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09
107. 진짜 재능 (2)
12층 시련으로 이어지는 포탈에 발을 내디딘 후.
나는 이 12층 시련도 11층처럼 의외의 스테이지 배경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시련의 탑 12층에 입성합니다.」
「난이도 – 어려움」
「해당 시련의 주제는 ‘한계 돌파’입니다.」
「조언성 메시지를 방지하기 위하여 관리자의 메시지가 일시적으로 비활성화됩니다.」
「도전자가 선택한 고행 끝에 만족스러운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도 그럴 것이…….
「12층 시련을 시작합니다.」
「남은 시간 – 48시간」
「시련 돌파 조건 – 남은 시간 안에 복제된 자기 자신을 살해할 것」
「시련 실패 조건 – 도전자의 죽음 혹은 남은 시간의 종료」
「시련 돌파 보상 – 고대 황제의 잿빛 왕관(A-)」
「시련 실패 페널티 – 사망」
포탈의 너머에 펼쳐진 12층 스테이지는 사악한 분위기를 뽐내는 유적이었던 탓이다.
“…….”
알 수 없는 글자들이 빼곡하게 새겨진 낡은 벽화를 보며 나는 눈을 찌푸렸다.
그저 글자만으로도 불쾌함이 느껴질 정도로 사이함이 가득한 벽화였던 탓.
‘그저 평범한 시련의 스테이지 정도로 여길 수 없을 정도인데.’
하지만 마력 회로를 통해서 이 지하 유적을 감지하다 보니 그건 별것도 아니란 걸 깨달았다.
지하 유적의 정중앙에 이제는 메말라 있는 핏물로 그려진 진(陣)의 근처로.
공기 중의 마력이 집결되며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주변의 마력이 끈적해진 것이다.
「어둠의 신이 부여한 축복이 고대 황궁의 침입자를 감지하여 수호병을 생성합니다.」
흡사 스토리텔링을 해 주듯 허공에 탑의 메시지가 덤덤하게 이어진 건 덤이었다.
그리고.
「이제 침입자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종종 떠오르는 탑의 주의 문구까지 쭉 읽어 내린 나는 눈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스토리인지 정도야 단숨에 이해할 수 있었다.
낡은 벽화나 고대 황궁이라는 문구들을 보면 나는 고대 황궁의 유적에 들어온 이고.
현재 고대 황궁 유적의 중심부에 도달하여 황궁에 깃든 축복이 나를 배제하기 위해서 발동되었다는 것인데…….
그런 시답잖은 12층 시련의 스토리보다는 이 고대 황궁에 축복을 부여했다는 존재에 대해서 더 신경이 쓰였다.
‘설마 또 신이라는 족속이랑 관련될 줄은 몰랐는데.’
어둠의 신이라니.
이전 층도 신이랑 연관이 있었는데 이번 층도 비슷한 것일까?
‘적어도 이번에는 그다지 변수는 없으면 좋겠지만……. 그건 두고 봐야 하겠지.’
심지어 관리자의 메시지까지 막은 걸 보니 조언 따위로 돌파하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는 모양새.
일전에 증명의 신에 의해서 관리자들의 관측이 중지됐던 것을 생각하면 꺼림칙한 것도 사실.
그러나 그 생각이 다 이어지기 이전에 지하 유적의 중앙에 있는 진이 화려하게 빛났다.
순식간에 진의 위로 찰흙을 뭉치듯 어둠이 뭉치며 하나의 형태를 이루었다.
그리고.
「아이템 ‘흡혈 백작의 낡은 연미복(A-)’이 복제되었습니다.」
「어둠의 신이 생성한 또 다른 자기 자신을 살해하십시오.」
“…….”
어느새 진의 위로 완성된 어둠은……, 완벽하게 나의 외견을 복제해 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머리카락.
감정이 없는 텅 빈 두 눈동자.
각종 스킬로 다져진 전투 자세.
적어도 그건 내가 파악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형상이었다.
찰나의 사이에 나는 눈을 부릅뜬 채 복제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진짜 나랑 다른 부분이 없는……. 진짜 같은 가짜야.’
이 정도로 완벽하게 나의 형상을 재현했다는 사실이 소름이 끼칠 지경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이 레플리카에 불과한 나는 몸에 걸친 아이템이 단 하나밖에 없었다.
‘철혈의 군주한테 들었던 대로 아이템은 딱 하나만 복제됐나…….’
심지어 손에는 아예 검도 들고 있지 않은 상태인지라 무방비했다.
이 시점에서 레플리카와 오리지널의 우위성은 어느 정도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
짧은 사이에 레플리카를 살핀 나는 재빠르게 땅을 박차서 그대로 스킬들을 발동했다.
「스킬 ‘순간 가속’이 활성화됩니다.」
「스킬 ‘전투 집중’이 활성화됩니다.」
「사용자의 집중력이 두 배 상승합니다.」
「스킬 ‘바람의 은총’이 활성화됩니다.」
「모든 속도가 70% 상승합니다.」
「현재 스킬 중첩 진행도 – 7/7」
몸이 극한까지 가속되는 동시에 인지 세계의 시간 흐름이 느려진다.
‘이게 전투 집중이라는 거구나.’
흡사 슬로우 비디오를 보듯 세상이 느리게 흘러가는 거 같은 감각이라 해야 하나?
하지만 그다지 적응에 고생해야 할 거 같은 스킬은 아니었다.
나는 바로 의념을 집중해서 ‘전투 집중’의 상승세를 낮췄다.
「사용자의 집중력 상승세가 1.7배로 조율됩니다.」
이제 스킬을 다루는 법 같은 것은 단숨에 파악하고 다룰 수 있었다.
검염의 경지까지 이르게 되며 의념(意念)이 강력해진 탓이겠지.
「권능 ‘검염지경劍炎之境’이 활성화됩니다.」
아예 쓸 수 있는 스킬은 싹 두른 채 혈천마검에는 검염까지 부여한 상태다.
아무리 레플리카라 해도 아이템 및 선공의 우위를 점한 내게 살짝 밀리리라 예상했다.
‘이대로 수세까지 몰아서 자기객관화를 하면 되겠……?’
하지만…….
까아앙!
어느새 레플리카의 손에는 서릿빛을 머금은 ‘철혈의 검(A-)’이 소환되어 있었다.
이전에 철혈의 군주에게 선물받은 권능이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지만…….
‘확실히 철혈의 검도 권능답게 성능이 꽤 좋은데?’
레플리카의 반응에 나는 나름대로 흡족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철혈의 검은 나도 가진 권능이다.
따지고 보면 이 레플리카는 그저 복제한 것에 불과할 뿐이고.
나중에 이 권능의 실제 사용자는 내가 될 것이므로 뿌듯해지는 건 당연했다.
혈천마검의 효용성이 다하는 시점에서는 이 권능이 내게 큰 이점을 가져다줄 테니.
하지만 그런 생각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후우웅!
이어서 레플리카가 철혈의 검으로 밀어내듯 나를 뿌리친 탓이었다.
그에 나는 최대한 반동을 최소화하여 미끄러지듯 물러선 후 기이함을 눈치챘다.
……뭐야, 방금 어떻게 나를 검으로 바로 쉽게 밀어낼 수 있었던 거지?
둘 다 한 손으로 검을 쥐고 휘둘렀는데 어쩐지 결과는 서로 다른 상황.
‘뭐지? 방금 힘에서 좀 밀린 것 같은 느낌이…….’
설마 레실리안에게서 흡수했던 ‘불굴의 의지’라는 스킬이 발동한 것일까?
그럴 수 있다.
‘그래서 신체 능력이 나보다도 더 높은 건가?’
현재 아이템으로 인해서 우위성을 내가 점하고 있는 상태니 이해할 수 있…….
「사용자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강한 상대를 마주쳤습니다.」
「스킬 ‘불굴의 의지’가 활성화됩니다.」
“……!?”
하지만 그 생각은 이어서 떠오르는 ‘불굴의 의지’가 활성화됐다는 메시지에 의해서 일축됐다.
아니, 아이템이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는데 감당하기 힘든 상대를 마주쳤다니……?
그럼 레플리카는 불굴의 의지 스킬에 있는 보정도 받지 않고 나를 손쉽게 뒤로 물러서게 했다는 뜻인데…….
이해할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서로 신체 스펙은 똑같을 수 있어도 아이템 상에서 전해지는 여러 가지의 보정 및 전용 효과의 차이는 메꾸기 힘들다.
그러니 아이템 또한 하나의 스펙으로 인정받는 것이고, 상위 등급의 아이템을 두를수록 강해지는 게 옳은 이치다.
그런데…….
‘왜 시스템이 아이템도 더 많이 가진 내가 불리하다는 듯이 판단했지?’
불굴의 의지 스킬 판정은 내가 아니라 레플리카가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어째서?
하지만 그 의문은 그렇게까지 오랫동안 이어지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건 또 뭐야……?”
어느새 자세를 다잡은 레플리카의 손에는 또 한 자루의 검이 쥐어져 있었던 탓이다.
그리고 붉은색이 감도는 마력으로 이루어진 칼날을 보며 나는 그게 무엇인지 바로 알아챘다.
그도 그럴 것이, 레플리카의 손에 쥐어진 또 다른 검은 내가 지닌 ‘스킬’이었기 때문이다.
“…….”
반격의 방패.
받는 피해를 어느 정도 누적해뒀다가 나중에 발산할 수 있는 방패 형태의 스킬이.
이제는 아예 검처럼 변형된 채로 레플리카의 손에 들리게 되는 식으로 발동되었다.
반격의 방패는 그 모양새를 바꾸고 유지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유지하기 어렵고.
그 탓에 마법 혹은 권능 같은 큰 기술들의 대항마로서 순간적으로만 운용할 뿐인데…….
검이라니?
어째서 저렇게 비효율적이기 짝이 없는 방식을 선택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래서야 자기객관화도 되지 않는 자멸 현상을 지켜봐야 하는 수준에서 그친다.
그에 나는 금방 이 12층 시련에서 자기객관화의 가능성을 배제했다.
철혈의 군주에게 들은 바에 따르자면 이 레플리카는 나의 ‘경험’을 그대로 복사한 존재이며.
여태까지 쌍검술을 쓴 적이 없는 나의 경험에 따라서 놈은 이번에 처음으로 쌍검을 쓴다는 뜻이 되는데…….
어이가 없었다.
오리지널인 나도 써 본 적이 없는 쌍검술을 실전에서 사용하겠다니?
심지어 그것도 반격의 방패 같은 심력 및 마력의 소모가 극심한 스킬까지 써 가며 생성한 쌍검이었다.
우둔하다.
어둠의 신이 부여한 축복이니 어쩌느니 했으나, 실상은 제대로 전투할 사고력도 갖추지 못하는 가짜와의 싸움에 불과할 뿐.
‘쓸 수 있는 스킬은 다 써서 단숨에 끝내야겠네.’
「스킬 ‘섬전검기閃電劍氣’가 활성화됩니다.」
혈천마검에 섬전의 묘리가 깃들며 푸른 뇌전이 칼날을 휘감는 순간.
「번개 속성의 마력 특질을 보유한 상태입니다.」
「스킬 ‘섬전검기閃電劍氣’의 뇌전이 강화됩니다.」
파지직……!!
순식간에 섬전검기가 마력 특질로 강화되며 뇌정(雷精)을 뿜어내며 울부짖었다.
검염지경의 권능에 더해서 섬전검기의 속성 부여까지 더해지니 위력이 강해지는 건 당연했다.
칼날이 힘을 주체하지 못하겠다는 듯 부르르 떠는 걸 억누르며 나는 검을 올곧게 내찔렀다.
「스킬 ‘질풍검’이 활성화됩니다.」
「스킬 ‘질풍검(C+)’에 의하여 칼날에 바람 속성이 부여됩니다.」
파아앙!
그리고 동시에 올곧게 내찔러지는 칼날에 폭풍 같은 바람이 휩싸였고.
‘끝나겠네.’
이 시련이 곧 끝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머금은 채 입가에 옅은 호선을 그렸다.
카가가가강……!
“……!?”
레플리카의 손에 들린 검이 혈천마검을 완연하게 흘려내기 이전까지는.
‘아니, 이걸 흘려 버렸다고……?’
물론 방금의 찌르기는 칼날의 궤적도 훤했고 찌르기라는 단출한 공격 형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질풍검의 스킬은 레플리카라 해도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가 아니다.
심지어 나의 경험을 복제해서 의존하는 가짜라 한다면 질풍검의 사용 경험이 별로 없으니 더더욱 대처가 어려울 테고.
그러나 레플리카는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라는 듯 초월적인 빠르기로 내찔러진 찌르기를 반격의 방패로 생성한 검으로 흘려냈다.
그게 어째서인지는 간단하게 답을 내릴 수 있었다.
‘전투 집중……!’
한 번 써 보며 알아본 전투 집중의 효과는 그렇게 깊게 고민하지 않아도 확실했다.
집중력을 일시적으로 강화해서 체감 시간마저도 느리게 할 수 있는 스킬이다.
인지 세계 자체가 확장되며 모든 게 뚜렷하게 느껴지는……, 그런 스킬을 한계까지 사용해서 찌르기를 간파했다면 이해할 수 있다.
‘괜찮아. 아직은 아이템의 효과를 받는 내가 더 유리해.’
그저 다음 기회를 노리면 될 뿐이라며 나는 스스로를 안도시키며 검을 휘둘렀다.
한 번의 찌르기로 처리할 수 없다면 그저 시간을 좀 더 들이면 될 뿐이라고.
하지만…….
챙! 채앵! 채애앵!
한 합, 두 합, 세 합…….
점점 검과 검이 맞붙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레플리카의 움직임이 정연해졌다.
방금까지는 어설프던 쌍검술이 점점 능숙해지며 이제는 두 자루의 검이 나비처럼 노닐고.
어느새 싸움에서 물러나고 있는 건 레플리카가 아니라 오리지널인 내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칼날과 칼날이 부딪힌 횟수만 해도 서른이 훌쩍 넘을 무렵에야 깨달았다.
나는……, 이 가짜에 불과한 자기 자신에게 순수 기량으로 밀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미치겠네, 진짜로.’
어째서 철혈의 군주가 내게 강렬한 재능이 있다고 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설마 이 검술을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느새 레플리카의 쌍검에서 예전에 본 강적과 비슷한 기세가 흘렀기 때문이다.
창천을 떠올리게끔 하는 푸른 검염(劍炎)이며 쓸데없이 고고한 검의 궤적은.
한 번 봤음에도 불구하고 잊을 수 없는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틀림없어. 확실히 놈의 검이야.’
도쿄 일대에 널린 건물을 모조리 쓸어버리며 괴물 같은 실력을 내보였던.
창천검룡 남궁혁의 검술이 서서히 레플리카의 쌍검에서 재현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