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22
120. 신화 (4)
13층의 통합 시련은 끝을 맺었다.
미치모토 사치오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그리고 데이비드 테일러까지…….
세계 각지의 유명 헌터를 만나는 진귀한 경험을 했으나 그다지 흥미가 샘솟지 않았다.
‘진짜 상상 이상으로 격차가 벌어졌어.’
막 탑에 들어왔을 적의 나라면 모를까 이제는 그들의 수준이 낮게 느껴진 탓.
그래서 더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나는 대충 말을 둘러대며 바로 포탈을 넘었다.
신앙은 수확했고 이제 13층에서 더 얻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랑 비슷한 순위에 있는 도전자도 이러할까 궁금했지만 알 방도는 따로 없었다.
‘나중에 통합 시련이 또 생기면 더 높은 순위의 사람들이랑도 만나겠지.’
그저 때가 되면 만나리라고만 생각할 뿐.
「14층 대기실에 입장하셨습니다.」
「시스템이 확장됩니다.」
「계약자 전용 상점에 계층 난입 전용 아이템이 추가됩니다.」
「계약자 전용 상점에 후광 강화 아이템이 추가됩니다.」
「계약자 전용 상점에 영약 종류 아이템이 추가됩니다.」
포탈을 타고 공간을 넘어가니 익숙한 대기실이 나타났다.
아무것도 없는 적적함이 감도는 대기실로 돌아오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제 이 대기실은 내 집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친숙해져 있었다.
‘또 시스템 확장이라…….’
이번의 시스템 확장은 계약자 전용 상점에 관한 아이템 추가였다.
계층 난입 아이템과 후광 강화 아이템 그리고 영약 종류 아이템까지…….
상당히 질 좋은 아이템이 많이 추가된 것이라 나도 계약자 전용 상점에 흥미가 갔다.
‘그러고 보니 계약자 전용 상점에서 스킬 혹은 물품의 항목을 열어 본 적이 없네.’
그럴 만도 했다.
권능 이외의 부분에 스페셜 포인트를 쓴다는 건 낭비와도 같다고 생각했다.
한 층을 돌파할 때마다 이제는 스페셜 포인트가 추가 돌파 보상까지 합하면 1만씩 쌓이게 되었다지만…….
이전의 나는 상당히 스페셜 포인트를 아끼고 또 아껴야 쓸 만한 권능을 구매할 수 있었으니 낭비하지 않으려 들었다.
그러니 당연히 스킬 및 물품 같은 항목은 열어 보지도 않았고.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어.’
이제 계약자 전용 상점에서는 후광 강화이니 영약이니 하는 것을 팔기 시작했다.
심지어 계층 난입에 관한 특수 물품이 추가되었으니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했다.
당장 콕 집어서 무엇을 산다고 할 수 없어도 달라진 점이 무엇인지 정도야 알아 둬야 했다.
늘 새로운 변화를 알아 보고 적응하는 건 탑을 오르는 도전자의 기본 소양이니.
“전용 상점.”
「계약자 전용 상점」
「SP – 11,500」
「카테고리 : 스킬」
「카테고리 : 권능」
「카테고리 : 물품」
「계약자 : 철혈의 군주 및 백학검선」
「비고 : 관리자 ‘철혈의 군주’의 첫 계약자이며 관리자 ‘백학검선’의 사도입니다.」
본래는 이대로 권능부터 살펴봤겠지만 이번에는 그 반대였다.
나는 권능의 카테고리 밑에 있는 물품의 카테고리를 선택했다.
「계약자 전용 상점 ‘카테고리 : 물품’을 열람합니다.」
그리고.
「구매 가능 물품을 기준으로 나열합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아이템들의 목록이 나타났다.
「No.387 : 마도 공학 슈트」
「악마 숭배자의 제사용 복음서」
「저주받은 까마귀의 가면」
「신성 기사의 잿빛 대검」
「이름 없는 검신의 칼집」
.
.
.
“…….”
다 대단한 아이템이라 할 수 있었지만 내 관심사에는 부합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화면을 쭉쭉 내려 봐도 그다지 내가 관심 있는 물품은 나오지 않았다.
이대로 탐색을 이어가면 시간만 쓸데없이 오래 걸린다는 건 자명했다.
나는 바로 화면의 상단에 있는 톱니바퀴 모양새의 설정에 들어가서 새롭게 설정을 맞췄다.
설정을 맞추는 건 총 두 번으로 충분했다.
「계층 난입 아이템을 기준으로 나열합니다.」
「계층 난입 페널티 완화석」
「등급 : A-」
「가격 : 8,000 SP」
「기본 설명 : 해당 아이템을 소비할 시, 계층 난입의 페널티인 스킬 제한과 스텟 저하를 완화할 수 있습니다. 단, 해당 아이템은 사용자와의 계층 차이가 6층 내외인 도전자의 계층에 난입했을 때만 쓸 수 있습니다.」
한 번은 계층 난입에 관련된 아이템을 나열하는 설정이었고.
「후광 강화 아이템을 기준으로 나열합니다.」
「후광 강화석」
「등급 : A-」
「가격 : 10,000 SP」
「기본 설명 : 해당 아이템을 소비할 시, 후광을 강화하여 고유 권능 및 후광 효과를 잠재 능력에 맞게 강화할 수 있습니다. 단, 해당 아이템은 잠재 능력이 부족할 시 후광 효과 강화는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른 한 번은 후광 강화에 관련된 아이템을 나열하는 설정이었다.
둘 다 설정해서 표시된 물품은 각각 하나씩밖에 없었지만…….
상식을 깨부수는 수준으로 둘 다 심상치 않은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사실은 아래에 있는 후광 강화야 그러려니 하며 넘어갈 수 있었다.
사람에 따라서 강화하는 것이 손해일 수 있는 아이템이었고 실제로 나도 후광 자체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니.
하지만 계층 난입에 관련된 아이템은 아니었다.
‘계층 난입 페널티 완화라니…….’
상당히 위험한 아이템이었다.
만약에 이러한 아이템을 남궁혁이 사용하고 온다면 절대로 만만치 않은 적이 될 터였다.
물론 계층 차이가 심하면 사용도 불가능하고 아이템의 가격 또한 만만치 않았지만…….
남궁혁 같은 도전자는 포인트 또한 별로 쓰지 않을 테니 충분히 살 여력도 있을 터다.
그게 문제였다.
‘남궁혁은 나한테 전력을 보여 준 게 아니야.’
그 당시에는 캐서린 베넷의 권능에 의해서 페널티에 의해서 속박당했을 뿐이고.
멀쩡한 상태에서 쭉 겨뤘다면 무승부는 고사하고 완전한 패배까지 다다랐을 터이다.
하지만 그때랑은 또 상황이 다른 것도 사실이었다.
세 개의 계층을 오르며 나는 상당히 많이 성장했다.
검염을 배우고 재능을 깨닫고 신성력까지 완벽히 발현했다.
심지어 바뀐 것은 무력만이 아니었다.
‘마음도 바뀌었어.’
이전과는 다르게 완연한 무사로서 마음가짐을 갖추며 정신력 또한 향상되었다.
이에 대한 성장의 결과물은 결산 순위를 통해서 명확히 알아낼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지구 차원의 도전자 중에서는 최강에 가까운 상태였고.
그러니 이전과는 전투의 양상이 달라지리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남궁혁이 만전의 상태라 해도 도쿄에서의 전투와는 양상 자체가 달라질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음 시련을 아무런 대비도 없이 맞이할 생각은 없었다.
남궁혁이 계층 난입의 페널티를 아예 부담하지 않는다면 이쪽도 그만큼 신중해져야 했다.
‘권능을 사서 전투 능력 자체를 향상시켜야 해.’
관리자의 권능 중 하나를 구매해서 전력을 증진시킬 심산이었다.
그리고 무슨 권능을 사서 연마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권능 : 검귀의 길(S)」
「가격 : 10,000 SP」
「설명 : 살기 위해서 강해지다가 강해지기 위해서 살아가게 되는 모순에 빠지는 이들 중 검을 쓰는 자들이 종종 얻는 권능입니다. 검(劍)에 관해서는 독자적인 스킬을 개발할 수도 있으며 독자적 깨달음을 체현해 내기 쉬워집니다.」
본래라면 낮은 재능 탓에 고려하지 않았을 권능이었지만…….
「‘권능 : 검귀의 길(S)’을 구매했습니다.」
「10,000 SP가 차감됩니다.」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미사여구 따위는 다 빼 놓고 보면 검에 관해서 독자 스킬을 개발할 수 있다는 점이 끌렸다.
남궁혁에게 훔친 검술은 물론이고 이제 앞으로 상대하며 훔칠 검술들까지…….
나중을 생각하면 필시 이 권능은 내게 큰 힘이 될 터이다.
단지.
‘스킬 개발 방법을 모르겠네.’
이 권능을 어떻게 발동해야 스킬을 개발할 수 있는지 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임의로 권능을 활성화시킬 수도 없고 따로 특별히 달라진 느낌도 없다.
“…….”
그에 나는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의문을 곱씹었다.
하지만 궁금증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관리자 ‘백학검선’이 당신을 관리자 영역으로 초대합니다.」
궁금한 것은 직접 물어보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
「초대를 수락하여 관리자 영역으로 이동합니다.」
「수림(樹林)에 입장했습니다.」
“오랜만이에요. 성윤.”
중국풍의 저택에 들어서니 백학검선이 생글거리며 나를 맞이했다.
새하얀 머리칼이며 주름 하나 생기지 않은 새하얀 무복까지…….
여전히 그녀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
어째서인지 백학검선의 태도가 살짝 변화했다.
예전에는 분명히 당신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친숙하게 이름으로 나를 부르고.
심지어 마치 묘하게 기대된다는 듯 눈빛을 반짝거리며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알 수 없는 기대감이 서린 눈빛에 나는 내심 의문을 느낄 때였다.
“그 여자한테 들었어요. 남궁세가의 아해(兒孩)를 적으로 두고 있다고.”
백학검선의 말에 이어지려는 생각을 끊고 입을 열었다.
“예……. 어쩌다 보니 불구대천의 원수 같은 모양새가 됐습니다.”
“이해해요. 무인(武人)이란 서로를 굴복시키기 위한 싸움을 좋아하니까요.”
그 말에 나는 잠시 입을 다문 채 아직도 생글생글 웃는 백학검선을 바라보았다.
“옛날 생각이 나네요. 한때 저도 탑을 오를 적에는 성윤처럼 싸웠던 나날이 있었는데…….”
흡사 마땅한 사유도 없이 짐승처럼 내게 달려든 남궁혁이 당연하다는 듯한 자세였다.
심지어 말하는 투를 보아하니 이러한 경우를 많이 겪어본 모양새.
“…….”
역시 무림 차원 출신의 관리자답게 그 난해한 사고방식도 쉽게 이해하는 듯했다.
그렇지 않아도 백학검선의 성정이 무림 출신답지 않게 유하다고 생각했는데…….
‘……또 그렇지도 않은 거 같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어느새 백학검선의 말이 이어졌다.
“성윤이 특별 점수를 사용해서 제 권능을 산 것도 남궁혁 때문이겠죠.”
“그렇습니다. 그리고 해당 권능에 대해서 조언을 듣고 싶어서 초대에 응했고요.”
“후후……. 그런 거라면 성윤은 확실히 좋은 선택을 한 거예요.”
“……?”
왜인지 모르게 우쭐거리는 백학검선을 보고 있으니 곧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성윤은, 흔히 쓰이는 표현을 쓰자면 천재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천재라…….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냥 좀 모방하는 걸 잘할 뿐입니다.”
진짜로 그랬다.
나는 무공이라 불리는 무림 차원의 기술을 완전히 베낀 것이 아니다.
단순히 남궁혁의 검술도 쓸 만한 부분들만 가져와서 내게 맞게 고쳐서 썼을 뿐.
물론 다른 차원의 관점에서 본다면 내게 재능이라 할 만한 것이 있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아직은 내가 쓰는 검술은 모방 영역에 머무르고 있으니 천재라 불릴 수준은 아니었다.
“정확한 구결도 모르는 검법의 식(式)을 본능적으로 따라 한 시점에서 단순 모방의 영역은 넘어섰어요.”
그런데 그것마저도 사실은 굉장히 희귀한 사례였던 것인지…….
“12층 시련에서는 심지어 검의(劍意)를 파악해서 검법 자체를 쌍검술로 개량했잖아요.”
백학검선은 딱 잘라서 내가 특이한 것이라 말했다.
“그건 더 모방이라 부를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에요.”
사실 무공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내가 이러니저러니 떠들 지식은 없었다.
“…….”
그 탓에 나는 잠자코 입을 닫은 채 백학검선의 말을 경청했다.
“남궁세가의 창천검형(蒼天劍形)의 모든 초식을 배우지는 못했어도 일부 초식을 습득해서 개량했다는 것만으로도 대종사의 자질이 있어요.”
“대종사……?”
“한 종파의 시초로서 검문(劍門)을 세워도 이상할 것 없다는 뜻이에요.”
“…….”
“그런 부분에서 본다면 성윤이 이번에 고른 권능은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백학검선이 눈빛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았고…….
“이제 성윤이 배우고 깨닫는 모든 것이 탑이 공인한 기술로 화할 테니까요.”
이내 그녀는 살짝 부끄럽다는 듯 시선을 살짝 피하며 말을 이었다.
“그 부분도 이제부터 가르쳐드릴 거예요. 다, 다만……. 제안할 게 있어요.”
그리고.
“제안이라면……?”
“……제, 제게 배움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배움? 아, 혹시 신성력에 관한 겁니까? 그거라면 이제 어느 정도 해결됐…….”
“아뇨,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순수한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배움이에요.”
이어지는 백학검선의 말에 나는 어째서 그녀가 내게 친밀한 태도를 보였는지 알게 됐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사제지간(師弟之間)의 연을 맺자는 거예요…….”
생각하지도 못했던 스승이 생기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