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53
151. 17층 (3)
―혈마신공(血魔神功)을 배워 보지 않겠느냐?
요사스럽게 붉은 기운을 흩뿌리는 혈천마검에는 마성(魔性)이 존재했다.
왜인지 모르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성질이라 해야 하나?
솔직히 말해서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이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싫습니다.”
―……어째서 거부하는 것이냐. 혈마신공을 배우면 너는 더 강해질 수 있다. 이 정도 올라왔으면 무림 차원의 기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고 있을 터다.
“……잘 알고 있습니다. 군소 차원에 비해서 다른 차원의 기술이 뛰어나다는 것은.”
―그런데 어째서 거부하지?
“하지만 저는 무공을 제대로 익히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이는 그저 오기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적법한 근거가 있는 것이다.
“심법을 익히면 체내 마력이 내공이라는 특질을 지닌 기운으로 변환된다고 들었습니다.”
―아니, 그런 것은 또 누구에게……. 아니, 아니지. 오히려 너는 따로 배운 심법 같은 것은 없잖느냐. 그럼 괜찮…….
“관리자에게 무공을 배운 적이 있어서 아는데, 심법으로 특정 내공을 형성하면 특정 무공을 펼치는 것 외에는 제약이 생기잖습니까.”
―……그렇다. 다만, 너는 지금 착각하고 있다. 혈마신공은 어중이떠중이 같은 것들의 기술이 아니라 여태껏 배운 무공을 포기해도 괜찮─.
“이것보다도 더 좋은 무공입니까?”
나는 파천검을 허리춤에서 뽑아서 창천검형의 초식 중 하나를 재현했다.
이전에 남궁혁과의 마지막 결전에서 배워 둔 검식(劍式)이었다.
휘이익!
잠시 검이 허공을 노닐고 난 후, 담천우에게서 경악성이 흘러나왔다.
―창천검형!? 대체 어찌 남궁세가의 절학을 익힌 것이냐! 이런 말도 안 되는……!
“어쩌다 보니 배우게 됐습니다. 뭐, 정식으로 사사받은 건 아니지만.”
―대체 그게 무슨……. 젠장. 무공에 대해서도 재능이 이리 뛰어날 줄은 몰랐거늘.
“혈마신공이라는 것도 심법을 빼고 알려주시면 배우겠습니다.”
―…….
“제게 그것을 알려주시겠다면 검법의 시연 정도만 해 주시면 됩니다. 구결은 어차피 이해할 자신 같은 것도 없으니 필요하지 않고요.”
―……지금 보니 무림 출신이 아니라 다행이군. 무림 출신이었다면 네놈은 진작에 살해당했어도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
그에 나는 침묵했고, 담천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쯧쯧 혀를 찼다.
―……그럼 심법을 알맞게 개량해 준다면, 본좌의 제자로서 혈마신공을 배우겠느냐?
“그것도 좀 힘들 것 같습니다만…….”
―아니, 대체 이번에는 왜 또 거부하는 것이냐!
“제자라는 건 한 분만 둘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게 무슨…….
“저는 이미 스승이 존재합니다. 관리자랑 사제지간의 연을 맺었습니다.”
―하아, 진짜, 웬 잡것들에게 가르침의 기회를 다 뺏기는구나…….
혈천마검에서 요사스럽게 흩날리던 붉은 기운이 식으며 칼날이 떨렸다.
―오랜만에 제자를 거두나 했더니……. 어처구니가 없구나. 그럼 나도 무공을 알려 줄 수 없다. 혈마신공은 심법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니라.
마치 실망했다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40층 너머까지 올라간 도전자가 익혀 둔 무공은 나도 좀 탐이 날 수밖에 없었다.
혈마신공의 심법을 익히지 않으면 쓸 수 없다는 무공이니, 탐내지 않아야 하는가 싶었지만…….
생각해 보니 담천우는 혈마신교라는 단체에서 무공을 배운 자이다.
‘혈마신교 출신은 하나 더 알고 있지.’
이전에 내게 혈천심공을 후원해 준 ‘혈마신교의 패배한 후계자’도 혈마신교 출신이다.
“하지만 혈마신공은 익힐 수 없어도 혈천심공이라는 심법은 배웠습니다.”
그러니 어쩌면 혈천심공으로 혈마신공의 무공을 배울 수 있지 않나 생각했는데.
―……그게 대체 무슨? 보, 본교의 후계자들만이 익힐 수 있는 것을 어찌……?
“이것도 어쩌다 보니 잘 배우게 되었습니다.”
―……허어. 진짜로 어이가 없군. 대체 무슨 수로 그것을 익힌 것인지 모르겠다만.
“그래서 된다는 것인지, 안 된다는 것인지, 답이나 알려주십시오.”
정말이지, 운이 좋다는 건 이런 상황을 두고 말하는 것일까?
―……가능할 것이다.
아무래도 추측이 맞아떨어진 모양새였다.
***
결과를 말하자면, 혈마신공이라는 것은 제대로 된 무공이 아니었다.
‘무공보다는 마법 혹은 술법 같은 것에 가깝지.’
몇몇 자질구레하기 짝이 없는 능력들을 제외하고 주된 능력을 살피자면 요점은 이러했다.
촤아아……!
혈마신공은 마력을 혈액으로 치환할 수 있는 어이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게 전부인 것은 아니고, 마력으로 생성한 혈액은 신체를 강화해 주고.
선혈의 구도자처럼 몸에 깃든 피로를 완전히 사라지게 해 주는 능력이 있었다.
물론 그것을 과도하게 운용하면, 정신적인 오염으로 이어진다는 페널티도 있었지만…….
「권능 ‘명경지수’가 강하게 활성화됩니다.」
물론 명경지수가 있는지라 정신적인 페널티는 아예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게 무공은 맞는 겁니까?”
아니, 무공인지는 둘째 치고, 절학이니 어쩌니 떠들었던 것치고는 쓸모가 없었다.
물론 선혈의 구도자나 잿빛 선혈 같은 스킬이 내게 없었다면 신공절학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둘 다 미친 효율을 보여 주는 주력으로 사용하는 스킬이니까.
하지만 나는 선혈의 구도자는 물론이고 잿빛 선혈까지 습득한 상태였다.
‘설마 혈마신공의 골자에 가까운 능력들을 전부 내가 가지고 있을 줄이야.’
혈마신공이 내게 줄 수 있는 메리트란 메리트는 전부 이미 가지고 있는데 끌림을 느낄 수 있을 리 없었다.
―혈천심공 자체가 선술(仙術)에 기반을 둔 무공이니, 무공 같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지.
“……그것만이 아니라 혈액 치환 빼고는 쓸 만한 능력이 아예 없는데요.”
―이, 이놈이! 그것 말고도 경신술이나 검법도 뛰어난 것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서 그것들이 제가 보여드린 검법보다도 뛰어나기는 합니까?”
―아주 한마디도 안 지려고 이를 악물고 말하는 꼴이……!
“그래서 제가 쓰는 검법보다 좋다는 겁니까?”
―이, 이 자식이 비겁하게 말하기는!
“비겁한 게 아니라 진실입니다.”
물론 진짜 무공으로서는 가치가 없다지만, 혈액 치환 자체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용인화로 마력량을 두 배로 늘리고, 징벌로 마력 소모 자체를 없애고, 혈마신공의 혈액 치환까지 사용하면 조합이 꽤 좋지 않나?’
어쩌면 선혈의 구도자나 잿빛 선혈의 스킬을 무궁무진하게 쓸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다만, 징벌 자체는 마족 및 마물을 상대로만 사용할 수 있으니 무조건 쓸 수 있는 콤보는 아니겠지만…….
충분히 좋은 능력이다.
“뭐, 무공으로서는 그다지 쓸모가 있지는 않았지만…….”
―그만 좀 해라, 이 악마 같은 놈아! 어디까지 혈마신공을 모함할 심산이냐!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모함이랄 게 있습니까?”
―…….
“현실을 받아들이세요.”
―이, 이 자식이……!
잠시간의 실랑이 끝에 담천우는 기진맥진했다는 듯 축 늘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하아. 본좌의 무공은 네게 도움이 되지 않는구나. 좋다. 그럼 무공 대신에 본좌가 알려줄 수 있는 정보를 알려주겠다.
이어서 담천우는 내게 여러 가지의 정보들을 말해 줬다.
무림 차원에 대해서 여태까지 들어본 적 없는 세세한 정보는 물론이고, 아레스나 칼리안 같은 차원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들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하나였다.
‘……지구 차원 도전자들이 이제부터는 이런 괴물들이랑 같이 탑을 올라가야 한다고?’
이전에 철혈의 도전자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20층 이후에는 다른 차원의 도전자들과도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다만, 담천우에게 다른 차원에 대해서 듣고 나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구 차원 출신의 도전자는 제대로 탑을 오를 수 없을 것이다.
원래 헌터 출신인 자들도 그렇고, 새롭게 강자로 거듭난 도전자도 마찬가지다.
나처럼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성장한 것이 아니라면 이제부터는 적들을 감당할 수 없다.
하지만…….
―당장 네놈부터 위태로운데 동향이라 한들 다른 도전자가 무슨 상관이겠느냐.
담천우는 그런 고민 같은 건 할 가치도 없다는 듯 말했다.
―도전자는 본래 층수에 걸맞은 실력이 있어야 하는 법이지. 그것이 없다면 객기를 부린 대가로 죽을 뿐이다. 그것이 탑이다.
어차피 이제부터 탑을 오르는 이들은 억지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 선택일 뿐이라고.
그리고 선택하여 탑을 오른다면 객기를 부린 대가 또한 자신이 감내하는 것이라고.
그 부분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했다.
“…….”
결국, 나도 남을 걱정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좋은 팔자는 아니다.
그 사실을 상기하자 책임감 같은 감정이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 어쩔 것이냐. 보상 같은 것도 더 없는 듯한데, 잠시 휴식할 것이냐? 그것도 아니면 관리자랑 이야기라도 할 것이냐?
“둘 중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 어찌할 생각이지?
“탑을 오를 겁니다.”
―……지금 바로?
“예.”
담천우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지만, 나는 그의 말을 반쯤 흘려들으며 시련 명령어를 활성화했다.
「17층 시련에 응하시겠습니까?」
“저는 고작 이 정도에서 멈춰 있을 수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강해져야 하니까요.”
강해질 것을 결심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대적할 자가 없을 정도로 강해지겠다고.
그것이 신일지라도 억압받지 않겠다고.
그래서 퀘스트는 잠시 받지 않기로 정했다.
어쩌면 용사가 준 퀘스트인 처럼 추가적인 보상을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 있는 탓이다.
굳이 지금은 리스크를 지고서 퀘스트를 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은 내 성장에 주력해야 해.’
그러니…….
「시련의 탑 17층에 입성합니다.」
이제부터는 다시 탑을 오를 시간이다.
***
「시련의 탑 17층에 입성합니다.」
「난이도 – 어려움」
「해당 시련의 주제는 ‘몰살’입니다.」
「도전자가 선택한 고행 끝에 만족스러운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시련의 스테이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감각은 물론이고 기감까지 마비된 터인지라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까다롭군. 설마 이런 곳이 걸리게 될 줄은 몰랐는데.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언제 어디에서 공격당할지 모르니.
옳은 조언이다.
이 상황에서는 어디에서 적이 나타날지 알 수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감각 혹은 기감에 뒤지지 않는 능력이 있었다.
「스킬 ‘화룡안’이 활성화됩니다.」
바로 화룡안의 스킬이었다.
마치 카메라의 시점에서 세상을 보는 것처럼 즉각적으로 주변 정보가 머릿속에 새겨졌다.
그리고.
‘스테이지는 제법 큰 동굴이고, 사람은 여섯 명 정도 있네.’
「17층 시련을 시작합니다.」
「남은 시간 – 7일」
「시련 돌파 조건 – 남은 시간 안에 모든 적을 해치우고 천무고(天武庫)의 끝에 도달할 것」
「시련 실패 조건 – 도전자의 죽음 혹은 남은 시간의 종료」
「시련 돌파 보상 – 대환단(S+)」
「시련 실패 페널티 – 사망」
우우웅─!
시련 시작 메시지가 떠오르는 동시에 동굴 중앙에 찬란한 빛무리가 생성됐다.
그러자 화룡안으로 미리 알아 둔 이들이 신형을 드러냈다.
동시에…….
「스킬 ‘화룡안’이 활성화됩니다.」
즉각 불이 켜지자마자 검은 도포를 입은 남자가 소리도 없이 후방에서 검을 휘둘렀다.
복장을 보니 무림 차원을 배경으로 한 스테이지인지, 전형적인 도인(道人)처럼 생겼다.
‘어이가 없네.’
그런데 도인처럼 생긴 사람이 다짜고짜 뒤통수에서 검격을 날리다니…….
정신병자 같은 무림계 도전자처럼 이 스테이지도 정상은 아닐 것 같았다.
심지어 도인처럼 생긴 주제에 기감에 걸리지도 않을 정도로 기척을 배제한 검격을 쓸 줄이야.
‘정말로 무림 차원은 볼 때마다 얼마나 험악한 세상일지 궁금해지네.’
물론 여러 번 무림인을 상대한 내게는 사각에서의 공격 같은 것은 무의미했다.
나는 바로 화룡안으로 검의 윤곽을 인지하며 허리를 낮춰서 검격을 피했다.
슷.
도달점을 잃은 도인 같은 남자의 칼날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지나치고.
“……어, 어디에!?”
순간적으로 도인의 시야에서 벗어나니, 그는 상당히 당황했다.
그것이 그의 최후였다.
촤아악!
「무당마검 이종학을 살해했습니다.」
「강한 적을 선별하여 죽였습니다.」
「일시적으로 17층 스테이지 내에서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모든 적을 섬멸하십시오.」
알 수 없는 메시지가 떠올랐지만, 신경을 쓸 틈은 없었다.
「무림인 ‘이종학’의 사령을 흡수했습니다.」
「숙련도가 0.04% 상승했습니다.」
바로 이종학의 사령을 흡수하고 그 시체에 혈천마검을 꽂아서 혈식을 활성화했다.
「진(眞) 혈천마검(A)의 전용 효과 ‘혈식(血食)’이 활성화됩니다.」
「무림인 ‘이종학’의 피를 흡수하여 아이템의 등급이 A급(3,241/4,800)으로 성장합니다.」
쉽게 죽은 것치고는 꽤 짭짤하게 보상을 주었지만, 그것을 만끽하고 있을 순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이종학 장로가! 어찌 이런 일이……! 놈! 용서하지 않겠다!”
“나무아미타불……! 설마 이 중에 마도인(魔道人)이 섞여 있었을 줄이야!”
“하하핫! 설마 저 늙은 놈을 죽일 수 있는 괴물이 있었다니! 재밌구나, 재밌어!”
어느새 다른 사람들이 나를 가리키며 전투를 벌일 듯 굴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산파, 소림사, 무당파, 천마신교, 흑사회라니. 혼돈 같은 조합이군. 아마도 지금 네가 죽인 것은 정파에서 나온 무당파 같은─.
“길게 말할 것 없고.”
담천우의 말이 끝나기 이전에 나는 혈천마검을 한 차례 털며 말했다.
“싸울 생각이 있다면 빠르게 덤비는 게 좋을 겁니다.”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어차피 전부 죽는 건 똑같을 테니까.”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미친놈, 미친놈, 미친놈……! 이, 이럴 줄 알았다……!
오늘 이 자리에서 살아남는 건 오직 나 하나뿐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