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8
017. 귀환 (1)
「남은 시간 – 14시간 37분」
늦은 밤, 4층 성채 도시의 내부.
별이 아름답게 빛나는 하늘과 어우러지는 중세풍의 거리.
본래라면 장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키에에에엑!”
푹!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드는 고블린의 심장에 단검을 쑤셔 넣고 급히 몸을 틀었다.
후웅, 쾅!
후두부를 서늘하게 스치는 감각이 든 순간, 바닥에 내리꽂히는 거대한 곤봉.
오싹함을 느끼는 동시에 검을 회수하며 뒤쪽으로 크게 검을 휘둘렀다.
촤아악!
“끄, 끄르르륵……!”
젠장, 또 단숨에 베지 못하고 어중간하게 베었다.
근접전에 걸맞은 한손검 형식의 단검도 나쁘진 않은데, 이러한 부분에서 전에 버리게 된 장검이 아쉽게 느껴진다.
하지만 곧 나는 아쉬움을 떨쳐 내며 피거품을 무는 고블린의 목을 다시금 내리쳤다.
그제야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툭 떨어지는 고블린의 머리통.
진짜 이제 괴물이라도 된 것인지 이렇게 움직이고도 크게 지치는 거 같지도 않다.
‘고블린은…… 이게 끝인가 보네.’
벌써 시련을 제대로 진행한 지 몇 시간이 흐른 상황.
아까처럼 전투를 두어 번 벌였고 그 결과는 보다시피 모두 완승이었다.
다만, 나를 따라오는 이성훈과 이하연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뒤에서 이성훈이 죽지 않게 보조 마법만 걸어 주는 이하연은 덜해도, 이성훈은 죽겠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씨팔, 이건 또 뭔 개 같은……, 고블린 주제에 이렇게 강할 리가 없는데…….”
그저 이하연만 지키는 것도 힘든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이성훈.
하지만 그의 말도 일리가 있기는 했다.
고블린은 원래 이렇게 강하게 나올 수 있는 괴수가 아니니 말이다.
‘헌터 협회에서 시험을 치를 때도 겁만 안 먹으면 응시자 대부분이 고블린은 어렵지 않게 이겼지.’
작은 몸집, 나약한 능력치, 낮은 지능 등등 결점은 많았다.
고블린이라는 괴수들은 대부분 무기를 잘 다루지도 못하고 힘이 강하지도 않다.
다만, 군집 생활과 가끔 보이는 영악함이 귀찮을 뿐.
그런데 이 고블린들은 일반적인 고블린의 범주를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났다.
「고블린 워리어의 사령을 흡수하셨습니다.」
「고블린 어쌔신의 사령을 흡수하셨습니다.」
「고블린 나이트의 사령을 흡수하셨습니다.」
…….
…….
「현재 보유한 사령의 수 – 8/15」
「숙련도가 12% 상승합니다.」
4층의 고블린들은 직군이 정해져 있으며 직군마다 특징이 달랐다.
고블린 워리어는 몸집이 크고, 어쌔신은 암살법을 익히고 있으며, 고블린 나이트는 스킬을 익히기라도 한 듯 깔끔한 검술을 썼다.
‘실제로도 관련된 스킬을 익히고 있겠지.’
그렇지 않고는 보여 줄 수 없던 움직임이 너무 많았다.
물론 그것도 능력치가 비등할 때만 통용되기에 상황이 최악으로 흘러가진 않았다.
점점 고블린들을 죽일 때마다 올라가는 능력치는 그들을 압도하기 더 쉽게 만들어 줬으니까.
비록 네크로맨시로 스킬은 얻지 못했지만 그래도 썩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오히려 다른 팀보다 빠르게 고블린 킹에게 도착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은 그저 생각에서 그쳤다.
팀원이 전투의 끝내는 게 나보다 두 배는 늦었기 때문이다.
이하연은 보조 마법도 걸어 주고, 탐색도 해 줬으니 그렇다 쳐도 이성훈이 문제였다.
‘자신감이 넘쳐서 나름 숨겨 둔 한 수 같은 게 있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완전히 꽝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고유 특성이 좀 쓸 만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별하지는 않았다.
모든 스킬 혹은 마력을 담은 공격에 저항력을 갖춘다 한들, 방패밖에 되지 못한다.
헌터답지 않게 스킬도 몇 개밖에 익히지 못한 거 같고.
그중에 무기술 관련 스킬이 한 개도 없다는 것 또한 그 약함에 한몫했다.
‘고블린 킹에게 도달하는 건 늦지 않겠다만, 앞지를 수도 없겠지.’
그럼 그에 맞춰서 대비해야 하는 법.
지쳐서 땅에 반쯤 주저앉은 이성훈을 뒤로하고, 이하연에게 대화를 청했다.
“잠깐 안에 들어가서 대화할 수 있을까요.”
거리에 널린 폐가 중 한 곳을 가리키면서 물어보니 이하연이 흠칫하며 입을 열었다.
왜 그런 것인지 몰라도 잔뜩 긴장한 기색으로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지, 지금 둘이서요?”
“예, 지금이 제일 얘기하기 좋을 거 같아서요.”
“그, 지금은 좀 곤란할 거 같은데…….”
“지금이 아니라면 시련이 더 진행되니 어쩔 수 없습니다.”
“…….”
어째서인지 이하연의 낯빛이 어둡게 변했지만 여기서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부터 말하게 될 내용은 이성훈에게 민감할 테니 말이다.
뭐, 분위기를 보면 무슨 아이템이라도 갈취당하는 것으로 착각한 거 같다만…….
‘들어가서 천천히 설명하면 될 일이지.’
제 역할을 하는 팀원에게 그런 요구를 할 정도로 인간성을 버리지는 않았다.
적어도 멀쩡한 정신이 박힌 사람에게 그렇게 굴지는 않을 것이다.
음, 이성훈 같은 이들이라면 모르겠지만.
곧 말뜻을 알아챘는지 이하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오래는 있을 수 없을 거예요.”
“압니다, 시련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으니까요.”
대화는 딱 거기까지였다.
이하연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폐가로 걸어갔다.
나도 그 뒤를 따라서 폐가로 들어섰고, 이내 폐가의 거실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제야 나는 쭉 닫고 있던 입을 열어서 본론을 꺼냈다.
“이하연 씨, 만약에 경쟁자와 마주치게 된다면 보조 마법은 제게 써 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이기적인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경쟁자와 싸우게 되면 보조 마법의 버프 효과는 제가 받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그러자 이하연이 당황해서는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다른 일로 폐가로 오자고 하신 거 아닌가요?”
다른 일이라면 아이템 갈취를 뜻하는 거겠지.
“그런 거 아닙니다.”
양심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남의 아이템을 뺏을 정도로 타락하지는 않았다.
사실, 아이템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시점도 아니고.
흑철 단검이나 암살자의 망토도 있으니, 크게 아이템에 연연할 상황은 아니다.
“…….”
내 말에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은 이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크게 착각했다는 걸 알았는지 조금이지만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흠흠.”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이내 평정심을 되찾은 이하연이 조심스레 말했다.
오해였다는 걸 알아서 그런지 목소리가 한층 더 부드러워져 있었다.
“……알겠어요. 다만, 그럼 저희는 잠깐 버티는 것밖에 안 될 거예요.”
어느 정도 예상하던 바였다.
“알고 있습니다. 민첩이 상승하는 보조 마법만 걸어 주시면 됩니다. 그럼 그 이후부터는 제가 알아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마도 이성훈과 이하연만으로는 경쟁자들과 싸우기 힘들 테니 내가 이성훈을 대신해서 버프를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야 했다.
살인, 그것도 처음으로 다른 도전자와 함께하는 시련임에도 불구하고 뜻이 점점 확고해진다.
이성훈은 도움이 되지 않고 이하연은 후위에 제일 적합한 직군.
즉, 이 중에서 전위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은 나밖에 없다.
‘그럼 내가 버프를 받아서라도 더 경쟁자를 압박해야 하는 게 맞겠지.’
적어도 그게 지금으로서는 최선이리라.
물론 이성훈이 이걸 알고 있으면 가만히 있을 리 없겠지만…….
‘이성훈은 여기에 없으니, 뭐.’
지금 이성훈은 고블린들의 시체 옆에 주저앉아서 한탄이나 하고 있었다.
이 폐가에서 오가는 대화를 엿듣는 기척 따위도 전혀 없으니 망설일 것도 없었다.
“이성훈 씨가 버티는 동안, 제가 최대한 많은 경쟁자를 처리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뒤에서 보조 마법만 걸어드리면 되는 거겠네요.”
“예, 공격형 마법은 힘드시면 준비하실 필요는 없고, 저는 민첩 버프만 주면 됩니다.”
“다른 버프까지 드릴 수 있는데, 그건…….”
“민첩 이외의 버프는 이성훈 씨에게 주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후위를 보호하는 건 이성훈 씨의 역할이니까요.”
방패인 이성훈이 무너지면 나도 큰일이 나기에 버프는 적당히 독차지해야 했다.
물론 그렇게 이성훈을 굴리고 나면 뒷감당이 안 될 수도 있지만…….
그것도 어지간한 경우만 아니라면 크게 뭐라고 할 일은 없을 것이다.
“나중에 이성훈 씨가 항의한다고 해도, 제가 제지하겠습니다.”
한 번 협박했던 만큼, 그때도 제대로 먹혀들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이하연은 멍하니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해 주시는 거죠? 그냥 신경을 안 쓰셔도 될 텐데……?”
글쎄다, 나도 사실은 손익을 잘 따지는 편이 아니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했다.
어쭙잖게 적을 늘리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그리고 늘려야 하는 적은 이성훈 같은 부류고, 그렇지 않은 부류는 최대한 마찰을 빚지 않는 게 옳은 판단이었다.
이하연은 꽤 괜찮은 팀원이었기에 이렇게 배려해 주는 것이고.
물론 그렇게 속물적인 생각을 다 내뱉지는 않고 적당히 미화해서 내보냈다.
“그냥 같은 팀원한테 해드리는 배려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적절한 대답이 되었던 것인지 이하연도 더는 깊게 물어보지 않았다.
“…….”
그저 슬며시 웃음을 지을 뿐.
이전보다 긴장한 기색이 좀 옅어진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이대로 쭉 불편한 분위기를 유지했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신경이 쓰였을 테니까.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하연 씨.”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뻗으니 이하연이 악수에 응했다.
“네, 저도 잘 부탁드릴게요.”
이제야 제대로 팀이 된 느낌이었다.
***
바깥으로 나가서 이성훈에게 합류하니 그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혼자 남아 있던 사이에 나랑 이하연이 사라졌단 걸 눈치챈 모양.
“……뭐야, 다들 어디에 갔다 왔었나?”
“잠깐 볼일이 있어서 움직였었습니다.”
물론 그마저도 툭 내뱉듯 답하니 더 물음을 건네지도 않았다.
그저 무슨 일인지 몰라서 찝찝하다는 듯 고개를 돌릴 뿐.
“…….”
이성훈이 조용해지는 걸 보며 나는 이내 입을 열었다.
“그럼 됐습니다. 다시 출발하죠.”
몇 번 고블린들과 싸우고 나니 그만큼 팀플레이가 원활해진 상황.
출발하자고 하니 칼같이 일어서서 진형을 갖춘 채 성채 도시의 내부로 향했다.
탐색 능력에 포착됐던 고블린 킹이 있는 구역으로.
걸음마다 온몸을 긴장시키며 최대한 기척을 잡으려고 했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꽤 빠르게 걸음을 옮기고 있음에도 고블린이 한 마리도 안 나오고 있었다.
‘분명히 아까는 주기적으로 고블린이 나왔는데…….’
처음은 성문에서, 그다음은 성채 도시의 입구에서, 그리고 방금은 도시 내부에서.
주기적으로 고블린들이 출현했고 그 직군과 숫자도 점점 늘어났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다 거짓이었다는 듯 고요하다.
물론 도시의 다른 구역에서 조금씩 소란이 일어나는 거 같긴 해도 여기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의문은 성채 도시의 중심부에 도착했을 때 풀렸다.
“이건, 다른 도전자들이 지나간 거 같네요.”
“미친, 우리보다 더 빠르게 다녀갔다고?”
“…….”
졸졸 물이 흐르는 분수대를 둥둥 떠다니는 고블린의 시체들이 눈에 밟힌다.
중갑을 착용한 위협적인 용모의 고블린이 널브러진 광경.
체격도 장비도 예사롭지 않은 놈들이지만 다 죽어 있다.
“하지만 죽은 지 그렇게 오래된 거 같지 않습니다.”
나는 길바닥에 쓰러진 고블린의 몸을 한 번 만져 보며 그렇게 말했다.
이런저런 요소들을 따져볼 것 없이 단적인 정보만으로도 깔끔하게 답이 나왔다.
‘온기가 남아 있으니 오래된 흔적은 아니지.’
그래, 분명히 이건 방금 지나간 거나 다름없는 흔적이다.
즉, 거리는 그렇게까지 차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간발의 차로 다른 도전자들이 먼저 지나갔을 뿐.
“아마도 이 앞에 고블린 킹이 있는 곳에 돌입했겠군요.”
그 말에 무게를 실어주듯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누군가 고블린 킹의 첨탑에 침입했습니다.」
「고블린 킹이 이변을 감지하여 다른 고블린들이 중앙으로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고블린 킹이라, 얼마나 강할지 몰라도 더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다.
다른 고블린들이 몰려들면 그때부터는 더 곤란해지게 될 테니까.
“다들 전투에 대비하세요.”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저희도 재빠르게 뒤로 붙어서 싸울 겁니다.”
고블린들만 상대하는 시기는 끝났다.
이제 진짜로 도전자 대 도전자로 싸울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