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72
170. 루나틱 난이도 (4)
본래 보상이라는 건 리스크를 감수하는 만큼 늘어난다.
「※단, 아무런 제물도 올리지 않음으로써 악신을 기만할 시, [고대 악마]가 출현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경고 문구를 보자마자 바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고대 악마를 출현하게 해야겠어.’
이 계층에서 고대 악마를 잡고 누구보다 빠르게 능력치를 올리겠다고.
실패할 시에는 엄청난 손해를 보겠지만, 성공할 시에는 엄청난 이득을 보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법칙을 철저하게 따라가는 짓이지만, 시도할 가치는 있었다.
그러나…….
‘고대 악마를 출현시키는 걸 팀원들이 허락할지가 문제겠네.’
진정한 문제는 바로 팀원들 그리고 계층으로 몰려들 도전자들이 그걸 용납하겠냐는 것이다.
그게 제일 걱정이 됐지만, 의외로 전자의 문제는 손쉽게 해결됐다.
그도 그럴 것이…….
“원하는 대로 하세요.”
팀의 리더인 캐서린 베넷이 싱긋 웃으며 허락을 내려 준 것이다.
그것도 조금도 망설임이 담기지 않은 즉답으로.
“……아니, 뭐, 왜 그러고 싶은지 같은 건 안 궁금합니까?”
그에 조금이나마 찝찝함이 느껴져서 그렇게 물어보니 왜 허락해 줬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어차피 알아서 할 것도 없잖아요. 당신이 하겠다는데 누가 말리겠어요.”
그녀가 짓는 은은한 웃음에는 체념이 담겨 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
왜인지 업보가 부메랑처럼 되돌아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까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으니, 이제는 기행을 일삼는 것을 수긍한 것이다.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군. 책임질 힘이 있는 자가 그러겠다는데 어쩔 도리는 없지.”
김승훈마저도 달리 할 말은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동의했고.
“뭐, 어차피 성윤 씨 성격상 말려도 멈출 것 같지도 않고……. 저도 반대할 생각은 없습니다.”
오춘석은 아예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내게 모든 걸 전적으로 맡긴다는 태도였다.
왜인지 모르게 막무가내로 몰아붙인 느낌이 들어서 조금은 눈치가 보였지만…….
“아무튼 이견은 없는 것 같으니 제가 원하는 대로 하겠습니다.”
어차피 되돌릴 수도 없는 것 아닌가?
“고대 악마가 나타날 때까지는 이제부터 제가 제단을 점령할 겁니다.”
이렇게 된 김에 조금 더 뻔뻔해져도 될 것 같았다.
“고대 악마가 나타날 때까지 여러분은 공동 내를 탐색해 주십시오.”
우선은 일행을 강해지게 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 나는 탐색을 권했다.
이 공동(空洞)은 1층 미로처럼 어딘가로 이어지는 길들이 있었다.
1층에서도 숨겨진 신의 제단이니 어쩌느니 하는 게 나타났던 것을 고려해 보면 이 공동 어딘가에서도 이득을 보는 게 가능할 터이다.
그러니…….
“지금은 여러분이 최대한 힘을 되찾아야 하니까요.”
이 계층까지는 모든 전투를 내가 감당할 심산이었다.
“……그렇게 해도 괜찮겠어요? 저희야 좋지만, 당신은 그동안 손해만 보잖아요?”
“상관없습니다. 계층 통과 보상으로 많은 힘을 되찾았으니까요.”
“……아니, 뭐, 특수 보상이라도 받은 거예요? 저는 계층 통과 보상으로 권능 하나 수복한 게 고작인데요?”
“저도 권능 하나 수복한 게 전부입니다.”
나도 보상을 더 받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웬만한 도전자는 이제 제 적이 되지 못할 겁니다.”
1층을 지나며 수복한 혈천심공으로는 마이너 버전의 스킬을 여럿 사용할 수 있으니 이러는 것이다.
선혈의 구도자나 잿빛 선혈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 아래쯤에 머무는 출력을 보여 주는 혈천심공은 내게 많은 힘을 주었다.
도전자 10명쯤은 가뿐하게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사실, 이 권능으로 쓸 수 있게 된 능력들 자체가 난투에 적합하니 상대하는 적의 숫자가 많아지면 오히려 좋았다.
추잡해질지는 몰라도 전투에서 패배하지는 않으니까.
“어차피 같이 있어 봤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알겠네요.”
그에 캐서린 베넷은 이내 냉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바로 행동에 나섰다.
“……꼭 도움이 될 만큼 성과를 내고 돌아올 테니,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으세요.”
그녀는 팀원들을 이끌고 공동에 널린 길들 중 하나를 골라서 그 안으로 들어갔고…….
시야에서 일행이 사라진 걸 확인한 나는 주위를 힐끗 살피며 느릿하게 제단으로 걸어갔다.
아직 다들 1층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상층으로 이어진 여러 계단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뭐, 1층 자체는 [시작의 미로]라는 이름에 걸맞게 귀찮은 장치들이 많았으니 이해는 됐다.
애초에 나처럼 올바른 루트를 버리고 무작정 보스룸으로 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터이니.
‘무공을 배우지 않았고, 권능 스킬을 유지하지 못했다면, 나도 다를 건 없었겠지.’
물론 내게는 통용되지 않는 논리이므로 이내 생각을 거둔 채 붉은 천으로 치장된 단상 위에 걸터앉았다.
아무도 제물을 바칠 수 없게 하려면 이 자리에서 버티는 것이 유리했다.
「미궁 업적 ‘신성 모독(Common)’을 달성했습니다.」
「미궁 점수 +1점을 획득합니다.」
“…….”
자리에 앉자마자 뭔지 모를 업적이 달성되며 또 미궁 점수라는 것을 얻었다.
‘미궁 점수가 대체 뭐지?’
어디에 쓸 수 있다는 언급도 일절 없는 수수께끼의 점수에 생각이 번개처럼 이어진다.
거목 미궁은 기본적으로 탑과는 다른 곳인 동시에 비슷한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즉…….
‘설마 미궁 점수는 탑에서 쓰이는 포인트 같은 건가?’
이 미궁 점수는 탑에 있는 포인트 개념 같이 어느 지점에서 쓸 수 있을 것이다.
탑에서 포인트는 대기실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으니, 거목 미궁에서도 사용처가 비슷할지도 모른다.
‘탑처럼 언젠가는 이 미궁 점수를 쓸 수 있는 구간이 나올지도.’
여러모로 기대됐다.
이 거목 미궁에서 미궁 점수라는 것으로 대체 무엇을 살 수 있을지가.
그리고 그걸 통해서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을지는 기대되는 바였다.
‘그때까지는 최대한 미궁 점수를 모아 둬야겠어.’
물론 미궁 내에서 특수한 업적을 달성해야 하는 만큼 점수 벌이는 시원찮겠지만…….
「거목 미궁 2층, [악신의 속삭임]에 새로운 도전자의 팀이 진입했습니다.」
새로이 떠오른 메시지를 보니 굳이 어느 업적을 달성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조건 만족.」
「도전자의 팀이 둘 이상 모이며 계층 전용 페널티가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남은 시간 동안 제물을 바치지 않을 시, [고대 악마]가 출현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운이 좋네.’
마침 업적을 얻기 좋은 상대가 나타났으니까.
***
새롭게 도착한 도전자의 팀은 기이할 정도로 좋은 무장을 갖췄다.
‘놀랍네.’
솔직히 말해서 현재 내가 들고 있는 장검은 아이템도 뭣도 아니지만…….
저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은 전부 아이템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외견을 자랑했다.
최초 스타트 지점이었던 석실 내에 걸린 무기들과는 완전히 딴판이니 파밍으로 얻었을 것이다.
심지어 아이템 같은 것만이 아니라 도전자 간의 밸런스도 적절했다.
전사, 궁수, 창술가, 그리고 마법사까지…….
공격적인 측면에서 보아도 수비적인 측면에서 보아도 흠을 잡을 곳이 없었다.
단지…….
“설마 이런 장소에 혼자 있는 등신이 있을 줄이야.”
자신감이 과하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이거 완전 이번 시련은 날로 먹겠는데?”
허리까지 다다르는 타워 실드를 든 남자가 조소를 머금은 채 노골적인 시선을 보내왔다.
살의(殺意).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서 시련 내용을 이해하자마자 나를 죽일 생각을 한 것이다.
조금은 어이가 없었다.
‘미리 이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을 정도라면 생각을 좀 해 볼 만도 하지 않나?’
그에 내가 눈매를 좁히는 사이에도 이 도전자들은 서로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칼스. 방심하지 마라. 주위에 동료가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핫! 저 아이템 수준이 보이지 않아? 1층에서 아이템도 구해오 지 않은 등신이잖아!”
“지금만큼은 칼스 님의 의견이 옳습니다. 기척 탐지 스킬로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요.”
“맞아, 맞아~. 뭣보다 저 인간에게서는 마력 회로가 안 느껴진다고. 정신 나간 놈이 확실해.”
궁수에 이어서 전사가 말을 받고, 그다음으로는 마법사가, 최후에는 창술가가 그리 말하며 대화는 끝을 맺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근거는 있었네.’
창술가가 뱉은 말을 토대로 저들이 왜 나를 무시하는지 알 수 있었다.
마력 회로.
헌터에게는 매우 필수적이라고 여겨지는 스킬이 없다는 것이 내 가치를 낮추고 있었다.
마력 회로를 재형성하는 것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여태까지는 효율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미루고 있었을 뿐이다.
물론 혈천심공을 얻은 현재로서는 언제든지 마력 회로라는 길을 뚫는 것이 가능했다.
이 권능을 활성화시키는 것 자체가 억지로 마력 회로를 형성하게 하는 것이므로.
‘우습네.’
그에 나는 참지 못하고 피식 웃음을 지었고 이내 칼스라고 불린 남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빌어먹을 자식이 재수 없게 뭘 처웃는 거냐.”
“그냥.”
“……뭐?”
“그냥 웃었다고 했습니다.”
“……하! 이거 완전 또라이 새끼 아니야?”
그 말에 나는 길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저…….
“불만이라도 있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입꼬리를 씩 끌어올리는 것으로 충분했다.
칼스의 눈에 붉은 기운이 감돌며 이내 그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지자…….
“그 재수 없는 말을 대가리가 쪼개져도 할 수 있는지 보자고.”
이렇게 쉬워도 되나 싶을 정도로 칼스는 흥분에 휩싸인 채 동료들에게 으르렁거렸다.
“너희들은 전부 끼어들지 마. 저 재수 없는 눈깔을 깔아뭉개주는 건 나로도 충분해.”
신경을 긁는 조롱이 그의 심경에 영향을 끼친 것일까?
“마력 회로도 수복하지 못한 버러지 정도야 내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어.”
그는 이마에 핏대를 세운 채로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고, 그의 동료들은 뒤로 슬쩍 물러섰다.
‘전부 내가 이길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나 보네.’
그럴 만도 했다.
저들이 본 나는 마력 회로도 습득하지 못하는 쓰레기에 불과할 터이니.
하지만 그것은 크나큰 오해였다.
마력 회로쯤은 나도 언제든지 습득할 수 있으니까.
「권능 ‘혈천심공’이 강하게 활성화됩니다.」
우우웅……!
혈천심공이 활성화되는 동시에 체내에 있는 마력이 사기(邪氣)로 치환된다.
침전물처럼 단전에 쌓인 마력이 난폭한 성질을 품고 부글부글 끓어대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최대한 숨겼다.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지.’
칼스라는 남자가 굳이 참견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아마도 위험해지면 동료들이 참전할 것이다.
놀잇감은 어디까지나 만만하기에 놀잇감으로서 인식될 수 있는 것이므로.
“뒤져어─!”
그러니 발톱을 드러낼 때는 정해져 있었다.
「스킬 ‘전투 집중’이 활성화됩니다.」
세상이 조금이나마 느려지고…….
짐승처럼 거칠게 바닥을 박차고 달려오는 칼스의 움직임이 눈에 선명히 들어온다.
더불어 양날 도끼가 어디를 노리고 들어오는지까지도.
아이템의 전용 효과인지 양날 도끼에는 붉은빛이 감돌고 있었지만 크게 상관은 없었다.
나는 장검을 들어 올리며 체내에 있는 폭주 직전의 마력을 정해진 경로로 내보냈다.
그리고…….
‘확실히 이렇게 해야 마력 회로도 빠르게 개통할 수 있었네.’
여태까지 마력 회로를 구성하길 미뤘던 보상이라는 듯 마력 회로가 빠르게 깨어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기혈에 들이닥치는 혈천심공의 패악적인 기운을 견디지 못하고 반발성을 띤 채 강제적으로 각성한 것이다.
「체내에 존재하는 기혈에 엄청난 손상을 입혔습니다.」
「기혈에 스며든 사기(邪氣)로 인하여 회로가 각성합니다.」
「스킬 ‘마력 회로(D+)’를 습득합니다.」
이어서 시스템 메시지를 본 나는 고통보다는 즐거움을 느끼며 검에 힘을 줬다.
「스킬 ‘일격 집중’이 활성화됩니다.」
「다음 일격에 사용되는 기술의 정밀도 및 파괴력이 올라갑니다.」
온몸에 있는 기혈이 찢어지며 격통이 찾아왔지만, 그런 것은 이제 중요치 않았다.
마력 회로가 생겼다는 것은 곧 이제 검에 마력을 담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고.
치이잉─!
「미궁 업적 ‘미궁 최초 검기 각성(Unique)’을 달성했습니다.」
「미궁 점수 +15점을 획득합니다.」
「권능 ‘검기상인劍氣傷人(C+)’이 생성됩니다.」
그건 곧 검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권능 ‘검기상인劍氣傷人’이 활성화됩니다.」
달빛 같은 서늘한 마력을 머금은 검이 뱀의 혀처럼 재빠르게 움직이더니…….
“뭣……!”
이어서 손쉽게 양날 도끼의 날을 깔끔하게 쪼개고는 이어서 칼스의 목을 물었다.
서걱─!
그 찰나에 칼스의 머리통이 공중으로 날아들고 이내 그 머리통이 땅에 떨어진다.
투우욱……!
「치명타!」
「도전자 ‘칼스 켈리’가 HP를 전부 소모하여 본래의 세계로 추방됩니다.」
그것을 끝으로 칼스라는 도전자는 바로 죽음을 맞이한 채 빛에 감싸여 사라졌다.
[HP]를 전부 소모하여 미궁 외부로 퇴출된 것 같은데…….목까지 단숨에 잘린 상태에서 퇴출되어도 무사할지가 의문이었다.
「체내 마력 회로에 손상을 입음으로써 [HP]가 10 줄어듭니다.」
물론 느긋이 의문에 생각할 틈은 없었다.
이대로 느긋이 있다간 나도 칼스라는 남자를 따라서 미궁에서 퇴출될 테니까.
“…….”
기혈이 손상되며 눈에서 흐른 피를 나는 조용히 손을 들어서 닦아 낸 후.
아직도 뭔 상황인지 이해되지 않는 것 같은 얼굴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뭘 그렇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습니까?”
그리고…….
“시답잖게 시간 끌지 말고 오십시오.”
이어서 전신에서 숨기지 않고 붉은 기운을 단숨에 뿜어내며 싱긋 웃음을 짓는 순간.
“그래야 서로 빠르게 용건을 끝낼 수 있으니까.”
적들의 얼굴에 절망의 그림자가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