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92
190. 성전 (2)
화산파 장로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진경이라는 중년인이 미궁에서 퇴출된 후.
「거목 미궁 6층, [증명의 요람]을 내려갈 자격을 얻었으므로 보상이 주어집니다.」
「[아이템 · 권능 · 스킬] 중 두 가지를 선택하여 능력을 둘 복구할 수 있습니다.」
다음 계층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동할 수 있는 장소는 어디에 있는지 탐색해야 하는 게 아닐까 했지만…….
그렇진 않았다.
우우웅……!
회색 대지 중앙에 있는 큰 거울의 겉면이 크게 일렁이며 포탈이 생성됐다.
그에 이내 자리에서 움직이려고 하니 가만히 있었던 김승훈이 입을 열었다.
“……목적을 알 수 없는 기이한 도전자였군.”
여태까지 전음으로 대화한 탓에 그저 찝찝한 도전자 정도로 여기는 거 같은데…….
“그러게요.”
굳이 김승훈에게 이진경에게서 들은 소리를 알려 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이진경에게서 들은 신검백가에 관한 이야기는 내 관리자랑 얽힌 이야기이므로.
쓸데없이 김승훈에게 알려 줄 필요는 추호도 없으니 말수를 줄이는 건 당연했다.
「스킬 ‘수호자’가 비활성화됩니다.」
이어서 수호자 스킬을 해제하니 결계 안에 갇혀 있던 팀원들도 합류했다.
“……웬 무림인이랑 대화하고 있더니만, 대체 그 사람은 누구예요?”
캐서린 베넷은 도저히 알 수 없다는 듯 그렇게 물었고, 그에 나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자기 목숨을 구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더군요.”
정말이다.
전음으로 나눴던 대화를 제한다면 이진경은 이 이상으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갑자기 그런 말을 한다고요? 지구 차원 출신은 그렇게나 하찮게 본 사람이?”
물론 캐서린 베넷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했지만…….
“나도 직접 보긴 했다마는. 꿍꿍이는 없는지 그 말을 끝으로 사라지더군.”
그 말에 더는 캐묻지 않고 입을 다물었고, 이어서 오춘석이 입을 열었다.
“……아무튼 좋게 끝났다니 다행입니다. 성윤 씨 덕분에 이제 곧 미궁도 끝을 볼 것 같고요.”
그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거울에 생겨난 포탈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진짜 얼마 안 남은 것 같으니 라스트 스퍼트를 올리죠.”
뭐, 이쪽도 마찬가지로 지금은 그저 미궁의 끝을 보고 싶은 마음이니, 더는 조잘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다음 계층으로 내려갑시다.”
그에 나는 이내 팀원들을 데리고 거울로 다가갔고, 이어서 재빠르게 능력들을 복구했다.
「스킬 ‘성광星光’이 봉인에서 해제됩니다.」
「권능 ‘신앙 수확’이 봉인에서 해제됩니다.」
여러모로 광역기로 사용하기 좋은 스킬인 성광에 새로운 신화를 생성할 수 있도록 신앙 수확까지 갖췄다.
……신앙 수확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 많이 생길 거 같지는 않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건 내 욕심이었다.
‘어쩌면 이 거목 미궁에서 엄청 좋은 신화를 얻을지도 모르니까.’
여태까지 내게 크게 도움을 준 혹은 같은 신화를 좀 더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그 탓에 나는 신앙 수확을 되찾지 않을 수 없었다.
‘증명의 신이 사용한 같은 걸 보면 기대하지 않을 수 없지.’
심지어 증명의 신이 직접 신화까지 사용한 직후니 더 그러했다.
「증명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의 선택에 흡족함을 느낍니다.」
……관음증이 도졌는지 증명의 신이 표층 의식에 드러난 생각을 읽은 것 같다.
이래서 최대한 신이 관장하는 계층에서는 생각을 표층으로 드러내지 않는 건데.
‘쓸데없이 생각을 드러내긴 했지만, 뭐, 크게 상관은 없으려나.’
어차피 귀찮게 생각을 숨기지 않아도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정말로 증명의 신이 우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신격인지.
그도 그럴 것이…….
「거목 미궁 7층, [성지(聖地)]에 입장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진짜로 거목 미궁이라는 이벤트의 진의(眞意)를 접할 차례니까.
「이곳은 여러 신격이 관측 중인 미궁 심층입니다.」
「모든 정식 등반 차원의 도전자들이 공동으로 시련에 임할 수 있습니다.」
「여태까지 거목 미궁을 내려오며 인연을 쌓은 신을 선택하여 진영을 고를 수 있습니다.」
여태까지 거목 미궁을 클리어하며 수집한 정보는 이러했다.
이 거목 미궁은 신격이 얽힌 이벤트이고 신들끼리 모종의 보상을 놓고 경쟁하는 경합이라고.
‘드디어 시작인 거구나.’
그리고 마신은 말했다.
「진영을 선택할 시, 가장 우수한 도전자는 그 진영에서 [신의 사도]로 발탁됩니다.」
신격들의 경합에서 그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경합의 보상을 내게 주겠다고.
그리고 그 요구는 내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들어줄 수 있는 것이었다.
「[신의 사도]가 정해질 시, 각 진영에 있는 [신의 사도]에게 [성배 조각]을 지급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각 진영에 있는 [신의 사도]는 다른 진영에 있는 [성배 조각]을 쟁취하십시오.」
마신이 내게 한 요구는 ‘거목 미궁 안에 있는 신 중 하나를 철저히 격퇴할 것’이니까.
「4시간 후, [성배 조각]을 둘 이상 가진 진영은 8층으로 내려갈 권한을 획득합니다.」
어느 신을 격퇴할지 정도야 이미 정해 둔 상태였다.
‘설마 내가 전투의 신을 만나는 걸 기대할 줄은 몰랐는데.’
그것도 탑에서 서로 싸워 본 적이 있는 상대로.
***
「거목 미궁 7층에 도착하여 아이템 전용 페널티가 사라집니다.」
「아이템 ‘혈천마검(A+)’이 완전히 봉인에서 해제됩니다.」
아이템 전용 페널티가 해제됐다.
7층에 도착할 때까지는 혈천마검의 전용 효과는 전부 쓸 수 없다고 했는데…….
‘이제부터는 담천우랑 소통도 할 수 있고, 각인 스킬도 사용할 수 있는 건가.’
심층에 도착했으니 아이템 전용 페널티가 적용될 구석이 아예 사라진 것이다.
그에 만족하고 있으니 이내 시야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인연이 있는 신의 진영을 선택하십시오.」
그리고…….
「선택할 수 있는 진영은 현재 총 4곳입니다.」
「, , , 」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서 소속될 진영을 결정하십시오.」
「팀원이 존재할 시, 다수결로 진영이 결정됩니다.」
이어서 선택지를 본 나는 눈매를 좁힌 채 웃음을 지었다.
‘역시 이렇게 되는 건가.’
거목 미궁을 내려오며 마주친 전적이 있는 신들의 진영을 택할 수 있다고 했으니…….
1층에 들어오자마자 내 신성을 마주했으니 도 선택지로서 등장할 수 있는 거겠지.
물론 그걸 모르는 팀원들은 의아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 이건 뭐지? 이런 것에 엮인 기억은 없는 것 같다마는.”
“그러게요. 은 어둠의 신에게 제가 은총을 받아서 그렇다고 쳐도, 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건지 짐작이 안 되는데요.”
“글쎄요. 저희도 모르는 새에 얽힌 신일지도 모르죠. 어차피 무슨 진영을 고르든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지만요.”
잠시간 이어진 대화를 통해서 나는 크게 고민할 게 없음을 깨달았다.
팀원들은 신격들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는 눈치니, 굳이 설득으로 을 고르자고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럼 로 진영을 선택합시다.”
예상한 것처럼 반대하는 의견은 존재하지 않았다.
팀원들에게 있어서 진영 선택 같은 건 어디를 골라도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모든 팀원이 만장일치로 진영을 선택했습니다.」
「도전자 한성윤이 진영 [신의 대리자]로 선정되어 [성배 조각]이 지급됩니다.」
화아악……!
선택을 끝내자마자 몸에서 찬란한 광채가 흘러나오며 공중에 웬 빛나는 유리 조각이 나타났다.
‘이게 성배 조각인 건가.’
척 보기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거 같은 유리 조각인데 이런 게 [성배 조각]이라니.
조금은 신뢰하기 힘들었지만, 그렇게 깊게 생각하진 않았다.
[성배 조각]을 바로 품에 간직한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대삼림(大森林).
그렇게 일축해서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거목들이 빽빽하게 늘어져 있는 장소였다.
이런 장소를 굳이 스테이지로 선택한 것은 아마도 [성배 조각]을 가진 이를 물색하고 그들을 잡으라는 거겠지.
게임으로 따지자면 배틀 로얄 장르인 것이다.
하지만…….
“굳이 재미없게 술래잡기 같은 걸 할 필요는 없지.”
이 스테이지에서 시스템이 유도하는 배틀 로얄 장르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성배 조각]을 중심으로 철저한 심리전이 오갈 것을 생각하니 더더욱 그러했다.콰아앙─!
나는 혈천마검을 휘둘러서 단숨에 깊은 구덩이를 만들어 내고는 짤막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조금 소란스러워질 거 같으니 다들 이 안에서 기다려 주세요.”
여태까지 그래 왔듯 팀원들은 결계 내에 둔 채로 안전하게 싸우려는 심산이었다.
“……알겠어요. 어차피 당신에게 저는 짐만 되겠죠. 이 안에 얌전히 있을게요.”
왜인지 모르게 캐서린 베넷은 씁쓸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구덩이 안으로 들어섰다.
이 상황에서마저도 자기를 신용하지 못한다는 게 조금은 아쉬운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었다.
‘나도 이제부터는 어떻게 될지를 모르니 최대한 주의해야지.’
본격적으로 신격이 개입하는 시련일진대 돌발 변수를 일으킬 여지를 남기고 싶지는 않으므로.
“여러분은 이 안에서 버텨 주시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알겠다. 결계가 사라지면 그쪽으로 합류하지. 언제든지 부르도록.”
“후우. 보조 마법은 전부 걸어드렸습니다. 성윤 씨. 무운을 빌겠습니다.”
이어서 남은 팀원들까지 구덩이 내부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바로 수호자 스킬을 활성화했다.
「스킬 ‘수호자’가 활성화됩니다.」
「지킬 대상 및 영역을 지정했습니다.」
「수호 대상 및 영역에 마력 결계가 생성되며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츠으으.
붉은 결계가 구덩이를 완전히 덮고 나니 갑자기 혈천마검이 웅웅 떨려 댔다.
―……동료들을 엄청나게 아끼는군. 저렇게까지 지켜 주다니. 네놈답지 않게 감성적이야.
어느새 의식이 깨어난 담천우가 전음을 보내온 것이다.
그에 나는 피식 웃음을 짓고는 입을 달싹였다.
“언제부터 의식이 있었던 겁니까?”
―봉인이 해제됐을 때부터다. 단지, 네놈에게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 말을 걸지 않은 것이지.
“그것참 고마운 배려네요.”
―그렇지? 그러니 본좌를 공경하도록 해라! 네놈 같은 걸 챙겨 주는 사람은 세상에서 본좌가 유일할 터이니!
“그럼 고마운 건 취소하겠습니다.”
―쯧……! 됐느니라! 공경할 필요는 없으니 고마움은 받겠다! 하여간, 인성 수준하고는…….
담천우는 툴툴거리듯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거기에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이제부터 담천우는 상당히 고생해야 할 테니까.
“됐고. 정신이나 차리십시오. 이제부터 바로 전력으로 싸울지도 모르니.”
―……전력으로 싸운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주위에는 적이 없잖느냐.
“그러니 준비하라는 겁니다.”
―?
“이제 이 계층에 있는 모든 적을 이곳으로 불러들일 거니까.”
그에 담천우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이어서 말하려 했지만…….
―그게 무슨…….
귀찮게 입으로 조잘조잘 설명해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차피 곧 내가 한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므로.
「스킬 ‘성광星光’이 활성화됩니다.」
키이잉……!
공중에 생성된 별빛이 신성의 막(膜)에 가두어진 채 맹렬하게 폭주하기 시작했고…….
―미, 미친놈이……! 너! 너 설마 지금 그거를 터뜨리려는 것이더냐……!
이내 담천우는 내 생각을 이해했는지 혈천마검의 칼날을 부르르 떨어 대며 재잘댔다.
―그게 터지면 강자란 강자는 전부 네놈을 처리하려고 혈안이 될 것이다!
이 성광을 터뜨린다면 틀림없이 이 삼림에 있는 모든 강자를 적으로 돌릴 것이라고.
―보아하니 힘도 온전치 않은데 그런 짓을 한다면 무사할 수 없……!
하지만…….
“그렇네요.”
담천우는 아직도 나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를 못했다.
“이걸 터뜨리면 무사할 수 없겠죠.”
그러니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다.
그것도 아주 친절하게.
“제가 아니라 적이 될 놈들이.”
그리고.
콰아아아아앙─!
신성의 별빛이 대삼림을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