취침이겠지만 학교 정도는 졸업해야 한다는 것에는 윤다희도 공감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임하성은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다.
갑자기 두통이 찾아온다.
알약 하나를 꺼내 먹고 커피를 마신다. 아무래도 카페인이라도 섭취를 해 주어야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둘 임원들이 자리한다.
“좋은 아침입니다, 윤 비서님.”
“네, 오 이사님.”
“오늘 결재 서류는 정리되었나요?”
“아침에 받아 두었습니다.”
“정말 고생 많으시네요.”
“휴우, 고맙습니다.”
그래도 임원들은 윤다희의 고생을 알아주고 있었다. 그녀가 회사에 나오지 않으면 업무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임원들은 윤다희가 고난의 가시밭길을 걷고 있음도 알고 있었다.
“그럼 회의 시작하도록 할까요?”
“먼저 이번 분기의 실적 발표입니다.”
여러 가지 안건이 이어졌다.
윤다희는 지금까지 한숨을 내쉬며 투덜거렸지만 막상 회의에 들어가자 날카롭게 회의를 주관하였다.
만약 자금이 맞게 돌아가지 않으면 여지없이 지적했다.
“자재부에서 3천만 원이 비네요.”
“죄송합니다.”
“누락된 부분이 있을 거예요. 확인해서 보고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녀는 능수능란하게 지휘하였다.
아침 회의는 그럭저럭 끝이 나고 있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알람음이 울렸다. 윤다희는 식사를 하기 전에 급하게 회사에서 내려온다.
점심시간이 되면 곧바로 임하성 회장을 데리러 가야 하는 것이다.
임하성 회장은 오전에 출근을 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오후에 출근을 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에는.
30분을 소비하여 대화고교 앞에 도착했다.
“어서 오세요.”
“윤 비서님, 식사는 하셨나요?”
“그럴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그럼 식사하러 갈까요?”
윤다희는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밥 먹을 시간이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시간은 없었지만 허기가 졌다.
“맛있는 것을 사 주시겠죠?”
“물론이죠.”
임하성은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
‘웃지 마. 정 든다.’
***
임하성은 어쩐 일인지 윤다희를 고급 레스토랑에 데려왔다.
그녀로서는 이해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풀코스로 주문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얼씨구?’
여기에 풀코스 요리라니.
도대체 이 인간이 왜 이러나 싶었다.
“지금까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뭐 잘못 드셨어요?”
“아니요. 가끔은 이렇게 윤 비서와 오붓하게 시간을 갖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별일이네요.”
“비서진에 사람이 부족하다고 하셨죠?”
“아주 많이요!”
일손이 매우 부족하다.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있었지만, 그에 비해 인재가 부족했다. 특히나 비서진에서는 사람이 없어서 아우성이었다.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이 바로 윤다희였다.
임하성은 갑자기 인원 충원에 대해 말했다.
“특별 채용을 하도록 하죠.”
“비서진을 보강하시게요?”
“이러다가 윤 비서가 말라 죽을 것 같거든요.”
“진심이세요?”
“네, 바로 채용 공고 내세요!”
“와! 갑자기 왜 이래요? 적응 안 되게.”
“그냥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뿐이에요. 요즘 시간이 갈수록 늙어 가는 윤 비서를 보면서 특단의 조치를 내린 거죠.”
“으으윽.”
은근히 사람 속을 긁어내린다.
어쨌거나 윤다희의 입장에서는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인원이 충원되어야만 일손이 덜어진다. 이대로라면 과로사하고 말 것이다.
곧 음식이 줄줄이 나온다.
“점심부터 고기를 먹나요?”
“여러 가지 시켰으니 부담 갖지 말고 드세요. 와인도 한 잔 하시고요.”
“근무 시간인데…….”
“한 잔은 괜찮잖아요?”
“네.”
윤다희는 조금 화가 가라앉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임하성은 정말 신비한 사람이었다. 윤다희의 분노 게이지가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아낸 걸까.
“그건 그렇고.”
임하성이 입을 열었다.
이런 식으로 뜸을 들이는 이야기라면 또 거하게 사고를 치려 하는 것 같았다.
윤다희의 이마가 절로 좁혀졌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 하는 걸까.
“정식으로 구조본을 만들어야겠습니다.”
“정말이요?”
“구조본부장에 앉아 주세요.”
“이미 그렇게 하고 있어요.”
“정식으로요.”
“알겠어요.”
구조본이 만들어지면 분명히 많은 인재들이 채용될 것이다. 윤다희는 앞으로 일거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임하성 회장은 비서진을 보강하는 한편으로 구조본에도 손을 대려 하였다.
비서진은 외부에서 뽑아야 하지만 구조본은 그룹 계열사에서 뛰어난 인재들이 본사로 올라온다.
지원자가 많아서 면접까지 보아야 할 판이었다.
구조본은 한마디로 그룹의 머리라고 할 수 있었다. 임하성 회장의 명령을 구조본에서 해석하고 각 그룹에 전달한다.
한마디로 구조본의 힘은 어마어마하다고 말할 수 있다.
오후 3시가 되자 면접이 시작되었다.
“정말로 만들 생각인가 보네요.”
“그럼요. 언제까지 비서진에서 구조본 업무를 볼 수는 없죠.”
“그런데 신화그룹과 합병을 하면…….”
“구조본도 합병을 하겠죠.”
윤다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비서의 업무로 돌아가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구조본이 있다면 윤다희가 이렇게 고생할 필요도 없어진다.
1번부터 3번까지 면접자들이 들어왔다.
역시나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쟁쟁한 인재들이다.
“오성수 씨?”
“네!”
“구조본의 임무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윤다희가 질문을 던졌다.
오성수는 부동자세로 말했다.
“관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료들이요?”
“회장님이 왕이라면 저희들은 신하들이죠. 혹시 회장님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시면 잡아 주고, 진언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회장님의 명령이 원활하게 계열사에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윤다희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오성수는 정답을 말하고 있었다.
“다음은 진수연 씨에게 묻겠습니다.”
“네!”
“비서과에서 지원을 하셨는데요, 이유가 있습니까?”
“야망이죠.”
“야망이라고요?”
“야망도 없이 어떻게 구조본에 입사를 하겠어요? 저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부디 넣어 주세요.”
“후후후.”
아직 진수연은 모르고 있었다.
구조본이 출범한다고 하여도 지금의 생활에서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온갖 잡일을 다 해야만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잡일이라는 것이 상당한 권력이 주어진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자, 오택수 씨에게 질문입니다.”
“네!”
윤다희는 질문을 이어 나갔다.
장장 두 시간에 이르는 면접이 끝났다.
임하성 회장은 지루하다는 듯이 하품을 했다.
사실 임하성 회장의 입장에서는 윤다희가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것이 편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그녀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싶다.
임하성이 말했다.
“다 끝났나요?”
“거의 끝났어요.”
“오래 걸리네요.”
“당연하죠!”
윤다희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배려를 하려면 끝까지 하든지, 이렇게 설렁설렁 처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구조본의 직원들을 잘못 구성했다가는 회사가 망할 수도 있었다. 일반 직원들은 몰라도 권력의 핵심이 될 구조본의 직원은 대충 뽑을 수 없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임하성은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왜 그렇게 무관심하시나요?”
“윤 비서가 알아서 하시잖아요.”
“제가 실수하면요?”
“실수한다면 제가 잡아 주었겠죠.”
임하성은 진지하게 말한다.
이걸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다.
믿어 주는 것은 고마웠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윤다희는 임하성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런 기색을 눈치챈 걸까.
“그러지 마시고 술이나 한잔하러 가시죠?”
“술을 마시자고요?”
“시간 괜찮으면요.”
시계를 바라보니 곧 퇴근이었다.
오늘 하루도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갔다. 마치 다람쥐가 쳇바퀴를 타듯이 말이다.
술을 마시면서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걸까.
임하성과 윤다희는 특별한 관계였다. 어떻게 보면 회사에서 맺어진 상사와 부하 직원을 뛰어넘었다고 볼 수 있었다.
윤다희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정 원하시면요.”
“네! 정 원하니까 똥집에 소주라도 마시도록 해요.”
윤다희는 그대로 휩쓸려 임하성의 뒤를 따랐다.
촤아아아!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번 주 안에 장마가 시작된다고 하더니 그새 비를 뿌려 대고 있었다.
물론 포장마차에 온 것이라면 이런 분위기도 나쁘지는 않았다.
후두두두둑!
빗줄기가 포장을 마구 때렸다.
비 오는 날에는 소주라는 말도 있듯 하나둘 사람들이 차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문한 안주가 나온다.
임하성은 닭똥집을 즐겨 먹는다. 그는 비가 오면 포장마차를 찾았고 윤다희도 그것이 싫지 않았기에 은근히 임하성과 술을 자주 마셨다.
안주가 나오기 전에 오뎅과 함께 국물이 나온다.
이곳에는 김밥도 팔았고 안주가 풍성하다. 그 때문에 임하성과 자주 애용하는 곳이었다.
포장마차 주인은 임하성이 미성년자라는 것을 인지하기나 할까.
그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다. 아무래도 공인이다 보니 행동을 조심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학생이 이런 데 와도 되나요?”
“누가 물어보면 이모와 왔다고 하죠.”
“뭐라고요?”
또 임하성에게 말리는 느낌이다.
동생뻘 되는 것은 확실하지만 조카와 이모 사이로는 보이지 않는다. 역시 임하성은 윤다희를 놀리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한숨을 내쉬는 동안 임하성이 소주병을 들었다.
쪼르르륵.
잔이 채워진다.
“원샷 할까요?”
“그러죠.”
임하성과 윤다희는 단숨에 술을 넘긴다.
쓴맛이 느껴지지만 이 맛에 소주를 마시는 것이다.
인생의 쓴맛과 비슷하다고 할까.
그들은 몇 순배 술을 마셨다. 대작을 한다고 해서 별로 할 말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매일 보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임하성이 말했다.
“많이 힘드시죠?”
“네?”
“요즘에 꽤 힘드신 것 알아요.”
“어쩐 일로 저를 다 생각해 주시네요.”
“구조본도 만들었고 앞으로도 직원이 많이 충원이 될 겁니다. 지금까지 제가 무심했어요.”
“음…….”
갑자기 적응이 되지 않는다.
임하성은 원래 이런 캐릭터가 아니다. 그런데 사과 비슷하게 말을 하니 오히려 이쪽에서 더 머쓱했다.
“윤 비서님의 주름을 줄여 드려야죠.”
빠직!
“이게 누구 때문인데요!”
“하하하! 어쨌든 일을 줄여 주겠다고요.”
“그 약속 지키도록 하세요.”
“물론입니다.”
순간 욱해서 소리를 질렀다. 포장마차에 온 손님들이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윤다희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제발 철 좀 드세요.”
“남자가 철이 들 때는 죽는 순간이라고 합니다. 유명한 배우가 그런 말을 했죠.”
“그것 참.”
정말 말은 청산유수다.
도대체 어떤 배우가 그런 말을 했다던가?
테이블 위에 술병이 늘어나고 있었다.
“하아.”
“왜 한숨이에요?”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그렇죠.”
“후후, 결혼은 하기 싫은가 보죠?”
“그런 것은 아닌데.”
윤다희도 주변에서 시집을 간 친구들이 많았다. 장가를 간 지인들도 꽤 있었고 그들과 술자리를 가진 적도 있다.
역시나 임하성도 남자였고 결혼이 무덤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남자들은 그런 생각부터 고쳐야 한다.
“성스러운 결혼이에요. 인생의 첫발이죠.”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네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누구도 대신해 주지 못할 행복을 얻는 것이잖아요?”
“행복이라.”
임하성의 머리는 복잡해 보인다.
하기야, 결혼을 앞두고 있는 신랑 신부라면 보통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식장까지 잡아 놓고 파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영 아니다 싶으면 식을 올리기 직전에 파혼을 선언해도 된다.
하지만 임하성은 그러지 못할 것이다.
유서화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결혼 자체에 갑갑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임하성은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갑갑한 심정에 대해 토로를 했다.
윤다희는 조용히 그의 말을 들어 주고 있었다.
도착한 지 두 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 슬슬 그들은 자리를 파하기로 했다.
윤다희는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촤아아아!
차량이 빗줄기를 뚫고 나아간다.
그녀는 임하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철이 없는 것처럼 행동을 하는 건지, 원래 그런 건지.”
임하성이 철이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맨손에서 엔터테인먼트 하나를 받아 지금까지 성장을 시켰다. 그것도 다 무너져 가는 회사를 말이다.
그는 경영의 천재였다.
“일부러 그러는 거겠지.”
윤다희는 임하성을 생각하며 웃고 말았다.
아무래도 그들은 전생에 악연이었지 싶다. 이생에서 이런 식으로 만났으니 말이다.
윤다희는 기지개를 켰다.
“가서 맥주나 한 캔 하고 자야겠다.”
그녀의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