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51
149. 17층 (1)
16층 시련이 끝나며 생성된 포탈로 몸을 옮긴 순간.
「퀘스트 클리어로 인하여 대기실로의 이동이 잠시 미뤄집니다.」
「관리자 ‘멸망한 세계의 용사’가 시련 보상의 지급을 결정합니다.」
「용사의 전당에 입장합니다.」
최초로 눈에 들어온 것은 석상이었다.
흡사 서양의 신화에서나 볼 것 같은 드래곤의 형체를 뜬 석상이 중앙에 세워져 있었다.
그것을 중심으로 전당을 지탱하는 기둥들을 보며 신전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신전이 맞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이,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야.”
실제로 이 영역의 관리자는 용신을 모시는 사도이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려서 목소리의 주인을 보니 훤칠한 금발 미남을 볼 수 있었다.
닐.
그가 바로 16층 시련의 본래 역사에서 용사로 활동한 자이며…….
동시에 탑을 40층 너머까지 등반하여 관리자로 소생한 이전의 도전자였다.
“계약한 관리자가 둘이라 관리자 영역은 익숙할 것 같은데, 더 살펴보고 느낄 궁금증 같은 건 없지 않나?”
그는 허리춤에 있는 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리며 웃음기를 머금은 채 말했다.
그것을 보며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당신이 멸망한 세계의 용사인 겁니까.”
“그래, 뭐, 여태까지 여러 번 소통했잖아?”
“소통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메시지 보내기 같은 느낌이잖습니까.”
“그게 그거지, 뭐. 쓸데없는 걸 따지네. 너, 되게 재미없다.”
“…….”
생각보다 더 가벼운 용사의 성격에 침묵하는 것도 잠시였다.
“본론부터 말하겠습니다. 퀘스트의 보상을 제가 지닌 두 가지의 검에 부여해 주십시오.”
최대한 간결하게 보상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 닐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이내 씩 웃었다.
“역시 여태까지 본 것처럼 한결같이 자기가 바라는 것에 솔직하구나.”
“…….”
“알았어, 알았어. 그렇게 노려보지 않아도 곧 해 줄 거야. 잠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이러는 것뿐이니 걱정하지 마.”
“물어볼 게 있다니?”
용신의 사도로서 하는 질문인지 이번 시련을 통해서 느낀 개인적인 의문인지 알기가 어려웠다.
대체 무엇을 물어보고자 하는지 알 수 없어서 머리를 굴리고 있자니 용사가 웃었다.
“용신님이랑 관련된 질문은 아니야. 개인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것일 뿐이지.”
“……그렇습니까. 그럼 얼마든지 물어보셔도 됩니다. 물론 질문에 대답하는 건 별개의 이야기겠지만요.”
“웬만하면 대답해 주면 좋겠는데……. 뭐, 됐나. 내 질문에 답해 주면 나도 네가 하는 질문에 대답해 주지. 어때? 이렇게 하면 수지가 맞지 않나?”
“좋습니다.”
손해를 볼 것은 없었다.
적어도 이 자리에서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나다.
그리고 이 문답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거짓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화룡안을 통해서 얼마든지 상대의 거짓을 간파할 수 있을 테니까.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조금 알 것 같은데……. 뭐, 현명한 생각일 것 같긴 하네.”
닐은 그것을 알아챘는지 가볍게 웃으며 이내 물음을 내게 건넸다.
“너의 목적을 알고 싶어. 대체 무엇이 목적이길래 그렇게까지 힘에 집착하는지.”
순간, 그 말을 들은 나는 심장이 턱 막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탑을 오르고, 그렇게까지 성장과 보상에 집착해서, 대체 무엇을 이루고 싶은 거지?”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그저 막연하게 그 누구에게도 억압받지 않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이지.
나를 억압하는 자가 설령 신일지라도.
하지만 그것이 목적이냐고 묻는다면, 단언컨대 그렇진 않았다.
그에 나는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저는…….”
“신이 되고 싶은 건가?”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라, 그저, 억압받고 싶지 않아서 강해지려 합니다.”
“억압받지 않으려 한다, 라. 이건 좀 재밌네. 그래, 너는 무엇에서 억압을 받고 있지?”
신 그리고 같이 탑을 오르는 도전자에게 억압받고 있다고 말하려 했지만…….
생각해 보니 어쩐지 그것보다 조금 더 근본적인 대답이 있을 것만 같다고 느껴졌다.
닐은 조용히 웃음기를 거두고 입을 열었다.
“도달점이 존재하지 않는 끝없는 길을 나아가는구나.”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그래, 시작은 누군가에게 멸시받거나 억압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겠지.”
“…….”
“하지만 끝은 어디에 있는 거지? 모든 것을 초월해서 어디에 다다르고 싶은 거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억압받고 싶지 않다는 건 맞습니다.”
“그 감정은 동기일 뿐이야. 그것이 도달점을 정해 주는 것은 아니지. 너는 순수한 욕망의 덩어리랑 다를 게 없어.”
돌연 닐이 소리를 내며 다시 웃음을 내더니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말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도달점이 없으니 여기까지 온 거겠지. 도달점이 끊이지 않고 늘어나니 강해진 것이고, 끝이 존재했다면 어느 순간 강해지는 것을 멈췄겠지.”
닐은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몇몇 신들이 너를 흥미로워하는지 알 것 같네.”
마치 오랫동안 품어 온 의문에 대해서 해답을 얻었다는 것처럼.
그걸 끝으로 닐은 고갯짓으로 내게 질문을 하라는 식으로 굴었다.
“자, 이제 네 차례야. 묻고 싶은 걸 물어보라고.”
그에 나는 한 차례 고민을 거친 후, 질문했다.
“……대체 왜 제게 퀘스트를 요청한 겁니까?”
“……의외네. 탑에 관해서 물어볼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면 신에 대해서나.”
“이전에 한 번 탑이 정보 누설에 관해서 제재를 가한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아, 그래서 제재될지도 모르니 차라리 다른 것을 물어보겠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물론 탑이 제재를 가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현재 층수에 걸맞지 않은 질문일 시에는 가차 없이 제재가 들어올 것이다.
여태까지 그랬듯이.
실제로 닐 또한 잠시 생각하듯 턱을 쓰다듬더니 내 의견에 동의했다.
“……그렇게 될 가능성을 부정할 순 없겠네.”
「스킬 ‘화룡안’이 상대의 말에 거짓이 없음을 간파합니다.」
다행히도 화룡안은 관리자를 상대로도 거짓을 간파했고, 우려했듯 탑이 제재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음을 깨달았다.
“뭐, 그래, 궁금해하는 걸 알려주지.”
닐은 쓴웃음을 지으며 요점만을 딱 짚어서 대답했다.
“너는 어째서 관리자가 대가를 지불하면서까지 퀘스트를 의뢰하는지 궁금하다는 거지? 간단해. 정말이지, 어이가 없을 정도로.”
하지만 이어진 말에 나는 눈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지나친 과거에 대해서 후회하는 것이지. 가능성 자체를 보고 싶은 거야. 그것만으로도 구원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고작 그런 이유로……?”
“고작 그런 이유라고 볼 수 있겠지만, 관리자에게는 그게 유일하게 남은 삶의 낙이야.”
“어째서입니까. 차라리 그럴 바에는 계약한 도전자에게 좀 더 신경을 쓰는 게 나을 텐데요.”
백학검선은 실제로 나를 통해서 바꾸고 싶은 과거를 개변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굳이 권능까지 후원하고, 여러 대가까지 치르며 도전자에게 퀘스트를 보내다니?
솔직히 말해서 효율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하지만 닐은 그 생각을 바로 부정했다.
“……모든 도전자가 너처럼 괴물같이 탑을 오르는 것에 집착한다고 생각하지는 마.”
그는 바로 그 생각이 어째서 잘못되었는지 알려주었다.
“도전자는 대부분 너처럼 능력이 좋지도 않고, 탑을 오를 의지도 그다지 강하지 않아.”
그것도 아주 상세하게.
“아니, 탑을 오를 의지가 있어도 달라질 것 없지. 아무리 탑을 오른들 끝에 도달할 가능성을 관리자는 대부분 보지 못하거든.”
한마디로 말해서 비원을 이뤄 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니,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훌륭한 도전자를 찾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지만, 쉽사리 능력 좋고 의지 있는 도전자를 계약자로 삼을 순 없다고 말했다.
“그러니 도전자와의 계약을 통해서 과거를 개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관리자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
“탑은 신격보다도 강대한 존재지만, 누구에게나 자애롭지는 않지. 관리자들은 그것을 몸소 겪은 이들이라 더 그렇지.”
“그래서 과거를 고치는 것을 탑에 바라는 것보다는, 아예 이렇게 퀘스트로 보지 못한 가능성을 보며 살아간다는 겁니까?”
“……그래, 부정하고 싶지만, 그게 정답이야.”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어째서 관리자라는 이들이 퀘스트의 존재에 집착하는지를.
대부분 수준이 낮은 도전자를 계약자로 삼은 관리자는 비원을 이룰 수 없다는 실의에 빠진다.
그러니 가능성을 보여 줄 수 있는 퀘스트라는 기능에 집착하며, 대가를 치르더라도 생전 기록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려는 것이다.
그것을 알아챈 나는 이내 탑의 의도를 깨달았다.
‘……관리자를 억지로 퀘스트라는 미끼로 끌어내서, 실력 있는 도전자를 성장시키려는 건가?’
솔직히 말해서 어째서 이렇게까지 탑이 도전자를 성장시키려 하는지 의문이었지만…….
그에 대해서 알고 있으면 이렇게 끙끙거리고 있을 리 없으니, 이내 상념에서 지워 버렸다.
짝짝─!
이어서 닐이 이제 잡담은 끝이라는 듯 분위기를 환기했다.
“자, 이제 문답도 끝났으니 정산이나 하자고.”
「특수 권능 ‘용신기정(龍神器定)’이 도전자 한성윤을 사용자로 지정합니다.」
「절대 파괴 불가 성질을 부여할 아이템을 선택하십시오.」
그에 나는 재빠르게 두 가지의 아이템을 인벤토리에서 꺼내서 선택했다.
「선택 완료.」
이전부터 어느 아이템에 절대 파괴 불가 성질을 부여할지는 정해 둔 상태였다.
「진(眞) 혈천마검(A)에 의 성질이 각인됩니다.」
「파천검(A+)에 의 성질이 각인됩니다.」
우우웅!
두 손에 들린 쌍검(雙劍)은 서로 각인의 여운을 즐기듯 부르르 칼날을 떨어 댔다.
그리고.
「진(眞) 혈천마검(A)의 아이템에 깃든 소울 에고의 의식이 서서히 회복됩니다.」
「진(眞) 혈천마검(A)의 아이템에 깃든 소울 에고’의 의식이 회복될 시, 활동 시간 제약이 사라집니다.」
생각 외의 이득까지 보며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제 곧 담천우의 의식이 돌아오면 여러 가지로 물어볼 것이 있었다.
40층 너머까지 등반한 도전자로서의 지식은 물론이고 그 이외에도 정보들이 있다면 전부 알아낼 심산이었다.
나를 어디까지 보조해 줄 수 있고, 무림 차원은 어떤 구조이며, 어째서 관리자가 되지 않았느냐는 것 등등…….
정말이지, 물어볼 것 천지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제부터 탑을 오르는 게 조금은 수월해지겠네.’
그에 내가 흡족함을 느끼고 있자니, 어느새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대기실로 이동하십시오.」
이제 진짜로 돌아갈 시간이 온 것이다.
“시련은 재밌게 봤고, 정산도 치렀으니, 이제 헤어질 시간이네.”
“그렇네요.”
“원래는 다른 관리자는 죽어도 이런 미친 보상은 안 주는데, 내가 인심 써서 해 준 거니 감사하는 게 좋…….”
“어차피 서로 원하는 것은 이뤘는데 감사는 무슨 감사입니까.”
“……하여간, 귀여운 구석이 없어요, 귀여운 구석이.”
“할 말 없으면 가 보겠습니다. 잘 지내십시오.”
이내 허리춤에 쌍검을 납검한 후, 조용히 포탈로 이동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건 진짜로 덤으로 알려주는 건데.”
갑자기 뒤에서 닐의 웃음기 없는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너를 억압하는 모든 것을 넘어서고 싶다면, 절대로 탑을 의심하지 마.”
어딘지 모르게 떨리는 그 목소리에는, 조언하는 것 같은 기색이 실려 있었다.
“우리는 전부 목적을 이루는 것에 실패했지만, 너는 다를 거야. 한성윤. 왜냐하면…….”
이해할 수 없는 소리였지만…….
“너는 탑이 주시하는 매력적인 후보 중 하나니까.”
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고 직접 물어볼 수는 없었다.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닐의 신형은 사라져서 흔적도 남지 않았으니까.
“…….”
아무도 없는 용사의 전당을 바라보며 나는 주먹을 쥐었다.
대체 무엇을 알려주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어도, 한 가지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절대로 탑을 오르지 않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것.
“……그러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그에 나는 아무도 없는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조언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럼 이제 진짜 가 보겠습니다.”
용사의 호의에 감사를 전하며 다시 걸음을 이어 나갔다.
목적지 없이,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런 걸음으로.
「17층 대기실에 입장합니다.」
이제 다시 탑을 오를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