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82
180. 이레귤러 (1)
신성 추출.
개별적인 신성력을 구축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전부터 사령을 흡수할 때마다 나는 사령에 깃든 신성을 추출해서 흡수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단언컨대 오늘처럼 이렇게 많이 신성을 추출해 본 날은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신성 추출 성공.」
「신성 추출 성공.」
「신성 추출 성공.」
현재 내 망막에는 신성을 추출했다는 메시지가 끝도 없이 떠오르고 있었으니까.
“이건 무슨 신성 공장도 아니고…….”
마치 기계로 찍어 내는 것처럼 엄청나게 수확되는 신성력에 나는 피식 웃었다.
현재 나는 [암흑 지대]에 있는 마물들을 전부 모아서 죽이는 중이었다.
뭐, 신성 추출로 들어오는 양이 그리 많지는 않다마는…….
티끌 모아서 태산이라고.
이 짓도 하다 보니 이제는 일종의 작업처럼 느껴질 정도이고, 어느새 심장에도 신성력이 상당히 차올랐다.
‘여태까지 마물들로 모은 신성력만 따져도 예비 사도 수준은 될 정도네.’
무더운 여름날에 몰래 농가에 있는 수박을 서리해서 먹는 기분이라 해야 하나?
마신을 섬기는 이들이 키웠을 달콤한 과실을 내가 이렇게 날로 먹는다고 생각하니 만족감이 두 배로 부푸는 것 같았다.
물론…….
“아, 아아아……! 내! 내 걸작들이이이이……! 모든 마의 왕이시여! 부디 통촉해 주시옵소서!!”
귀찮게 카르베트는 뼈로 이루어진 머리통을 대지에 쿵쿵 박으며 내게 애걸했다.
애지중지 키운 마물들을 전부 살려 달라고.
하지만 그래도 자기 목숨이 아까운 건 아는지 진짜로 방해하지는 않았다.
그저 주위에서 저렇게 시끄럽게 울어대는 게 전부일 뿐이지.
하지만 나는 카르베트의 울부짖음에 냉정하게 대꾸했다.
“시끄러워. 어차피 이놈들도 언젠가는 전투에 쓰일 놈들이잖아. 소모 자원에 불과한 주제에.”
카르베트도 어차피 전투에 내보내려고 마물들을 길들인 것일 터인데…….
어차피 전투에서 죽든지 내게 사령으로 흡수되어 죽든지 그 결과는 마찬가지나 다름없다.
그러니 죄책감 같은 건 없었다.
그리고.
“울고 있는 척하지 마. 어차피 눈물도 흘릴 수 없는데 왜 그러는 건데.”
덤으로 살점도 붙어 있지 않은 저 리치에게 따끔한 일침도 날려 줬다.
누군가 본다면 장례식인 줄 알고 깜짝 놀랄 수준으로 오열하니 어이가 없었다.
“가짜 울음 한 번 더 내면 진짜로 죽일 거야.”
“……끄, 끄으윽. 끄흐으.”
“그 울음 참는 거 같은 소리도 마찬가지고.”
“…….”
이내 조용히 바닥에서 부들부들 몸을 떨게 된 카르베트를 보며 나는 혀를 찼다.
‘하여간, 쓸데없이 집착이 많기는…….’
이게 전부 헛된 욕심 탓이라는 생각이 드니 마물들을 베어 가는 움직임에도 박차가 가해졌다.
카르베트에게 남은 쓸데없는 욕심을 지워 주자는 선량한 마음에 나도 참 감정이 풍부하다는 걸 깨달았다.
설마하니 적에게도 이렇게 자비를 베풀다니…….
「미궁 업적 ‘어둠에 물든 마음(Epic)’을 달성했습니다.」
「미궁 점수 +10점을 획득합니다.」
「미궁 업적 ‘자비 없는 학살자(Epic)’를 달성했습니다.」
「미궁 점수 +10점을 획득합니다.」
「미궁 업적 ‘강자의 권리(Epic)’를 달성했습니다.」
「미궁 점수 +10점을 획득합니다.」
심지어 이렇게 카르베트를 배려해 주니 생각하지도 못했던 보상까지 나타났다.
‘이것도 업보인 거겠지.’
머지않아서 죽을 적마저도 배려해 준 선행이 미궁 업적을 달성한 것이다.
그에 나는 싱긋 웃음을 지었다.
‘이대로면 400점을 모으는 것도 금방이겠어.’
이래서 사람은 선행을 베풀며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미궁 업적 ‘선의 아닌 선의(Rare)’를 달성했습니다.」
「미궁 점수 +4점을 획득합니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그럴 것이다.
***
신성 추출 작업은 몇 시간이 지나자 끝을 맺게 됐다.
“이제야 끝났네.”
이 몇 시간은 정말이지 아주 보람차다고 할 수 있었다.
참고로 이건 정신적인 부분에서 보람차다는 게 아니라 무력적인 부분에서 보람차다는 것이다.
‘스킬은 10개 넘게 얻었고 능력치도 전성기 수준의 40% 정도까지는 되찾았어.’
신성 추출 작업에 네크로맨시의 사용은 필수적이므로 능력치는 물론이고 스킬까지 습득하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이 네크로맨시 자체의 등급도 상승해서 이제는 B급으로 격이 올라갔다.
‘이제는 권능 흡수도 가능하다는 거지.’
물론 여러 조건을 통해서 권능을 흡수할 수 있는 것이지만…….
거목 미궁에 들어오며 엄청나게 약해졌으니 얼마든지 권능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뭐, 늑대 마물 같은 것들에게서는 권능을 얻지 못했다지만, 다른 마물은 다를 터이다.
예를 들자면, 리치라거나.
“…….”
나는 눈동자를 살짝 돌려서 망연자실하는 카르베트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그는 내게 굴종했으니, 연명하는 게 가능할 것이라 여기겠지.
실제로 나도 카르베트에게 살려 줄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쭉 살려 주겠다는 말은 없었으니, 뭐.’
머지않아서 얻을 수 있을 권능을 생각하니 살려 줄 생각도 달아났다.
애초에 여태까지 수십 명을 죽였을 저 삿된 존재에게 무슨 자비를 주겠는가?
‘사실 이 정도로 배려해 준 것도 감사해야지.’
이내 내가 조용히 살기를 갈무리하고 있자니, 리하트라고 불린 흡혈귀가 동료들을 데리고 왔다.
그들은 여태까지 습득했던 장비들을 대부분 버리고 새로운 아이템들로 갈아 끼운 상태였다.
“마, 마왕님의 분부대로 성 내에 있는 모든 보물을 동료분들께 드렸습니다…….”
원래 게임에서도 적진에 있는 아이템들은 전부 수습하듯이…….
이렇게 성까지 왔으니 성 안에 있는 모든 보물을 챙겨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에 나는 리하트에게 명령을 내려서 팀원들을 제대로 무장시키게 했다.
‘상태를 보니 제법 좋은 아이템들을 얻을 수 있었던 거 같네.’
캐서린 베넷은 아예 신이 나서는 내게 달려와서 웬 보석들이 종류별로 박힌 지팡이를 보여 줬다.
“이것 좀 보세요! 이거! 이 지팡이로 마력에 여러 가지 속성을 부여할 수 있어요! 어때요!?”
마치 공원에서 오래된 테니스볼을 주워 온 강아지 같다고 해야 하나?
칭찬을 구하는 거 같기도 한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고는 대충 대답했다.
“그것참 잘됐네요.”
“잘된 수준이 아니에요! 이것만 있으면 어느 마법이든 상성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요!”
“그렇습니까.”
“당신에게도 엄청난 도움이 될걸요? 나중에 제가 이게 얼마나 좋은지 보여드릴게요!”
캐서린 베넷은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살짝 아이 같은 면모도 조금 있었다.
모델처럼 쭉쭉 뻗은 장신에 어리광을 피우듯 말하는 걸 보니 갭이 있어서 실소가 툭 터질 정도.
물론 그렇게 캐서린 베넷과의 대화를 즐기는 것도 잠시였다.
“……성윤 씨, 그런데 리치는 왜 저기에서 저러고 있는 겁니까?”
붉게 빛나는 로브를 입은 오춘석이 조용히 다가와서는 그렇게 물었고.
“힘든 척을 하는 겁니다.”
그에 나는 곧장 카르베트가 왜 저러고 있는지 직설적으로 말해 줬다.
“저러고 있으면 자비를 베풀 줄 아는 것 같습니다.”
“어, 음……. 그렇군요……. 왜인지 많이 슬픈 거 같은데…….”
“아뇨. 저거 전부 연기일 겁니다.”
“그, 그런가요? 제가 보기엔 마치 진짜 같은데 신기하네요.”
“제가 확인시켜드릴 수 있습니다.”
어차피 곧 이동할 시간이니, 카르베트의 안내는 필수였다.
이내 나는 주저앉아있는 카르베트에게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똑바로 서라. 카르베트. 아래층으로 가는 계단으로 안내해.”
“……바, 바로 5층으로 가시겠다는 겁니까? 계층 돌파 조건을 바꾸려면 시간이 있어야─.”
“너처럼 게을러터져서는 베르하그 경이란 놈의 뒤를 따라갈 뿐이라는 걸 모르겠나?”
“해, 해내겠습니다! 부, 부디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바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러지.”
그저 몇 마디 말을 건넸을 뿐인데 카르베트는 어느새 빠릿빠릿해져 있었다.
즉시 분주하게 허둥지둥 안내를 준비하는 카르베트를 보며 나는 피식했다.
“이것 좀 보십시오. 슬픈 거 없이 잘 움직이잖습니까. 전부 연기인 게 확실합니다.”
하지만 오춘석은 아무런 말도 없이 입을 닫았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김승훈이 한마디를 건넸다.
“이것도 경이롭다면 경이로울 지경이군…….”
물론 그 말에 굳이 대답해 주진 않았다.
***
검은빛을 띠는 성채 안으로 카르베트를 따라가니 이내 숨겨진 장소가 나타났다.
“……여기가 바로 5층으로 갈 수 있는 층계입니다.”
벽돌로 촘촘히 메꾸어진 바닥을 들추어내니 다음 계층으로 갈 수 있는 입구가 등장한 것이다.
카르베트는 몸을 움츠리며 내 눈치를 보았다.
“하, 하지만 계층 돌파 조건이 아직 해제되지 않아서 조금 기다려 주셔야 합니다!”
아마도 바로 아래층으로 갈 수 없다는 사실에 내가 화를 내면 어쩌나 싶어서 저러는 거 같은데.
카르베트의 걱정은 쓸데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괜찮아.”
애초에 그에게 계층 돌파 조건을 바꾸게 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굳이 기다릴 필요는 없으니까.”
그제야 카르베트는 흠칫하며 재빨리 입을 달싹였지만…….
“……서, 설마! 자, 잠깐만! 이럴 순 없─.”
그의 말이 이어지기도 전에 출수된 삭월의 검이 카르베트의 머리통을 깨부쉈다.
콰지직!
「하이 리치 ‘카르베트’의 사령을 흡수했습니다.」
「숙련도가 21.1% 상승합니다.」
카르베트의 사령은 4층에서 죽인 그 어느 마물보다도 숙련도를 많이 올려 줬다.
심지어…….
「사용자보다 강한 사령을 흡수하여 권능 추출의 판정이 시작됩니다.」
여러 종합 조건을 만족했는지 카르베트에게 권능 추출의 효과가 발동했다.
「판정 성공.」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듯이…….
「하이 리치 ‘카르베트’의 사령에 권능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사령에서 권능을 추출합니다.」
굴복했을지언정 카르베트 또한 4층을 지키는 보스 몬스터로 군림하기엔 충분했다는 뜻.
「권능 ‘망령 지배(B+)’가 사용자 한성윤의 영혼에 각인됩니다.」
그렇지만 나는 카르베트의 사령을 바로 흡수하지 않고 이어서 혈천마검까지 이어서 휘둘렀다.
촤아악!
카르베트의 옆자리를 지키는 리하트라는 흡혈귀까지 해치우기 위해서였다.
신성을 공장처럼 추출해내며 능력치를 엄청나게 올려서 그런지 리하트는 단말마조차 내지 못한 채 죽었다.
「흡혈귀 ‘리하트’의 사령을 흡수했습니다.」
「숙련도가 9.7% 상승합니다.」
의 신화를 키고서 죽인지라 재생하지도 않았고.
전투를 질질 끌 것도 없이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하는 게 가능했다.
“진짜로 일말의 자비도 없네요…….”
캐서린 베넷은 그 광경을 지켜보더니 이내 놀랐다는 듯 말했다.
“당연한 겁니다. 애초에 마물이고, 저희를 죽이려 했으니까요.”
“따지고 보자면 그렇긴 한데 왜인지 당신이 말하니 조금은…….”
“?”
“……아무것도 아니에요. 보아하니 말해 줘도 모를 거 같네요.”
“그렇다면 됐습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캐서린 베넷이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이제 아래로 내려갑시다.”
이제 얻을 건 전부 얻었으니 아래층으로 내려가야 할 시간이었다.
「거목 미궁 4층, [암흑 지대]를 내려갈 자격을 얻었으므로 보상이 주어집니다.」
「[아이템 · 권능 · 스킬] 중 두 가지를 선택하여 능력을 둘 복구할 수 있습니다.」
마물들에게서 신성을 뽑아내며 무슨 능력을 복구할지는 미리 정해 뒀다.
「[아이템 · 권능 · 스킬] 중 [권능] 선택했습니다.」
「봉인된 권능 중에서 되찾을 것을 고르십시오.」
첫 번째로 되찾을 능력은 10개도 넘게 얻은 스킬을 처리할 권능이었고…….
「고유 권능 ‘스킬 합성’이 봉인에서 해제됩니다.」
두 번째로 되찾을 능력은 조금 고민되긴 했지만, 안전함을 확보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아이템 · 권능 · 스킬] 중 [스킬] 선택했습니다.」
「봉인된 스킬 중에서 되찾을 것을 고르십시오.」
여러 방어적인 스킬 중에서도 이게 제일이라고 생각했다.
「스킬 ‘최후의 저항’이 봉인에서 해제됩니다.」
최후의 저항.
남궁혁과의 일전을 시작으로 여러 위기에서 나를 구해 준 전적이 있는 스킬이었다.
뭐, 재사용 대기 시간도 길고, 고작 한 번에 한정하여 치명상을 없던 셈으로 치는 것이지만.
‘그걸로도 충분하지.’
거목 미궁이 신들까지 개입하는 이벤트라는 걸 알게 된 이상에는 필수 스킬이나 다름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여러 신이 얽힌 만큼 서로 이권 다툼을 하느라고 힘을 과하게 소비할 테니까.
거목 미궁에 들어와서 본 어둠의 신에게서 온 메시지도 이 스킬을 선택하게 한 것에 한몫했다.
「보유한 사령을 전부 사용하여 영구적으로 능력치를 상승시킵니다.」
「근력이 8 상승했습니다.」
「민첩이 7 상승했습니다.」
「체력이 6 상승했습니다.」
「마력이 9 상승했습니다.」
「내구가 9 상승했습니다.」
나는 능력을 복구하자마자 카르베트와 리하트의 사령을 흡수해서 능력치로 전환했다.
괜히 나중에 공격을 허용해서 네크로맨시의 보호막으로 소모하게 된다면 아까울 테니까.
그리고…….
「하이 리치 ‘카르베트’가 보유하고 있던 스킬 중 한 가지를 흡수합니다.」
“이게 이렇게 된다고……?”
생각 외의 스킬 흡수가 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