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38
136화. 강림 (1)
옹기종기 막사들로 둘러싸인 언덕은 어느새 전장이 되어 있었다.
“써, 썩을! 사교도 놈들이 습격이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커허억!”
“씨발! 사제들은 뭘 하는 거야! 시체를 일으키든지, 마법을 쓰든지 하라고……!”
“사제들을 지켜라! 적들이 사제를 죽여서 사령 마법을 다 해제하고 있……! 컥!”
강철과 강철이 부딪히며 소음을 자아내고 불꽃의 아지랑이가 여기저기에서 피어오른다.
그 광경을 보며 나는 재빠르게 전장에 있는 적의 수준을 가늠했다.
‘이전에 비하면 그렇게 많은 숫자는 아니야.’
고작 백 명을 넘어선 수준에 머무르는 적들은 이전처럼 많은 숫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동시에 수준은 확실히 이전처럼 허접하지도 않았다.
급습이라는 이점을 이용하여 빠르게 용병이나 사제를 제거하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이번에 나타난 정예 부대의 적들은 명백히 신성력이 느껴지는 권능(權能)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하핫! 죽어, 죽어! 얼른 뒈지란 말이다, 이 벌레 같은 놈들아─!”
콰지직!
피로 얼룩진 로브를 입은 사내가 웃으며 주먹을 내지르자 용병 몇 명이 터져 나갔다.
비유 같은 것이 아니다.
진짜로 주먹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핏물을 흩뿌리며 죽은 것이다.
몸 곳곳에 붉은 반점 같은 올라온 꼴을 보니 신체 강화 계열의 권능인 것 같은데…….
‘이제야 좀 사제 같은 적들이 나오네.’
11층 시련에서 권능을 통한 회복기 및 공격기를 많이 보고 겪은 내게는 이게 더 익숙했다.
다만, 나를 안내한 레이넬은 이 광경에 적응하지 못한 것처럼 덜덜 떨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저, 저렇게까지 강대한 권능이라니…….”
그다지 좋은 권능인 것 같지는 않은데 레이넬은 지레 겁을 먹고 있었다.
‘이게 가장 우수한 용병이라고……?’
솔직히 말해서 겁쟁이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지만, 어쩔 수 없이 이해하기로 정했다.
시련의 탑은 애초부터 쉬운 시련은 절대로 내주지 않는다.
어려움 난이도를 고른 도전자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
아마도 이번 시련의 스테이지 스토리는 내가 없었다면 아군 진영의 일방적인 패배로 끝났을 터이다.
다만, 그것은 스테이지의 스토리일 뿐이다.
“레이넬 씨. 정신을 차리십시오.”
침착한 어조로 레이넬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그렇게 말하니 그녀가 흠칫했다.
“거, 검사님…….”
“진정하고 사제들을 지키십시오. 성전은 사제들이 있어야 완수될 수 있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 그런데 검사님은 같이 가지 않으시는 겁니까?”
“사제들을 지키고만 있기에는 전황이 너무 좋지 않아서요.”
나는 서늘한 눈초리로 망아지처럼 날뛰는 전신교의 사제들을 바라보았다.
“직접 상황을 정리해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용병 ‘레이넬 아시르’가 당신에게 강렬한 동경심을 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특수 과제 ‘동경의 대상’을 달성하셨습니다.」
「이제 아군 진영의 사기는 두 배 상승하며 철저한 지휘로 대열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15층 시련의 보상에 추가 정산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방금 내뱉은 말이 레이넬에게 어떤 영향을 준 것인지 특수 과제가 클리어되었다.
“……검사님, 무운을 빌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살아서 뵙는다면 술이라도 사드리겠습니다.”
레이넬의 눈동자에는 어느새 혼란이 가시고 굳건한 의지력이 자리했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나중에 봅시다. 레이넬 씨.”
물론 그러든 말든 나는 대충 그렇게 대꾸해 주며 두 자루의 검을 뽑아서 들었다.
스르릉.
검집에서 칼날이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울리는 동시에 레이넬이 재빨리 자리를 피했고.
나는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전장을 훑으며 바로 온갖 스킬을 활성화시키며 움직였다.
그리고.
「스킬 ‘어둠 늑대의 걸음’이 활성화됩니다.」
이번에 새롭게 습득한 이동기까지 곁들여지니 기척도 없이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이 혼돈 같은 전장에서 기척이 사라진다는 이점은 상당했다.
‘기척이 사라진다는 게 실감이 되네. 바로 등 뒤까지 왔는데 모르고 있다니.’
붉은 반점이 올라온 전투 사제 중 한 명의 배후로 접근하여 검을 휘둘렀다.
서걱!
바로 이름 모를 전투 사제의 목을 벤 나는 유유히 전장을 노니며 검을 휘둘렀다.
촤아악! 서거억! 콰지직!
대부분은 등 뒤까지 적이 온 줄도 모르고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채로 사망했다.
뭐, 스킬이 스킬이고,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해는 할 수 있었는데 너무 싱거웠다.
‘이래서야 천 명도 넘는 적을 썰 수 있었던 이전의 전투가 더 긴장감이 있었겠네.’
물론 전투 사제들이 나에 대해서 아예 알아채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뭐, 뭣……! 어, 어느 틈에……!”
몇몇 수준 높은 전투 사제는 흥분한 상태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했는지 바로 등 뒤까지 가니 나를 알아챘지만…….
촤아악!
검을 한 번 휘두르면 그대로 죽는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결과였다.
그나마 차이점이 있다면 저열한 웃음을 지은 채 죽은 사제와는 다르게 꽤 경악한 얼굴로 죽었다는 것일까?
하지만 그다지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는 차이는 아니었다.
검을 휘두르는 족족 허공을 날아드는 머리통이 웃고 있든 경악하든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순조롭네.’
솔직히 말해서 내 옷깃 한 번 스칠 수도 없을 것 같은 적들이다.
몇천 명도 넘는 적을 상대할 때는 몇 번 공격을 허용할 뻔한 적이라도 있었는데…….
이건 그냥 실전 경험을 쌓을 수도 없는 수준이라 성장의 양분으로도 쓸 수 없었다.
「관리자 ‘천 년 만에 탄생한 용살자’가 전신교의 사제들이 맥도 추지 못하는 꼴을 보며 황당함을 느낍니다.」
「관리자 ‘철혈의 군주’가 계약자의 실력 행사를 즐겁게 관람합니다.」
「관리자 ‘혈마신교의 패배한 후계자’가 혈천심공을 알뜰살뜰 사용하는 당신의 모습에 호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관리자 ‘백학검선(白鶴劍仙)’이 계약자의 실력 행사를 기꺼워하면서도 어느 마인이 준 심공의 권능을 불만스럽게 여깁니다.」
뭐, 관리자들이야 이런 학살의 광경이 꽤 즐거운지 여러 메시지를 띄웠지만…….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듯 전투 사제들을 처리해 나갔다.
‘성전이 끝날 즈음에는 사신의 자질이라는 게 제대로 개화하면 좋을 텐데…….’
이번 전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생각을 하면서.
***
전투는 빠르게 종료되었다.
어림잡아서 70명 정도 되는 전투 사제가 사망하니 전황도 크게 바뀌었고.
“무, 무엇이냐! 카진, 헤일, 라즈! 비, 빌어먹을! 다들 도대체 어디에 간 것이냐!”
“저, 전투 사제가, 동료가, 대부분 죽었……! 커, 커흐윽! 후, 후퇴해야 하……!”
“후, 후퇴라고? 어디로 후퇴해야 한다는 건데! 이런 건 계획에 없었다고! 크하악!”
쥐도 새도 모르게 동료가 죽었음을 인지한 전투 사제들은 당황하며 모조리 죽거나 붙잡혔다.
붙잡은 것도 사실은 내가 혈천마검에 침잠한 상태로 있었던 담천우를 깨워서 포박했다.
선혈의 구도자보다도 더 정교하게 생성된 피로 된 노끈은 전투 사제의 완력을 봉하고도 남았다.
웬만하면 이런 것은 아군에게 보여 주지 않을 작정이었는데 아이템을 써서 그런지 아군의 반응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이건 소울 에고 부여를 하며 얻게 된 성과라 할 수 있었다.
―……어이가 없구나. 감히 본좌를 전투에는 사용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쓰다니.
동감이었다.
‘소울 에고의 능력을 이렇게만 쓰게 될 줄은 나도 몰랐는데.’
사실, 급습이라 하길래 나도 혈천마검의 소울 에고를 사용할 상황이 나올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 어떤 적도 내게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고 다들 힘에 취한 머저리들밖에 없었다.
적어도 남궁혁처럼 기술에 일가견이 있어서 참고할 수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무래도 신의 권능에 취한 놈들이 태반이다 보니 내가 참고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뭐, 적은 남기지 않고 몰살한다는 점은 마음에 드는군. 무림 차원 출신이었다면 훌륭한 흑도인이나 마도인이 되었을 터인데. 안타깝구나.
담천우의 말을 들으며 잠시 정신을 집중하니 신기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혈천마검에서 아주 얇은 마력의 파장이 미세한 실선처럼 뿜어지고 있었다.
다만, 이 마력의 파장은 신기하게도 내가 있는 방향으로만 정확히 퍼지고 있었다.
그 이외의 경로에는 일절 마력이 누수되지 않았고.
‘……전음입밀이니 뭐니 하는 게 이런 거였나?’
그에 나는 이전에 담천우가 말했던 전음입밀의 수법이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냥 마력 통제를 통한 음성 전달 기술을 가지고 전음입밀이니 뭐니 했던 겁니까?
마력 회로를 통해서 그렇게 마력을 혈천마검으로 발산하니 이내 곧바로 반응이 돌아왔다.
―이, 이게 무슨! 서, 설마 그 짧은 사이에 전음을 쓰는 방법을 알아차렸다고……?
담천우는 마치 내가 전음을 익힐 줄 몰랐다는 듯 당황했지만.
―마력 파장을 경로로 지정해서 목소리를 실은 채 보낸다는 걸 빼면 체계랄 것도 없잖습니까.
당장 나로서는 이 간단한 기술에 큰 의의를 두는 것 자체가 의아했다.
―아니, 당연히 체계 자체야 간단하긴 한데……. 말도 안 되지 않느냐. 전음도 쓸 줄 모르는 애송이가 갑자기 익힌다는 것이. 누구한테 배운 것도 아닐진대.
―마력 통제 기술이 있다면 못 익힌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마력을 다룰 줄만 알면 이 정도야 누구든지 합니다.
―네놈의 논리를 따르자면 무림에서 자고 나란 무인 중 절반은 반쯤 병신이 된다만?
―……아니면 말고요. 뭐, 익혔다는 게 그렇게까지 중요한 건 아니잖습니까.
대충 수습하려 내뱉은 말이었는데 의외로 담천우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훗! 하기야, 그것도 그렇지. 본좌의 영혼을 부여할 수 있는 실력자가 천재이지 않으면 무어란 말이냐! 크흠, 옳은 소리를 했느니라!
물론 그것이 자기 자신을 치켜세우는 반응이란 점에서 살짝 어이가 없기야 했지만…….
―하아암. 또 수마가 몰려오는구나. 나중에 필요하면 부르거라. 그때까지 본좌는 충분히 힘을 비축하고 있을 것이니라.
이 정신이 이상한 것 같은 소울 에고는 상당히 쓸 만했으므로 따로 구박을 주진 않았다.
그러고 있자니 어느새 혼란스러운 전장이 정리되고 검은 로브를 푹 눌러쓴 사제 한 명이 내게 다가왔다.
“……대주교님께서 부르십니다. 부디 동행해 주시길 바랍니다.”
내 전투를 보고 있었던 것인지 사제의 목소리가 상당히 떨리고 있었다.
“보, 보수에 관한 이야기 또한 나눌 것이므로 같이 가 주셔서 나쁠 것은 없을 겁니다.”
심지어 어조 또한 부탁의 성향이 강했기에 나도 반발하지는 않았다.
“알겠습니다.”
보조 사제로 추측되는 남자의 안내를 따라가니 상당히 큰 검은 천막이 나타났다.
그곳에 들어서니 퀭한 얼굴을 한 비쩍 마른 남자 한 명이 나를 맞이했다.
“……학살자여, 본 주교의 초대에 응해 줘서 고맙소. 편하게 자리에 앉으시오.”
그가 앉은 탁자 너머에는 의자 두 개가 있길래 그중 하나에 대충 착석했다.
“학살자 같은 거창한 호칭으로 부르실 것 없습니다. 그냥 이름으로 불러 주십시오.”
“……유감이오만, 암신교(暗神敎)는 용병을 고용할 때 상급 용병을 빼면 이름을 따로 적어 두면서까지 고용하지 않소.”
“그럼 저는 무명(無名)이라 불러 주십시오.”
“……큭, 이름이 없는 것이 이름이라. 재밌는 분이오. 어둠의 신께서도 분명히 당신 같은 분을 좋아하실 것이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성의 없는 형식상의 대답이었지만, 대주교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듯했다.
그는 왜소한 웃음을 자아내며 이어서 말했다.
“무명이여, 이번에 그대를 부른 것은 보수를 논하기 위해서란 것을 아시오?”
“오면서 대충 보수에 관한 것도 이야기한다고 보조 사제에게 들었습니다.”
“맞소. 단, 이번 성전이 끝날 때까지 전선을 이탈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전선 이탈 같은 건 할 생각이 없습니다. 빠르게 본론으로 넘어가면 좋겠는데요.”
“……그대에게는 본 교주의 판단으로 암신교의 성유물을 보수로 지급할 것을 결정했소.”
마치 대단한 것을 주겠다는 듯한 어조였지만, 나는 성유물이 무엇인지 모른다.
“……죄송한데 성유물이란 게 무엇인지 말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솔직하게 알려 달라고 하니 대주교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성유물을 모를 줄은 예상하지도 못했소만, 뭐, 알려드리겠소. 성유물이란 것은 신의 힘이 담긴 기적의 물품이오.”
“신의 힘이라…….”
“신성력이 깃들어 있어서 권능 중 한 가지를 성유물을 통해서 발현할 수 있소. 본래는 외부인에게는 절대로 성유물을 주지 않지만…….”
“전시이고, 성전이라, 공적에 따라서 줄 수 있다는 겁니까?”
“바로 그렇소. 이해가 빠르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소.”
순식간에 대주교의 눈빛에 흡사 상인의 그것과도 같은 일렁임이 깃든다.
“보수를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는지 말해 주시오.”
흔해 빠진 교섭의 방식이었지만, 이만큼 확실한 방식도 또 없었다.
심지어 방금 나는 성유물에 대해서 모른다고 했으니 나한테 먼저 제시하라고 한 건 일종의 교섭 기교라 할 수 있었다.
어쩌면 생각보다 더 적은 보수를 주고 나를 부려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그럼 저는 반대로 묻겠습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나는 성유물을 모른다고 했으니 교섭의 주도권이 자신한테 있겠다고 생각했겠지만…….
“대주교님은 어디부터 어디까지 생각하고 계십니까?”
오히려 이 상황에서는 정반대였다.
아쉬운 것은 절대로 내가 아니다.
「스킬 ‘절대 매력’이 활성화됩니다.」
「대주교 ‘케이닐’이 상태 이상 [공포]에 빠집니다.」
「상태 이상 [공포]에 의해서 판단력이 저하되며 당신의 존재를 크게 인식합니다.」
“나름대로 좋은 보수를 받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줘야 나를 설득할 수 있을지.
이제부터 대주교는 깊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