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37
135. 일기당천 (4)
한 차례의 전투를 무사히 끝내고 난 후.
용병들은 물론이고 어둠의 신을 모시는 사제들도 나를 매우 조심히 대하기 시작했다.
그럴 만도 했다.
한 전투 내에서 천 명의 적을 해치우는 일기당천의 업적을 달성했으니…….
어쩌면 저들의 눈에는 내가 일종의 괴물 같은 존재로 느껴지지 않을까 싶었다.
실제로 대우 또한 비슷하게 조율되었고.
“거, 검사님은 이 막사에서 따로 지내시면 됩니다!”
최초 시작 지점이었던 기분 나쁜 막사가 아니라 멀쩡하고 깨끗한 막사로 안내받은 나는 살짝 놀랐다.
설마 이렇게 큰 막사를 통째로 넘겨주고, 혼자서 지내라고 할 줄이야…….
전쟁통 속에서 이만큼 좋은 대우를 해 준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내 가치가 그만큼 높다는 것일 터다.
다만, 이렇게까지 막사가 쓸데없이 호화스러울 필요성까진 없었는데…….
그 부분을 말하기 이전에 안내 역할을 맡았던 사제가 조급히 움직였다.
“피, 필요한 것이 있으시다면 보조 사제들에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그, 그럼 이만…….”
재빨리 도망가듯 막사를 나서는 사제를 보며 나는 이내 말하는 것을 포기했다.
뭐, 오래간만에 사치스럽게 지내도 괜찮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막사에 어울리지 않게 배치된 침상에 앉은 나는 조용히 입술을 달싹였다.
“상태창.”
그리고.
『한성윤』
『후광 – 지배자』
『근력 – 121』 『체력 – 117』
『민첩 – 115』 『마력 – 114』
『내구 – 113』
『고유 특성 – 네크로맨시(A)』
『고유 권능 – 스킬 합성』
『권능 – 명경지수(C-), 검염지경劍炎之境(A-), 강철의 날개(C+), 철혈의 검(A-), 신성력(B), 혈천심공(C+), 용사의 가호(C+), 급속 마력 충전(C+)』
『스킬 – 자세히 보기』
이어서 나타난 상태창을 보며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좋네.’
모든 능력치의 수치가 세 자릿수를 넘어가는 걸 보니 쾌감까지 느껴질 지경이었다.
다만, 그저 상승한 능력치만을 보려고 상태창을 연 것은 아니었다.
「신규 스킬 목록을 열람합니다.」
이번 전투를 통해서 상당히 많은 스킬을 흡수했으니 그것들을 좀 정리할 생각이었다.
『신규 습득 스킬 : 카리스마(C+) [Skill Rank UP!], 연금술(C-), 전투 함성(D+), 투지 상승(E+), 대식가(F+), 전투 속행(E-), 주조술(F-), 늑대 걸음(D+), 위엄 상승(F+), 신속 기동(D-)』
이것저것 습득한 것은 많다지만, 그렇게까지 쓸 만한 스킬들은 별로 없었다.
사실상 피라미 같은 적들을 썰은 터라 스킬 등급도 그렇게 높지 않았고.
다만, 그렇다고 해서 나는 실망감을 품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고유 권능 ‘스킬 합성’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낮은 등급의 스킬이라도 충분히 써먹을 수 있도록 하는 권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킬 목록을 열람합니다.」
「현재 있는 스킬 중에서 합성 재료를 골라 주십시오.」
미리 스킬들을 한 번 봐 두며 합성 방향을 정해 둔 탓에 망설임은 없었다.
‘카리스마, 전투 함성, 투지 상승, 위엄 상승의 스킬들을 섞으면 좋을 것 같네.’
스킬 합성은 서로 맞지 않는 성향의 스킬끼리 섞으면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랜덤 박스였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비슷한 성향의 스킬끼리 합성하면 그 결과물은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꽤 재미를 본 스킬도 꽤 있었고, 심지어 이번에 새롭게 획득한 권능의 효과로 스킬 합성은 간접적으로 강화되었다.
바로…….
「권능 ‘용사의 가호’가 강하게 활성화됩니다.」
「행운이 일시적으로 격렬하게 상승합니다.」
용사의 가호가 지닌 행운 상승의 효과로 인해서였다.
「스킬 합성이 완료되었습니다.」
「새로운 스킬이 생성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내 4개의 스킬을 합성한 결과물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스킬 – 절대 매력(B+)』
『숙련도 – 0%』
『기본 효과 – 종족을 불문하고 지성 있는 생명이라면 누구든지 사용자에게 호감을 품으며 모든 종류의 매력이 상승합니다. 단, 이는 적의가 있는 상대라면 적용되지 않고 일부 상황에 따라서 통용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부 효과 – 종종 사용자 성향에 따라서 [공포], [매료], [숭배] 중 하나를 적용하여 특수 효과를 부여합니다. 이때, [공포] 및 [숭배]는 활성화를 조절할 수 있으며 활성화 메시지가 떠오르지만, [매료]는 활성화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으며 조절할 수 없습니다.』
“…….”
한마디로 말하자면 절대 매력은 군중 제어 기술이었다.
스킬 설명을 보고 있자니 착잡한 감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잘 쓰면 되겠지.”
나는 바로 절대 매력에서 눈을 돌려서 다시 스킬 합성을 활성화했다.
그리고 이어서 신규 스킬 및 기존 스킬을 섞어서 보법 계열 스킬을 하나 생성했다.
전투 속행, 늑대 걸음, 신속 기동을 합성하고 이어서 최근에는 쓰지 않은 은밀한 그림자의 걸음이라는 스킬을 섞었고.
「스킬 합성이 완료되었습니다.」
「새로운 스킬이 생성됩니다.」
그 결과로서 나타난 스킬은 은밀한 그림자의 걸음보다도 몇 배는 더 효율적이었다.
『스킬 – 어둠 늑대의 걸음(A-)』
『숙련도 – 0%』
『설명 – 전설 속 영물인 어둠 늑대의 움직임을 본뜬 보법이다.』
『효과 – 기본적인 걸음걸이가 효율적으로 개선된다. 해당 스킬이 활성화될 시 모든 종류의 기동력이 40% 상승하며 기척이 완전히 사라진다. 어두운 곳에서 걸을 시, 기동력 상승폭은 두 배 상승한다.』
본래는 없었던 효과들까지 생겼으니 엄청난 이득이라 할 수 있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스킬을 싹 모아서 조합했다.
연금술, 대식가, 주조술의 스킬들을 모조리 스킬 합성에 넣으니 바로 결과가 나왔고.
「스킬 합성이 완료되었습니다.」
「새로운 스킬이 생성됩니다.」
나는 재빠르게 눈동자를 굴려서 새롭게 탄생한 스킬의 설명창을 훑었다.
『스킬 – 강철 섭식(B+)』
『숙련도 – 0%』
『기본 효과 – 강철을 섭취할 시 흡수 대기 시간을 거쳐서 체질(體質)을 개선한다.』
『세부 효과 – 아이템을 섭취할 시 흡수 대기 시간을 거쳐서 랜덤으로 능력치를 상승시킨다.』
직관적이다.
이것저것 구차한 설명은 없고 그냥 강철 및 아이템을 섭취하면 강해진다는 스킬이었다.
‘좋은 스킬이야.’
본래는 쓸모없는 아이템을 어찌 처리해야 할지 몰라서 대부분 보관하고 있든지 아니면 지구에서 판매하든지 둘 중 하나였는데…….
이 스킬이 있다면 아이템을 섭취해서 능력치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섭취해야 한다는 문구가 좀 걸리기야 한다만, 아이템을 먹어서 능력치를 올릴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건 없었다.
‘이건 나중에 자세히 알아 봐야겠네.’
새롭게 습득한 스킬들까지 모조리 합성하고 나니 이제는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다름이 아니라 세인달에게서 혈식으로 빼앗은 의 각인 스킬이 눈에 띈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것도 있었지.’
지구에서 있을 적에는 신성력에 대해서 생각하느라 확인하는 것도 잊은 스킬이었다.
혈식 전용 슬롯을 누른 나는 이내 의 각인 스킬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혈식 전용 슬롯(3/3)」
「」
「」
「」
소울 에고라…….
‘어디에 써야 할지 좀 애매하네.’
마법사 세인달은 아무래도 마법 결계에 이 스킬을 사용하려고 아끼고 있었던 것 같은데.
직접 검을 휘두르며 싸우는 근접 타입의 전투를 즐기는 내게 이 스킬은 썩 달갑지 않았다.
차라리 놈이 가진 마법 계열 스킬 중 하나를 빼앗을 수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다만, 해당 스킬을 사용하고 난 이후에는 스킬 자체가 소멸한다는 점은 마음에 들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이라 스킬이 소멸하면 다시 또 혈식으로 스킬을 흡수할 수 있을 테니…….
‘나쁘지는 않네.’
이번 시련에서 새롭게 혈식을 쓸 수 있으니 를 아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진(眞) 혈천마검의 가 활성화됩니다.」
바로 소울 에고 부여의 스킬을 활성화하니 그에 부응하듯 메시지들이 떠오른다.
「소울 에고를 부여할 결계 혹은 아이템을 지정해 주십시오.」
따로 지정이랄 것도 없었다.
소울 에고 부여는 곧 나를 보조해 주는 인격을 아이템에 부여하는 것이다.
「의 대상으로 진(眞) 혈천마검(A)을 지정합니다.」
며칠 쓰고 버릴 것이 아니니 성장형 아이템인 혈천마검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했다.
「진(眞) 혈천마검(A)의 아이템에 소울 에고 ‘제 7대 혈마(血魔) 담천우’가 깃듭니다.」
이어서 여러 메시지가 떠오르는 동시에 혈천마검에 붉은 기운이 일렁이며 부르르 떨렸다.
마치 이 순간이 기쁘다는 것처럼.
―……흐, 흐흐. 기나긴 모멸과 핍박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크하하! 경배하라! 숭배하라! 갈채하라! 드디어 이 혈마 담천우가 돌아왔느니라!
나는 혈천마검에서 웅웅 울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경멸의 눈빛을 자아냈다.
“…….”
꽤 정신이 이상한 것 같은 놈이 혈천마검에 깃들었다.
***
정비를 끝낸 나는 막사에서 조용히 나와서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어둠의 신을 모시는 사제들은 음침하기 짝이 없지만, 그만큼 사령 마법에 있어선 출중한 실력자들이 많은 듯했다.
고대 황제의 잿빛 왕관이라는 아이템을 통해서라고는 해도 나 또한 을 사용할 수 있으니 이들을 살펴서 나쁠 건 없었다.
사령 마법의 효율 높은 사용법 같은 것을 알게 될 수도 있으니까.
다만, 외부에서 나를 본 사제나 용병의 반응이 좋지 않은 탓에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었다.
“저, 저기에서 걷고 있는 거 학살자 아니야? 미친, 야, 자리 피하자. 괜히 눈에 들라.”
“허……. 저렇게 젊은 청년이 학살자라니. 도저히 천 명도 넘는 사람을 벤 괴물처럼 생기지는 않았는데…….”
“야, 너는 못 봐서 그렇지, 전장에서는 진짜 괴물이 따로 없어. 사람 목을 베는데 표정에 변화가 아예 없었다니까…….”
용병들은 수군거리며 내게서 피해가듯 재빠르게 자리를 비키고.
“오, 오오……. 저게 바로 학살자인가……. 실로 탐스러운 육체로다. 만약에 저것을 내 컬렉션으로 만들 수 있다면…….”
“학살자를 컬렉션으로 만드는 것보다 네가 학살자한테 살해당해서 내 컬렉션이 되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싶다만.”
“그래도 학살자는 좋은 분이셔. 시체들은 대부분 목만 날리잖아. 사령 마법 사용하기 쉽게 도와준다니깐.”
사제들은 내게 관심을 보이긴 했으나 대부분 한 번 바라보기만 해도 흠칫하며 물러났다.
‘……이거 완전 취급이 시한폭탄 같은 느낌이네.’
살짝 섭섭하긴 했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예전의 나라도 그들처럼 사람을 천 명 넘게 죽인 학살자랑 대화하는 것은 무리였을 테니.
그래서 그냥 사령 마법의 쓰임새를 알아보는 건 포기하고 사람이 없는 부분을 빙 돌며 전장의 지형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뭐, 사실상 쓸모는 없겠지만, 다음 전투까지 시간을 죽이는 용도는 되었다.
그렇게 조용한 곳을 돌아다니고 있으니 금방 말소리들이 묻히고 적막함이 찾아왔다.
그러나 주변의 조용함과는 별개로 내 귓가는 전혀 조용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놈! 본좌를 조롱하는 것이냐! 어째서 아까부터 본좌의 말을 모조리 무시하는 것이냐!
―쯧! 혈마신교에서는 본좌와의 말을 한 번 섞지 못하여 안달 난 자들이 천지였거늘!
―무례하도다, 무례하도다……. 이 혈마 담천우가 말을 섞어 주겠다는데 거부하다니…….
혈천마검에 깃들게 된 귀찮은 놈이 내게 자꾸 시답잖은 말을 걸어 댄 탓이다.
다행히도 다른 사람의 귀에는 이 조잘거림은 들리지 않아서 귀찮은 상황은 피할 수 있었지만.
‘대꾸해 주지도 않는데 잘도 조잘조잘 떠드네.’
이쯤 되면 이 담천우라는 소울 에고에게 찬사를 날려 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물론 대화를 통해서 찬사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주먹으로 보내는 찬사겠지만.
―기껏 지옥에서 탈출했다고 생각했는데, 시시한 놈이 본좌의 주인으로 정해졌군.
“시시한 게 아니라 쓸데없는 대화를 싫어할 뿐입니다.”
다만, 이제부터 협력 관계가 될 것이므로 주먹을 날리는 대신에 나는 꽤 정중한 어조로 담천우에게 말을 건넸다.
―……오? 드디어 본좌와의 담소를 즐길 생각이 든 것이냐?
“이제 주변의 감시가 아예 사라졌으니까요.”
막사에서는 주변에는 언제나 사제나 용병이 배치되어 있었고.
바깥에서도 나를 지켜보는 수많은 이들 탓에 제대로 담천우와의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인식이 좋지 않은데 검이랑 대화를 나누는 미친놈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건 사양이었다.
―……어이가 없구나. 전음입밀의 수법도 모르는 것이냐. 동향(同鄕)의 아해인 것 같거늘.
“전음입밀……? 그런 것은 모릅니다. 그리고 당신이랑 같은 고향의 출신도 아니고요.”
―그게 무슨……? 이해되지 않는군. 아레스나 칼리안, 아니, 스타니아 같은 차원에도 검은 머리의 인종은 없었는데…….
담천우의 중얼거림을 들은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생전에 도전자였습니까?”
―하, 그것을 말이라 하느냐. 혈마 담천우라 하면 모르는 이가 없었거늘.
“혈마인지 뭔지는 모르겠고, 몇 층까지 등반한 도전자였습니까?”
―……진짜 무림 차원 출신이 아닌 것 같군. 본좌의 최종 등반 층수는 41층이다.
41층이라는 말에 나는 눈을 빛냈다.
거짓말이 아니라고 친다면 그가 지닌 정보는 상당할 것이다.
이전에도 스타니아 차원이니 아레스 차원이니 떠들던 것을 보니 다른 차원에 대해서도 박식한 것 같고.
‘……이거 어쩌면 엄청난 이득일 수도 있겠네.’
다만, 아직은 제대로 여러 질문을 할 시기가 아니었다.
나중에 대기실로 돌아가서 이것저것 질문하고 이야기를 들어도 늦지 않는다.
혈천마검에 부여된 소울 에고에게 흡족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였다.
잠깐 생각해 보니 이질적인 점이 느껴져서 이내 입을 열어서 질문했다.
“41층이라……. 40층부터는 사망한 도전자는 관리자로 소생할 수 있지 않습니까?”
어째서 관리자로 살아날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았느냐고.
―하! 감히 이 몸을 보고 탑의 개로 살아가라는 것이냐? 그런 건 사느니만도 못하다. 추하게 살아나서 무엇을 하겠다고.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 것이었다.
“아, 예…….”
혈천마검의 소울 에고로 부여된 것이 관리자의 삶보다 더 나은 것 같지는 않다만.
대충 건성으로 담천우의 말을 흘려 넘긴 나는 이어서 간단히 상하관계부터 정했다.
“뭐, 생전이야 어땠든지 지금 당신은 제 검에 깃든 소울 에고입니다.”
―알고 있다. 본좌가 그런 것도 모를 줄 아느냐. 전투 부분은 확실히 지원해 줄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느니라.
“흠…….”
―생전의 힘을 발휘할 순 없어도 본좌는 무공의 천재였고, 술법의 대가였다. 네놈이 무엇을 바라든 이뤄 줄 수 있을 테지.
그 말을 끝으로 혈천마검의 칼날이 요사스럽게 떨리며 핏빛 기운이 맺혔다.
그리고…….
―바로 이렇게 말이다.
이어서 혈천마검에 맺힌 핏빛 기운이 멋대로 폭주하더니 핏방울을 생성하기 시작했다.
“…….”
칼날의 기운에 의해서 탄생한 혈액은 허공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형상을 사납게 바꾸었다.
검, 창, 낫, 활, 줄, 도끼, 화살 등등…….
직접 선혈의 구도자를 사용해서 생성하는 무기들보다도 더 정교한 모양새.
그것을 보고 있으니 이내 혈천마검에 웅웅 울리며 담천우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런 것 외에도 보조해 줄 수 있는 힘은 많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상당히 쓸 만한 서포터가 붙었다는 건 알겠네요.”
―서포터? ……아, 그 도구 같은 것들을 일컫는 것이군. 젠장. 진짜 같은 차원 출신이 아닌 모양이구나.
“저는 지구 차원 출신입니다. 들어 본 적도 없을 겁니다.”
―지구라……. 군소 차원이겠군. 그것도 최근에 정식 등반 차원으로 등록된. 허, 새삼 세월이 많이 흐른 게 느껴지는구나.
마치 추억에 잠긴 것 같은 목소리였지만, 담천우는 이내 그런 기색을 바로 지웠다.
―……다른 사람이 오고 있다. 이제 잡담은 끝내지. 나중에 때가 되면 본좌를 불러라.
다른 사람이 내게 접근하는 기척을 느낀 탓인지 담천우가 얌전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이 검의 용량으로는 본좌의 정신을 담을 수 없어서 오래 의식을 유지할 수 없구나.
따로 검에 의식을 침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인지 이전과는 달리 미동도 없었다.
‘의식을 담을 수 없느니 어쩌느니 하는 건 잘 모르겠지만, 이건 꽤 편하네.’
뭐, 쓸데없이 조잘조잘 떠들며 정신을 사납게 만드는 것보다야 몇 배는 나았다.
“아……! 거, 검사님, 여기에 계셨군요……!”
혈천마검을 허리춤에 납검하고 있으니 다급한 목소리가 귓가로 내리꽂혔다.
그에 고개를 돌려보니 이전에 본 레이넬이라는 여성 용병이 재빠르게 다가왔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말을 내뱉기 이전에 레이넬의 입에서 생각하지 못한 말이 꺼내졌다.
“그, 급습입니다! 전신교(戰神敎)의 전투 사제가 정예 부대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전투의 신을 섬기는 사제들이 정예 부대를 모아서 습격을 감행한 모양새.
레이넬은 급하게 내가 전장으로 가야 한다고 했고, 그에 나는 내심 감탄했다.
‘역시 시련의 탑이라 해야 하나. 이것 참 상황이 재밌게 굴러가네.’
그렇지 않아도 빠른 전투를 바라고 있었는데 이렇게 상황이 좋게 풀릴 줄이야.
일거양득(一擧兩得).
특수 과제의 클리어는 물론이고 소울 에고의 유용함을 알아볼 기회였다.
“급습한 정예 부대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십시오.”
나는 레이넬을 바라보며 서늘한 웃음을 지었다.
“바로 성전에 참전하겠습니다.”
이제 다시 전장에서 날뛸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