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5
014. 경쟁의 시련 (3)
시련이 시작된다는 문구가 떠오른 순간, 또 다른 메시지들이 나타났다.
「팀원이 전부 배정되었습니다.」
「10분 후, 성채의 정문이 개방될 예정입니다.」
「그때까지 화합을 마치고 시련을 수행하십시오.」
우우웅……!
그리고 동시에 작동하지 않고 있던 두 개의 포탈이 기이한 음색을 냈다.
삼인일조라더니…….
확실히, 그 말이 틀린 정보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포탈에서는 본 적도 없는 두 명의 도전자들이 튀어나왔으니까.
“……경쟁이라니, 진짜로 이딴 게 4층 시련이라고?”
전신에 갑주를 두른 거한이 허공을 응시하더니 눈을 찌푸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탑에서 공고한 메시지를 막 본 듯했다.
더불어서 진짜 4층 시련이 경쟁이었던지도 모르는 듯했고.
반면 그 옆에서 나타난 여성 도전자는 그렇게 당황하지 않았다.
“다들 당황하지 말고, 일단은 팀으로 배정됐으니 통성명부터 하는 게 어떨까요?”
오히려 담담하게 주변을 쓱 둘러보더니 통성명을 제안했다.
지나치게 차분했지만 그렇기에 귀찮은 얘기를 나눌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상황 파악이 덜 된 거한보다 먼저 내가 소개를 시작했다.
“도전자 한성윤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말을 끝마치니 여성 도전자가 긴 생머리를 한 손으로 넘기며 말했다.
“이하연이에요. 마찬가지로 잘 부탁드릴게요.”
깔끔하면서도 도도한 분위기의 미녀, 눈길이 끌리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하연을 한 차례 살피고는 이내 눈을 돌렸다.
‘이제 남은 건, 한 명뿐이네.’
마지막으로 남은 거한을 바라보니 마지못해 답하겠다는 듯 그 입이 열렸다.
“……이성훈이다. 방해만 하지 않으면 트러블은 없을 거다.”
방해만 하지 않으면 트러블은 없을 거라니.
처음부터 심상치 않은 소개이기는 했지만, 그걸 신경 쓰기도 전에 곧 화두가 바뀌었다.
“일단, 여기에 시련 정보를 찾아보고 온 사람이 있나?”
대뜸 시련 정보를 찾는 이성훈에게 이하연이 차분하게 답했다.
“네, 제가 질문권으로 정보들을 찾아보고 왔어요.”
“그거 잘 됐군. 시련 진행 방법이나 그 외의 정보들도 알고 있나?”
“……질문권을 꽤 소비했으니, 기본적인 정보는 대부분 알고 있을 거예요.”
“흠, 그래도 뭐, 배정된 팀이 꽝까지는 아닌 거 같군.”
그 말에는 나도 동감이었다.
뭐, 이성훈이라는 도전자는 좀 자의식 과잉처럼 보이기는 해도 나쁘진 않았다.
보통 저렇게 자의식이 과잉된 이들은 그만큼 강하기 마련이니까.
물론 저게 쭉 이어질 팀원이라고 생각하면 골치가 아프겠지만…….
‘4층 시련에서 배치된 팀원이니 별로 그렇지도 않지.’
그저 이 시련에서만 잘 협력해서 4층을 돌파하면 거기서 끝날 인연이다.
그러니 그렇게 자의식 과잉이 크게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시련 진행에 앞서서 빠르게 능력부터 공개하고 움직이도록 하지.”
이성훈은 잡설은 집어치우고 서로의 능력을 공개하자고 주장했다.
원활한 팀플레이에는 팀원의 능력을 아는 것도 중요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요소.
이하연은 그러한 주장에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능력을 오픈했다.
“탐색형 고유 특성을 보유하고 있고, 마법을 쓸 수 있어요. 근접 전투는 주특기에서 멀고요.”
마법사라는 말이 나오니 이성훈의 눈이 번뜩였다.
머리 회전이 빠른 거 같지는 않아도 마법사가 귀한 건 아는 모양.
“오, 마법사라. 무슨 마법을 쓸 수 있지?”
“공격형 마법은 아니고, 팀을 보조하는 데 특화되어 있어요.”
공격형 마법은 쓰지 못하는 보조에 특화된 마법사라…….
그 말에 잠자코 듣고 있던 내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공격형 마법도 아예 못 쓰시는 건 아니겠죠.”
팀을 보조하는 마법사라고는 해도, 공격형 마법을 쓸 수 없는 건 아닐 터였다.
무기를 장착하지 않고 있는 걸 보니 근접 전투를 못 하는 건 사실 같지만…….
그렇다고 공격 수단이 없으면 탑을 올라올 수는 없었을 테니까.
‘개인마다 시련이 달라서 자세히는 알 수 없어도, 보조 마법만으로 올라올 수 있는 시련은 생각하기 어렵지.’
물론 모든 시련이 전투 위주는 아니라거나 마법 이외의 공격 수단이 있다고 잡아떼면 뭐라고 할 수야 없겠다만…….
이하연의 복장을 보니 마법 이외의 전투 수단이 특별하게 있는 거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는 건 공격형 마법을 사용하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는 뜻.
내 말에 이하연도 눈을 살짝 크게 떴다가 이내 담담하게 인정했다.
“……네, 조금이지만 원소계 마법도 쓸 수는 있어요.”
살짝 숨길까도 고민한 듯이 보였으나 이하연은 숨기는 걸 포기했다.
숨겨 봤자 내가 말을 꺼낸 이상, 금방 들통나리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어째서 그 사실을 숨기려고 했는지 이해는 갔다.
‘최악의 경우, 숨겨 둔 수를 써야 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거겠지.’
시련의 실패 조건은 ‘도전자 팀의 전멸’이니 말이다.
즉, 생존자만 있다면 팀원은 죽더라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팀원이 살아 있기만 하면 어떻게 대하든 상관이 없을 수도 있고.
‘악용하려고 하면 여러모로 참 구멍이 많은 조건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러니 만약을 대비해서 공격형 마법은 숨겨 두려고 한 걸지도 모른다.
외부와 완벽하게 단절된 이 시련의 탑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악용할 생각이 없는 나로서는 그 사실을 숨기는 게 비효율적이라 밝힌 것일 뿐이다.
“마법사라고 하더니만, 서포터 역할에 적합하겠군.”
……물론 이성훈은 별로 그런 것에 흥미가 없는 모양이지만.
이어서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이내 짤막하게 능력을 말했다.
“근접 전투에 특화되어 있고, 신체 강화와 관련된 고유 특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들키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정보를 공개했다.
육체를 강화하는 능력이 있는 건 맞으니 거짓말은 하지 않은 셈.
외적으로 보더라도 내게 잘 어울리는 특성이기에 의심은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우연이군, 나도 근접 특화형 헌터다. 고유 특성은 항마력과 관련된 기술이고.”
“항마력이라……. 꽤 좋은 능력을 지니고 계시네요.”
“적어도 어중이떠중이들과는 차원이 다르지.”
이성훈은 그렇게 대꾸하고는 피식 웃었다.
이제야 저 자의식 과잉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 것 같다.
‘항마력 같은 특성이 있으니 저러겠지.’
마법류든 혹은 다른 무엇이든 간에 마력이 들어간 기술에 저항력이 올라가는 특성이라.
근접 전투에 특화된 이들에게는 시너지가 매우 좋은 능력이다.
그러니까 저리 자신감이 넘치는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걸 테고 말이다.
“이렇게 된 김에 바깥에서의 헌터 등급도 공개하지. 그게 더 실력을 알기 쉬울 테니까.”
이성훈은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입을 열었다.
“참고로 나는 바깥에서는 D등급이었다.”
“아, 그러는 것도 좋겠네요. 저는 E급이었어요.”
“보조에 특화된 것치고는 높군. 서포팅 능력이 꽤 괜찮았던 건가?”
“예, 뭐, 그랬죠.”
이하연이 적당히 둘러대는 사이, 이성훈의 눈길이 내게 돌려졌다.
실력이나 알고 가게 빨리 말하라는 듯 대답을 촉구하는 눈빛.
하지만 나는 헌터 등급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7년이나 플레이어 전용 체육관에서 썩었던 고인물 지망생이 나였으니까.
그러니 번듯한 등급이 존재할 리 만무했고, 나는 곧 진실을 밝혔다.
어차피 속여도 곧 들통날 거라면 그냥 순순히 밝히고 가는 게 맞으리라.
“바깥에서는 헌터는 아니었고, 플레이어였습니다. 헌터를 준비했었고요.”
물론 그 준비 기간이 7년이라는 말은 삼켰다.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 헌터 지망생이라고?”
그러나 그럼에도 곧 예상대로 이성훈의 표정이 격하게 일그러졌다.
“예, 그래도 어느 정도 잘 싸울 자신은 있습니다.”
1층부터 4층까지 올라오며 미친 듯 싸웠으니 어느 정도는 그랬다.
하지만 이성훈은 내 말을 믿는 척조차 하지 않았다.
“잘 싸우기는 무슨, 발목이나 붙잡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아예 대놓고 꽝이 걸렸다는 듯 험하게 말을 내뱉으며 싸늘한 눈초리를 보내왔다.
익숙한 눈빛이다.
“…….”
시련의 탑에 들어오기 전에도 수없이 겪었던 반응.
재능이 없고, 헌터도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온갖 멸시를 보내던 이들이 딱 저랬다.
“딱 보니 수준을 알 거 같군. 뭐, 그래도 육체 강화면 방패 역은 되겠지.”
그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겠다는 듯한 말투였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묵묵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 묵언이 곧 수긍이라고 여겼던 건지 우쭐거리며 말을 이었다.
“앞장서서 이하연 헌터만 지키고, 내 지시에만 따르면 위로 올려 보내 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
거기까지 말이 나오니 이하연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음, 그래도 여기까지 올라오셨으니 실력은 비슷하실 거예요.”
내가 분노해서 뭐라고 할까 싶어서 여차할 때 중재하려는 거 같았다.
하지만 정작 나는 이성훈의 말에 뭐라고 할 생각이 없었다.
시련의 탑은 실력이 전부인 곳이니까.
만약 이성훈이 내게 그럴 말을 할 자격이 있다면 나는 감수해야 할 것이다.
멸시받는 건 목숨을 빚지는 것 치고는 값싼 대가니 말이다.
실력이 확실하다면 무시하고 그냥 적당하게 협조하는 게 낫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도 그저 가만히 이러한 대우를 받을 생각은 없었다.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참을 필요가 없으니까.
그리고.
‘그 참을 가치가 있는가 아닌가는 알기 싫어도 곧 알게 되겠지.’
「3분 후, 성채의 정문이 개방될 예정입니다.」
곧 본격적으로 시련이 시작될 테니 말이다.
또한.
“이제 질문권으로 얻었다는 정보나 들어보도록 하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받은 대로 돌려 주려면 당장 항의하는 건 무의미했다.
적어도 이성훈이 도움이 되지 않거나 방해가 될 거 같을 때, 빠져나갈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다.
헌터라고 해도 모든 스킬과 능력치가 초기화된 상태에서 성장했다면…….
‘그렇게까지 심하게 차이가 날 리도 없을 테니까.’
고유 특성이나 얻게 된 보상 등이 좀 다르기야 하겠다만.
그러한 것들을 고려해도 서로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거라는 게 내 추측이었다.
하물며 내 고유 특성이 성장에 한해서는 사기적이란 걸 알게 된 지금은 더더욱 그랬다.
그렇기에 나는 이성훈에게 항의하지 않은 채 이하연의 얘기를 경청했다.
“지금부터 성채가 개방된 후에 벌어질 일들을 말씀드릴게요.”
성채가 개방된 뒤 벌어질 일이라고 해서 특별한 건 없었다.
여태까지 그랬듯 괴수들과 격전을 벌이게 될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격전지를 헤쳐 나가서 누구보다 빠르게 고블린 킹을 죽이는 게 목표라고 했다.
“총 이 성채 도시에는 다섯 마리의 보스가 있고 15명만 통과할 수 있는 구조에요.”
즉, 30명 중 절반만이 통과해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한 마리의 보스를 두 개의 팀이 노리니 저희의 경쟁자는 다른 한 팀일 거예요.”
그나마 경쟁자가 적으니 나름 괜찮을 수도 있겠지만…….
‘여섯 명이 한 마리의 보스를 노린다, 라.’
악랄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시련 내용이었다.
두 개의 팀 중 하나밖에 살아남지 못한다는 건 살인이나 다름없다.
아니, 직접 살인을 하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살아남으려면 보스를 잡기 전에 빠르게 경쟁자를 제거해야 할 테니까.
하지만 이성훈은 그게 마음에 든다는 듯 히죽 웃었다.
“간단해서 좋군. 그냥 경쟁자들보다 빠르게 보스만 잡으면 되는 거니까.”
“최대한 남은 시간 안에 탐색을 완료하고 보스를 공략해야 할 거예요.”
“그러고 보니 탐색계 특성도 가지고 있다고 했었던가?”
“예, 제가 안내할 테니 두 분은 저를 보호해 주시면 돼요.”
“들었나, 헌터 지망생? 앞장서서 잘 지키기만 해라.”
시비를 걸듯 말하는 이성훈을 바라보며 나는 고개만 까딱였다.
딱 봐도 사람을 무시하는 게 드러나는 데 좋게 대한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더 말하지 않는 게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이었지만 이성훈은 더 트집을 잡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그럴 수가 없었다.
「시간 종료.」
「성채의 정문이 개방되며 괴수들이 몰려듭니다.」
「최대한 빠르게 시련 목표를 찾아내서 죽이십시오.」
연이어서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가 이제 행동을 개시할 걸 명했기 때문이다.
“앞장서라.”
이성훈도 더는 비꼬지 않고 등에서 커다란 대검을 꺼내 들었다.
전투 상황이 닥치니 더 뭐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리라.
이번에도 고개만 끄덕인 나는 이하연의 앞에 서서 짧게 말했다.
“갈 길만 알려 주시면 됩니다.”
“아, 네. 잘 부탁드릴게요.”
이하연이 등 뒤에 슬쩍 붙어서 따라오고 이성훈이 최후방에 서며 진형이 갖춰졌다.
그리고 그렇게 개방된 성문을 나서는 순간, 괴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키에에에엑!
고작 성채에서 한 발자국 벗어났을 뿐인데 벌써 이런 꼴이라니.
현실을 부정하고 싶기도 했지만 그런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성채 도시의 건물들 사이에서 괴수들이 나오며 군집한다.
완전무장한 고블린이 떼를 지어서 다가오는 걸 보니 절로 등골이 오싹해진다.
그래, 시련의 탑이 쉽게 길을 지날 수 있게 해 줄 리가.
그제야 나는 잊고 있던 사실을 상기해 낼 수 있었다.
“……길 안내는 나중에 하고, 싸울 준비부터 해 주시죠.”
내가 골랐던 난이도는 쉬움 같은 곳이 아니라…….
세 가지의 난이도 중 최악에 해당하는 단계, 어려움 난이도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