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16
114. 대학살 (2)
그냥 닥치고 돌격해서 다 죽이고 시련을 끝내자는 말을 마친 후.
숨이 막힐 것만 같은 적막함이 나를 중심으로 쏟아졌다.
“…….”
흡사 세 명의 도전자는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고…….
그 상태가 잠시간 이어지다가 이내 정신을 차린 데이비드 테일러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묻고 싶은 게 많지만, 이것만 물어보도록 하겠소.”
“말씀하십시오.”
“진심으로 그냥 닥치고 돌격하면 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다 돌격하면 못 끝낼 것도 없습니다.”
“……후우. 실언했소. 미친 건 확실하고, 과대망상증까지 있는 사람이었나 보오.”
데이비드는 마치 내가 짜증이 난다는 듯 머리를 부여잡으며 말을 이어갔다.
“당신이 어떻게 최고의 도전자라고 탑에게 평가받았는지도 의문이오.”
“……?”
“당신은 모르겠지만 나는 이번 13층 시련에 대해서 관리자에게 들은 바가 있소.”
“그렇습니까.”
아마도 관리자에게 들은 바가 있다는 건 질문권을 소모해서 받아온 정보일 터다.
들어서 손해를 볼 건 없었으므로 나는 천천히 데이비드를 바라보며 물음을 건넸다.
“그게 뭐길래 그렇게 신중해지는 겁니까?”
“……흡혈 백작 개인의 실력은 S급 헌터 중에서도 상위권에 드는 수준이고, 말단 정도밖에 되지 않는 흡혈귀도 C급 헌터의 실력은 가뿐히 넘소. 심지어 흡혈귀는 신체 재생이 특기인지라 쉽사리 죽일 수도 없지.”
“흠…….”
“그런데 무턱대고 도시로 진입하자니? 아무리 네 명의 실력이 좋다고 한들 그건 자살밖에 되지 않소. 설령 관리자에게 이번 계층의 시련에 대해서 듣지 못했더라도 이 정도의 조심성은 기본적으로 있는 게 당연하오.”
“다른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데이비드의 가시 돋친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들으며 나는 다른 이들의 의견을 물었다.
정말로 이 마법사의 생각처럼 신중하게 14일의 시간을 철저히 소모해서 시련을 돌파할 생각이 있냐고.
그에 대한 답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친놈. 나도 꽤 호전적이라 생각했는데 너는 그냥 대책이 없는 수준이군.”
“……아니, 아무리 그래도 고작 네 명으로 도시에서 난전은 좀 그렇지 않을까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랑 미치모토 사치오의 반응이 바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자기보다 더 호전적인 도전자가 있을 줄은 몰랐다는 듯 말했고.
이어서 그 반응에 나는 세 명의 팀원에게 살짝 실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상위권 도전자라서 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를 줄 알았더니만……. 그렇지는 않았네.’
아예 리스크를 감수할 생각도 없이 안전함을 도모하는 이들이었을 뿐이다.
물론 안전함을 추구하는 건 이해할 수 있었으나 이들은 상위권 도전자였다.
‘여태까지 탑을 올라오며 이런 방식으로는 성장이 느리다는 걸 깨닫지 못했나?’
추가 돌파 보상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안전함 같은 것으로는 무리라는 걸 잘 알고 있을 터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들은 그저 흡혈귀의 실력이니 재생 능력이니 하는 것에 지레 겁을 먹었다.
‘답답하네. 신중하면 신중할수록 성장만 더 느려지는 건데.’
잠시 그대로 자리에 서 있던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팀의 의견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을 거 같네요.”
그리고.
“그냥 제가 가서 다 휩쓸 테니 알아서 그 틈에 성직자를 찾아서 원래 계획을 진행하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이내 팀원에게 아예 관심을 끄기로 했다.
“뭐? 그게 무슨 소…….”
안드레이가 눈을 찌푸리며 내게 뭐라고 소리치려고 했지만…….
“이게 제가 팀에 해드릴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입니다.”
그 말을 끊어 내며 나는 정신을 집중해서 이내 한 권능을 활성화했다.
「권능 ‘강철의 날개’가 활성화됩니다.」
등에서 화려하게 강철로 된 쌍익(雙翼)이 펼쳐지는 동시에.
“그럼 나중에 봅시다.”
나는 바로 가공할 속도로 몸을 튕기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니, 이런 미친……! 다, 당장 내려오시오! 단독 행동은 불행을 불러올 뿐이오!”
“비행 권능이라고……!? 대체 무슨 관리자랑 계약했길래 저런 권능을 가진 거야?”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이런 거였나……. 생각보다 더 화끈하게 미친놈이었군.”
아래에서 팀원들이 내게 뭐라고 소리치는 것이 들려왔으나 신경을 쓸 생각은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애초에 이게 정말 위험한 시련이었으면 철혈의 군주나 백학검선이 나한테 경고했겠지.’
현재 나는 13층 시련을 그다지 위험하게 여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관리자 ‘철혈의 군주’가 계약자의 훌륭한 판단력에 감탄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관리자 ‘백학검선(白鶴劍仙)’이 원래 이럴 때는 그냥 무시해야 한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관리자 ‘멸망한 세계의 용사’가 권능을 후원한 보람이 있다며 히죽 웃습니다.」
정말로 위험했다면 관리자들도 이러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터이다.
「관리자 ‘바다의 암살자’가 자신의 계약자를 버리고 간 당신을 바라봅니다.」
「관리자 ‘청염의 마법사’가 자신의 계약자를 무시한 당신에게 화를 냅니다.」
「관리자 ‘마도구 양산가’가 자신의 계약자를 홀대한 당신에게 흥미를 느낍니다.」
물론 관리자 메시지로 세 도전자의 관리자로 추정되는 이들이 항의했지만…….
머지않아서 이 세 관리자는 내게 뭐라고 할 마음을 아예 잃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미니맵에 흡혈 백작의 위치를 표시합니다.」
나는 바로 흡혈 백작을 살해해서 시련을 돌파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다수랑 싸우는 건 오랜만인데 좀 기대되네.’
오랜만에 있을 난전을 생각하니 웃음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
데이비드 테일러는 영리한 마법사였다.
세계 각지에 있는 마탑 중에서도 높은 지위를 자랑하는 시계탑 소속의 마법사였고.
오랜 기간을 전선에서 구른 수준 높은 전투 마법사인 동시에 은퇴 직전의 대마법사였다.
물론 시련의 탑에게 선택받은 탓에 은퇴했어야 할 말년에 어울리지 않게 현역처럼 활동하게 되었지만…….
데이비드 테일러는 도전자가 된 것을 행운으로 받아들였다.
본래 마법사란 진리를 탐구하는 이들이었고 시련의 탑은 무릇 마법사의 탐구 대상이 되기에 적합했던 탓.
늘 그러했듯 데이비드 테일러는 시련의 탑에서도 영리하게 매번 계층의 시련을 돌파하여 상위권 도전자가 되었다.
선구자로서 후광도 획득하고 관리자와의 계약까지 확실히 마친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고 해야 하나?
적어도 데이비드 테일러는 자기 자신을 엘리트로 여겼다.
하지만…….
‘어째서 이 빌어먹을 놈들은 내 말을 무시하는 것이냐……!’
데이비드 테일러는 현재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럴 만도 했다.
이번 시련의 팀원으로 배정된 웬 한국인 도전자가 갑자기 단독 행동을 개시한 탓.
13층 시련은 위험하니 단독 행동이니 난전이니 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했지만.
한성윤은 데이비드 테일러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 넘긴 뒤 그대로 멋대로 하늘로 날아들었다.
그 탓에 현재 데이비드 테일러는 미친 듯 숲속을 달리고 있었다.
‘그 미친놈이 도시에서 난전 끝에 개죽음을 당하기 전에 빠르게 전략대로 움직여야 한다……!’
데이비드 테일러는 관리자에게 이번 13층 시련의 난이도가 얼마나 뛰어난지 들은 바가 있었다.
일반적인 흡혈귀의 신체 능력은 탑을 기준으로 7층에 있는 도전자랑 비슷하고 재생 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그런데 심지어 흡혈 백작이라는 이 13층의 최종 보스와도 같은 존재는 신에게 선택받은 특별한 흡혈귀라서 미친 능력을 자랑한다고 했다.
‘탑이 괜히 이번 층의 주제를 전략 전투로 지정한 줄 아나? 어리석은 놈이……!’
이번 통합 시련의 주제인 전략 전투는 순수하게 전략을 시험하는 시련이었다.
데이비드 테일러처럼 영리한 마법사에게 제일 적합한 주제였고 그는 이 시련을 꽤 재밌게 여기고 있었다.
한성윤이 멋대로 행동하기 전까지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놈이 뭘 안다고 멋대로 행동한 것이냐……! 젠장!’
숨을 헐떡거리며 뛰는 와중에도 데이비드 테일러는 내심 한성윤을 욕했다.
전략은 쥐뿔도 모르는 허접한 헌터인 주제에 감히 자신의 계획을 따르지 않았다고.
그 썩을 놈이 랭킹 1위의 도전자가 된 것도 그저 우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정작 실력은 좋지도 않은 주제에 거품만 잔뜩 끼어서 과대평가를 받았을 뿐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내심 욕을 지껄이는 것도 잠시였고 데이비드 테일러는 이내 마음을 가라앉혔다.
‘……괜찮다. 미치모토 사치오랑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를 미리 보내 놨으니 문제는 없을 거야.’
한성윤의 단독 행동으로 인해서 상황이 심각해진 후.
미리 미치모토 사치오랑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를 흡혈귀가 점령한 도시로 보내 뒀다.
데이비드 테일러는 기동력이 높지 않아서 뒤늦게 쫓아가고 있다지만…….
미치모토 사치오는 일본 유일의 S급 헌터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러시아 최대 길드인 카르페디엠의 수장이었다.
둘 다 탑이 나타나기 이전에도 꽤 강력했던 이들이니 각자의 개성을 잘 살려서 성직자랑 접촉하고 있을 터이다.
그러나…….
“……!?”
이어서 데이비드 테일러가 흡혈귀의 도시에 도착한 순간.
그는 아예 반쯤 부서진 성문과 이어지는 굉음을 두고 서 있는 두 명의 도전자를 발견했다.
미치모토 사치오 그리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였다.
데이비드 테일러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 둘은 홀린 듯 부서진 성문의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성문의 너머에서 믿을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듯이.
그에 데이비드 테일러는 어이가 없음을 느끼며 분개했다.
‘썩을 놈들이……. 기껏 전략적으로 움직이자고 당부했는데 저러고 있다니…….’
데이비드 테일러는 한심함을 느끼며 재빠르게 그 둘에게 성큼성큼 움직였다.
꾸물거리지 말고 빠르게 도시 내로 진입해서 성직자들을 찾자고 할 심산으로.
하지만 이내 화를 낼 생각으로 다가서던 데이비드 테일러는 그 자리에 멈췄다.
그리고.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이해했다.
어째서 두 명의 도전자가 환상에 홀린 듯 성문의 너머를 보고 있었는지.
데이비드 테일러는 굉음이 이어지는 성문의 너머로 본 광경에 경악했다.
콰아아아앙!
이제는 박살이 난 성문의 너머에서 수십 마리의 흡혈귀들이 요동치고…….
창백한 피부색을 지닌 흡혈귀들이 제각각 몸에서 핏빛 기운을 내뿜으며 신속히 움직인다.
“써, 썩을……! 이 인간 주제에! 감히 인간 주제에 우리를 농락하는 것이냐!”
“이 오만한 인간 놈을 잡아서 죽여라! 전투의 신께 이 어리석은 미물을 바칠 것이다!”
“겁먹지 마라! 전투의 신께서 우리를 비호하고 계신다! 고작 인간에게 질 수는 없다!”
오로지 단 한 명의 침입자를 배제하기 위해서 영혼까지 불사르듯 고함을 치지만…….
이어서 수십 마리의 흡혈귀에게 둘러싸인 한 명의 남성에 의해서 그 행동은 제지되었다.
촤아아아악!
격전의 중심지에 있는 남성은 손에 든 쌍검을 마치 춤을 추듯 휘둘렀고.
그럴 때마다 흡혈귀들의 신체가 몇 갈래로 찢어지며 무참히 살해당했다.
대학살이었다.
“…….”
데이비드 테일러는 가만히 서서 그 말도 안 되는 신위를 구경했고.
이내 예술이라 느껴질 정도로 유려한 검의 궤적을 그리는 남성이 누군지를 깨달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한성윤.
방금까지 데이비드 테일러가 어리석다며 내심 조롱해 왔던 도전자.
그가 지금 수십 마리의 흡혈귀를 상대로 차가운 얼굴을 유지하며 학살극을 벌이고 있었다.
마치 이 정도로는 자신을 지치게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듯이.
그 괴물 같은 전투 능력에 데이비드 테일러는 매료된 것처럼 전투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
데이비드 테일러는 괴물처럼 이리저리 날뛰는 한성윤을 보며 자기 자신에게 물어봐야 했다.
‘전략 같은 게 정말로 필요했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단지 자신에게 힘이 부족해서 그랬던 건 아니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