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84
182. 이레귤러 (3)
어느새 철옹성 같았던 요새 도시는 반파된 상태였다.
「미궁 업적 ‘도시의 종말(Epic)’을 달성했습니다.」
「미궁 점수 +10점을 획득합니다.」
도시 곳곳에서 짙은 흑연(黑煙)이 물에 검은 물감을 풀어 놓은 것처럼 이리저리 흩어지고…….
“끄아아아……! 재, 재생이 안 돼……! 제, 제기랄! 왜 재생 능력이 갑자기 사라진 건데!?”
“큭! 저쪽에 재생을 막는 능력이 있다! 후퇴하라! 증원을 데리고 와야 이길 수 있어!”
“뭐, 뭐냐고……. 저 미친 괴물은……. 저런 걸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흡혈귀 혹은 늑대인간 같은 마족들이 고통에 연신 울부짖으며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 처참하기 짝이 없는 광경을 보며 나는 입맛을 다셨다.
‘조금은 아쉽네.’
이전에 탑에서 각성했던 번개 속성의 마력 특질이 있었다면 이것처럼은 되지 않았을 터이다.
아마도 검붉은 천둥이 도시를 좀 더 크게 파괴했겠지.
하지만 마력을 어느 정도는 보존할 필요성도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이게 최선이다.
검염으로 출력 범위를 늘리는 것에는 제한이 있고, 파천 스킬은 애초에 출력 범위보다는 파괴 능력을 올리는 것이니…….
이것보다 좋은 결과물을 낼 수는 없었다.
‘아쉽지만 빠르게 암흑 군주에게 가는 수밖에 없겠네.’
팀원들을 보호하느라 사용해 둔 수호자라는 스킬로도 마력이 이미 뭉텅이로 깎이는 중이다.
적들이 사용해 준 마기를 마력으로 전환한 덕분에 이렇게 멀쩡할 수 있을 것일 뿐이지.
하지만 이마저도 오래가지는 못한다.
「흡혈귀 ‘리그나르’의 사령을 흡수했습니다.」
「숙련도가 1.7% 상승합니다.」
「늑대인간 ‘미르네’의 사령을 흡수했습…….」
「숙련도가 1.1% 상승합…….」
「천익족 ‘리그나르’의 사령을 흡수…….」
「숙련도가 1.4% 상승…….」
그러니…….
「다수의 사령을 사용하여 마력을 보충합니다.」
우선은 죽은 적들의 사령을 흡수해서 이 미친 마력 소모를 버텨 낼 심산이었다.
‘사령을 소모해서라도 마력은 온존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암흑 군주 같은 강적은 상대할 수도 없을 테니까.
훙─!
나는 바로 땅을 박차고는 허공답보의 묘리를 응용해서 요새 도시 중심지에 있는 성채로 이동했다.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족들이 불러온다는 증원이 올 때까지는 나를 막아설 이들은 아무도 없으므로.
착.
성채 옥상에 착지한 나는 성채 내부로 갈 수 있는 입구를 찾았지만…….
“이쪽에 길은 없었나…….”
아쉽게도 바로 성채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뭐, 어차피 길이 없으면 천장을 박살내고 아래로 내려가면 되니 상관은 없었다.
그런데.
“어?”
터어엉……!
「특수 권능 ‘암흑 결계’에 의해서 성채에 가해지는 모든 피해가 68% 경감됩니다.」
생각처럼 성채의 천장은 쉽게 부술 수 없었다.
“피해 경감…….”
어이가 없을 정도로 좋은 권능이다.
‘귀찮게 해 놨네.’
정문으로 들어가면 틀림없이 귀찮아지게 될 거 같아서 다른 길로 가려고 했는데…….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성채에는 피해 경감이라는 말도 안 되는 방비가 갖춰져 있었다.
아마도 보통은 이 방비를 뚫지 못하고 증원에 당하겠지.
하지만…….
「스킬 ‘파천破天’이 활성화됩니다.」
내게는 이 미친 권능을 뚫어 낼 능력이 존재했다.
뭐, 피해 경감 같은 권능을 무시하는 것이므로, 파천에 소모되는 마력도 엄청났지만…….
꽈아아아앙─!
그 대가로 성채 내부로 진입할 길을 열어 내는 데 더는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되었다.
‘파천을 복구하길 잘했네.’
그에 나는 흡족함을 느끼며 뻥 뚫리게 된 성채의 천장으로 낙하했고…….
“그, 그대는 대체 누구지……?”
이어서 웬 옥좌 같은 자리에서 퇴폐적인 느낌을 주는 늑대 귀를 단 마족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안심해도 좋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듯 구는 암흑 군주에게 나는 싱긋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단지, 길을 지나가던 선량한 도전자일 뿐입니다.”
그저 지나가던 선량한 강도이니 안심하라고.
***
「미궁 업적 ‘초대받지 않은 손님(Epic)’을 달성했습니다.」
「미궁 점수 +10점을 획득합니다.」
적막이 감도는 것도 아주 잠시에 불과했다.
암흑 군주는 얼빠진 얼굴로 나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이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미친놈…….”
최근에는 하도 자주 들은 소리라서 크게 감흥은 없었다.
“몇십 년 만에 도시에 도전자들이 찾아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생각보다 심각하군.”
어느새 암흑 군주의 얼굴에는 분노의 감정이 차오른 상태였다.
“이쪽에 확실히 대가만 건네주면 아래층으로 갈 수 있게 해 준다고 했을 터인데?”
마치 서로 상생할 수 있는데 이 관계를 내 욕심으로 망쳤다는 어조였다.
‘그래, 확실히 그렇게 말하긴 했었지.’
그렇지만 이건 나도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는 소리였다.
“뭘 믿고 마족에게 대가를 줘야 한다는 건지 모르겠는데.”
“…….”
“주력 무기를 전부 갈취한 후 거래에 응하지 않고 우리에게 덤빌 수도 있잖습니까.”
“……아이템을 바쳐도 크게 바라는 건 없고, 그저 작은 아이템이라도 받아들일 용의가 있었다.”
“진짜로?”
“그래! 고작 아이템 하나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이렇게 성채까지 쳐들어오는 놈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흠…….”
“몇십 년 전의 도전자들도 이런 횡포는 부리지 않았다! 그대는 긍지 높은 마족들을 천박한 마물들로 생각하기라도 하……!”
암흑 군주의 말이 전부 이어지기 전에 그 말을 끊고 나는 조소를 날렸다.
“긍지 높은 마족?”
뭔가를 착각해도 단단히 착각한 거 같은 태도였다.
“그럴 리가.”
그도 그럴 것이…….
“마족에게 긍지라는 게 있을 리 없잖습니까.”
마족 중에 긍지 높은 자는 없고 선량한 자도 없다는 걸 암흑 군주는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친절히 마족에 대해서 알려줘도 암흑 군주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여태까지 수많은 도전자를 만났지만, 너처럼 미친놈은 처음이다.”
“그렇습니까.”
“그러니 짐도 너 같은 놈이 더 설치지 못하게 전력을 다해 주마.”
“전력으로 싸우겠다, 라…….”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그도 그럴 것이…….
「신화 가 활성화됩니다.」
「모든 능력치가 +17 상승합니다.」
「특수 버프 이 활성화됩니다.」
「사악한 존재에게 입히는 피해량이 100% 상승합니다.」
저쪽이 전력으로 와 준다면 나도 더 강해질 수 있으니까.
***
를 활성화시킨 직후에 갑자기 암흑 군주에게 마기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여태까지 잘 갈무리를 해 둔 암흑 군주의 마기가 순식간에 장내를 가득하게 채우자…….
“마족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악의 싹을 이 자리에서 근절시켜 주마……!”
왜인지 모르게 결의에 차오른 암흑 군주의 주위에 검은 구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저건 뭐지?’
암흑 군주에게서 느껴지는 마기보다도 그의 주위를 맴도는 검은 구체가 좀 더 위협적이었다.
마기로 이루어진 게 아닌 걸 보니 특수한 권능인 거 같은데…….
‘조심할 필요는 있겠어.’
우선은 이쪽에서 선제공격을 가하는 것보다는 상대방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아야 할 거 같았다.
그래야 저 검은 구체가 얼마나 위험할지도 알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상대도 그러한 의도를 알아챈 것인지 직접 손을 쓰지는 않았다.
후우웅!
암흑 군주의 주위를 맴돌던 검은 구체들이 탄환처럼 재빠르게 쏘아진 것이다.
그에 나는 바로 혈천마검에 검기를 두른 채 휘둘렀고, 이내 검은 구체는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히 잘려 나갔다.
서걱!
그리고 그게 문제가 되었다.
화아악!
「권능 ‘마도옥(魔道玉)’에 의해서 스킬 ‘일격 집중’이 일시적으로 봉인됐습니다.」
검은 구체는 잘리자마자 연막탄처럼 터지더니 이내 스킬 하나가 봉인됐다.
물론 크게 중요한 스킬은 아니라서 손실이 엄청나지는 않았다지만…….
‘설마 봉인 능력이 있을 줄이야.’
저 검은 구체에 닿으면 힘을 뺏긴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절로 침음이 흘러나왔다.
그럴 만도 했다.
현재 암흑 군주의 근처에 있는 검은 구체는 어림잡아도 두 자릿수는 되는 상태이니…….
검은 구체들에 전부 맞으면 이론상 내가 가진 능력이 10개 이상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동료들을 보호해 주는 수호자의 스킬이 사라지게 된다면 최악 중의 최악의 상황이 되겠지.
‘정면 승부 자체가 애초에 무리라는 건가…….’
정말이지 쉽지 않은 강적이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존재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내 나는 이 절망적인 상황의 타개책을 어렵잖게 떠올릴 수 있었다.
“이렇게 추잡하게 싸우겠다면 나도 치졸해져야지.”
바로 암흑 군주에게 눈웃음을 지어 주고는 몸을 돌려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쾅!
애초에 침입자가 올 줄 몰랐는지 어전의 문은 발로 차는 정도로도 쉽게 열렸고.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경신법까지 운용해가며 재빠르게 도주로를 달려갔다.
“뭣……! 지, 짐을 놔두고 어디로 가는 것이냐! 어리석은 도전자여, 돌아오거라……!”
애석하게도 암흑 군주에게는 이동기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는지 도주를 막지는 못했다.
뭐, 애초에 마도옥 같은 미친 권능이 있는데 도주기나 도주 방지 기책 같은 게 있으면 그건 그것대로 사기겠지.
‘이렇게 된다면 생각보다 빠르게 계획을 실행할 수 있겠어.’
그렇게 성채 외부로 달려가니 진형을 갖춘 마족들이 나타났다.
아무래도 이전에 증원을 불러온다고 했었던 이들인 거 같은데…….
“치, 침입자다! 모두 전투 준비! 오늘 우리는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 싸운다!”
“겁먹지 마! 적은 고작 하나다! 그것도 힘이 봉인된 도전자라고! 수적 우세로 몰아가라!”
“수많은 마족을 유리한 죗값을 이 자리에서 치러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전부 힘을 내라!”
운이 참 좋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직접 찾으러 갈 생각이었던 마족들이 이렇게 바로 나타나 주다니…….
‘이게 웬 굴러온 떡이야.’
이쯤 되니 행운의 여신이 내게 미소를 짓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
「권능 스킬 ‘바람의 은총’이 활성화됩니다.」
「모든 속도가 80% 상승합니다.」
「현재 스킬 중첩 진행도 – [8]」
파아앙─!
몸을 권능 스킬로 가속하며 마족들에게 달려들었고, 이내 쌍검이 휘둘러지자 마족들이 속절없이 죽어 나갔다.
촤아악!
물론 자잘한 저항은 있었지만, 크게 신경을 쓸 것은 없었다.
마기를 사용한 권능은 전부 만마지왕으로 흡수할 수 있었고, 그 이외의 스킬은 위협조차도 되지 않았으므로.
「흡혈귀 ‘아이오네’의 사령을 흡수했습니다.」
「숙련도가 0.9% 상승합니다.」
「늑대인간 ‘다이크로’의 사령을 흡수했습…….」
「숙련도가 0.7% 상승합…….」
「천익족 ‘르네르나’의 사령을 흡수…….」
「숙련도가 0.8% 상승…….」
전투를 끝내자마자 나는 즉각 주위에 널브러진 사령들을 흡수했고.
「권능 ‘혈천심공’이 강하게 활성화됩니다.」
이어서 혈천심공으로 대량의 혈액까지 남김없이 흡수해서 체력 그리고 마력을 보충했다.
아니…….
쿠구구─!
몸에 넘쳐흐르는 붉은 증기는 마력을 보충했다는 정도를 진작에 뛰어넘었다.
“흐으으…….”
잠깐이라도 집중을 멈추면 이성이 끊어질 거 같은 힘의 폭주에 숨결이 거칠어지는 순간이었다.
“이 비겁한 자식이……! 도망가지 마라! 정정당당하게 맞서 싸우란 말이다……!!”
암흑 군주의 외침이 귓가로 들려온 동시에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뭐, 아무래도 이곳까지 달리기 하나로 나를 쫓아온 거 같은데…….
“이, 이게 대체 무슨……!?”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이미 그를 지켜 줄 마족들은 내 힘의 양분이 되어 준 후니까.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우자고?”
혼란에 잠식된 암흑 군주를 바라보며 나는 입꼬리를 초승달처럼 휘었다.
“그건 내가 할 말이지.”
그리고…….
쿠구구구구─!
신체에 넘쳐흐르는 혈천심공의 사이한 기운을 아낌없이 방출한 순간.
“이런, 말도, 안 되는…….”
암흑 군주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더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에 나는 이죽거리듯 웃음기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도망치지 마라, 암흑 군주. 그렇게 겁먹지 말고 내게 맞서라.”
이제…….
“그게 정정당당하다는 거잖아?”
입장이 완전히 역전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