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98
196. 미궁 최종 계층 (3)
신격화의 봉인이 해제된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이득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신격에게 있어서는 기본 신성 권능으로 분류될 정도로 매우 기초적인 소양이다마는…….
미궁에 의해 모든 능력이 봉인된 후로는 그 기초적인 소양마저도 잃은 채로 층을 내려와야 했었다.
물론 신격화 자체는 언제든지 되찾을 수 있는 권능이었다.
미궁은 계층을 내려갈 때마다 도전자들이 본래의 능력을 가져올 수 있도록 해 줬으므로.
하지만 나는 여태까지 한 번도 신격화를 되찾을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격화는 계층 돌파에서 복구해야 하는 능력이라기엔 계륵에 가까운 권능이었으니까.
신체 능력치가 받쳐 주지 않으면 신격화를 발동하자마자 몸이 바늘에 찔린 풍선처럼 펑 터졌을 것이다.
그러니 쓸모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한성윤』
『HP – 417/450』
『MP – 207/240』
『근력 – 111』 『체력 – 117』
『민첩 – 115』 『마력 – 114』
『내구 – 113』
『고유 특성 – 네크로맨시(A)』
『고유 권능 – 스킬 합성』
『고유 신성 권능 – 초월(SSS+)』
『기본 신성 권능 – 신격화(SS+)』
『권능 – 신성력(A), 혈천심공(C+), 용사의 가호(C+), 명경지수(C-), 신앙 수확(C+)』
『스킬 – 자세히 보기』
미궁 1층에서 본 능력치와는 엄청난 격차가 벌어졌다.
물론 바깥에 있을 때와 비교하자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지만…….
‘충분히 능력치가 올랐으니, 신격화도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겠지.’
이제 모든 능력치는 세 자릿수를 넘었고 더불어 신화의 보조까지 받는다면 신격화를 감당하는 것도 가능할 터.
그에 나는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설마 이렇게 이득을 볼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그렇게 좋아할 일도 아닌 거 같다마는. 진짜로 좋아할 놈들은 따로 있겠지.
하지만 조금 들떴던 감정은 오래가지 않아 담천우에 의해 가라앉았다.
―영격이 심각할 정도로 낮은, 신격 같지도 않은 신격들. 그 수는 적을지언정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담천우는 걱정이 된다는 듯 낮은 음색으로 말을 이어 갔다.
―심지어 너는 신격화를 받았을지언정 화신체까지 받아 내지는 못했느니라. 하지만 격 낮은 신격들은 다르지.
‘화신체도 가지고 있는 신격들은 봉인이 해제됐겠군요.’
―정답. 그러니 기뻐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잖느냐. 이제부터 격 낮은 몇몇 신격들이 날뛰게 될 터이니.
‘……그렇게까지 심각할 거 같지는 않은데요.’
물론 틀리진 않은 말이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옳다고도 할 수 없는 의견이었다.
몇몇 기본적인 신격 권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고 해도 신격들은 마구잡이로 날뛸 순 없다.
‘신격화를 쓸 수 없는 신격들도 서로 진영이 망할 것 같으면 조치를 취하지 않겠습니까.’
신격화 그리고 화신체의 권능을 허락받을 수 없었던 강대한 신격들 또한 을 쓸 순 있다.
그러니 그것을 통해서 최대한 신격화를 쓸 수 있게 된 신격들을 압박하겠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신격화를 허락받을 정도로 격 낮은 신격들은 소수일 터이니 견제 자체는 유효할 터.
그러므로 나는 그 사이에서 조용히 간을 보면 된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냐?
하지만.
―굳이 신격 간에 눈치를 볼 필요는 없느니라. 격 높은 신격을 상대하는 것이 문제라면, 격 낮은 신격을 상대하면 되는 법이니.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리고 위치를 실시간으로 드러내는 격 낮은 신격이 이 자리에 있잖느냐.
그건 바로…….
「도전자 한성윤에게는 다수의 지명권이 사용된 상태입니다.」
「도전자 한성윤의 위치는 모든 진영에 공개되어 있고, 은신 불가 상태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현재 내가 누군가에게 노려지기에는 정말 좋은 상황이라는 것.
「어설픈 열화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에게 특수 신성 권능 ‘화신체’의 출현 위치를 고정합니다.」
「서투른 관찰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에게 특수 신성 권능 ‘화신체’의 출현 위치를 고정합니다.」
「거짓된 비참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에게 특수 신성 권능 ‘화신체’의 출현 위치를 고정합니다.」
“…….”
현란하게 떠오르는 메시지들을 보며 나는 새삼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이 세상에 날로 먹을 수 있는 보상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
감정이 빠르게 가라앉으며 생각이 점점 가속했다.
상정 외의 상황이 끊임없이 일어나니 이제는 한탄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단지, 이 고비를 어찌해야 넘길 수 있을지 고민할 뿐.
이내 나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시스템 메시지를 바라보며 눈매를 좁혔다.
일단은 이 시스템 메시지가 무엇을 뜻하는지 정도야 어느 정도 알아챈 상태였다.
“…….”
화신체라는 건 아마도 신격의 아바타를 소환하는 특수 권능인 것 같은데…….
출현 위치를 고정했다는 문구를 보아하니 사용 즉시 바로 내 근처에 아바타가 생성될 것이다.
하지만 기껏 출현 위치를 고정해 놓고 바로 쓰지 않는 걸 보니 다른 속셈이 있다는 게 느껴졌다.
―……불행 중 다행인 건가. 잡신들끼리 서로 눈치를 보고 있군. 서로 먼저 화신체를 보내는 쪽이 손해라는 걸 알고 있어.
그럴 만도 했다.
‘나중에 출현한 화신체가 어부지리를 얻는다는 걸 아는 거겠지.’
처음에 출현한 화신체가 나와의 전투로 지치면 그다음으로 나타나는 화신체가 유리할 터이니.
그에 그나마 시간을 벌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 때였다.
까드득…….
“출현 위치 고정이라니……. 하찮은 잡신들 주제에 감히 한성윤 님에게 같잖은 수작질을…….”
어느새 아리아가 눈빛을 검게 죽인 채 손톱을 잘근잘근 씹어대고 있었다.
심지어 몸에서는 숨길 수 없는 살기가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을 정도.
―……저건 또 왜 저러는 것인지 모르겠군. 하여간, 사도라는 것들은 전부 맛이 간 연놈들뿐이니라.
그 모습을 본 담천우는 질렸다는 듯 중얼거리곤 이내 말을 이었다.
―잡신들이 많이 꼬인 것 같다마는. 이 정도는 충분히 네놈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의외로 담천우는 현재 상황을 그렇게까지 나쁘게 보고 있지는 않았다.
―어설픈, 서투른, 거짓된. 신명에 저러한 수식언이 붙은 놈들은 잡신 중의 잡신이니라. 그러니 합심해서 달려드는 게 아니면 그리 걱정할 것은 없지.
확실히.
신명에 저렇게 하찮은 수식언이 붙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여태까지 본 신격들은 전부 증명이니 어둠이니 하는 신성 성향을 짤막하게 달고 있을 뿐이었지.’
심지어 가장 격이 낮은 신격마저도 이 규칙성에서 어긋나지 않았다.
그런데 저렇게 질 낮은 수식언을 달고 있다는 것은 저들이 정말로 수준이 낮다는 방증일 터.
이에 더불어 서로 합심해서 달려드는 것도 아니고 어부지리를 노리며 견제하는 꼴을 보니 생각보다 불리하진 않은 상황이다.
“…….”
그러나 이 상황도 언제까지 유지될진 모른다.
일종의 폭풍전야 같은 상태라고 해야 하나?
잡신들이 서로 눈치를 보는 상황일지라도 이는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다.
그리고…….
“……한성윤 님. 잡신들이 이제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도전자들이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아리아에게서 좋지 않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과연, 자기 진영에 소속된 도전자들로 힘의 소모를 유도하는 것인가…….
잡신들이 뭘 노리는지 정도야 뻔했다.
소모전을 치르게 해서 내가 가진 힘을 많이 빼 두고, 그 이후에 서로 화신체를 내보내려 하는 것이다.
그에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소모전이라…….”
솔직히 말해서 잡신들이 선택한 전법 자체는 괜찮았다.
먹잇감을 지치게 한다면 어부지리를 노리는 후발주자의 유리함도 크게 줄어들 터이니.
서로 언제든지 나를 칠 수 있는 상황을 자아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통상적인 경우로 상정했을 때이다.
‘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으니 소모전 같은 같잖은 전법을 택했겠지.’
소모전?
이는 되려 내 장기(長技)라고 할 수 있었다.
싸움이 추잡해지면 추잡해질수록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나는 강해지니까.
“분부를 내려 주신다면 저 사교도들을 모조리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처리하겠습니다.”
아리아가 짙은 살기를 드러내며 회색빛 눈을 번뜩였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말렸다.
“아리아 씨는 캐서린 씨나 지켜 주십시오. 이제부터는 좀 많이 소란스러워질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바로 곧 있을 전투를 대비하기 시작했다.
「의지 확인.」
「거목 미궁 3층, [타락 요정의 지배 영역]의 계층 돌파 조건으로 바쳐진 아이템이 71개 존재합니다.」
「임의의 공간에 저장된 모든 아이템이 도전자 한성윤에게 전송됩니다.」
일단은 이전에 타락 요정과의 계약으로 축적된 아이템들을 모조리 이 자리에 전송시켰다.
여태까지는 굳이 아이템들을 소환할 이유가 없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공양의 인장(SS-) 전용 효과 ‘공양(供養)’이 활성화됩니다.」
그럴 만도 했다.
‘신격화를 사용할 신성력을 조금이라도 많이 회복해야 해.’
이 모든 아이템을 소모해서라도 신성력을 회복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자기 자신에게서 빗물을 다루는 주머니(D+)를 공양받았습니다.」
「해당하는 아이템들을 신성력으로 치환하여 심장에 축적합니다.」
「자기 자신에게서 짙은 빛을 머금은 소도(E-)를 공양받았…….」
「해당하는 아이템들을 신성력으로 치환하여 심장에 축적합…….」
「자기 자신에게서 마나 재생의 지팡이(D)를 공양받…….」
「해당하는 아이템들을 신성력으로 치환하여 심장에 축…….」
적잖은 아이템이 신성력으로 치환되어 축적되니 신성력이 많이 회복됐다.
‘하지만 이것도 부족해.’
최대한 신격화를 오래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신성력을 쌓아야 했다.
뭐, 이제는 신성으로 치환할 아이템은 없다마는…….
「고유 권능 ‘스킬 합성’이 활성화되었습니다.」
그마저도 여태까지 쌓아온 스킬들로 해결할 수 있었다.
「스킬 목록을 열람합니다.」
「현재 있는 스킬 중에서 합성 재료를 골라 주십시오.」
굳이 스킬 조합을 고려할 것도 없이 랭크 높은 스킬들을 쭉쭉 습득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권능 ‘용사의 가호’가 강하게 활성화됩니다.」
「행운이 일시적으로 격렬하게 상승합니다.」
내게는 행운을 극단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는 권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킬 합성이 완료되었습니다.」
「새로운 스킬이 생성됩니다.」
그러니 랭크 높은 스킬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그 쓸모와는 관계없이 신성력이 빠르게 축적됐다.
―……이쯤 되면 신성이 거의 복제되는 수준이군. 어이가 없을 지경이로다.
이내 합성된 모든 스킬을 신성력으로 갈아 버리니 만족스러울 정도의 신성력이 심장에 모여졌다.
그리고.
쿠구구구─!
모든 전투 준비가 끝나자마자 바로 이변이 일었다.
바로…….
“설마 이런 것도 가능할 줄은 몰랐는데.”
상공에 더없이 음울한 기운을 머금은 푸른빛의 구체가 생성된 것이다.
「특수 권능 ‘거짓을 머금은 비참의 달빛’에 지정된 적들에게 끔찍한 슬픔이 새겨집니다.」
「특수 권능 ‘거짓을 머금은 비참의 달빛’에 지정된 적들은 슬픔을 느낄 시, 생명력이 줄어듭니다.」
아마도 감정을 건드릴 수 있는 정신 계통 권능인 것 같은데…….
「권능 ‘명경지수’에 의해서 인공적으로 생성된 감정이 모두 사라집니다.」
이미 정신 계통 권능에는 모든 대비를 해 둔 상태이니 크게 신경 쓰이진 않았다.
「조건 만족.」
「신체 장점 가 활성화됩니다.」
심지어 적이 써 준 특수 권능 덕분에 생각 외의 능력까지 활성화되었다.
「달빛이 있는 장소이므로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달빛이 있는 장소이므로 모든 종류의 성장 속도가 10% 상승합니다.」
설마 했는데 인공 달빛으로도 가 발동될 줄이야…….
“재밌네.”
그에 나는 짙은 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스킬 ‘성광星光’이 강하게 활성화됩니다.」
이건 패배하고 싶어도 절대로 패배할 수 없는 싸움이라고.
***
성기사(聖騎士).
신에게 신성을 주입받은 기사는 아레스 차원에서 긍지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신에게 총애받는 자들은 황실에 소속된 기사들조차 다다르지 못하는 경지에도 단숨에 도달하고.
심지어는 제국을 통치하는 황제마저도 겉치레로나마 존대할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탑이 생기게 된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도전자 레그빅은 거목 미궁에서 신에게 눈총을 받게 됐음을 알게 되자마자 기쁨을 느꼈다.
「어설픈 열화의 신이 도전자 레그빅에게 호의의 눈빛을 보냅니다.」
들어본 적도 없는 잡신이라고 해도 신격이 그에게 호의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어쩌면 신도로서 신격에게 신성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바이니…….
레그빅은 철저하게 어설픈 열화의 신을 섬겼고, 7층 스테이지에 다다르며 그 결실이 맺혔다.
「도전자 레그빅이 진영 [신의 대리자]로 선정되어 [성배 조각]이 지급됩니다.」
“오, 오오, 오오오……! 위대하신 열화의 신이시여……! 당신을 섬기겠나이다……!”
그는 예비 사도로 지정되어 신성을 받은 것도 모자라서 여러 권능까지 습득했다.
상상을 넘어선 결과물.
그에 레그빅은 선택받은 존재가 되었음에 환호했지만, 그것은 머지않아서 사라지게 됐다.
7층에 다다르며 신의 대리자로 선정된 자들이 적잖음을 깨달은 탓이다.
하지만 그는 다른 예비 사도와의 전투에서 패배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러 소드를 다룰 줄 아는 기사였고, 어설픈 열화의 신에게도 권능을 많이 받았으므로.
하지만 그 생각은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기 시작했다.
「특수 권능 ‘거짓을 머금은 비참의 달빛’에 지정된 적들에게 끔찍한 슬픔이 새겨집니다.」
「특수 권능 ‘거짓을 머금은 비참의 달빛’에 지정된 적들은 슬픔을 느낄 시, 생명력이 줄어듭니다.」
상공에는 웬 푸른빛을 뿜어내는 인공의 달빛이 생성됐고…….
「특수 권능 ‘모든 것을 내려 보는 관찰자의 시선’에 의해서 은신할 수 없게 됐습니다.」
「특수 권능 ‘모든 것을 내려 보는 관찰자의 시선’에 의해서 모든 능력치가 –10 하락합니다.」
정수리 위에는 신성이 느껴지는 눈알이 모든 도전자를 내려 보기 시작했다.
그에 레그빅은 침음을 흘리며 현재 상황이 얼마나 이질적인지를 알아챘다.
“……끔찍하군. 신의 권능이 이렇게 겹치다니. 뭣 같은 상황이 되어 버렸어.”
「어설픈 열화의 신이 승냥이 같은 것들이 달라붙었다며 이를 갈아 댑니다.」
현재 상황은 빈말로도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끄, 끄으으으으으……. 머리가,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쿨럭, 쿨럭……! 으, 으흐으……. 누, 눈물이 멈추지를 않아…….”
“젠장! 가뜩이나 능력치도 원래 낮은데 또 디버프를 먹으면 어쩌라는 건데!”
다른 진영을 치기 위해서 움직이는 와중에 같은 진영 소속 도전자들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것이다.
‘상황이 그리 좋지는 않군.’
서로 전투도 치르지 않았을 터인데 같은 진영 소속 도전자들이 생명력을 잃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능력치까지 내려가고 은신 불가 상태로 지정되니 불안감이 배로 부풀었다.
이대로 가다간 도중에 다른 진영에게 습격받아도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한 채 죽을 터.
레그빅은 자기가 섬기는 신에게 은밀하게 물음을 건네었다.
“신이시여. 진정 이리로 가는 게 맞는 겁니까. 저희는 점점 지쳐 가나이다.”
부디 후퇴를 허락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질문임에도 돌아온 것은 기대와는 먼 종류의 대답이었다.
「어설픈 열화의 신이 쓸데없는 걱정이라며 도전자 레그빅을 다그칩니다.」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어설픈 열화의 신이 어차피 네놈들 같은 건 소모품에 불과하니 상관없다고 말합니다.」
“…….”
「어설픈 열화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의 힘을 소모시키면 나머지는 자기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알겠습…… 니다…….”
레그빅은 입술을 꽉 짓누르며 그대로 말을 마치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신을 섬기는 예비 사도이고, 결정권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레그빅은 애써서 자기 자신을 안심시켰다.
‘……괜찮다. 어차피 신께서 노리시는 적을 지치게 하면 될 뿐이니. 그 정도는 아무리 지쳐도 수행할 수 있을 터.’
어설픈 열화의 신은 화신체로 직접 현현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니 그는 신이 이끄는 길을 따라가서 그 끝에 있는 적을 지치게 하면 될 뿐이라 생각했다.
그럼 신이 직접 화신체로 나타나서 적을 해치우고 그를 아래층으로 갈 수 있게 해 줄 테니까.
하지만 그 믿음은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뭣……!”
갑자기 전방에서 레그빅은 가늠할 수조차 없는 격 높은 섬광이 번뜩인 탓이다.
콰아아아아앙─!
마치 별빛을 떠올리게 하는 검붉은 섬광에 레그빅은 눈을 부릅뜬 채 소리를 질렀다.
“이런 미친!?”
상정할 수 없는 뜬금없는 광역기에 그는 바로 권능을 활성화했다.
「특수 권능 ‘도태를 불러오는 열화의 장막’이 활성화됩니다.」
「장막에 닿는 외부의 모든 공격이 크게 열화됩니다.」
어설픈 열화의 신이 그에게 내려 준 특수 권능이 같은 진영을 이룬 도전자들을 보호하고.
콰과과과과과과─!
대지마저 분쇄할 것 같은 검붉은 성광이 권능으로 이루어진 열화의 장막에 부딪혔다.
그에 성광은 잠시 주춤거리는 동시에 빛의 세기를 낮추었지만…….
그것이 전부다.
콰장창!
이어서 열화의 장막이 처참하게 부서지고, 검붉은 성광이 주위를 휩쓸었다.
콰아아아아!
물론 성광은 이전보다 열화되어 충분히 버틸 만은 했지만…….
「 진영에 소속된 도전자들이 총 17명 사망했습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레그빅 같은 예비 사도에게나 버틸 만한 수준.
“끄아아아! 비, 빌어먹을! 눈이, 눈이 보이지 않아! 히, 힐러! 힐러 없어!?”
도전자 중 대부분은 죽음을 맞이하거나 치명상을 입은 상태였다.
“……하, 하하. 이거 전부 꿈이지? 그렇지? 이런 게 말이 될 리 없잖아?”
심지어 정신에 아주 심각한 타격까지 동반한 채로 말이다.
그리고…….
“…….”
레그빅은 성광에 의해서 뻥 뚫린 지형 너머로 이 상황의 원흉을 볼 수 있었다.
“오. 생각 외로 잡신인데도 소속된 도전자들이 많네. 이건 이것대로 괜찮겠어.”
마치 이 참극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벌일 수 있다는 듯 웃음을 띠고 있는 모습.
심지어 그 주위에 넘쳐흐르는 신성력에 레그빅은 숨을 쉬는 것도 잊은 채 달달달 몸을 떨었다.
직감한 것이다.
「어설픈 열화의 신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경악합니다!」
저것이…….
“히, 히이익……! 시, 신이시여……!”
자기가 섬기는 신과는 아예 격이 다른 ‘진짜 신격’이라고.
***
추측은 했지만 역시 적들은 내게 소모전을 요구할 정도로 강하지 않았다.
‘성광 한 번에 바로 정리되는 수준인가.’
최대 출력이라고는 해도 신성력을 전부 소모한 것도 아닌 수준의 성광에 진영이 붕괴됐다.
「어설픈 열화의 신이 이건 부정이라며 미궁의 관리자에게 거칠게 항의합니다!」
더불어 상대측 잡신이 공황 상태에 빠지며 전신에 충만한 만족감이 차올랐지만…….
진영 정리 보상은 그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권능 ‘신앙 수확’이 강하게 활성화됩니다.」
「당신에 대한 신앙을 주변에서 수확합니다.」
「기반이 될 설화 및 신앙이 부족합니다.」
「수확된 신앙이 다음 신화를 위하여 비축됩니다.」
공포도 신앙의 일종이라는 것일까?
“오.”
신앙 수확.
7층에 들어서며 봉인에서 해제시킨 권능이 저절로 발동됐다.
아마도 이 전투를 끝맺은 시점에서는 새로운 신화가 생겨날 터.
신성력 등급이 상승하며 신화 통합 기능까지 생겨났으니…….
이후에 얻게 될 신화를 통해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기능의 이점을 사용할 수도 있으리라.
‘기대되네. 이번에는 또 무슨 신화가 생겨날지. 볼 만은 하겠어.’
그에 나는 소소한 기대감을 남겨 두고, 이내 왼손에 또 성광을 발동했다.
현재 처리한 진영은 하나이니 남은 두 진영 또한 손을 볼 심산이었다.
그리고…….
꽈아아아앙!
「 진영에 소속된 도전자들이 총 11명 사망했습니다.」
「서투른 관찰의 신이 상정 외의 상황에 크게 당황하며 미궁의 월권을 의심합니다!」
콰과과과광!
「 진영에 소속된 도전자들이 총 14명 사망했습니다.」
「거짓된 비참의 신이 이게 진정 필멸의 존재가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인지 불신을 품습니다!」
굳이 시간을 더 소모할 것도 없이 성광을 두 번 쓰는 것으로 남은 진영들도 정리됐다.
―……방어 계통 권능이 설마 이 정도로 쓸모없는 놈들이 모여 있을 줄은 몰랐다마는.
“그러게요. 어떻게 성광을 제대로 막는 진영이 없네요. 다들 전멸에 가까운 상태입니다.”
상대측 진영에 생존자들이 있을지언정 전투를 지속할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이 여유롭진 않았다.
그에 나는 즉각 몸을 움직여서 주위에 널브러진 사령들을 최대한 흡수했다.
이제부터 있을 신격과의 전투에 사용해야 하니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도전자 ‘세틸리겐’의 사령을 흡수했습니다.」
「숙련도가 0.0017% 상승했습니다.」
「도전자 ‘뉴그리드’의 사령을 흡수했습…….」
「숙련도가 0.0041% 상승했습…….」
「도전자 ‘코아찰칸’의 사령을 흡…….」
「숙련도가 0.0089% 상…….」
그리고…….
「어설픈 열화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의 배제를 위해서 신격 간에 협력할 것을 맹세합니다.」
「서투른 관찰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의 배제를 위해서 신격 간에 협력할 것을 맹세합니다.」
「거짓된 비참의 신이 도전자 한성윤의 배제를 위해서 신격 간에 협력할 것을 맹세합니다.」
사령 수집이 전부 끝나갈 즈음에 신격들이 각각 메시지를 띄웠다.
―……흐. 이제 서로 어부지리를 노릴 상황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군. 힘을 합쳐야 한다는 걸 알아챈 것이겠지.
이제 신격들은 나를 먹잇감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어설픈 열화의 신이 특수 신성 권능 ‘화신체’를 발동하여 고정된 위치에 출현합니다.」
「서투른 관찰의 신이 특수 신성 권능 ‘화신체’를 발동하여 고정된 위치에 출현합니다.」
「거짓된 비참의 신이 특수 신성 권능 ‘화신체’를 발동하여 고정된 위치에 출현합니다.」
그들에게 나는 서로 힘을 합쳐서라도 무조건 쓰러뜨려야 하는 강적이 된 것이다.
고오오오─!
“드디어 직접들 무거운 몸을 움직이는구나.”
이어서 주위에 휘몰아치는 낯선 신성의 격류에 나는 피식 웃음을 짓고는 권능을 발동했다.
이 7층 스테이지 한정으로 사용이 허락된, 정말이지 사기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권능을.
「신성 권능 ‘신격화’가 활성화됩니다.」
「잠재 신성에 따른 신성 권능 행사가 가능해집니다.」
「잠재 신성은 , , , 입니다.」
다음 순간.
[ 궁금하네. ]나는 전신에 황금빛 신성을 휘감은 채 눈을 반짝였다.
[ 신의 화신체를 살해해도 그 사령을 얻을 수 있을지. ]이제 이 미궁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의 끝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