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85
183. 이레귤러 (4)
암흑 군주와의 전투는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혈천심공으로 차오른 체력이나 마력이 엄청난 덕분도 있지만…….
이 결정적인 승기를 붙잡게 된 것은 마족들의 사령을 통해서였다.
「사령이 사용자에게 가해진 피해를 흡수했습니다.」
「흡혈귀의 사령이 소멸했습니다.」
「천익족의 사령이 소멸했습…….」
「늑대인간의 사령이 소멸했…….」
마도옥(魔道玉).
상대에게 닿자마자 스킬 중 하나를 무작위로 봉인시키는 권능이 네크로맨시에 의해서 무용지물이 됐으니까.
“말도 안 돼……! 대, 대체 그 능력은 무어란 말이냐! 어째서 짐의 마도옥이 사라지는 것이냐!”
뭐, 암흑 군주는 네크로맨시의 보호 기능에 크게 경악했지만, 내게는 신기할 게 없었다.
‘이거 전부 능력치로 바꿀 수 있는 건데……. 아깝네…….’
말하자면 등가교환 같은 이치라고 해야 하나?
영구적으로 능력치를 늘릴 수 있는 사령들을 소모해서 권능들을 전부 막은 것이니…….
솔직히 말해서 나도 완전히 전투를 날로 먹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암흑 군주는 그 사실을 모르기에 그저 울부짖을 뿐이었다.
“으아아아아! 이 빌어먹을 놈이─! 저주하겠다! 마신께 짐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복수하겠……!”
승기를 가져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암흑 군주는 처절하게 복수를 다짐하고는 이내 재빠르게 뒤돌아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마도 도망친 후에 만반의 준비를 갖춰서 재도전할 생각이겠지.’
일견에는 꼴사납기 짝이 없을지언정 실속만큼은 확실한 방도긴 한데…….
제대로 된 이동기조차도 없이 평범히 달려서 도주하는 걸 내가 허락해 줄 리 없었다.
콰아아앙!
기력이 떨어진 암흑 군주의 움직임은 굼떴고, 그에 나는 손쉽게 그를 제압할 수 있었다.
“크으으…….”
뭐, 바로 죽이는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복수든 뭐든 내가 알 바는 아니고…….”
암흑 군주에게서는 얻어야 할 게 있으니까.
“여태까지 도전자에게서 아이템들을 뺏어 왔다고 했었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고통을 호소하는 암흑 군주에게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거 전부 내놔.”
승리 보상은 챙겨야 하지 않겠는가.
***
요새 도시.
거목 미궁의 본격적인 심층부로 분류되는 이 도시는 여러모로 발달한 상태였다.
고작 마족이 미궁 내에 지은 도시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중에서도 암흑 군주의 성채는 중세 왕성을 보는 것 같은 웅장함까지 갖췄고.
성채 외견의 장엄함에 비견될 정도로 좋은 설비들이 곳곳에 존재했다.
“그러니까…….”
그럴 만도 했다.
“이 왕성 대부분이 도전자에게서 빼앗은 아이템으로 구축된 거라고?”
이 양심 터진 암흑 군주는 도전자들의 아이템으로 왕성을 지었으니까.
“그, 그렇다…….”
몇 대 간단하게 쥐어박힌 암흑 군주는 늑대 귀를 축 늘어뜨린 채 그렇게 답했고.
“역시 마족답게 자원 낭비의 극치를 보여 주네.”
그에 나는 혀를 차고는 사리사욕으로 점철된 성채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자, 자원 낭비라니!? 이 왕성은 실전된 마왕성의 건축법을 복원하면서까지 만들어 낸 최고의 기능성을 갖춘……!”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한데.”
“…….”
“그래서 쓸데없이 성 하나 짓는데 여태까지 모아온 아이템 대부분을 사용해 버렸다는 거잖아?”
“옳은 말이지만, 하나만 정정하지. 쓸데없이 이렇게 한 게 아니라 지고의 기술을 사용한─.”
“사견을 덧붙일 때마다 수명이 조금씩 줄어들지도 모르겠는데, 괜찮겠어?”
“……미안하다. 이제 조용히 있을 터이니, 그 주먹은 이제 내려다오.”
어째서 마족들은 이렇게 주먹을 들어야 입을 조용히 다물 수 있는 걸까?
‘저것도 참 불쌍한 버릇이지.’
한 대 맞기 전까지는 협조성(?)이 살아나지를 않으니 여러모로 골치가 아팠다.
“왕성의 어디에 아이템이 있는지 안내해.”
보상 수집에 시간을 오래 소모할 생각은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를 제압했다고는 해도 이 요새 도시 곳곳에는 마족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 잡듯 색출하는 게 비효율적이라서 본격적으로 움직이지는 않고 있지만…….
‘시간을 많이 주면 또 수작질을 부려올지도 모르지.’
숨어있는 마족들이 수호자의 스킬로 보호받는 팀원들을 습격한다면 곤란해진다.
그러므로 나는 암흑 군주에게 일말의 기회도 주지 않겠다는 듯 그의 어깨를 손으로 붙잡은 채 힘을 불어넣었다.
“시간을 끌겠다는 목적이 보이면 어떻게 될지는…….”
꽈아악……!
“대충 알고 있지?”
그에게 대놓고 살기를 방출하니 이내 기대에 부응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 알고 있다! 지, 짐은 패배에 승복할 줄 아는 남자란 말이다!”
패배에 승복할 줄 안다니…….
‘그럼 대체 왜 도망치려 했는데.’
뭐, 조금은 어이가 없는 발언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좋다는 심정이었다.
“그럼 됐고.”
굳이 말의 꼬투리를 잡지 않고 암흑 군주의 안내를 따라서 왕성 곳곳을 탐방했다.
미관은 나쁘지 않았다.
마치 어느 박물관이라도 견학 온 거 같은 느낌에 들뜰 정도.
심지어 박물관과는 다르게 직접 원하는 것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점이 베스트였다.
“이건 뭐지?”
그렇게 조용히 암흑 군주를 따라가니 뜬금없이 붉은색의 큰 구슬이 배치된 방이 나타났다.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구슬을 보아하니 아이템인 거 같은데…….
“이 수정 구슬로 말하자면 170년 전에 19층까지 올라간 도전자의 아이템으로…….”
굳이 설명을 듣고 싶진 않았기에 암흑 군주의 말을 무시한 채 구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서 마기 증폭 구슬(A+)을 공양받았습니다.」
「해당하는 아이템들을 신성력으로 치환하여 심장에 축적합니다.」
바로 공양의 인장을 통해서 신성력으로 치환시켜서 심장에 힘을 축적시켰다.
‘A+급 아이템이라서 그런지 신성력의 상승량도 제법이네.’
물론 신성 등급까지 올리기엔 무리지만, 이렇게 조금씩 성장하는 것도 그 나름의 맛이 있었다.
‘이 도시에 있는 모든 아이템을 신성력으로 치환하면 볼만하겠어.’
그에 기대감을 부풀리자니 갑자기 암흑 군주에게서 외침이 들려왔다.
“마, 마기 증폭 구슬이……! 천금을 줘도 얻을 수 없는 보물이이이……! 어, 어어억……!”
그는 뒷목을 붙잡은 채 부들거리며 눈을 까뒤집을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고작 A+급 아이템 하나 가지고 호들갑 떨기는…….”
이래서야 암흑 군주의 정신이 무사할지 걱정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다른 아이템이 있는 장소로 안내해.”
보상 수집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니까.
***
쿠구궁……!
천천히 무너지는 암흑 군주의 성채를 보며 나는 웃음을 지었다.
‘정말 많은 걸 얻었어.’
암흑 군주를 데리고 성채 곳곳에 설치된 아이템을 수집하며 많은 이득을 보았다.
이제 심장에 축적된 신성력은 등급 상승 직전까지 차올랐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고.
더불어 영약 계열의 아이템 또한 손에 넣어서 마력 능력치를 일부나마 올리는 게 가능했다.
「미궁 업적 ‘도시 약탈(Unique)’을 달성했습니다.」
「미궁 점수 +15점을 획득합니다.」
「스킬 ‘약탈(C+)’이 생성됩니다.」
심지어 성채를 무너뜨리니 유니크 업적도 달성됐다.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라고 해도 문제없을 수준이다.
“흐, 흐흐흐……. 지, 짐의 왕성이……. 후, 후흐흣…….”
왕성을 통째로 무너뜨릴 정도로 아이템을 있는 대로 싹싹 털어 낸 탓일까?
암흑 군주는 실성한 것처럼 흐느끼듯 웃더니 이내 그대로 무릎을 꿇은 채 내게 부탁했다.
“이 목숨을 바칠 테니 이 도시만큼은 부수지 말아다오……!!”
도시만큼은 부수지 말아 달라니…….
‘사람을 무슨 파괴의 화신처럼 여기네.’
얻을 것도 없는데 갑자기 도시를 왜 부순다고 생각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파천검 같은 게 있어서 도시를 부숴서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도시를 부술 생각은 없었다.
“부탁이니 도시 안에 있는 마족들 그리고 도시만큼은 그대로 놔둬다오……!!”
그런데 이쯤 되면 부술 생각이 없어도 암흑 군주를 골려 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게 사람에게 부탁하는 자세인가?”
“…….”
“존댓말.”
“간곡히 부탁하오니, 부수지 말아 주십시오…….”
“그래, 이제야 좀 부탁하는 것 같네.”
문득 요새 도시에 처음 들어오자마자 마주친 늑대 귀를 단 여성 마족이 떠올랐다.
이 요새 도시에 있는 마족들은 모두 선량한 존재라는 궤변을 늘어놓은 마족이었다.
‘착한 마족이라…….’
그때는 착한 마물은 죽은 마물뿐이라며 분개했는데 이제는 인정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뭐, 이것도 착해졌다면 착해진 거겠네.’
타락 요정까지 교화(?)시킨 경력 있는 실력자에게는 악질적인 마족들도 교화되기 마련이다.
그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자니 성채가 무너진 자리에 검은 철문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저건 또 뭐지?’
마치 지하로 이어진다는 것처럼 대지에 문짝이 붙어있는 형태인데…….
고오오……!
왜인지 모르게 검은 철문에서는 짙은 마기가 보기 거북할 정도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째서 여태까지 저런 것의 존재를 몰랐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그에 바로 암흑 군주에게 저게 무엇인지 물어보니 대답이 돌아왔다.
“……성소입니다. 내부에는 마신님께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제단이 있습니다.”
신에게 관련된 장소인 거 같은데 관심이 생겼다.
“안쪽에는 제단 이외에도 다른 게 있는 건가?”
“……성유물이 있습니다. 하지만 출입하진 못합니다.”
“그래? 왜인지 나는 가능할 거 같은데?”
“자, 잠시만! 주먹! 주먹은 내려놓고! 이, 이유가 있습니다! 들어봐 주십시오!”
한 대 처맞으면 암흑 군주의 생각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쓸데없이 잔재주를 부리려는 게 아니었다.
암흑 군주에게는 이 안에 못 들어가는 이유라는 게 존재했다.
“성소에는 인간은 출입할 수 없고, 출입 대기 시간이 존재합니다.”
“출입 대기 시간?”
“……한 번 저 안에 들어선 마족은 한 달 동안은 성소로 진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들어갈 수 없다는 건가.”
“그, 그렇습니다…….”
“까다롭네.”
진실인지 거짓인지 분간할 수 있는 화룡안이 없다지만…….
암흑 군주의 눈빛이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걸 고려하면 거짓일 확률은 희미했다.
물론 그렇다는 게 곧 진실이라고 곧이곧대로 믿겠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었다.
나는 암흑 군주에게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열어봐.”
“……예?”
“진짜로 출입 대기 시간이 있는지 아닌지 알아보게 열어 보라고.”
“……알겠습니다.”
의외로 암흑 군주는 저항하지 않고 내 지시에 따랐고, 이내 대지에 붙은 철문을 잡아당겼다.
그그그!
억지로 철문을 당기는 소리까지 날 정도로 강하게 말이다.
하지만 철문은 열리지 않았다.
“…….”
“보, 보십시오. 거짓이 아니잖습니까. 이 안에는 들어갈 수 없…….”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내가 한 번 열어 볼게.”
“아니, 안 되는데, 왜 굳이 그러시는…….”
철컥……!
「미궁 업적 ‘성소 개방(Legend)’을 달성했습니다.」
「미궁 점수 +100점을 획득합니다.」
「[HP] 및 [MP]의 총량이 40 상승합니다.」
검은 철문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손쉽게 열렸다.
이게 왜 레전드 등급의 미궁 업적을 달성시켰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간단하게 말이다.
“되는데?”
그에 나는 이내 암흑 군주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런데…….
“소, 속였구나! 역시 너 같은 놈이 인간일 리가 없지! 이 개 같은 악마 자식이─!”
설명은커녕 이내 나를 동족 취급을 시작한 걸 보고는 싱긋 웃음을 지었다.
“아하!”
아직 제대로 알 수 있는 건 없지만…….
“이게 왜 이렇게 됐는지, 기억이 안 나는 거 같은데, 걱정하지 마.”
이것만큼은 확신하는 게 가능했다.
“맞다 보면 기억이 날 테니까.”
암흑 군주를 패다 보면 정답을 알 수 있을 거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