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62
160. 신격화 (4)
호신강기(護身罡氣).
그것은 말하자면 일종의 무적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검기처럼 섭리를 뒤틀어 새로운 이치를 세우는 걸 넘어서 강기(罡氣)는 섭리를 뒤트는 것마저도 간섭한다.
주위에 있는 마력을 사용자의 의념에 감화시키고, 닿는 모든 기운을 해체하듯이 흐트러뜨리는 강력하기 짝이 없는 기술.
궁극(窮極).
그 말 이외에는 어울리는 수식어는 없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런데…….
“…….”
절대로 꺾을 수 없을 것 같은, 무극(武極)에 다다른 기술을…….
‘부서졌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휘두른 검이 완전하게 관통했다.
‘이게 대체 무슨…….’
사신의 자질을 습득하고 개화하여 볼 수 있게 된 검은 흐름.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 같은 흐름을 따라서 검의 궤적을 그린 순간.
호신강기에 새겨진 검은 점을 두드리고, 그것을 호쾌하게 깨부쉈다.
그리고…….
“욱…….”
이 기적 같은 현상이 불러온 결과물은 더없이 놀라운 것이었다.
주르륵.
천마는 심장을 관통당한 채 구역질을 했고, 이내 그녀의 입에서 검게 죽은 피가 넘쳐흘렀다.
단숨에 피를 게워낸 천마는 고통보다는 의문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건, 대체……?”
심장을 꿰뚫린 탓에 서 있는 것조차도 힘들 터인데도 그녀는 의문을 감추지 못했다.
촤아악!
곧장 천마의 심장에 뿌리박은 혈천마검을 빼냈고, 이내 천마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녀는 심장을 움켜쥔 채 거칠게 몸을 떨어댔다.
“흐, 흐우, 흐아, 흣…….”
마력을 사용하여 억지로 심장이 꿰뚫린 것을 수복하는 것 같았지만…….
「권능 ‘신성력’이 활성화된 상태입니다.」
그게 의미가 없다는 것쯤은 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었다.
어느새 천마의 심장부에는 검은 신성이 달라붙은 채였고, 그것은 심장을 수복하는 걸 막겠다는 듯 거세게 요동쳤다.
숨을 끊겠다는 집념을 가진 것처럼 검은 신성은 천마의 심장을 물어뜯었고.
“크흡……!”
이내 천마의 심장에서는 회색을 띠는 신성이 외부로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굳이 신성을 눈에 돌리지 않아도 회색 신성이 넘쳐흐르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천마는 망가진 상태였다.
―……중단전이 무너졌군.
혈천마검의 칼날이 떨리며 담천우의 말이 머릿속으로 들려왔다.
―선천진기(先天眞氣)는 물론이고 신성까지 완전하게 파괴될 것이니라.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굳이 그에게 듣지 않아도 천마의 저 발버둥은 그저 의미 없는 짓에 불과하다는 걸 눈치챘다.
어느새 천마는 바닥에 쓰러진 채 피를 한껏 쏟고 있었다.
“여태, 까지……, 여(余)를……, 기만, 한 것인가……?”
그 물음에 나는 굳이 입을 열지는 않고 고개만을 저었다.
“그러한가…….”
그에 천마는 헛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네놈은, 최후에 와서야, 등선(登仙)의 자격을, 갖추었는가…….”
그녀의 검은 진주 같은 눈동자에는 어느새 허망함이 차오른 상태였다.
“어째서……, 여가 아니라……, 네놈이, 자격을…….”
그것을 끝으로 더는 말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천마 ‘천유설’의 사령을 흡수했습니다.」
「숙련도가 24.7% 상승했습니다.」
천마의 몸에서 피어오른 검은 연기가 내게 흘러들어왔다.
「사용자보다 강한 사령을 흡수하여 권능 추출의 판정이 시작됩니다.」
모든 게 거짓처럼 느껴졌다.
사실, 나는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없는 약자였다.
본래의 흐름대로 전투가 진행됐다면 살아남은 것은 천마였을 것이다.
천마의 호신강기는 내가 생성한 어설픈 검강과는 격이 달랐다.
심검으로도, 검강으로도.
그 외에 어느 스킬을 써도 그 궁극의 기술을 뚫을 방도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천마의 호신강기를 깨부수고, 그녀의 심장을 관통했다.
「판정 성공.」
그것은 집념이 구축한 결과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신성이 성장하며 이뤄 낸 결과라고 해야겠지.
기억은 있었다.
갑자기 사신의 자질이 완성된다는 메시지가 떠올랐고…….
바라지도 않았는데 신성이 갑자기 두 눈에 덧씌워졌었다.
그리고 그 용도를 알 수 없었던 검은 흐름이 검로를 안내했고, 그것을 따라서 검을 뻗으니 호신강기가 꿰뚫렸다.
「천마 ‘천유설’의 사령에 권능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사령에서 권능을 추출합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천마가 죽기 직전에 힌트를 주었다.
등선의 자격이라는, 정말이지 직관적인 단서였다.
“신격에 다다르기 시작했다는 건가…….”
어째서 갑자기 신성이 완성되기 시작했는지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나는 어째서 탑을 등반하는지를 떠올렸다.
결핍과도 같은 감정에서 시작된 갈망이, 이제는 나도 알 수 없는 집념이 되었다.
그 누구에게도 억압받고 싶지 않다는 광기에 가까운 집착이 기적을 이룬 것일까?
“…….”
모르겠다.
하지만 가능성 정도는 충분히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신성은 의지에도 반응하니까.’
어쩌면 감정의 폭주라는 조건 아래에 개방되는 새로운 길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는 설명되지 않는 기적이다.
「특수 권능 ‘천마지체(S+)’가 사용자 한성윤의 영혼에 각인됩니다.」
후우웅!
갑자기 신체 내부에서 느껴진 떨림에 나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마치 격변이라도 겪는 듯 전신에서 기묘한 움직임이 감지됐다.
그에 눈을 찌푸리고 있자니, 혈천마검이 웅웅 떨리며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시작된 것인가……. 역시나 천마를 쓰러뜨린 건 우연이 아니었나…….
담천우는 어이가 없다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지금 들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너도 곧 머지않아서 의미를 깨달을 것이니.
“…….”
―네게 죽은 천마는 완성된 수준은 아니지만, 강호십존(江湖十尊)은 되는 수준이었다. 그 정도의 강적을 쓰러뜨린 일격이 우연일 것 같으냐.
그렇진 않았다.
인과(因果)는 확실하게 이어져 있었으니.
―네놈이 가진 능력이 천마지체(天魔之體)를 흡수했다는 건 눈치챘다.
담천우는 시간이 없다는 것처럼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신성이 완성에 가까워졌고, 천마지체까지 흡수했으니, 이제부터는 심기체(心氣體)가 완전히 조화를 이룬 셈이지.
“심기체의 조화라니……?”
―저 천마 녀석이 죽기 직전에 말했던 것처럼, 이제는 온전하게 정식 후보로서의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어김없이 나타나게 된 후보라는 개념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뒤늦게 이해가 되었다.
“설마…….”
신격으로 이어지는 길이 열린다는 것인가?
하지만 그 물음을 건네기도 전에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지는 걸 느꼈다.
―가부좌를 틀고, 내부 신성에 집중해라. 이제부터는 초탈(超脫)이 시작될 터이니.
그에 나는 답하지도 않은 채 재빨리 자리에 똑바로 앉았다.
그리고…….
「신성 선택이 가능해졌습니다.」
「신성을 선택할 시, 그에 맞는 신격(神格)을 습득합니다.」
그것을 끝으로 의식이 끊겼다.
***
눈을 떴다.
“…….”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그런지 당황스럽진 않았다.
또 심상 공간에 진입했다는 걸 눈치채고 상황을 파악했다.
이전에 본 공간들과는 다르게 백색으로 덧칠된 이 심상 공간에는 특이점이 존재했다.
바로…….
‘저기인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모를 검은 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저것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몰라도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지 정도야 알 것 같았다.
신성 정립.
신격이 될 수 있는 길로 나를 인도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그러니 망설임은 없었다.
철컥─!
검은 문이 열리고, 나타난 것은 익숙한 정경이었다.
“심상 공간 속의 심상 공간이라니…….”
중심에 검(劍)이 박힌 채 은은히 빛나는 소용돌이, 끝이 없을 것 같은 검은 배경, 상층으로 이어지는 환한 불빛까지…….
11층 시련에서 성녀 에일린의 힘을 빌려서 본 적이 있는 심상이었다.
쿵─!
검은 문은 손을 대지도 않았는데 새로운 심상 공간에 진입하자마자 굳세게 닫혔다.
물론 돌아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기에 상관하지는 않았다.
저벅, 저벅…….
내우주(內宇宙)라고 불러도 될 것 같은 심상 공간을 나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신격이라…….’
이전부터 추측으로 탑이 후보자들을 선별하여 신이 될 기회를 주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직접 신이 될 기회를 목전에 뒀다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다.
물론 신격이 된다고 해도 진짜로 엄청나게 강해지는 건 아닐 것이다.
사도화를 경험했을 시점에 써봤던 권능들을 습득하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엄청난 이득이지.’
, , .
총 세 가지로 구성된 신성 권능은 정말이지 충격적인 능력을 선사했다.
은 사신(死神)처럼 느껴지는 능력으로 생명을 억지로 끊어 냈고.
은 심연과도 같은 그림자로 지정한 것을 삼켜 버릴 수 있었으며.
은 죽음에 굴하지 않고 죽었어야 했을 치명상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게 해 줬다.
무엇을 얻든지 일반적인 도전자와는 궤를 달리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니 신격이 되어서 바로 모든 걸 넘어설 힘을 얻지 못해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진정한 신격에 비견될 정도로 성장할 테니까.
‘아마도 내가 선택하게 될 신성 성향은 그것들과도 연관이 있겠지.’
그러나 그것들이 전부 신성 성향의 선택지로 나타나진 않을 터이다.
그도 그럴 것이…….
‘뭐, 어둠의 신이 있어서 어둠은 신성으로 선택할 수 없겠지만.’
이나 은 몰라도 은 이미 가진 신격이 있으니까.
음침한 로브를 뒤집어쓴 어둠의 신은 그때 내게 사도화를 허락해 준 존재였다.
즉, 자체는 어둠의 신에게서 기인한 권능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은 신성의 선택지로 기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것은 곧 다른 신성은 기대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고.
“…….”
실제로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는 그 추측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설마 했는데 이렇게 구성되어 있을 줄이야…….”
우주 같은 검은 공간의 중심지로 추정되는 장소에 도달하자.
여러 가지 색상으로 빛나는 신비한 구체들이 눈에 들어왔다.
암광(暗光), 적광(赤光), 녹광(綠光).
세 가지 색상으로 구성된 구체들은 보자마자 신성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조금은 의외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이나 외에도 신성이 또 있었다.
그에 나는 잠시 고민을 거친 후, 암광에 다가가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신성 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이어서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나자 나는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역시나 이렇게 작동하네.’
선택이라고 했으니 적어도 이것이 뭔지는 탑도 알려줄 것이고.
그러니 손을 뻗으면 각각 신성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 여겼는데…….
아무래도 생각이 들어맞았는지 손을 대자마자 신성을 선택할 것이냐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물론 선택은 거부했다.
‘우선은 남은 신성들도 뭔지는 알아야지.’
이어서 적광에 손을 뻗으니 곧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신성 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이것까지는 크게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문구였다.
하지만…….
「신성 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초록빛 신성이 불러온 메시지의 내용은 상상 외의 것이었다.
‘이건 또 뭐지.’
조화라니?
어쩐지 조금 뜬금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신성 성향에 눈을 찌푸렸지만…….
이내 나는 이게 어디에서 기인했는지를 눈치채고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설마 광검제가 섬인능법기에 준 신성도 선택지로 분류했나?”
그렇지만 또 아예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광검제는 신성을 물려줄 후계자니 어쩌느니 말했으니…….
어둠의 신과는 다르게 선택지로 분류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화는 애초에 선택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대충 패스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인가?’
현재 나는 혹은 이라는 갈림길에 선 상황에 가까웠다.
은 엄청나게 강하지만, 도 무시하긴 힘들었다.
이전에 경험한 은 재생 불가 및 즉사 판정을 무시하는 능력을 보여 주었다.
아마도 을 선택할 시, 나는 어느 강적에게도 쉽게는 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다지 끌리진 않았다.
‘애초에 죽지 않을 상황이 제일 좋지.’
그리고 고유 특성 자체도 에 걸맞은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선택지는 좁혀진다.
그에 내가 생각을 끝내고 신성을 선택하려는 순간이었다.
후우웅─!
갑자기 세 구체 뒤에서 금빛 기운이 술렁이듯 몰아쳤다.
마치 자기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 같은 바람이었다.
‘이건 또 뭐지?’
그에 흥미가 일은 나는 선택을 멈추고 이내 세 구체를 지나쳐 그 너머로 걸었다.
그리고…….
“아…….”
세 구체 너머에 있는 이질적인 금빛 구체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우우웅─!
어느 것에도 지배되지 않을 것 같은 자유로움을 머금은 황금빛이 정신을 자극했다.
그것을 본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것은…….
「신성 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탑이 준 선택지 같은 게 아니라는 것을.
“…….”
이건 내가 오롯이 개척한 새로운 신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