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74
172화, 가속도 (2)
고대 악마.
제물을 바치지 않음으로써 출현시키게 된 존재는 압도적인 힘을 드러냈다.
‘성공했구나.’
계획한 것처럼 고대 악마를 소환했음에 나는 성취감을 느끼며 슬며시 웃었다.
뭐, 흠결이 있다면 도전자를 전부 정리하지 못한 상황에서 고대 악마가 출현한 것이겠지만…….
그것마저도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아도 되었다.
“끄아아아! 이 개 같은 새끼야……! 진짜로 전부 뒈지게 생겼잖아아아……!”
“푸흐흐! 그래, 다 같이 죽자고! 저 악마 같은 새끼를 길동무로 삼을 수 있으면 죽음도 싸지!”
“흐, 흐하핫! 끝났어! 전부 끝났다고! 이대로 싹 죽게 될 거야……!”
이제 내게 대적할 정도로 기력이 남은 자들은 없으니까.
나는 고대 악마를 보며 그 모습을 살폈다.
“…….”
이 세상에 있는 어둡고 음습한 것들을 누더기처럼 덧붙인 것 같은 모습은 물론이고…….
그림자에 가까운 신체에서 뿜어지는 기운은 불길한 수준을 넘어서 절망을 불러올 정도였다.
‘강하네.’
아마도 누구도 살아나갈 수 없게 하려는 미궁의 의도인 것 같아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확실히 이런 게 적으로 나타나면 전부 죽을지도 모르겠어.’
이 자리에 있는 도전자들이 전부 힘을 합쳐도 벌레처럼 죽음을 맞이할 강적이다.
하지만…….
「신화 가 활성화됩니다.」
「신성 공격에 의 효과가 붙습니다.」
「신성 공격에 의 효과가 붙습니다.」
고대 악마라는 건 일반적인 도전자들에게나 절망적인 상대인 거고.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럭저럭 힘을 써서 잡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신화가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재생 불가 및 구마라는 효과를 주는 의 신화가 발동되며 몸에 신성이 감돌았다.
이것도 구마(驅魔)에 깃든 능력일까?
「고대 악마를 상대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신화 에 의해서 모든 능력치가 +20 상승합니다.」
「고대 악마를 상대하는 동안에는 모든 신성 공격이 크게 강화됩니다.」
몸을 으스러뜨릴 것처럼 짓누르던 형체 없는 기운이 찰나에 사라지며 오히려 활력이 솟았다.
에 비견되는 능력치 상승량에 더불어 신성이 거세게 출렁인다.
이 정도까지 힘이 늘어날 줄은 몰랐던지라 어쩔 수 없이 입가에 웃음이 맺혔고…….
‘이쯤 되면 지려고 해도 질 수 없는 수준이지.’
나는 곧장 검을 휘두를 기세로 고대 악마를 바라보며 권능 스킬을 발동시키려 했다.
그런데…….
“위, 위대한 존재이시여, 죄, 죄송합니다만…….”
갑자기 고대 악마에게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전부 심판해 주겠다느니 어쩌느니 나불댔던 방금과는 아예 음색이 다르다.
마치…….
“…….”
고대 악마는 내게 겁에 질린 것처럼 느껴졌다.
“혹시 저는 이만 돌아가 보아도 괜찮겠습니까……?”
아니.
이제 겁에 질린 것처럼 느껴지는 수준이 아니었다.
진짜로 이 고대 악마는 내게 겁을 먹고 비굴한 태도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
그에 나는 머릿속에 스치는 아이디어에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쩌면 이것도 기회로 삼을 수 있을지도……?’
이 비굴해진 고대 악마를 어떻게 이용할지 생각해 냈기 때문이다.
“돌아가도 되겠느냐고 물어봤나?”
이내 나는 싱긋 웃음을 지으며 고대 악마를 바라보았다.
“돌아가게 허락해 줄 수는 있지.”
그리고…….
“단, 거래에 응하는 대가로 말이야.”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는 고대 악마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면밀하게 살피며 말을 이었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낼 만큼 가치가 있는지 성의로 증명해 보라고.”
“…….”
“싫어?”
“아, 아닙니다! 하하핫! 너무도 좋습니다! 역시 위대한 존재답게 현명하…… 십니다……!”
굳은 얼굴로 억지웃음을 짓는 고대 악마를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살다 보니 악마를 상대로 호구 잡는 날도 오는구나.’
고대 악마를 상대로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지 기대됐다.
***
고대 악마는 의외로 순순하게 반쯤 협박으로 건 거래를 받아들였다.
심지어 간을 보는 것 따위도 없이 넙죽 웬 기이한 빛이 일렁이는 가면을 들이밀었고…….
“이, 이게 제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보물입니다!”
그에 나는 바로 고대 악마의 손에 들린 가면이 무엇인지 바라보며 설명창을 열람했다.
「절망의 가면」
「등급 : B+」
「충격 흡수 +10%」
「권능 효율 +10%」
「고대 악마 중 누군가가 심심풀이로 원혼들을 제련하여 만든 가면이다.」
「장착할 시, 정신이 서서히 오염되기 시작하며, 원혼들이 가진 사념에 시달리게 된다.」
「생명을 살해할 시, 원혼이 축적되어 [충격 흡수] 및 [권능 효율]의 수치가 상승한다.」
척 보기에도 그저 재수 없을 뿐인 가면이지만…….
이 가면에 붙은 능력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구미가 당겼다.
그럴 만도 했다.
충격 흡수 같은 것은 솔직히 아무래도 좋다지만, 권능 효율 상승은 쉽게 얻을 수 있는 수치가 아니므로.
심지어 충격 흡수 및 권능 효율 상승은 그 수치를 성장시킬 수도 있었다.
즉, 등급이 올라가진 않아도 장비 자체 능력이 어느 정도 올라가는 유사 성장 아이템이라는 뜻인데…….
“그럼 이걸로 고르지.”
굳이 이것저것 재보며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바로 고대 악마의 손에 들린 가면을 빼앗듯 가져와서 바로 얼굴에 장착했다.
「절망의 가면(B+)을 착용하여 서서히 정신이 오염되기 시작합니다.」
「이제부터 잠들 때마다 원혼들이 당신에게 저주를 쏟아냅니다.」
불길한 문구들이 떠올랐지만, 크게 신경 쓸 것들은 아니었다.
「강대한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절망의 가면(B+)에 정신이 오염되지 않습니다.」
「원혼들이 당신에게 겁먹고 존재를 감추기 시작합니다.」
부작용처럼 따라붙은 문구들은 바로 종적을 감추었으니까.
“어, 엄청나게 잘 어울리십니다! 하하하! 지옥 대공께서도 놀라실 정도로 멋있습니다!”
“그렇게까지 잘 어울린다고?”
“예! 물론이죠! 이 가면을 제작하신 선대의 고대 악마께서도 마음에 들어 하실 겁니다!”
“…….”
고대 악마는 어느새 손바닥까지 싹싹 비빌 기세로 내게 아부를 떨고 있었다.
‘태세도 참 빠르게 바꾸네.’
신성이 그렇게도 위험하게 느껴졌던 걸까?
긍지라고는 아주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고대 악마의 모습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약속을 지킬 생각은 추호도 없는데 이렇게나 비굴하게 나오다니…….
이제는 측은함도 생길 지경이었다.
물론 그 동정심은 몇 초도 지나기 전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뭐, 애초에 나를 죽일 생각으로 나타난 적인데 동정하는 것도 웃기지.’
그에 바로 검으로 고대 악마를 기습할지 고민하는 찰나였다.
“저, 저기……. 그런데 제안하고 싶은 게 하나 더 있는데 말입니다…….”
갑자기 고대 악마가 기어드는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제안?”
“아, 예! 그……, 제가 사실은, 악신님의 종이라서, 이대로 돌아가기엔 주신을 뵐 낯이 없습니다…….”
“…….”
“악신을 기만한 인간을 죽여야 할 것 같은데 도움을 주실 수 있을지…….”
고대 악마의 제안은 도움보다는 일종의 허락에 가까웠다.
현재 제단 아래에서 신음을 내는 도전자들은 굳이 내가 아니라도 고대 악마 선에서 충분히 잘라낼 수 있을 터이니.
굳이 내게 처리를 부탁한 것은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한 것이겠지.
뭐, 더불어 내게 뒤처리를 맡기고 자신은 이 자리에서 빨리 뜨고 싶은 심정에서 비롯된 부탁일 수도 있고.
잠시 고대 악마를 바라보던 나는 이내 입을 열었다.
“그래서 거기에 도움을 주면 내가 받을 보상은?”
“보, 보상이라니요? 이미 절망의 가면을 드렸…….”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추가 보상. 그게 없으면 제안은 들어줄 수 없겠는데.”
“…….”
그 말에 고대 악마는 입을 꾹 다문 채 나를 바라보았다.
‘이것 봐라?’
그 눈에는 살짝이나마 경멸이 차올라 있었지만…….
철컥─!
그 불손한 감정은 검집에서 슬며시 장검을 꺼내자 바로 눈 녹듯 사라졌다.
“아, 아하하! 네! 그렇죠! 추가 보상! 아, 예! 제가 그걸 까먹고 말았네요!”
고대 악마는 바로 또 억지웃음을 짓고는 새로운 아이템을 꺼냈다.
“그, 그럼 추가 보상은 이걸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칼날이 은빛으로 은은하게 감싸인 신비한 장검이었다.
「삭월의 검」
「등급 : C+」
「공격 속도 +15%」
「삭월에서 뿜어지는 달빛으로 몇 년 동안 제련한 달빛검.」
「검에 마력을 주입할 시, [MP]를 소모하는 달빛이 칼날에 생성되며, 사용자의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한다.」
「더불어 사용자가 아군으로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달빛이 닿는 거리 안에서는 마력이 +1 상승하는 버프를 부여한다.」
“오.”
생각보다 좋은 아이템이 나타났다.
미궁 내 특수 기능인 [MP]를 사용해서 사용자의 모든 능력치를 +1 상승시키고…….
아군으로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달빛이 닿는 거리 내에서라지만 마력을 +1 올려 줄 수 있는 아이템이 좋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럼 추가 보상은 이걸로 받을게.”
드디어 쓸 만한 무기를 찾았다는 생각에 나는 즐겁게 삭월의 검을 받아들었다.
“위대한 존재이시여! 이제 이 인간들을 같이 정리해도 되겠습니까?”
그제야 고대 악마는 기대가 된다는 듯 그렇게 말했고…….
“마음대로.”
그에 대충 답해 주니 고대 악마는 이까지 드러내며 웃음을 지었다.
“그럼 사양하지 않고 즐기겠습니다.”
그것은…….
“자아, 벌레 같은 인간들아, 이제 다시 심판의 시간이 찾아왔도다─!”
마치 정말로 벌레를 보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주, 죽기 싫어! 제발! 당신께 협력할 테니, 부디 제게 살아남을 기회를 주십시오!”
“악마 같은 놈이 진짜 악마를 불러왔어……. 흐, 흐흐. 이제 가망이 없어…….”
“제, 젠장……! 갈 때까지 갔구나……! 언젠가 네놈은 악마와 거래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
주위는 다시금 절망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럴 만도 했다.
이전에도 전의를 상실해서 움직이지도 못했던 자들인데 싸울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래! 이게 인간이지! 좀 더 울부짖어라……! 하하하!”
고대 악마는 이 상황 자체를 즐기듯 초승달 같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권능 ‘검기상인劍氣傷人’이 활성화됩니다.」
그 찰나에 푸른빛이 섬광처럼 번뜩이며 고대 악마의 등을 크게 갈랐다.
촤아악!
“크아악─!”
보랏빛을 띠는 피가 난잡하게 튀며 끔찍하기 짝이 없는 비명이 들렸다.
“오해한 것 같은데…….”
그에 고대 악마의 눈이 배후에 있는 내게로 돌려졌고…….
“살려 주겠다는 말은 하지도 않았어.”
나는 상쾌함에 찬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 돌아가게 해 주겠다는 말은 지켜 줄게.”
다음 순간.
“어차피 죽으면 그렇게 좋아하는 악신 곁으로 갈 수 있는 거잖아?”
고대 악마에게서 분노로 가득 찬 음성이 들려왔다.
“이─! 개─! 자식이─! 갈가리 찢어서 죽여 주마─!”
흡족함을 느끼게 해 주는 외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