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03
101. 종착점 (3)
나는 화룡안을 통해서 볼 수 있게 된 심상 세계를 둘러보며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여섯 번째 관문을 바로 통과한 건 좋은데 생각보다도 더 나의 심상은 뒤틀려져 있었다.
소용돌이.
천지가 존재하지 않는 이 작고 검은 우주에는 오로지 소용돌이만이 존재했다.
수많은 소용돌이의 중심에 검(劍)이 작게 박힌 채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소용돌이는 다 검이 박힌 것을 제외하면 그 회전 속도도 빛나는 세기도 각각 다 달랐다.
그중에서도 밝게 빛나는 소용돌이는 오로지 위에만 존재했다.
상하좌우로 널린 소용돌이였지만 거기에도 격차가 존재한다는 듯 위로 갈수록 소용돌이의 크기는 더 커지고 더 강하게 빛났다.
반대로 아래로 갈수록 소용돌이는 점점 작아지고 그 빛도 볼품없는 전구의 불빛 수준으로 미약해졌다.
‘뭘 의미하고 있는지 아예 짐작도 할 수가 없는데…….’
이런 게 정말로 내가 지닌 심상의 세계라는 것일까?
―……여섯 번째 관문을 이렇게 바로 돌파한 건 당신이 처음이야.
그때 잊고 있던 에일린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나는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보니 이 심상 세계는 시간 흐름이 엇나가는 권능에 의해서 체류할수록 바깥에서의 시간이 크게 소모된다.
여섯 번째 관문도 통과했으니 재빠르게 나가야 했다.
―아니, 시간의 흐름을 엇나가게 하는 권능은 해제했어…….
그럼 지금 바깥이랑 심상 세계의 시간 흐름은 동일한 겁니까?
―잘 알고 있네. 그러니 걱정할 건 없어. 당신이 생각한 7일의 남은 시간이 뭔지는 몰라도 아직은 시간이 충분할 거야.
그렇지 않아도 이 심상 세계가 뭔지 알고 싶었는데 다행이네요.
도대체 이 소용돌이들은 무슨 의미를 지닌 겁니까?
왜 뜬금없이 심상 세계랍시고 볼 수 있게 된 게 검이 박힌 소용돌이인 거고.
이 소용돌이는 왜 각각 서로 격차가 있다는 듯 크기나 빛의 세기가 다른 겁니까?
―그거야……. 당신의 욕망이 이 소용돌이로 구현되어 있으니 그런 거겠지.
그게 무슨 소리인지 좀 더 확실히 말해 주실 수 있을까요.
―검(劍)은 당신이 무예에 집착한다는 걸 상징하고 소용돌이는 끝없이 이어지는 욕망을 뜻하는 거 아닐까 싶은데.
대충 때려 맞춘 듯한 느낌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럴싸했다.
그럼 이 심상 세계는 내가 느끼는 성장 욕구의 구현이라는 것일까?
상층부로 갈수록 소용돌이가 더 커지고 반대로 하층부로 갈수록 소용돌이가 더 작아지는 건 그 부차적인 상징일 것이다.
―대충 때려 맞춘 거 아니거든? 내가 성녀로 심상 세계만 수십 개를 봤는데 이것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할 거 같아?
그런데 이래서야 신념의 증명이 되기는 하는 겁니까?
고작 성장 욕망을 구체화한 상징들을 보는 걸 제외하면 그다지 어려운 건 없었습니다만…….
―말을 돌리는 게 좀 짜증 나기는 하는데……. 알려 줄게. 신념의 증명은 곧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길이야.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길이라니?
―사람이란 의외로 자기 자신의 신념(信念)을 제대로 모르거든. 무엇을 믿고 생각하는지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지. 믿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구현된 심상을 마주하는 게 바로 이번 관문의 목표였어.
의외로 진짜 순수히 시련을 받게 되는 사람의 신념만을 생각한 시련이네요.
―당연한 거 아니야? 신념의 증명은 곧 자기 자신의 나약한 것 그리고 추악한 점까지 모두 인정하고 스스로를 증명하는 거야.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보호 기제로서 작동하던 모순을 다 버리고 온전히 스스로를 증명하며 끝나는 시련이었어.
그럼 저도 아직은 시련을 통과하지 못한 거 아닙니까?
심상 세계를 볼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신의 인정 및 보호 기제로 작동하는 모순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없어. 당신은 그냥 자기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잖아. 비루한 과거를 극복하고 더 강해지고 싶으니 그러겠다. 하지만 인간성은 버리고 싶지 않다. 그러니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고, 그 신념을 바탕으로 싸워 나가겠다고 결심했잖아.
……어쩐지 남한테 모든 걸 까발려진 기분이라 좀 민망하긴 한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레실리안과의 격전에서 나는 새로운 마음가짐을 새긴 채 이 신념으로 싸우겠다고 정했다.
예비 사도 같은 괴물과 싸우라고 종용했던 그 증명의 시련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꽤 정직한 증명이 필요한 시련이었다.
뜬금없이 이렇게 친절하게 나오니 오히려 불안해지기까지 한다.
―……미안한데 육체의 증명은 다 죽이고 오라는 게 아니었어. 그대로 당신이 도망쳐서 방의 문을 돌파하기만 해도 됐다고. 출제 의도랑 다르게 당신이 모든 걸 파괴하고 죽이고 그러며 온 거에 앙심을 품지 좀 말아줘.
에일린은 그렇게 말하고 이내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이제 심상 세계를 마주 보는 것도 끝났으니 의식을 심상 세계에서 끌어올릴게.
그 말에 나는 정신이 몽롱해지는 감각을 느끼며 이내 눈을 감았다.
이제 현실로 돌아가서 일곱 번째 관문으로 가야 할 시점이었다.
***
「관리자 ‘백학검선(白鶴劍仙)’이 당신이 깨어났음에 기뻐합니다.」
「관리자 ‘철혈의 군주’가 당신이 정신을 차린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관리자 ‘멸망한 세계의 용사’가 당신이 생각보다 더 빠르게 일어난 것에 당황합니다.」
눈을 뜨자마자 나는 관리자들의 메시지를 무시하며 스스로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한동안 의식도 없이 그대로 신체의 제어권을 잃고 있었으니 몸이 걱정되는 건 당연했다.
“…….”
나는 바닥에 누워 있지 않고 심상 세계에 진입하기 전처럼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심지어 몸에도 그다지 상처가 있다거나 무슨 제약에 걸린 기색도 없었다.
그러나…….
“이게 바로 당신이 저지른 흔적인데……. 어떻게 생각해? 이거?”
검은 거울로 된 방은 심상 세계의 진입 전과는 꽤 모습이 달라졌다.
여기저기에 검이 휘둘러진 기색이 다분했고 심지어 검기까지 사용된 흔적이 있었다.
그에 나는 입술을 삐죽 내민 채 방의 구석에 앉아 있는 에일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설마 이거 제가 이렇게 한 겁니까?”
“응, 쓰러질 거 같아서 내가 안아서 바닥에 내려주려고 했는데 공격하더라고.”
“…….”
“그러더니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검을 붙잡은 채 심상 세계로 진입하더라.”
상상 이상으로 꽤 과격하게 날뛴 모양새였다.
“무서워서 다가가지도 못하고 그 탓에 구석에서 이렇게 앉아 있던 거야.”
“미리 언질을 주셨으면 이렇게까지 될 일도 없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여섯 번째 관문을 시작한다고 했잖아. 그거면 충분하지.”
에일린은 투덜거리며 이내 무릎을 끌어안은 채 앉은 자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간에 여섯 번째 관문을 당신은 그대로 통과했어.”
“그럼 이제 일곱 번째 관문으로 넘어가면 되는 겁니까?”
“당신이 바라면 그렇게 해도 돼. 그런데 나는 추천하지 않을 거야.”
“어째서입니까?”
“일곱 번째 관문은 그 누구도 살아서 통과한 적이 없거든.”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이내 일곱 번째 관문으로 가는 문에 다가섰다.
“그럼 제가 이제 처음으로 살아서 통과한 사람이 되겠네요.”
“……당신이 뛰어난 무예를 지녔고 좋은 능력이 있다는 건 알겠어. 하지만 이건 그거랑은 별개의 문제야. 죽을 수도 있다고.”
“그렇군요.”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야. 진짜로. 당신처럼 순수하게 성장에 미친 사람은 처음 봤어. 증명의 시련을 받은 것도 성장하고 싶어서겠지.”
“…….”
이어지는 에일린의 질렸다는 듯한 시선에도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잘 지내십시오.”
그에 에일린은 한숨을 푹 내쉬며 흐느적거리며 손을 흔들어 작별을 고했다.
“응……. 잘 가, 인간 같지도 않은 모험가야.”
그 광경을 마지막으로 나는 방의 문을 닫은 채 복도를 걸었다.
검게 물든 거울은 복도를 지날수록 이내 점점 그 유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불길했다.
여섯 번째 관문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더 괴이한 시련을 내놓았고.
이는 곧 마지막에 있을 일곱 번째 시련도 정상은 아니란 뜻이나 다름없었다.
「관리자 ‘일곱 신의 사제’가 당신에게 모든 건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조언합니다.」
「관리자 ‘신성의 구도자’가 당신이 곧 겪게 될 시련을 생각하며 동정의 눈빛을 보냅니다.」
「관리자 ‘참회의 사제’가 당신이 마주치게 될 죄악을 생각하며 기대감을 품습니다.」
나를 보고 있는 관리자 중 신에 관련된 듯한 자들이 꽤 조잘조잘 말이 많았다.
심지어 이 일곱 번째 관문의 시련이 무슨 내용인지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모양새였다.
「관리자 ‘백학검선(白鶴劍仙)’이 신을 섬기는 관리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하여 침울함을 느낍니다.」
「관리자 ‘철혈의 군주’가 곧 심상치 않은 상황이 벌어질 것을 예견하며 신을 섬기는 관리자들을 노려봅니다.」
「관리자 ‘멸망한 세계의 용사’가 자기들만 아는 이야기는 집어치우고 알아들을 수 있게 좀 말하라며 역정을 냅니다.」
그러나 반대로 다른 관리자들은 일곱 번째 관문이 무엇인지 모르는 거 같았다.
이렇게까지 신을 섬기는 관리자들이 내가 처할 상황을 동정하거나 기대하는 걸 보니 평범한 시련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간에 도착하게 되면 알게 되겠지.’
그다지 신경 쓸 거 없다며 나는 불안함을 잠재운 채 일곱 번째 관문으로 가는 문을 열고는 그대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일곱 번째 관문에 도달하여 증명의 신이 직접 당신을 주시합니다.」
쩌어억.
순간적으로 나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 쩍 갈라지는 광경을 보며 얼어붙었다.
검게 물든 거울로 된 방의 중심에 있는 큰 전신 거울의 위로 눈동자가 나타났다.
이는 비유도 농담도 뭣도 아니었다.
진짜 허공이 갈라지며 거기에서 붉은 동공을 지닌 눈이 나타나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 기괴한 광경에 나는 당황했지만, 그보다 더 당황스러운 건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흡사 저항할 수 없는 절대적인 무언가를 마주친 것처럼 몸이 생존을 포기한다.
「권능 ‘명경지수’가 신의 눈빛에 의해서 봉인됩니다.」
호흡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관리자 ‘일곱 신의 사제’가 증명의 신이 주시하고 있음에 경악합니다.」
눈에서 용암처럼 뜨거운 피가 흐른다.
「관리자 ‘신성의 구도자’가 증명의 신이 나타난 것에 흥미로움을 느낍니다.」
내장이 뒤집히는 감각이 일어나며 구역질이 나온다.
「관리자 ‘참회의 사제’가 항거할 수 없는 공포를 느끼며 당신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깁니다.」
오로지 죽는다는 생각만이 뇌리를 가득 채운다.
“커, 커허억…….”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압박감과 불안감에 나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신의 눈빛 앞에서 나는 그저 한 마리의 개미에 불과했다.
그저 심심풀이로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도 그대로 펑 터져서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보잘것없는 하찮은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뇌가 제대로 인지했고.
그걸 시작으로 몸이 멋대로 생존을 포기한 채 그대로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증명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의 존재를 인식합니다.」
그 메시지가 나타나자 압박감은 더 심해지며 몸이 균형을 잃고 쓰러지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의지를 발휘해서 오른손에 들린 혈천마검을 손바닥에 내리꽂았다.
푸우욱!
“크흐으…….”
「스킬 ‘잿빛 선혈’이 활성화됩니다.」
「사용자에게 가해지는 모든 종류의 고통이 17% 감소합니다.」
손바닥이 찢기며 스킬에 의해서 경감된 고통이 머리까지 스며든다.
하지만 모자랐다.
나는 바로 손에 꽂힌 칼날을 뒤흔들어서 손바닥을 더 크게 찢어서 고통을 늘렸다.
그에 서서히 고통을 통해서 압박감을 풀어 내며 허공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한순간에 나를 고깃덩이로 만들어서 죽일 수 있는 존재에게 분노를 보냈다.
신이라고 해도 내게 죽음을 선사할 권리 따위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설령 이 자리에서 죽게 되더라도 나는 저항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제 더 무력하게 누군가에게 짓밟히는 건 죽어도 싫었다.
혼란 혹은 공포 따위의 감정은 모조리 무시한 채 오로지 분노에만 집중했다.
그러지 않으면 이렇게 제대로 정신을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젠장……. 의식이……. 흐려져…….’
증명의 신이 눈을 이대로 닫지 않을 시 몸을 억지로 움직여서라도 당장 눈동자를 벨 생각이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이 상황은 증명의 신과 관련된 시련이었다.
시련의 탑은 아예 통과할 수 없는 시련은 내주지도 않는다.
일곱 번째 관문이 이미 시작됐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돌파구는 존재한다.
분명히 시련의 탑은 그렇게 설계해 뒀을 것이다.
탑은 도전자가 좀 더 열렬히 상층부로 올라오기를 바라니까.
그 생각을 머리에 각인한 채 나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왼손의 손바닥에 박아 둔 혈천마검을 빼내서 겨눴다.
언제든지 바로 뛰쳐나가서 저 빌어먹을 눈동자를 단숨에 베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신의 눈을 베어야 할 상황은 오지 않았다.
「증명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의 기개를 높이 삽니다.」
「증명의 신이 이렇게까지 정신력이 높은 도전자는 오랜만에 본다며 기뻐합니다.」
「증명의 신이 당신의 당당하기 그지없는 눈빛을 보며 스스로를 증명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증명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의 존재를 기억합니다.」
이어서 허공에 떠오른 눈동자는 그런 내가 마음에 든다는 듯 눈웃음을 짓더니.
「증명의 신이 일곱 번째 관문의 시작을 고합니다.」
이내 그 메시지가 떠오르는 동시에 바로 그 모습을 감추며 사라졌다.
동시에 나는 이내 방의 중앙에 있는 거울이 환하게 빛나는 걸 보며 직감했다.
「정신의 증명이 시작됩니다.」
「이제부터 도전자 한성윤의 정신에 간섭하는 모든 스킬 및 권능이 봉인됩니다.」
일곱 번째 관문은 진짜 죽을 수도 있는 시련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