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54
152. 17층 (4)
치이이─!
「권능 ‘혈천심공’이 강하게 활성화됩니다.」
담천우는 말했다.
혈천심공은 생사결(生死決)에서는 사용자를 극단적으로 미치게 한다고.
혈천심공이 눈에 씌우는 붉은 필터는 야성(野性)을 한계까지 끌어올리며 생기는 현상이라고.
신체 강화, 재생 능력, 감각 확장, 오성 상승 등등…….
여러 가지 효과들이 있다지만, 그는 그중에서도 이것을 제일로 꼽았다.
바로…….
「스킬 ‘선혈의 구도자’가 활성화됩니다.」
마력을 소모하여 얼마든지 혈액을 생성할 수 있는 것.
물론 담천우는 혈천심공 자체는 반쪽짜리이므로, 혈마신공을 익혀서 혈액 제어 기술을 익혀야 온전히 강해진다고 덧붙여 말했지만…….
‘내게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지.’
그럴 만도 했다.
혈마신공이 선사하는 혈액 제어 기술 같은 것은 ‘선혈의 구도자’에 뒤처지는 공능이다.
흡혈귀보다도 더 강력한 혈조술을 구사할 수 있는 내게 혈천심공에서 습득한 새로운 기술은 혈액 생성 하나였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콰아아아아아……!!
“저, 저게 대체 무슨! 혈마신공!? 혈마(血魔)는 이 자리에 오지 못했을 터인데!”
“어째서 그렇게 강력한 힘을 가지고도 분란을 일으키는가! 진정 어리석은 자로다!”
“크하하! 마공이라! 재밌구나! 과연, 본교의 무공을 이길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군!”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압도하기에는, 정말이지, 차고 넘치는 힘이다.
몸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연기 같은 기운은 모두 혈마신공으로 생성한 혈액이 기체로 화한 것.
나는 그것을 선혈의 구도자로 통제하여 동굴 내부로 완전히 퍼뜨렸다.
그리고.
쿠우웅……!!
기체로 화하게 된 혈액을 압박하듯 누르니 이내 적들의 몸이 휘청였다.
“큭!? 무,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사술(邪術)이……! 어찌 이런 괴물이……!”
“노, 노오옴! 어디까지 이 자리를 더럽힐 심산이냐! 약조를 잊었느냐!?”
“크, 크하핫! 그렇지! 애초에 약조 같은 것은 무의미하지! 드디어 재밌어지는구나!”
알 수 없는 소리를 나불거리긴 했지만, 대부분 자세가 흐트러졌다.
「스킬 ‘전투 집중’이 활성화됩니다.」
슬로우 비디오를 보듯 세상이 느려지고, 여러 스킬이 몸을 가속했다.
좁은 동굴 내에서 성광이나 창천윤검처럼 강력한 기술을 쓰는 것은 악수(惡手)로 돌아올 수 있을 터다.
‘그럼 나도 조금은 곤란하지.’
그러니 최대한 검초만을 사용하여 이 상황을 정리할 심산이었다.
그래서 적들을 조금이라도 속박할 수 있게 혈천심공으로 혈액을 기체로 바꾸어 유리하게 환경을 조성한 것이고.
‘물론 이런 걸 안 했어도 질 일은 없겠지만, 만약이란 게 있는 거니까.’
순수 기량으로 적을 제압하는 것은 오랜만이라서 조금은 즐거워졌다.
가장 먼저 나선 것은 스님으로 보이는 중년인이었다.
그는 아랫입술을 짓이기며 억지로 선혈의 구도자로 조성된 중압감을 뚫고 내게 돌진했다.
‘온다.’
그것을 보며 차분히 쌍검을 쥔 채 적의 행동 경로를 예측했다.
그런데…….
‘저건 또 뭐지?’
스님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일격을 내질렀다.
권기를 발출하는 것도 아니고, 마력 같은 것도 일절 느껴지지 않는 상황.
그에 잠시 당황하고 있자니, 갑자기 시야가 훅 흔들렸다.
콰아앙!
코뼈가 으스러지는 감각이 전신으로 퍼졌다.
“……!?”
기감에는 권격의 전조도 잡히지 않았는데 갑자기 얼굴을 맞은 것이다.
「스킬 ‘잿빛 선혈’이 활성화됩니다.」
심지어 더 소름이 돋는 것은 이렇게 맞을 때까지도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이다.
만약에 내구 수치가 낮았거나 좀 더 권격에 실린 힘이 강했더라면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최후의 저항을 발동했을 것이다.
―소림사의 신공절학이라 불리는 백보신권이다.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땡중 놈들은 음습하여 보이지 않는 권격을 구사하니.
담천우의 조언을 들으며 나는 재빠르게 흐트러진 자세를 다잡았다.
그리고.
「권능 ‘순보’가 활성화됩니다.」
「10분 동안 해당 권능에 재사용 대기 시간이 부여됩니다.」
「신성력을 소모하여 시야 내의 원하는 지점으로 즉시 이동합니다.」
“지금이오! 다들 이 기회에 합공해야 하……!?”
서걱!
「투승 정각을 살해했습니다.」
「강한 적을 선별하여 죽였습니다.」
「일시적으로 17층 스테이지 내에서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모든 적을 섬멸하십시오.」
순보로 공간을 이동하여 스님의 목을 그대로 베었다.
―……뭐, 단숨에 정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다만, 정말이지 가차 없구나.
물론 담천우는 그것이 과잉 대응이라는 것처럼 말했지만, 나는 조금 생각이 달랐다.
‘방심해서 죽는 것만큼 꼴사나운 게 어디에 있다고…….’
좀 더 무슨 이치를 품었는지 무공을 견식해 보고 싶었지만, 불안 요소 같은 것은 애초에 배제해 두는 것이 옳았다.
애초에 힘들어질 상황은 만들지 않는 것이 정답이다.
물론 어찌 기척을 숨기고 내게 권격을 발산했는지 궁금했지만, 그것을 제압하고 묻기에는 다른 이들의 저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저들 또한 투승 정각이라는 이처럼 무슨 기술을 쓸지 모르니까.
다만, 이제부터는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핏빛 안개를 뚫고 쇄도했으니, 투승 정각이 저들 중에서는 가장 강했겠지.’
핏빛 안개의 압박감을 재빨리 뚫은 투승 정각은 이들 중 가장 강할 것이 확실했다.
‘그럼 이제부터는 감당할 수 없는 돌발 요소는 없겠지.’
그에 내가 마력을 좀 더 강하게 끌어올리고 있자니, 성난 외침이 들려왔다.
“노오옴! 감히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이리 날뛰느냐!”
휘이익!
이어서 분홍색 도복을 입은 청년이 투지를 불태우며 검을 휘둘렀다.
“……?”
어째서인지 검에서 매화향이 강하게 흘러나오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에 의문을 품는 것도 잠시였다.
수십여 개로 갈라져 이내 꽃잎처럼 휘날리는 검결(劍決)을 보며 나는 눈을 반개했다.
저것들은 진짜가 아니다.
의념에 의해서 마력이 바람에 흩날리는 매화처럼 짙은 존재감을 뽐내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저 검결에서 내게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은 정해져 있다.
그걸 숨기려 저렇게 화려하게 검결을 내뿜은 것이고.
‘……아, 이거 설마 그거인가?’
변초(變招).
이전에 백학검선에게 무공에 대해서 이것저것 배우며 들은 무공의 이치 중 하나다.
여태까지 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그다지 좋은 수법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가짜에 불과한 검결을 진짜처럼 느껴지게 만들려면 마력에 쏟아야 하는 의념 자체도 많아야 할 것이고 격상의 적에게는 통하지 않을 터이다.
그에 나는 생각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절대 막을 수도 회피할 수도 없는 검격을 날리는 게 좋을 텐데.’
바로 이렇게 말이다.
후우웅!
나는 바로 검을 휘둘러서 백검섬해의 초식을 펼쳤고, 이내 검결에 담긴 마력은 의지력에 감응하여 공간 자체를 끌어당겼다.
“뭣……! 고, 공간이……!?”
콰지직─!
화려하게 흩날리는 매화는 공간의 이끌림에 덧없이 뭉개지고, 어느새 검에 이끌린 검결은 두어 개 정도만 남았다.
물론 그것도 검에 닿자마자 기운을 버티지 못해 소멸했고.
「스킬 ‘혼원마검混元魔劍’의 전용 효과 ‘쌍연격(雙連擊)’이 활성화됩니다.」
이어서 스킬까지 활성화되며 강력하게 활성화된 의념이 상대방을 끌어당겼다.
물론 상대방도 뛰어난 실력자인 탓인지, 바로 그것에 당해 주지 않고 나름대로 저항했다.
“놈! 이, 이리 순순히 당해 줄 것 같으냐!”
사방으로 자신의 마력을 흩뿌리며 공간을 끌어당기는 내 의념을 뿌리치려 한 것이다.
의념 자체를 극단적으로 연마하는 무림인이라서 가능한 기예(技藝)였다.
‘강하네.’
흡사 무협지에서 묘사되는 훌륭한 검객이 이러할지 생각하게 되는 강인함이다.
실력도 이전에 죽은 무당마검이라는 자보다도 높을 터이다.
무공을 겨룰 적수로서는 모자람이 없었다.
단지…….
「진(眞) 혈천마검의 를 활성화합니다.」
서로 의념의 격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 승패를 결정지었을 뿐이다.
경지에 따른 의념 수준 자체도 남다를진대, 그것이 스킬로 강화되니 어찌 될지는 자명했다.
촤아악!
분홍 도복을 입은 검객은 잠시도 저항하지 못한 채 그대로 목이 잘려 절명했다.
「매화검수 이천준을 살해했습니다.」
「강한 적을 선별하여 죽였습니다.」
「일시적으로 17층 스테이지 내에서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모든 적을 섬멸하십시오.」
감상은 없었다.
이전에 투승 정각이라는 자처럼 죽기 직전에 특이한 기술도 쓰지 않았고.
변초라는 것을 직접 보여 준 걸 제외한다면 흥미로운 부분도 없었다.
하지만 실망하지는 않았다.
“투, 투승 정각이랑 매화검수 이천준이 십초지적이라니……? 괴, 괴물……!”
“하, 하하핫……? 소, 소형제? 같은 마도인 같은데 서로 대화로 상황을 해결해 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의지를 상실한 듯 말하는 적들이지만, 그들은 전의와는 상관없이 전력을 다할 것이다.
“약조니, 대화니, 같은 같잖은 소리는 집어치우고 분발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도 그럴 것이…….
“그대로 굳어 있어선 둘 다 개죽음을 당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으면 이대로 전부 죽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새 조용해진 적들을 바라보며 나는 싱긋 웃었다.
“전력으로 덤비는 게 좋을 겁니다.”
이제부터는 조금 느긋하게 무공을 견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전투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투승 정각이나 매화검수 이천준 같은 실력자는 적었는지 남은 적들은 시시했다.
최초에 죽이게 된 무당마검이라는 작자랑 비슷한 실력이라 해야 하나?
숨겨 둔 기술 같은 것을 나름대로 잘 써 본답시고 운용했지만, 그다지 흥미롭지도 않았다.
물론 소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무공 견식 자체는 정말로 좋았어.’
환검이라든지, 쾌검이라든지…….
그저 지식으로 백학검선에게 배워 둔 무공의 이치들을 직접 볼 수 있었다.
그저 지식으로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전투를 치르며 본 것은 차이가 컸다.
‘확실히 직접 보니 들었던 것보다 더 이해가 잘 되네.’
물론 그 이치들은 생각한 만큼 대단하지는 않았다지만, 그것은 사용자들의 기량 자체가 좋지 않았기에 그럴 터이다.
좀 더 수준 높은 실력자들은 격이 있는 기술을 다룰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곳곳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바라보며 나는 쌍검을 허리춤에 납검했다.
‘……온몸에 기운이 넘치네.’
신체는 쌍검을 허리춤에서 뽑아 들기 이전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7명을 죽일 때마다 떠오른 메시지 덕분에 어느새 내 능력치는 전부 +7 상승한 상태였다.
‘17층 스테이지 한정이라지만, 이 정도면 상당히 좋은데?’
그에 내가 만족스러움을 느끼고 있을 무렵이었다.
「천무고(天武庫)의 고독로(蠱毒路)를 통과했습니다.」
「진행 자격을 만족하여 문이 개방됩니다.」
쿠구궁!
갑자기 동굴의 벽이 열리며 그곳으로 길이 드러났다.
역시나 모든 능력치를 +7이나 상승시켜주는 시점에서 눈치챘지만…….
‘이번 시련도 위험할 것 같은 느낌이네.’
이전에 전투의 신이 강림한 시련만큼은 아니라도 이번 시련 또한 적잖이 어려울 것 같았다.
‘뭐, 난이도가 어떻든지 보상만 제대로 주면 되지.’
물론 그것은 나도 원하는 바이기에 불만은 없었다.
잠시 열린 벽면을 바라보던 나는 발을 떼고, 새로이 나타난 곳으로 걸어갔다.
적당히 좁은 복도를 걷는 와중에 문득 나는 혈천마검이 조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투하는 와중에는 몇 번 말을 하더니 갑자기 말수가 줄어들었길래 이상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기억이 났느니라.
담천우가 뜬금없이 그렇게 말했다.
―……기억이 났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그래서 직접 무슨 말인지 물어보니 바로 답변이 돌아왔다.
―말 그대로의 의미다. 떠올렸다. 이곳이 어디인지, 그리고, 무엇을 목적으로 무림인이 모여들었는지.
그에 나는 머릿속에 번개 같은 것이 스쳤다.
그러고 보니 탑의 시련은 실제 사건을 직접 재현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럼 이 뜬금없는 혈투 또한 언젠가는 무림에서 일어난 사건일지도 모르고.
그렇다는 것은 무림 차원 출신인 담천우가 이에 대해서 알고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걸 이제야 떠올리다니…….’
담천우가 직접 말해 주지 않았다면 떠올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 시련의 수준으로 봐서는 그다지 긴장해야 할 것도 아니지만, 혹시 모르니 시련 배경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좋았다.
여태까지 갑작스레 시련 난이도가 상승한 적이 많은 탓에 더 그러했다.
나는 전음으로 담천우에게 직접적인 물음을 건넸다.
―17층 스테이지 배경에 관해서 아는 게 있는 겁니까?
―100년 전, 탑이 무림에 존재하기도 이전에, 대혈겁이 존재했다고 들었다.
―……?
―천무고(天武庫). 수백 년 전의 천하제일인이라 불리는 광검제(光劍帝)가 수많은 무공을 남겼다는 비고. 이 17층 시련 배경은 그곳일 터다.
―그게 대혈겁이랑 연관되는 건 그 무공을 노리는 자들 때문이겠군요.
―정답이다. 강자의 무공이라는 것은 언제나 혈겁을 동반하지. 그것이 천하제일인이라 불린 자의 것이라면 더 그렇고. 그래서 문제다.
담천우는 더없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성윤. 너는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처참하게.
조금도 망설임이 없는 죽음의 예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