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47
145. 선택 (1)
마경(魔境).
그곳은 이 단어가 지닌 의미 그대로 마족 및 마물이 사막의 모래알처럼 곳곳에 넘쳐흐르는 장소였다.
웬만한 생물은 숨을 쉬는 것으로도 미치게 만드는 마기(魔氣)는 물론이고, 수백 명은 거뜬히 학살할 마물들이 서로 물어뜯으며 싸운다.
마경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뛰어난 힘을 가지고 있어도 절대로 마경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마왕에게 작위까지 부여받은 마족들까지 마경에서는 서로 심심찮게 싸우는 것을 볼 수 있는 터라, 마경에서 혈투가 일상이었다.
힘의 논리로 따지자면 누구도 마경의 험악함을 당해낼 수 없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전사들도 오죽하면 마경을 현세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지옥도라 부르겠는가.
성검을 쥐었다고 한들 기억을 잃은 청년이 감당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하지만.
“대체……. 대체……. 이게 무어란 말이냐…….”
때때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기억을 잃었는데 어째서 움직임이 더 좋아진 것 같지……?”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상식을 벗어난 존재가.
‘저게 정말 기억을 잃은 놈이 맞는 건가?’
알렌에게 있어서는 차분하게 마물들을 썰어 대는 흑발의 청년이 그러했다.
닐.
오랜 시간을 함께 동료로서 보내 온 인류 최강의 용사이지만…….
그는 한 달 전에 대악마와의 사투에서 기억을 바쳐서 경지를 초월한 일격을 구사했다.
그 대가로 모든 기억을 잃었으며 심지어는 용신에게 받은 권능들까지도 소멸했다고 하였다.
그에게 남은 것은 한 자루의 성검 그리고 기억하지도 못하는 동료들뿐이다.
구세의 용사라고 해도 이 상황에서 침착하게 싸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몇 년을 전장에서 구르며 쌓아 온 전투 경험은 사라졌고, 쉴 새도 없이 바로 전장에 내몰렸다.
알렌은, 아니, 데이지나 제르파까지 포함하여 전부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 닐에게는 용사로서의 힘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
―닐은 아예 우리가 누구인지도 잊었어. 전투 경험이 남아 있을 리 없어. 그는 이제 한낱 범인(凡人)에 불과해.
닐이 다시 눈을 뜬 날, 데이지는 확신에 찬 어투로 그렇게 말했다.
이제 닐은 구세의 용사로 활동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노라고.
그러니 저들끼리 고른 비열하기 짝이 없는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고.
‘……그때는, 그래, 그렇게 생각했지.’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알렌은 침을 꿀꺽 삼키며 피로 붉게 물든 전장을 바라보았다.
키이잉─!
성검은 쉴 새 없이 불빛을 뿜으며 마기에 오염된 대지를 뒤집고.
작은 성채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마물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폭사한다.
이것만 본다면 그저 성검의 능력 중 하나인 성광(星光)을 이용해서 일방적인 학살극을 벌이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운 전투야…….’
현재 흑발의 청년은 아무렇지도 않게 괴수를 휙휙 썰어 대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성검의 능력을 흥미롭게 여기며 시험해 보는 것처럼.
그러다 생각지 못하게 접근을 허용한 괴수는 알 수 없는 기술로 단숨에 베어 냈다.
검술에도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는 알렌의 눈으로 봐도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 검이 움직이는 것까지는 다 보았는데, 그것이 불러온 결과물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왜 검이 공간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보이는 거지……?’
알렌은 그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의 학살극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그것은 데이지나 제르파 같은 다른 동료 또한 다를 것 없었다.
기술적인 측면만을 따지자면 용사는 기억을 잃기 전보다 더 강해진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저게 정말로 말이 되는 거야? 용신님께 기억이든 권능이든 가리지 않고 전부 공물로 바쳤는데?”
데이지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리고.
“……수십 년은 전장에서 구른 것 같군. 닐은 고작 몇 년을 전장에서 구른 사내지. 기억을 잃지 않았어도 이상한 광경이네.”
제르파가 침음을 흘리며 그에 대답했다.
둘 다 알렌처럼 저 말도 안 되는 실력에 관해서 경악하고 있었다.
물론 곧 마왕을 상대할 용사의 기량이 알 수 없는 이유라지만, 미친 듯 상승한 것은 어찌 본다면 길조였다.
용사는 마왕을 해치울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니까.
‘그래서 문제야.’
다만, 문제라고 한다면 동료 중 그 누구도 용사의 승리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렌의 눈동자에 절망이 깃들었다.
“……썩을. 어째서냐, 닐. 왜 이제야 이렇게나 강해진 것이냐.”
본래의 계획과는 완전히 틀어진 것 같은 이 상황은…….
머지않아서 맞이할 결말에서 해피 엔딩의 조건이 될 수 없었다.
그것은 동료들만이 아니라 인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
성검의 능력을 알아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동료들을 은연중에 압박하며 적이 어디에 있는지 물으니 바로 장소를 알려주었고.
마경의 내부로 진입하니 머지않아서 작은 성채 수준의 몸집을 지닌 마물들이 서로 물어뜯으며 싸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이후부터는 이것저것 재지 않고 난전에 참전했고.
최대한 성검에 내재된 능력들을 사용하여 전투에서 승리했다.
「업적 ‘마물 학살’을 달성했습니다.」
「내구가 4 상승합니다.」
「현재 특수 시련의 페널티로 모든 능력치가 하락한 상태입니다.」
「영구적인 능력치의 상승은 현재 적용되지 않습니다.」
「시련이 종료될 시 능력치의 성장이 정상적으로 적용됩니다.」
능력치가 낮아졌음에도 마물들을 몰살하는 것에 큰 어려움은 느끼지 않았다.
스킬 및 권능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 이외에도 여태까지 배워 온 여러 기술도 잊지 않았다.
실제로 남궁혁이나 백학검선에게서 곁눈질로 습득한 무공도 재현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니 전투에 지장이 있을 리 없었다.
‘마경이라고 부를 정도는 되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전투의 난이도가 낮은 것은 아니지만…….
어려움 난이도의 시련에서 이 정도 수준이라면 보너스 스테이지나 다름없었다.
검은 찰흙을 동물처럼 빚어 놓은 것만 같은 성의 없는 생김새를 한 마물들의 시체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늘 그렇듯 이번에도 어김없이 네크로맨시의 표식이 나타난 것이다.
나는 그것을 망설이지 않고 모조리 흡수했다.
「마물 ‘루데른’의 사령을 흡수했습니다.」
「마물 ‘마이아’의 사령을 흡수했습…….」
「마물 ‘미미륵’의 사령을 흡수했…….」
「숙련도가 0.19% 상승했습니다.」
그러나 흡수한 사령들을 곧장 능력치로 전환하진 않았다.
어차피 숙련도가 오르는 수준을 보니 그다지 능력치에 좋은 변화를 줄 것 같지도 않으니.
이대로 가지고 있으며 여차하면 쓸 수 있는 네크로맨시의 보호막으로 쓸 생각이었다.
뭐, 이 상태에서 더 능력치를 올려서 좋을 것도 없을 거 같고.
“……이제 이걸로 근처에 있는 마물은 다 잡았나.”
이제 더 싸울 대상이 없음을 확인하자마자 천천히 이전의 상황을 복기했다.
성광(星光), 기원(祈願), 징벌(懲罰).
성검에 부여된 세 가지의 능력 중 확인한 것은 두 가지였다.
성광 그리고 징벌.
아무래도 기원은 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것이다 보니 찝찝했고.
그 탓에 사용조차도 하지 않은 채 무슨 능력이 있는지도 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큼 다른 능력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볼 수 있었지.’
마물과의 전투를 통해서 알아본 성광의 능력은 폭격과도 같았다.
성광이 활성화될 시 성검에서 별빛 같은 광채가 쏘아지며 대폭발을 일으킨다.
……솔직히 말해서 이만큼 범위 넓고 위력 좋은 광역 기술은 처음이었다.
어쩌면 반격의 방패를 통해서 광검(光劍)을 펼치는 것보다도 더 실용적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다만, 문제는 성검을 통해서 쏘아 내는 성광은 제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바로 성광이 사출되는 것을 막을 수 없고, 어느 지점으로 쏘아질지마저도 정할 수 없다.
일단 한 번 성광이 생성되면 그것은 반드시 쏘아져서 폭발을 일으키게 되어 있다.
‘아마도 매개체가 성검이라 그런 것 같은데……. 그 부분이 좀 애매하네.’
징벌은 성광에도 밀리지 않을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능력치 상승의 효과는 말할 것도 없이 체감되었고, 용의 힘을 쓸 수 있다는 구절의 의미도 알 수 있었다.
징벌이 활성화되면 그동안은 마력이 소모되지 않는다.
전체 마력 총량을 넘는 기술을 구사할 수는 없지만, 그 아래 단계에 머무르는 기술을 펼칠 정도는 된다는 것.
심지어 용의 힘을 쓸 수 있는 만큼 신체 또한 상당히 강화되었다.
마력의 질도 이전과는 격이 다르다 해야 할 정도로 올라갔고.
마치 전설 속에 나오는 용의 힘은 이렇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마물 혹은 마족을 대상으로만 쓸 수 있는 능력이라는 거지.’
검감으로 전용 효과를 스킬로 습득한다면 제약도 따라올 것이 확실했다.
그래서 섣불리 어느 전용 효과를 스킬로 습득해야 할지는 결론을 내리기 힘들었다.
성광은 온전히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고, 징벌은 제약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물론 아직 전투에서 한 번 써 본 것이기에 무엇을 습득한다고는 정하지 않았지만…….
‘이번 시련이 끝나기 전에는 확실히 선택해야지.’
머지않아서 찾아올 선택의 시간을 대비하여 빠르게 결론을 내리기는 해야 할 것이다.
‘뭐, 몇 번 전투를 더 치르다 보면 무슨 능력을 습득해야 할지 정도야 깨닫게 되겠지.’
나는 성검에 묻은 피를 바닥에 털어 내며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아무래도 혼자서 날뛰어서 그런지 대부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겠지. 기억을 잃었다는 사람이 마물들을 때려잡고 다닐 수는 없을 테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다.
하지만 현재 동료들의 눈빛에는 이해할 수 없다는 정도의 감정만이 깃들어 있지 않았다.
거부감, 긴장감, 죄책감, 불안감 등등…….
흔들리는 눈동자의 기색에서 여러모로 좋지 않은 기색을 읽어 낼 수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불쾌할 정도의.
하지만 나는 그 분위기에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간단한 페이크였지만…….
이 간단한 페이크에 걸려드는 이들은 이것을 가짜라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닐. 너, 설마, 기억을 잃지 않은 거냐.”
알렌이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떨림을 억제한 채 그렇게 물었다.
“……서, 성검의 가호로 기억이 돌아온 것인가? 그 전투 능력은 용신께서 새로 주신 것이고?”
그리고 동시에 제르파가 태연한 척하려는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 다행이네. 닐. 이, 이제야 마왕을 죽일 수 있겠어. 인류를 위해서 용신님이 도움을 주신 것이겠지.”
이어서 데이지가 활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뒤늦게 분위기를 바꿔 보려는 듯 말을 꺼냈다.
그제야 다른 두 동료도 실책을 깨달았는지 최대한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러움을 연기했다.
하지만.
「다수의 적이 사용자에게 접근했음을 감지했습니다.」
「색적의 안대(B+) 전용 효과 ‘자동 색적’이 활성화됩니다.」
색적의 안대로 본 동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적의를 발산하고 있었다.
“…….”
그 거짓으로 점철된 역겨운 웃음들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제야 좀 퀘스트 내용이 뭔지 윤곽이 잡히네.’
성검에 깃든 능력 중 무엇을 습득해야 할지 더 고민할 수는 없겠다고.
“……재밌네.”
어쩐지 16층 시련의 결말을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