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48
146. 선택 (2)
주변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방금 내가 재밌다고 중얼거린 것 때문인지 알렌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재, 재밌다니? 닐, 방금 그 말은 무슨 뜻이지?”
그것은 알렌만이 아니라 데이지나 제르파도 다를 것 없었다.
“마물들이랑 싸우는 게 재밌다고요. 그 이외의 뜻은 없었습니다.”
부정을 갈구하는 추악한 눈초리를 바라보며 나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본심과는 완전히 반대와도 같은 말이었지만…….
동료들의 불안과 긴장감을 지우는 데는 이걸로도 충분했다.
“그, 그런 거였나? 하, 하기야. 이렇게 일방적인 학살이니 즐거울 만도 하지.”
본래 인간은 믿고 싶은 것만을 믿으니까.
그것도 아니면 원래부터 멸망한 세계의 용사가 이러한 성향을 지닌 탓일 수도 있었다.
마차를 타며 여기까지 오는 동안 원래의 닐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성향을 알아 뒀다.
‘지독할 정도의 전투광이라 했지.’
그러니 이들에게는 이 정도의 대답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나는 짐짓 힘들다는 듯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말했다.
“그런데 오늘은 힘들어서 더 싸우진 못할 것 같네요.”
그에 제르파가 어느새 침착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겠군. 용사라 해도 마력이나 신성력이 무한한 것은 아니니.”
“그러니 오늘은 쉬겠습니다. 일정도 애초에 하루도 쉬지 않고 전진하는 건 아니니 괜찮겠죠.”
“……그러게나. 어차피 마경의 초입이니 바깥으로 나가면 바로 야영을 준비할 수 있겠지.”
“그럼 결정이 됐네요. 바깥으로 갑시다.”
솔직히 말해서 고작 한 번 전투했다고 쉬자는 것은 욕을 먹어도 좋을 소리였다.
초인의 지경에 이른 힘을 가진 이들이 전투에서 지쳤다고 야영을 하겠다니?
낭비의 극치다.
심지어 마경은 적진이니 전투 흔적을 지울 수 없다면 후퇴하는 것도 어리석다.
최소한 흔적을 다 지워 두는 척이라도 해야겠지.
심지어 성검을 쓰며 신성의 흔적이 남았다면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동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처럼 내 말에 동의했다.
“그래, 마경의 초입에서는 쉬어 둬야겠지. 닐의 생각대로 우리도 오늘은 정비하자.”
데이지가 조용히 눈웃음을 지으며 조곤조곤 말하니 다른 동료들도 빠르게 움직였다.
‘다행이야.’
나는 그 광경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지켜보며 생각했다.
‘굳이 이 자리에서 죽이지 않아도 문제는 없을 거 같네.’
아직 정체와 힘도 모르는 마왕이나 그 수하들까지 감안해도.
‘나중에라도 전부 죽일 수 있겠어.’
이들을 응징하는 건 나중에 선택해도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머리가 서늘하게 식는 것을 느끼며 나는 걸음을 옮겼다.
최근에는 느끼지 못했던, 격전의 예감이 흘렀다.
***
밤이 되자마자 나는 천막에서 벗어났다.
“…….”
마력 회로를 통해서 기감을 넓혀 보니 동료들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슬며시 자리에서 빠져나온 나는 야영지의 바깥으로 나서서 이름 모를 산에 들어섰다.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그저 그런 산이었지만, 잠시 수련지로 사용하기엔 적당했다.
“이 정도면 되겠네.”
충분히 야영지에서 멀어졌음을 확인한 나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성검(聖劍).
용신의 사도에게만 내려진다는 전설적인 검이 손에 들렸다.
……뭐, 외관은 그다지 실용적이지 않을 것처럼 생겼지만, 성능은 놀라울 정도다.
성광, 기원, 징벌.
세 가지의 전용 효과로 이루어진 성검은 미친 성능을 자랑했다.
실제로 전투에서 사용해 보니 성검이 얼마나 사기적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검은 이 16층 시련에서만 쓸 수 있는 기간제 아이템이나 다름없다.
늦기 전에 검감을 통해서 성검의 능력 중 하나를 흡수하는 것이 옳았다.
그러니…….
‘상황이 생각처럼 흘러간다면 이것도 곧 무용지물이 될 수 있겠지.’
이제는 제대로 된 선택을 내릴 시간이었다.
성광 그리고 징벌.
몇 시간 동안 고민했지만, 선택은 효율적이지 못했다.
「스킬 ‘검감(劍感)’이 활성화됩니다.」
「도검류의 카테고리 안에 있는 아이템의 전용 효과를 스킬로 습득할 수 있습니다.」
새삼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선택 완료.」
「스킬 ‘성광星光(S-)’을 온전하게 습득합니다.」
「스킬 ‘검감(劍感)’의 남은 사용 횟수 – 1/2」
그도 그럴 것이…….
「선택 완료.」
「스킬 ‘징벌懲罰(S-)’을 온전하게 습득합니다.」
「스킬 ‘검감(劍感)’의 남은 사용 횟수 – 0/2」
둘 중 하나를 고른 게 아니라 나는 둘 다 흡수할 것을 정했으니까.
검감 같은 능력을 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확신도 없는 주제에 성검의 능력 중 둘을 습득했다.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후회는 없었다.
‘검감이 아깝긴 해도, 성검도 아까울 정도로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징벌의 모든 능력치 상승의 효과는 물론이고 용의 힘을 쓸 수 있다는 것은 훌륭한 능력이다.
「스킬 ‘검감(劍感)’의 사용 횟수 소진을 확인했습니다.」
「스킬 ‘검감(劍感)’이 완전히 소멸합니다.」
검감 스킬이 소멸된 것을 보며 나는 아쉬움을 느꼈지만, 머지않아서 그 감정은 사라졌다.
이내 상태창에 새롭게 추가된 스킬들을 보니 즐거움이 느껴진 탓이다.
그때였다.
「용의 신이 하잘것없는 미물이 성검을 가졌음을 보고 눈을 찌푸립니다.」
이전처럼 뜬금없이 신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
갑자기 떠오른 신의 메시지에 굉장히 놀랐지만…….
‘……과하게 반응해서 좋을 건 없어.’
최대한 놀라지 않은 척하며 가만히 있자니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용의 신이 하잘것없는 미물이 지닌 성검이 가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용의 신이 하잘것없는 미물에게서 관심을 거둡니다.」
멋대로 관심을 가지더니 멋대로 관심을 거두었다.
‘뭐지, 이건.’
잠깐 의문도 들었지만, 신적 존재에게는 최대한 눈길을 끌지 않는 게 상책이다.
나는 바로 용의 신이 관심을 거뒀음에 안심하며 상태창을 열어서 습득한 스킬들을 확인했다.
‘……능력에 변동은 없네.’
성광 그리고 징벌의 능력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설명도 다를 것 없었다.
이전에 화룡안으로 성검을 살펴보며 깨달은 것에서 달라진 점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징벌은 사용할 수 없어도 성광 자체는 직접 써 보니 무엇이 달라졌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키이잉!
“오.”
이제는 성광을 검에 국한하지 않고 자유자재로 방출할 수 있었다.
손은 물론이고 반경 10m 이내라면 어디에서든 성광을 방출할 수 있게 된 상태.
다만, 성광 자체는 발동하자마자 폭발하려 드는 탓에 통제하긴 힘든 건 어쩔 수 없었다.
‘이건 좀 아쉽네.’
성광을 활성화하게 된다면 그 이후부터는 세세한 통제가 불가능했다.
마치 한껏 흔들어 놓은 탄산음료의 뚜껑을 열면 내용물이 넘쳐흐르듯이.
심지어 힘의 방향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도 똑같았다.
성검을 매개체로 발동하는 능력이라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오히려 반대였다.
‘성검이 힘의 방향을 통제해 주고 있었던 거였나…….’
진짜로 실전에서 사용하면 성광 자체를 강하게 써야 할 것이고.
그럼 이 분별없는 폭주 탓에 시전자인 나도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을 게 확실했다.
“…….”
잠시 자리에 서서 고민하고 있자니 현재 직면한 문제와는 상관없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혹시 신성력으로 폭발 자체는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게 정말 탄산음료처럼 발동하자마자 폭발하는 것이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럼 성광을 발동하자마자 이것을 보관할 수 있는 껍질도 생성하면 되지 않나?
물론 쉽지야 않겠지만, 적어도 그런 식의 통제에 성공한다면, 폭발 자체는 늦출 수 있다.
어쩌면 힘의 방향도 제어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한 번 시험해 볼 필요성은 있겠네.’
최대한 약하게 성광을 구체 형태로 발동하여 한 번 시험해 보았다.
「스킬 ‘성광星光’이 활성화됩니다.」
키이잉!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번 시도는 성대한 실패로 돌아왔다.
꽈아앙─!
성광에 마력을 통해서 껍질을 생성해서 씌우려 했더니 오히려 더 성대하게 폭발했다.
반발성도 강력해서 시전자인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실패였다.
성광을 구현한 손바닥은 반쯤 날아갔고, 귓가에도 이명이 웅웅 울린다.
「스킬 ‘잿빛 선혈’이 활성화됩니다.」
“…….”
물론 금세 잿빛 선혈이 활성화되며 고통도 줄어들고 상처도 빠르게 아물었다.
다만, 새롭게 맞이한 문제 탓에 짜증이 치밀었다.
마력으로 성광을 통제하려 한다면 반발을 일으킨다는 것.
몇 번 다시 마력으로 성광을 감싸려 해 보았지만, 여전히 결과물은 나아지지 않았다.
몸을 여러 번 혹사하면서까지 여러 시도를 해 보았지만, 마력과 성광은 상성이 좋지 않았다.
‘이거 설마 안 되는 거 아닌가?’
어쩐지 쓸모없는 전용 효과를 습득하는 데 검감을 소모한 게 아닐까도 했지만…….
이어서 몇 번의 시도를 더 해 보니 새로운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바로 성광은 신성력에는 반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력은 안 되는데, 신성력은 된다니…….’
살짝 어이가 없었지만, 같은 계통의 성질을 지녀서 그런 것이리라고 여겼다.
반발이 일어나지 않아서 그런지 이어지는 시도에서 나는 생각처럼 성광에 막을 씌울 수 있었다.
물론 사신의 자질에 의해서 검게 물든 신성력이 껍질을 형성한 터라, 외관 자체는 상당히 불길했으나, 적어도 폭발하지는 않았다.
다만, 문제점이 나타났다.
콰즈즈즉─!
바로 껍질에 갇힌 성광이 미친 듯 날뛰며 점점 빛의 세기가 강해진 것이다.
이내 검은 막으로 감싸여진 성광이 완연한 빛을 발한 순간.
「관리자 ‘멸망한 세계의 용사’가 대체 이게 무엇이냐며 당황합니다.」
「관리자 ‘철혈의 군주’가 통제할 수 없는 힘을 길들인 것에 어이가 없어 합니다.」
「관리자 ‘백학검선(白鶴劍仙)’이 새로운 기술의 습득에 눈을 빛냅니다.」
관리자들의 메시지가 시야에 촤르륵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그것에 신경 쓰지 않고 최대한 정신을 집중해서 천천히 성광의 구체를 다뤘다.
성광에서 느껴지는 일렁임을 보며 나는 눈을 찌푸렸다.
‘이건 터지면 나도 무사하진 못하겠네.’
설마하니 이런 식으로 스킬 자체를 강화할 수 있었을 줄이야.
실제로 내가 이것에 자멸하지는 않겠지만, 여러 가지의 아이템이나 이전에 흡수한 사령들을 사용해야 할 터.
그것을 원하진 않았다.
한껏 흔들어 둔 탄산음료의 뚜껑을 열어젖히듯 오로지 신성력으로 구축된 외각 중 한 곳에만 구멍을 냈다.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을 천공이 있는 방향으로.
그리고.
콰아앙─!
이어서 귓가를 얼얼하게 타격하는 폭음이 일며 암광(暗光)이 하늘을 관통했다.
달을 가리는 구름이 단숨에 꿰뚫리고, 보름달이 뜬 것처럼 밝은 달빛이 내리쬔다.
마치 어둠 그 자체를 몰아낸 것 같은 현상이었다.
***
“…….”
상상 이상이다.
그것 외에는 이 기술을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검게 물든 신성력이 껍질의 역할을 하다 보니 성광 자체도 영향을 받은 것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게 나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찬란한 달빛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제 반격의 방패로 굳이 카운터를 칠 필요는 없겠네.”
오랜만에 상당히 실전적인 기술을 창조한 것 같았다.
아마도 이 원리를 재조합한다면 반격의 방패를 사용해야 쓸 수 있던 광검(光劍)조차도 새롭게 재탄생할 것이다.
예상 같은 게 아니라 확신에 가까운 직감이었다.
「업적 ‘용신의 후계자’를 달성했습니다.」
「특수 권능 ‘용인화(龍人化)’를 습득했습니다.」
「현재 특수 시련의 페널티로 권능 습득이 제한된 상태입니다.」
「시련이 종료될 시 습득 권능이 정상적으로 적용됩니다.」
심지어 방금 선보인 기술이 무슨 조건을 충족시켰는지, 용신의 후계자라는 업적도 달성되었다.
‘용인화?’
업적 보상으로 특수 권능이라는 것도 보상으로 주어진 터라 상당히 만족스러웠지만…….
「용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의 존재를 인식합니다.」
「용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의 업적에 눈을 부릅뜹니다.」
「용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에게 크게 관심을 품습니다.」
어쩐지 귀찮은 존재가 하나 더 늘어난 것 같았다.
「용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에게 사도직을 제안합니다.」
“거절합니다.”
「용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에게 사도직을 제안합니다.」
“거절합…….”
「용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에게 사도직을 제안합니다.」
“…….”
「용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에게 사도직을 제안합니다.」
「용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에게 사도직을 제안합…….」
「용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에게 사도직을 제안…….」
……그것도 아주 귀찮은 존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