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21
119. 신화 (3)
전투의 신은 내게 괘씸함을 느꼈다는 메시지를 끝으로 더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
어쩌면 증명의 신처럼 탑에게 신성력을 소모해야 했기에 그만둔 것일 수도 있고.
물론 이러나저러나 전투의 신이 내게 적대적인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탑 내에 있는 동안은 신이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모양새인데.
신도를 이용한 간접적 영향력의 행사는 또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
불쾌했다.
고작 신성력을 흡수했다고 탑이 키운 개라느니 지껄였으니…….
솔직히 나로서는 짜증을 느끼지 않으려 해도 짜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나도 이제 어느 정도의 해결법을 눈치채고 있었다.
‘신성력 탓에 이 난리가 났으니 해결법도 신성력에 있겠지.’
이번에 새롭게 신성력에 추가된 ‘신화’라는 권능 안의 권능 같은 개념이 그러했다.
신화로 분류된 를 활성화하면 재생 불가 및 구마(驅魔)의 효과가 나타나니.
이 신성력의 권능을 좀 더 발전시키다 보면 신에게 대항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다만, 문제라고 할 것은 ‘신앙 수확’이라는 알 수 없는 권능인데…….
‘신앙 수확은 도대체 왜 신성력이랑 연계가 된 거지?’
셀 네이르가 흡혈 백작으로서 흡혈귀들을 이끌고 있던 것이랑 비슷한 것일까?
그러고 보니 셀 네이르를 주축으로 흡혈귀들은 전투의 신을 숭배하고 있었다.
그럼 이 신앙 수확이란 것은 셀 네이르가 흡혈귀들의 신앙을 수확해서 전투의 신에게 바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셀 네이르가 자신을 위해서 신앙을 수확할 리는 없으니 더 그러했다.
‘아니, 이 부분은 더 생각해 봤자 무의미한가?’
물론 완벽한 추측은 아니었기에 나도 더 깊게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이 신앙 수확의 권능이 ‘신화’의 생성과도 연관이 있다는 점이다.
신성력 그리고 신앙 수확이라는 두 개의 권능은 맞물리게 된 톱니바퀴와도 비슷했다.
이제야 따로 떨어져 있었던 부품들이 결합하여 제대로 굴러가는 느낌이라 해야 하나?
의도해서 톱니바퀴가 맞물리게 된 게 아니라서 어떤 체계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흡혈 백작의 사령부터 흡수하고 신앙 수확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좀 알아봐야겠어.’
신앙 수확에 대해서는 대기실로 넘어가기 이전에 한 번 제대로 조사해 볼 심산이었다.
「흡혈 백작 ‘셀 네이르’의 사령을 흡수하여 영구적으로 능력치를 상승시킵니다.」
「근력이 5 상승했습니다.」
「민첩이 4 상승했습니다.」
「체력이 6 상승했습니다.」
「마력이 7 상승했습니다.」
「내구가 5 상승했습니다.」
바로 셀 네이르의 사령을 흡수하니 능력치들이 상당히 올랐고…….
「흡혈 백작 ‘셀 네이르’가 보유하고 있던 스킬 중 한 가지를 흡수합니다.」
「스킬 ‘카리스마(C-)’를 습득합니다.」
이어서 카리스마라는 알 수 없는 스킬까지 습득할 수 있었다.
심지어 셀 네이르의 사령이 주는 보상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흡혈 백작 ‘셀 네이르’의 사령에 있는 신성을 포착했습니다.」
「권능 ‘신성력’이 조건을 만족하여 활성화됩니다.」
「신성 추출을 시도합니다.」
대기실에서 한 번 본 적이 있는 메시지였다.
“또……?”
신성력의 등급을 B-급으로 상승시켜 준 신성 추출이 발동했고.
「신성 추출 성공.」
「권능 ‘신성력(B-)’의 등급이 ‘신성력(B)’의 등급으로 성장합니다.」
「권능 ‘신성력(B)’을 통해서 신화를 축적할 시 이제 격이 더 빠르게 상승합니다.」
이내 신성력의 등급이 한 단계 상승하며 메시지가 끝을 맺었다.
“조건 충족이라…….”
두 번 정도 신성 추출을 경험하니 이제 신성 추출의 조건이 무엇인지 알 듯했다.
사령이 신성력을 품고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였다.
‘신성을 품고 있으면 신성 추출이 발동하고, 아니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거겠지.’
다만, 그 기준이 모호한 것이 흡혈귀들을 죽였을 적에는 신성이 추출되지 않았다.
나랑 비슷한 등급의 신성력을 품고 있는 이들만 신성이 흡수되는 것일 수 있었다.
이런 것을 일일이 분석해서 어디에 특별히 쓸 일이 있겠냐마는…….
그렇다고 한들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있지 않은 것은 확연히 달랐다.
신성 추출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주도권을 쥐게 되는 느낌이라 해야 하나?
‘어쩌면 신성 추출을 의도해서 쓸 날이 올지도 모르지.’
이제 신성 추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남은 건 신앙 수확이 어째서 그리고 어떻게 발동하느냐만 남았는데…….
그에 대한 해답은 의외로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손쉽게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 오오……! 흡혈 백작을 단신으로 물리치시다니……! 당신이 용사님이셨군요!”
“설마 용사님께서 직접 오실 줄이야……! 역시 신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어!”
“위대한 신의 대리자시여, 저희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권능 ‘신앙 수확’이 사용자에 대한 강렬한 신앙을 감지합니다.」
「권능 ‘신앙 수확’에 의하여 이미 수확된 신앙입니다.」
「권능 ‘신앙 수확’이 활성화되지 않습니다.」
어느새 도시의 곳곳에서 신앙 수확의 대상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
도시 곳곳에서 나타난 사람들은 평범한 이들이 아니었다.
「흡혈귀가 점령한 도시에 있는 숨어든 성직자를 표시합니다.」
“…….”
시야의 한구석에 아직도 남아 있는 미니맵을 보고 있으니 그 사실이 확실해졌다.
그렇다.
‘이 사람들이 다 성직자라니…….’
현재 내게 모여든 사람들은 13층 시련의 돌파 열쇠라 봐도 좋을 성직자들이었다.
물론 흡혈 백작 셀 네이르를 내가 직접 죽인 시점에서 더 쓸모야 없겠다만…….
―권능 ‘신앙 수확’이 사용자에 대한 강렬한 신앙을 감지합니다.
―권능 ‘신앙 수확’에 의하여 이미 수확된 신앙입니다.
―권능 ‘신앙 수확’이 활성화되지 않습니다.
방금 떠올랐던 메시지들을 생각해 보니 이들의 신앙이 내게 수확된 모양새.
물론 신앙(信仰)이라는 것은 성직자들이 신에게 바치는 것이니 내게 수확되는 건 이상하지 않나 생각했지만…….
“설마 교단의 최고 전력이라 불리는 용사님들 중 한 명이 오실 줄이야……!”
“그 잔악한 흡혈 백작을 이렇게 쉽게 제압하다니……! 역시 신의 대리자야!”
“흡혈귀들을 이리도 간단히 처치한 걸 보니 주신께 받은 권능이 엄청난 모양일세!”
성직자들이 웅성거리는 말들을 듣고 있자니 어째서 내게 수확된지 알겠다.
‘그냥 나를 교단에서 보낸 용사라고 생각하고 신앙심을 보냈구나.’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사실상 내가 수확한 신앙들은 사기와도 비슷했다.
나는 성직자들의 생각처럼 신의 대리자도 용사도 뭣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착각으로 보낸 신앙도 신앙으로 취급되는 모양이네.’
그 사실을 내가 굳이 나서서 해명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쩌면 신성력에 이로운 영향을 줄지도 모르는 신앙을 스스로 해치다니?
‘그런 짓을 할 필요성은 없지.’
양심에 살짝 찔리는 짓이라 해도 완전한 사기는 아니었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어.’
흡혈 백작을 죽인 것도 맞고 권능도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그리고 직접 내가 교단에서 온 용사라고 주장한 적도 없었다.
「업적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를 달성했습니다.」
「마력이 1 상승합니다.」
물론 시스템은 그러한 내 생각을 부정하듯이 업적을 달성시켰다.
“…….”
업적 보상을 이렇게 쉽게 주니 나야 좋기야 한데…….
어쩐지 사기꾼으로 취급당한 기분인지라 묘하게 찝찝한 업적 보상이었다.
다만, 이제 능력치의 상승이 중요한 시점이니 그 찝찝함은 곧 능력치가 상승했다는 사실에 흐려졌다.
‘오히려 좀 더 이런 업적이 더 많이 달성되면 좋겠네.’
그렇게 내가 내심 더 업적이 달성되지는 않을까 기대하고 있을 때였다.
“……그, 한성윤 씨?”
어느새 성직자들을 끌고 온 팀원들이 내게 쭈뼛쭈뼛 다가와서 눈치를 보듯 입을 열었고.
“……?”
그에 내가 무슨 할 말이 있냐는 듯 바라보니 이내 미치모토 사치오가 말했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는데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흡사 귀인을 대하듯 구는 미치모토 사치오의 언행에 기시감이 느껴졌지만…….
아무래도 이러한 태도는 데이비드 테일러 그리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둘 다 미치모토 사치오의 뒤에 있다지만 굉장히 공손한 자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 태도에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미치모토 사치오의 질문을 허가했다.
“그러십시오.”
그에 미치모토 사치오가 여전히 쭈뼛거리며 내게 물음을 건네 왔고.
“그……. 혹시 한성윤 씨는 진짜로 신에게 선택받은 용사인 겁니까……?”
생각하지도 못했던 질문에 나는 이내 머리가 멍해지는 걸 느꼈다.
진짜로 신에게 선택받은 용사냐니……?
‘그게 무슨 소리야.’
다 같은 도전자로 탑을 오르는데 신에게 선택받은 용사일 리 있겠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바로 그 물음에 부정하지는 않고 나는 그들이 왜 그러한 생각을 품었는지 물어보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까?”
“그, 그렇잖습니까……. 성직자들이 다 모이지 않으면 잡을 수 없다는 흡혈 백작을 이렇게 처치하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성직자들에게 듣기론 신성력이 없으면 흡혈 백작은 죽일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쩌면 한성윤 씨가 용사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만…….”
“…….”
어이가 없었다.
설마 외부에서 헌터로 활동하는 이들마저도 이런 생각을 품을 줄이야.
심지어 관리자의 권능을 아는 이들에게서 이런 말이 나오니 더 당황스러웠다.
물론 신성력이 없으면 죽일 수 없다는 성직자들의 이야기는 틀리지 않았겠지만…….
유사 신격이라 불리는 관리자의 권능 또한 찾아보면 흡혈 백작에게 유효타를 줄 수 있는 능력이 꽤 있을 터이다.
‘애초에 관리자의 권능도 따지고 보면 유사 신격의 권능이니 신이 하사한 권능이잖아.’
단지 이들은 관리자가 유사 신격이라는 사실을 몰라서 신성력에 의해서만 흡혈 백작을 처치해 낼 수 있다는 말을 굳게 믿을 뿐.
‘좀 어이없는 오해네.’
이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려다가 이내 그 말을 속으로 다시 삼켰다.
왜냐하면…….
「권능 ‘신앙 수확’이 사용자에 대한 강렬한 신앙을 감지합니다.」
「권능 ‘신앙 수확’이 활성화될 수 있는 상태입니다.」
“……비슷합니다.”
의 신화를 쌓게 해 준 신앙 수확의 권능이 내게 속삭인 탓이다.
이 오해를 잘 이용할 수만 있다면 이들에게서도 신앙을 수확해 낼 수 있노라고.
그리고…….
“역시나……! 저런 괴물을 죽이려면 신의 사도였겠죠……!”
“허어……. 역시 탑에는 신도 존재했던 것인가…….”
“설마 했는데 진짜로 신의 대리자였다고……?”
침도 바르지 않고 내뱉은 말을 세 명의 도전자는 쉽사리 받아들였다.
“…….”
일말의 죄책감마저도 살짝 느껴질 지경으로 잘 믿어서 당황스러웠지만.
「권능 ‘신앙 수확’이 활성화됩니다.」
「당신에 대한 신앙을 주변에서 수확합니다.」
「기반이 될 설화 및 신앙이 부족합니다.」
「수확된 신앙이 다음 신화를 위하여 비축됩니다.」
‘……좋네.’
나중에 획득할 보상을 생각하니 죄책감은 머지않아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