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40
138. 강림 (3)
검은 인장이 손등에 새겨진 순간이었다.
「관리자 ‘천 년 만에 탄생한 용살자’가 공양의 인장을 보며 큰 공포에 빠집니다!」
「관리자 ‘멸망한 세계의 용사’가 공양의 인장이 어째서 진짜로 써지는 것이냐며 소리칩니다!」
「관리자 ‘신성의 구도자’가 공양의 인장까지 주는 것은 무리수가 아니냐고 탑에게 말합니다!」
갑자기 가만히 있었던 관리자들의 메시지가 폭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태까지는 몇몇 소소한 메시지를 제외하면 반응이 크게 없었는데…….
공양의 인장을 사용한 이후부터 급격히 관리자 메시지의 양이 늘어났다.
「관리자 ‘천공의 지배자’가 이게 말이 되느냐며 탑에 강하게 항의합니다!」
「관리자 ‘일곱 신의 사제’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하냐며 경악합니다!」
「관리자 ‘검은 군도의 영웅’이 잉걸불을 삼키는 밤의 장막이라도 빠르게 회수하라고 합니다!」
이제는 자주 나타나지도 않는 관리자들까지 난리를 치기 시작했고.
잠시 그 메시지들을 살펴본 나는 이내 이상함을 눈치챘다.
‘……설마 이거 쓸 수 없는 아이템이었나?’
마치 관리자들은 이 성유물들을 절대로 쓸 수 없어야 했다는 것처럼 반응하고 있었다.
공양의 인장이든 잉걸불을 삼키는 밤의 장막이든 간에 본래는 절대 내가 소유할 수 없어야 했다는 반응이었다.
‘어째서지?’
이 아이템이 SS-급이라는 것은 상당히 대단했지만, 관리자들의 반응은 그 이상이었다.
흡사 탑이 절대로 내게 줘서는 안 되는 것을 준 것처럼 말하고 있으니 의문이 들었다.
성유물이 무엇이길래 이렇게까지 과격하게 반응하는지.
그에 대해서 직접 참지 않고 물어보려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허용되지 않은 정보의 누설을 확인했습니다.」
「관리자 메시지가 일시적으로 차단됩니다.」
바로 관리자 메시지가 차단되며 물어볼 수도 없게 되었다.
「시련의 탑이 관리자들에게 경고합니다.」
「허용되지 않은 정보를 더 누설할 시 도전자 한성윤의 시련 관측이 금지될 것입니다.」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적어도 현재 상황이 평범하진 않다는 것이다.
“…….”
잠시 허공에 떠오른 메시지를 지켜보던 나는 이내 눈을 반개했다.
‘적어도 성유물은 관리자들도 쉽게는 대할 수 없는 아이템이야.’
그저 신성력이 담겼을 뿐인 아이템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겉으로 보이는 등급보다도 더 큰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뭐, 정확한 건 직접 써 봐야 알 수 있겠지.’
나는 바로 왼손 손등에 새겨진 인장에 의식을 집중했다.
그리고.
「공양의 인장(SS-) 전용 효과 ‘공양(供養)’이 활성화됩니다.」
「당신이 지닌 [재능], [능력], [보물]을 신에게 공양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선택지를 내포한 메시지의 등장에 잠시 고민했다.
설마 했는데 생각한 대로 신에게 무언가를 공양하는 전용 효과라니…….
적이 될지도 모르는 신에게 공양하는 것이 과연 옳은 행위인지 고민되었지만, 달리 선택할 수 있는 길도 없었다.
「신에게 [보물]을 공양할 것을 선택했습니다.」
「신에게 공양할 [보물]을 원하는 대로 지정하십시오.」
강철 섭식에 사용할 아이템 중 하나를 지정하니 이내 바로 반응이 나타났다.
「작은 요술사의 지팡이(D+)를 지정했습니다.」
「해당 보물을 공양할 신을 선택해 주십시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오류 발생.」
「신성력에서 다른 신의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개별 신성의 보유자로 인정하여 자기 자신에게 공양이 가능해집니다.」
뜬금없이 오류가 발생하더니 신을 선택하라는 메시지 대신에 다른 것이 떠올랐다.
「자기 자신에게서 작은 요술사의 지팡이(D+)를 공양 받았습니다.」
「해당 아이템을 신성력으로 치환하여 심장에 축적합니다.」
바로 공양 대상으로 지정한 지팡이가 사라지며 심장에 있는 신성력이 늘어났다.
“이건 또 무슨…….”
물론 신성력의 등급 자체가 성장할 만큼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기운이 늘어난 상태였다.
‘어이없네. 자기 자신에게 공양이라니…….’
대체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겠지만,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그래도 신성력을 키울 수 있는 길이 생겼어.’
여태까지 키울 방법이 달리 없던 신성력을 자력으로 성장시킬 수 있게 되었다는 것.
특수 조건 충족을 통해서 신성력이 강해진 것과는 아예 다르다.
직접 신성력의 양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했다.
물론 아직은 신성력을 마땅히 쓸 곳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해야겠지만…….
뭐, 그것도 신화를 점점 쌓다 보면 신성력 또한 사용처가 늘어날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이것뿐인가…….”
잉걸불을 삼키는 밤의 장막.
이 성유물을 어쩔지 고민하다 이내 품에 접어서 보관했다.
뭐, 손수건 형태라 착용하고 말 것도 없으니 품에 가지고 있으면 나중에 위험한 상황에서 발동할 것이다.
물론 그런 상황까지 가지 않는 것이 베스트겠지만,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니 대비해서 나쁠 건 없었다.
심지어…….
‘탑은 괜히 이런 것을 주지 않을 거야.’
탑은 내게 관리자들마저도 본래는 주면 안 된다고 한 아이템을 제공했다.
그러나 탑을 오르며 깨달은 바로는 이유 없는 호의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만큼은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분명히 써야 할 순간이 오겠지.’
최후의 최후까지 나는 절대로 방심하지 않을 것이다.
***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그동안 나는 여러 번의 전투를 치렀다.
물론 모든 전투는 승리를 거듭했고, 아군 진영은 점점 공격적으로 변화했다.
매번 전투에서 내가 활약하니 이제 완전히 이쪽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뭐, 사실은 나를 빼면 지금도 위태로운 수준이긴 한데……. 굳이 정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특수 과제 ‘동경의 대상’을 클리어하며 아군 진영도 확실히 수준이 높아졌다.
용병들의 대열은 무너지지 않고, 사제들의 실력은 한껏 올라간 상황이었고.
몇 번의 전투를 통해서 보급한 시체들 덕분에 이제 아군의 숫자도 꽤 올라갔다.
그리고.
「완전 흡수 완료.」
「근력이 4 상승합니다.」
「체력이 1 상승합니다.」
「민첩이 2 상승합니다.」
「내구가 4 상승합니다.」
「체내에 쌓인 탁기(濁氣)의 8.8%를 배출합니다.」
꾸준히 강철 섭식으로 아이템을 흡수하니 체질이 꽤 개선됐다.
‘이제야 탁기라는 게 뭔지 좀 알겠네.’
예전에 플레이어로 각성하기 이전부터 쌓여 온 불순 물질을 다 합친 것이 탁기였다.
이 불순 물질을 배출하며 생긴 이로운 효과는 꽤 간단했다.
체내에 쌓인 불순 물질이 제거되며 마력을 좀 더 사용하기 쉬워졌다.
다만, 정순하지 못한 기운을 오랜 기간 받아들였더니 탁기가 꽤 많이 쌓인 것일까?
‘탁기를 다 제거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어.’
아이템을 많이 흡수했다고 생각하는데도 고작 8.8% 정도의 탁기만 배출되었다.
“뭐, 시간이 흐르면 해결되겠지.”
전장의 중심에서 나는 혈천마검과 파천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중얼거렸다.
성전이 시작된 지 4일 차의 전장은 이제는 제집처럼 익숙하게 느껴졌다.
수백 명 정도를 베면 여지없이 진형을 잃고 도망가는 적도 그러했다.
―도, 도망가! 학살자다! 이, 이대로 있으면 다 죽을 거야……!
―으, 으으……! 신이시여! 어찌 저런 괴물이 존재하는 것입니까……!
―빌어먹을! 이 더러운 시체술사 새끼들이 결국에는 악마를 불러온 것이냐……!
여러 공포 섞인 비명을 들으며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분명히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한 번 죽을 각오까지 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적들은 아직도 이렇게나 쉽게 지리멸렬한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나. 이대로 간다면 무탈하게 시련이 끝나겠는데.”
한껏 또 적들을 죽이고 나니 새삼 내가 얼마나 강한지 실감할 수 있었다.
하기야, 당장 이전 층인 14층 시련도 남궁혁이 가로채지 않았다면 나도 어렵지 않게 클리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진짜 괜히 긴장했다고 봐야 하나…….’
여태까지 붙잡고 있었던 긴장의 끈이 풀리려는 순간이었다.
“……?”
갑자기 주변의 마력이 심상치 않게 이동하는 것이 기감에 잡혔다.
상공으로 치솟는 마력의 기류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였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보라색의 마법진이 생성되어 있었다.
마법에 조예가 없는 눈으로 봐도 심상치 않다는 것 정도야 단번에 알아챘다.
‘설마 하늘에서 마법을 내리쬐듯 쏘아 버릴 생각인가?’
그럴싸했다.
전신교의 사제들은 이미 이 전장에서 크게 후퇴한 상황이었다.
대규모 마법진을 통해서 상공에서 일방적인 폭격을 쏟아붓는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
‘좀 귀찮긴 한데 막아 낼 수는 있어.’
그에 재빠르게 반격의 방패를 활성화할 준비를 하며 상공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마법진에서는 광역 마법 같은 건 쏘아지지 않았다.
―암신교 주제에 전신교를 치러 오다니. 정녕 죽고 싶은 것이구나.
단지, 마법진에서는 새하얀 날개를 가진 남자가 한 명 나타났을 뿐이다.
신성이 담긴 울림에 나는 소름이 등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전투의 신께서는 자비로우신지라, 너희들의 소원을 들어주시기로 하였다.
왜인지 본능이 자꾸만 위험하다며 경종을 울린다.
마치 이 자리에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나타난다는 것처럼.
―영광으로 여기거라! 어둠의 신을 섬기는 개들이여!
그리고.
―주제를 모르는 잡것들에게 신께서 직접 천벌을 내리실 것이니!
그 말을 끝으로 날개 달린 남자의 머리에 붉은 고리 같은 것이 생겼고.
쿠우웅─!
이어서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존재감이 남자에게 강림했다.
두근, 두근.
마치 봐서는 안 될 것을 보고 있는 것처럼 심장이 터질 것처럼 조여 온다.
‘아, 이거……. 알고 있는 감각인데…….’
한 번 경험한 적이 있는 압박감에 느릿하게 사고가 이어지는 것도 잠시였다.
「전투의 신이 상당한 신성력을 소모하여 불완전한 을 시전합니다.」
「의 상태에서는 신이 지닌 신화 및 권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예비 사도 ‘제르한 네비아’에게 하여 신성력을 온전히 쓸 수 없습니다.」
「도전자 한성윤의 15층 개인 시련의 난이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했습니다.」
시야를 가리듯 주르륵 떠오르는 메시지들을 보며 깨달았다.
「시련의 탑이 도전자 한성윤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난이도라고 판단합니다.」
「시련이 중단되지 않습니다.」
역시나 이 탑이 이유 없이 주는 호의 같은 것은 없다고.
죽음에서 부활할 수 있는 성유물을 줬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이 미친 시련의 탑에서는 아무리 성장해도 안전 따위는 보장되지 않는다고.
[ ……건방진 탑의 개를 오늘 직접 죽일 수 있겠구나. ]신적 존재가 강림한 예비 사도에게 얼마나 저항할 수 있을까.
일순간 그러한 의문이 들었지만, 답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 죽어라. 감히 신의 자리에 도전한 것을 후회하면서. ]콰직─!
「사망하였습니다.」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죽는다.
심장이 관통되는 순간에야 나는 비로소 알 수 있었다.
한낱 인간이 신을 상대하려면 정말로 많이 강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잉걸불을 삼키는 밤의 장막(SS-) 전용 효과 ‘밤의 장막’이 활성화됩니다.」
「잉걸불을 삼키는 밤의 장막에 의해서 잠시 후에 완전히 부활합니다.」
「잉걸불을 삼키는 밤의 장막에 의해서 ‘사도화’의 상태에 돌입합니다.」
어째서 관리자들이 아우성을 치며 당장 성유물을 회수하라고 했는지를.
「어둠의 신이 당신을 바라보며 웃습니다.」
「어둠의 신이 당신에게 내려진 사도화의 축복을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합니다.」
전능을 머금은 어둠이 나를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