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06
104. 신성 (2)
신의 영역에 소환되었다는 두려움도 잠시에 불과했다.
―시련의 탑이 도전자 한성윤의 신변의 안전이 확보되는 한에서의 소환을 허락합니다.
방금 시련의 탑은 메시지로 신변의 안전이 확보되는 선에서 나를 소환할 수 있다고 했고.
그 말은 곧 증명의 신이 내게 큰 해를 끼치지는 않으리라는 판단으로 이어졌다.
‘침착하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슬며시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흡사 구름의 바로 아래에 있는 듯 하늘이 굉장히 가깝게 느껴지는 광경도 그렇지만…….
마치 수평선처럼 거울로 된 바닥이 하늘을 투영하며 두 개의 하늘이 맞닿은 듯한 기묘한 광경이 연출되는 공간이었다.
정말로 신의 영역이라는 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좀 더 자세하게 주변 공간을 살필 틈은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
[ ……직접 보니 상당히 이질적이군. 너는 탑이 만들어 낸 유사 신격인가? ]잠깐 말없이 있던 증명의 신이 머릿속에 또 음성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유사 신격?’
무엇을 말하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기에 나는 바로 입을 열어서 의문을 표했다.
“……유사 신격이란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 유사 신격, 그러니까, 탑에서 부르는 말로는 ‘관리자’라고 하던가? 탑과의 계약 하에 유사 신성을 획득한 존재냐고 묻는 거다. ]어째서 관리자가 유사 신격이라고 불리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관리자냐 아니냐에 대해서 질문하는 거라면 대답하기 수월해진다.
“관리자는 아니고 아직은 탑을 오르는 도전자일 뿐입니다.”
[ 확실히……. 유사 신격이랑은 격이 다르군. 온전히 스스로의 신성력을 품고 있어. ]“……?”
[ 오랫동안 보지 않은 새에 탑도 꽤 재밌어졌군. 유사 신격으로는 ‘진짜’를 만들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인가……. ]“…….”
[ 유사 신격의 사도로 삼아서 ‘진짜’를 만들어낸다, 라……. 과연, 그렇게 된 거였나. 이해했다. 도전자 한성윤. 너는 평범한 존재가 아니군. ]“그게 무슨…….”
어쩐지 증명의 신이 무언가를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신성이니 진짜니 뭐라고 떠들기는 하는데 대충 요약하자면 내가 지닌 신성력이 문제인 듯했다.
‘카이란을 죽이고 획득한 신성력이 이렇게 된다고……?’
예비 사도, 카이란을 죽인 뒤 흡수하게 되었던 신성력의 권능이 꽤 중요했던 모양새.
그런데 정작 나는 그 신성력을 다루는 법도 모르고 그렇게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결국, 나는 고민 끝에 천천히 입을 열어서 물음을 건넸다.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 ……? ]“신성력이 뭐길래 중요한 것처럼 말씀하시는 겁니까?”
[ ……시련에서 본 미래의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질문할 줄 알았더니 이상한 걸 물어보는군. 스스로 신성(神聖)을 추출해 놓고 그것도 모르는가? 신의 흔적까지 싹 제거하는 추출 과정을 거친 건 그걸 알기 때문이 아닌가? ]원해서 추출한 것도 아니고 무작위 권능 추출로 획득하게 됐는데 알 수 있는 게 있어야지.
내심 나는 그렇게 투덜거렸지만 이내 카이란에게 추출한 신성력이 꽤 대단한 것임을 알게 됐다.
신의 흔적이 없다고 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어도 신성력의 사용법만 알게 되면 꽤 쓸 만하지 않을까…….
‘실제로 신성력을 사용하는 사제들도 꽤 강했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이어서 머릿속에 증명의 신이 어이가 없다는 듯 음성을 울리는 게 느껴졌다.
[ ……보아하니 아예 신성력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모양새로군. ]“……어쩌다 보니 습득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
[ 스스로 인지하고 있지는 못해도 카이란의 신성력을 추출한 건 우연이 아니다. 인과율이 확실히 존재하는 게 느껴진다. ]인과율?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신성과 인과율 그리고 우연이 아니라는 것까지…….
그 말에 내가 눈을 찌푸린 채 고민하고 있자니 이내 머릿속에 또 음성이 들려왔다.
[ ……실수했군. 탑이 분노하는 걸 보니 이건 알려주면 안 되는 정보였던 모양이야. ]“예? 그게 무슨…….”
[ 이제 작별이다. 도전자 한성윤. 너의 행보를 바깥에서나마 듣고 있도록 하겠다. ]“……더 자세히 알려주실 수는 없는 겁니까.”
그 사실은 주위에 있는 공간이 일그러지는 동시에 알 수 있었다.
「소모한 신성력을 다 사용하며 증명의 신이 임시 권한을 잃습니다.」
「잠시 후, 신역(神域)에서 본래 있던 공간으로 돌아갑니다.」
이제 증명의 신은 나를 여기에 더 묶어 두지 못한다.
아직 물어보고 싶은 것도 꽤 남아 있는데 벌써 돌아가게 된다니?
솔직히 말해서 서로 대화를 그다지 많이 나누지도 않은 상황.
그런데 벌써 돌아가게 된다면 의문을 오히려 부풀린 상태로 돌아가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미래의 나는 왜 저렇게 된 거고 신성은 무엇이며 인과율은 또 무슨 뜻이냐고 묻고 싶었다.
[ 그런 셈이지. 그 어떤 신이든 탑은 쉽게 대할 수 없는 존재이니 어쩔 수 없다. ]점점 흐릿해지는 주변 풍경을 보며 나는 입을 열려고 했지만…….
입을 뻐끔거려도 이제 더 목소리가 바깥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 나중에 아레스에 있는 ‘증명의 신전’에 찾아오면 네가 궁금해하는 걸 조금은 풀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마치 누군가 질문하는 걸 막기라도 한 듯이.
[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언해 주자면……. ]그리고…….
[ 아레스의 신들을 믿지 마라. 그들은 너를 이제 적으로 여길 테니.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이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검은 거울로 된 방에 중앙에는 큰 전신 거울이 존재하는 기묘한 공간으로.
「축하드립니다, 시련의 탑 11층을 돌파하셨습니다.」
이제 완전히 시련의 탑으로 돌아온 것이다.
***
탑으로 돌아오게 된 나는 상당히 복잡한 기분을 느꼈다.
궁금증 혹은 답답함에 가까운 부류의 감정이라고 해야 할까?
부정적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긍정적이지도 않은…….
딱 그 정도의 감정이라 할 수 있는 기분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11층 시련은 나의 성장을 이전과는 말도 안 될 정도로 촉진되게 했다.
하지만 11층 시련 끝에 남은 건 현재로서는 답을 알 수 없는 궁금증이었다.
「축하드립니다, 시련의 탑 11층을 돌파하셨습니다.」
「돌파 보상으로 ‘낡은 증명의 거울(S-)’이 인벤토리에 전송됩니다.」
「돌파 보상으로 ‘70,000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돌파 보상으로 ‘3,000 SP’를 획득하셨습니다.」
「추가 돌파 보상으로 ‘1,500 SP’를 획득하셨습니다.」
「대기실로 이동하십시오.」
하지만 그 궁금증을 해결할 새도 없이 11층 시련은 바로 끝났다.
「대기실로 돌아갈 시 제한된 관리자의 관측 영역이 복구됩니다.」
“…….”
나는 망막에 맺히는 시스템 메시지를 무시한 채 제자리에 서서 생각했다.
신(神).
모든 걸 초월한 듯한 존재감을 드러내던 존재는 내게 말했다.
예비 사도, 카이란의 신성력을 추출하게 된 건 우연이 아니며 확실한 인과율이 느껴진다고.
그게 무슨 뜻인지 곰곰이 생각하고 있자니 곧 그 인과율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내게 고유 특성을 개화할 수 있도록 해 준 건 탑이며 동시에 권능 추출 판정 또한 시스템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그렇다는 건 탑은 어느 정도 시스템을 다룰 수 있다는 뜻이고, 신성력을 추출해서 권능으로 획득했던 건 탑의 의지라는 거다.
‘그러니 인과율이 느껴진다고 했던 거겠지.’
물론 아직도 신성이니 뭐니 하는 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탑이 내게 카이란에게서 신성을 추출하게 유도한 건 알겠는데…….
어째서 신성력을 권능으로 획득하게 하려고 했는지 그 이유는 짐작도 되지 않았다.
심지어 증명의 신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관리자의 사도가 된 게 탑이 유도했다는 듯 말했던 걸 생각하면 더 그러했다.
관리자와 사도 계약을 맺게 된 것도 카이란의 사령에서 신성력을 권능으로 추출하게 된 것도 다 탑이 유도한 바라고 치자.
‘그럼 탑이 그렇게 유도하는 목적은 뭐지……?’
하지만 정작 그렇게 유도한 탑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잠깐 고민하던 나는 이내 머릿속에 있는 대로 방금 들은 대화의 키워드를 읊었다.
어쩌면 대화의 키워드를 떠올리다 보면 짐작이 가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
“유사 신격……. 신성……. 관리자……. 그리고 ‘진짜’를 만든다는 것…….”
탑은 신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이며 관리자는 유사 신격이라는 이명을 지녔다.
아니, 원래 불린 명칭이 유사 신격이고 탑이 관리자라는 이명을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그럼 그 관리자의 사도로 삼아서 ‘진짜’를 만들어 낸다는 건 무슨 뜻일까…….
“모르겠네.”
아예 짐작이 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확신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탑은 나한테 해를 끼치지는 않고 있어.’
물론 탑의 시련에서 죽음을 겪게 될 뻔한 상황은 몇 번 있었다.
그러나 딱 잘라서 말하자면 탑은 나를 속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착취를 한 것도 아니다.
그저 더 많은 걸 알고 싶고 강해지고 싶으면 탑을 올라오라는 듯 유도했을 뿐.
심지어 방금도 증명의 신이 나를 강제 소환하게 되자마자 나의 신변을 우선해서 보호했다.
‘탑도 나를 어느 정도 자기 목적에 써먹을 생각이 있으니 그런 거겠지만…….’
그렇다 한들 당장 탑이 내게 해악을 끼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가만히 서 있던 나는 이내 생각을 정리한 채 방의 중앙에 나타난 포탈로 발을 옮겼다.
이 세상에는 어차피 공짜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탑을 오르며 내가 강해지기를 소망했듯이 탑도 내게 바라는 바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시련의 탑은 점점 높은 계층으로 올라갈수록 수준 높은 정보를 제공한다.
질문권 또한 모으고 또 모아서 관리자를 통해서 궁금증을 알고자 한다면 알지 못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의 의문은 탑을 오르는 와중에 해결할 수 있겠지.’
정말로 아예 종잡을 수도 없다고 느껴지는 의문은 딱 하나였다.
‘신들을 믿지 마라……, 였지.’
그리고 그 뒤에 덧붙이기를 이제 다른 신들은 나를 ‘적’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여태까지 나는 탑을 오르며 생긴 적은 오로지 다른 차원의 도전자뿐이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증명의 신은 내게 다른 신들을 적으로 생각하라는 듯 말했어.’
방금 11층 시련으로 증명의 신이 마련한 시련을 통과하며 나는 그 신의 호의를 얻었다.
‘물론 영구적이지는 않겠지만……. 방금까지는 내게 상당히 호의적인 태도였지.’
결과적으로 증명의 신은 내게 짧은 대화 속에서 여러 가지 사실을 알려주었다.
유사 신격이니 신성이니 했던 것도 대부분 그럴싸하게 들렸으니 아마도 신들이 나를 적대할지도 모른다는 건 진심일 터다.
아, 그렇지만 그 말이 진짜라고 완전히 확신하는 건 아니다.
‘그 사실을 아예 믿지 않는 건 아니지만…….’
아직 본 적도 없는 신들이 어째서 나를 적으로 인식하게 되는지는 알려주지 않은 채다.
그러니 증명의 신이 말했던 내용을 완전히 신뢰하기는 힘든 상황.
하지만 아예 신뢰한다고 해도 당장 신이 나를 적대하느니 어쩌니 해도 바뀌는 건 없다.
‘신이 적대하든 어쩌든 간에 탑의 비호가 있는 한, 신들은 나를 쉽게 건드릴 수 없어.’
방금 증명의 신조차도 나를 소환하는 것에 탑의 허락을 맡아야 했었으니 확실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상에는 신이 나를 적대한다고 한들 당장 바들바들 떨어야 하는 사유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이제 복잡한 고민은 잠깐 접어 둘 차례였다.
「12층 대기실에 입장하셨습니다.」
고민은 고민이고.
이제 또 새로운 시련을 맞이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