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17
115. 대학살 (3)
본래 나는 흡혈 백작이 있는 곳에 하강해서 난전을 벌일 심산이었다.
굳이 이번 시련을 오래 끌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지만…….
흡혈귀들이 점령한 도시의 상공에서 나는 그 계획을 전면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성문에서 정찰하듯 서 있던 흡혈귀에게 발견된 후로 유도탄처럼 선혈의 화살에 집중적으로 노려진 탓.
흡혈귀에게도 선혈의 구도자 같은 혈액 지배 능력이 존재했던 것일까?
피로 연성된 화살들은 마치 야수처럼 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쫓아왔다.
성가신 것도 성가셨지만 무엇보다도 화살의 숫자가 문제였다.
유도탄처럼 달라붙는 것만으로도 귀찮을진대 다른 흡혈귀들까지 가세하니 목적지까지 무사하게 도착할 수 없을 듯했고.
흡혈 백작과의 전면전을 벌이는 대신에 나는 성문을 시작으로 차근차근 흡혈귀들을 죽여서 공략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선택이 이렇게까지 효율이 좋을 줄은 나도 몰랐지만.’
「흡혈귀의 사령을 흡수했습니다.」
「숙련도가 0.1% 상승합니다.」
「흡혈귀의 사령을 흡수했습…….」
「숙련도가 0.1% 상승합…….」
「흡혈귀의 사령을 흡…….」
「숙련도가 0.1% 상…….」
성문을 통째로 파괴한 이후부터 전신에 쾌감이 들끓었다.
성장이 멈추지 않는다.
고작 한 번의 칼질로 네크로맨시의 숙련도가 0.1% 상승하고 있는 상황.
방금 내가 성문부터 차근차근 공략하자고 생각했던 건 틀린 선택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대로 지나쳐서 흡혈 백작부터 공략하고 봤다면 실망했을 뻔했다.
물론 체력도 마력도 무한하지 않은 탓에 싸움이 길어지며 점점 지쳐 갔지만…….
그에 대해서도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충분히 해결법이 존재함을 깨달았다.
「스킬 ‘선혈의 구도자’가 활성화됩니다.」
촤아아아아……!
수많은 흡혈귀를 죽이며 일대를 가득 메운 혈액이 내 손짓을 따라서 움직였고.
이내 호수를 연상케 하는 혈액의 파도가 손가락의 끝으로 스며들며 내게 활력을 선사했다.
체력 및 마력이 완전히 회복된 것이다.
심지어 그것도 모자라서 남은 선혈로 나는 주변에 있는 흡혈귀에게 공격을 돌려줬다.
촤자자자작─!
상공에 있을 적에 화살에 당했듯 이들에게도 선혈의 칼날을 무차별적으로 날려 준 것이다.
가벼운 교환수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흡혈귀들이 재빠르게 내게 공포를 머금기 시작했다.
“비, 빌어먹을……! 괴, 괴물이다! 백작님을 불러와야 하……! 컥!”
“혈조술(血操術)……!? 뭐, 뭐냐! 혈조술을 쓸 수 있으면 같은 동료지 않느냐……! 끄아악!”
“이런 미친! 혈액 지배 능력이 우리보다 더 강하다고!? 이, 이건 말도 안 되잖……! 크하악!”
생각보다 더 흡혈귀들은 내게 쉽사리 공포를 품고 경악했고…….
그 틈을 타서 나는 여태까지 흡수한 흡혈귀들의 사령을 모조리 흡수했다.
네크로맨시의 보호막에 몇몇 사령이 아깝게 소모된 탓에 이제 더 모아 두기도 애매했다.
「보유한 사령을 전부 사용하여 영구적으로 능력치를 상승시킵니다.」
「근력이 3 상승했습니다.」
「민첩이 1 상승했습니다.」
「체력이 2 상승했습니다.」
「마력이 3 상승했습니다.」
짭짤했다.
물론 이전에 흡수한 레플리카의 사령만큼 충분한 능력치를 주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나만큼 강한 적이 없으니 능력치 상승폭이 이 정도인 건 당연했다.
‘스킬까지 딱 흡수했으면 좋았는데 그렇게 쉽게 흡수되지는 않네.’
약간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나는 이내 정신을 집중해서 흡혈귀들이 각각 다루는 선혈의 무기들을 의식했다.
도산검림(刀山劍林).
흡혈귀들의 혈조술에 의해서 생성된 온갖 무기들이 나를 겨냥하고 있었다.
쏘아낸다면 사람 한 명 정도는 어렵지 않게 벌집을 낼 수 있을 정도.
하지만 나는 그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무기의 나열에도 위험하다는 생각은 느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스킬 ‘선혈의 구도자’가 강하게 활성화됩니다.」
「스킬 시전 범위 내에 있는 모든 혈액 조종 능력에 간섭합니다.」
잠깐 정신을 집중하면 이 정도는 간단히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촤아악!
물을 담을 그릇이 없어진 것 마냥 허공에 둥둥 떠 있던 선혈이 바닥에 쏟아지고.
그렇지 않아도 창백했던 흡혈귀들의 안색이 더 창백하게 질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것이……! 전투의 신께서 하사하신 우리의 권능을 감히 인간 주제에 간섭하다니……!”
“흐, 흐아악! 사, 사도(使徒)다! 인간들을 비호하는 신이 사도를 보냈다! 이 도시의 인간을 다 죽여서 신이 분노한 거야!”
“말도 안 돼……! 사, 사도라니? 전투의 신이시여! 이런 것은 듣지도 못했나이다! 부, 부디 당신의 신자들에게 구원을!”
종말의 서막에나 어울릴 듯한 처참한 목소리들이 도시 내부를 메웠지만…….
「권능 ‘혈천심공’이 활성화됩니다.」
그럼에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혈천심공까지 활성화했다.
“흐으.”
치이익……!
마력 회로를 따라서 흐르는 마력이 내공으로 치환되고 온몸에서 증기가 뿜어진다.
참을 수 없는 쾌락과 갈증을 참지 않고 나는 바로 흡혈귀들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촤아악!
두 손에 들린 쌍검이 춤을 추듯 날아다니며 흡혈귀들의 목을 베었다.
아까보다 더 빠르고 유려해진 움직임에 스스로도 놀라움을 느꼈다.
신체 재생?
그런 게 진짜로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흡혈귀들은 픽픽 쓰러졌다.
적어도 상반신이 아예 통째로 베어지거나 머리통이 날아가면 재생하지는 못하는 듯했다.
‘이 정도라면 내 잿빛 선혈보다 더 재생 효율이 떨어지는 거 같은데?’
물론 큰 상관은 없었다.
신체 재생의 수준이 높지 않으면 내게는 행운이나 다를 바가 없었으니.
하지만 닥치는 대로 흡혈귀를 몰살하고 있자니 찝찝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저것이 진정 인간이라고……? 말도 안 돼……! 저, 저래서야……!”
“고대의 마왕이다……. 신의 사도가 아니라 마왕이 도래한 거야……. 흐, 흐흐!”
“오, 오오! 전투의 신이시여! 부디 우리에게 마왕을 쫓아낼 용기를 내려 주십시오……!”
멋대로 신의 사도라고 착각하던 흡혈귀들은 이제 마왕이라며 부르짖고 있었다.
‘인간들이 사는 도시를 점령해 놓고 불쌍한 척은 잘도 하네.’
물론 13층 스테이지의 스토리를 언뜻 눈치챈 나로서는 어이가 없을 뿐이었지만…….
그러한 흡혈귀들의 절규에 굳이 입을 열어서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서걱!
경악과 절망이 담긴 채 분리되는 흡혈귀의 머리통을 보고 있으니.
정말로 이놈들에게 종말을 선사하는 마왕이라도 된 듯했기 때문이다.
***
도시에서의 난전은 의외로 시간을 질질 끌듯 이어지지 않았다.
공포에 삼켜진 흡혈귀들은 도망까지 선택할 정도로 판단력이 흐려졌고.
나는 그저 저항하지 않아서 죽이기 쉬워진 흡혈귀들을 골라 먹듯 죽였기 때문이다.
마치 게임으로 치자면 몰이 사냥을 하는 거 같은 기분이라 해야 하나?
‘그것도 일방적이기 짝이 없는 몰이 사냥이겠지.’
그 결과 또한 썩 나쁘지 않았다.
「보유한 사령을 전부 사용하여 영구적으로 능력치를 상승시킵니다.」
「근력이 3 상승했습니다.」
「민첩이 2 상승했습니다.」
「체력이 4 상승했습니다.」
「마력이 5 상승했습니다.」
“깔끔하네.”
흡혈귀들을 있는 대로 싹 죽이고 보니 능력치의 성장하는 폭도 나쁘지 않았다.
이 정도라면 거의 이전 스테이지에서 획득한 레플리카의 사령보다 더 성장폭이 컸다.
물론 순수 기량은 12층 시련에서 더 성장했겠지만 능력치의 측면에서 보자면 그랬다.
‘흡혈 백작까지 죽이면 더 성장할 수 있겠지. 꽤 괜찮은 시련이야.’
그에 내가 만족스러움을 느끼며 옅은 웃음을 짓고 있을 때였다.
「관리자 ‘바다의 암살자’가 당신의 미친 살상 능력에 경악스러움을 품습니다.」
「관리자 ‘청염의 마법사’가 당신의 이치를 초월한 전투력에 크게 흥미를 품습니다.」
「관리자 ‘마도구 양산가’가 당신의 무식하기 짝이 없는 전투 방식에 혼란을 느낍니다.」
13층 시련의 팀원들을 모두 버리고 올 적에 봤던 관리자들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물론 그때와는 아예 취급이 달라졌음은 굳이 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바였다.
「관리자 ‘천 년 만에 탄생한 용살자’가 당신의 호쾌함에 영웅의 자질이 있다며 웃습니다.」
「관리자 ‘혈마신교의 패배한 후계자’가 당신의 마력 운용에 경악이 담긴 찬사를 보냅니다.」
「관리자 ‘멸망한 세계의 용사’가 투자 가치가 상당하다며 상당히 흡족한 웃음을 짓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12층에서 내게 권능을 후원했던 관리자들도 흡족하다는 듯 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방금은 단순히 말해서 내 독주 무대나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학살도 학살이지만 상성도 상성인지라 흡혈귀의 혈조술을 대부분 무력화했으니…….
아마도 관리자들도 흡혈귀들과의 난전을 내가 지배했음을 알고 있어서 이러는 거겠지.
「관리자 ‘심해의 유일한 지배자’가 당신에게 흥미로움을 느낍니다.」
「관리자 ‘배신자들의 우두머리’가 당신에게 큰 재미를 느끼며 깔깔 웃습니다.」
「관리자 ‘검은 악마’가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도전자라며 질렸다는 듯 몸을 떱니다.」
심지어 못 보던 관리자들도 몇몇 나타나서 내게 관심을 가지는 상황.
그만큼 대학살의 퍼포먼스는 상당했다는 뜻이다.
‘운도 어느 정도 따라 줘서 나 혼자만의 독주 무대처럼 보인 거겠지만……. 상관은 없나.’
어찌 되었든 간에 관리자들이 나를 좋게 봐준다면 그건 나쁘지 않았다.
그때였다.
“……?”
혈천심공에 의해서 강화된 감각이 적대적이지 않은 기척이 접근하고 있음을 잡아 냈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이전에 박살 낸 성문 부근에서 다가오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와 미치모토 사치오 그리고 데이비드 테일러까지…….
숲에서 버려 두고 온 팀원들이 나를 마치 괴물 보듯 바라보며 다가오고 있었다.
“도시 내에 숨어 있는 성직자들을 찾으러 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여기에 있었습니까?”
진작에 성직자들에게 달려간 줄 알았더니 아직도 이곳에 있을 줄이야.
어째서 여기에 있는지 묻듯 물끄러미 바라보니 데이비드 테일러가 입을 열었다.
“……사죄하겠소. 이제부터 당신의 의견을 따를 테니 지시를 내려 주시오.”
동문서답이었다.
“…….”
솔직히 말해서 뜬금없는 사죄라고 생각했다.
답답했던 건 사실이라 해도 이들이 숲에서 짰던 전략은 상당히 안전했다.
그걸 따르지 않은 건 순전히 내가 성장하기 힘들어서라고 생각했을 뿐이고.
그런데…….
“동의합니다. 솔직히 한성윤 씨의 판단을 의심했습니다만……. 어리석었습니다.”
“……마찬가지다. 생각 없이 무작정 달려든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을 줄이야.”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초롱초롱 눈빛까지 빛내며 그 의견에 동의했다.
이전과는 다르게 일말의 존경심까지 깃든 눈초리를 보고 있자니 혼란스러웠다.
‘뭐지……?’
사죄할 만한 행동을 한 적도 없는데 사죄하고.
존경할 만한 행동을 한 적도 없는데 존경한다.
‘신기한 사람들이네.’
흡사 힘을 숨기고 있었던 고수의 진면목을 본 것처럼 굴어 대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스킬 ‘육감’이 활성화됩니다.」
갑자기 육감 스킬이 활성화되며 등을 타고 찌릿한 감각이 흘렀고.
“…….”
이내 나는 그 찌릿함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콰아아아아아아……!!
어느새 도시의 중심부에 있는 첨탑에서 선혈로 이루어진 해일이 몰아치기 시작한 탓.
흡사 천재지변을 연상하게끔 하는 광경에 일행들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지만…….
피의 해일이 몰아치는 걸 보며 나는 입을 찢듯이 활짝 웃음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흡혈 백작……!”
드디어 혈천마검에 스킬을 각인할 만한 상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